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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70화 (70/183)

70화

돌고 돌아 자신에게 오면 된다고, 타르칸이 첫사랑을 못 잊을 때부터 생각하지 않았던가.

길고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타르칸을 홀로 바라봤다.

‘이 정도쯤이야 견딜 수 있어.’

마침 아리스티네를 추종하는 궁인들이 첫날밤에 어떤 란제리를 골랐는지 들었다.

디오나는 그 사실을 시녀들에게도 귀뜸해 주었다.

이왕 할 거 면 제대로 해야 하니까.

‘괜찮아요,전하. 얼마든지 놀고 오셔요. 결국엔 이 디오나의 품에 안착하실 테니.’

Chapter 22.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가득했다.

타르칸은 침실로 향하는 회랑 을 걸으며 밤의 정원에서 물씬 올라오는 풀냄새를 맡았다.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는 작은 풀벌레가 수풀 사이를 낮게 날았다.

그러나 타르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요 몇 주간 계속 그랬다.

결혼하기 전,타르칸은 항상 혼자 잠들었고, 혼자 일어났다.

잠이 든다는 건 무방비한 상태라는 뜻이다.

그런 순간에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만큼 성가신 건 없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새 익숙해진 것인지,메스를 개량하겠다며 아리스티네가 밤늦게 안 돌아오는 나날이 계속되자 기분이 가라앉았다.

‘딱히 함께 잠들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타르칸의 발걸음은 느려졌다.

요 며칠 일이 늦게 끝나 다른 전사에게 아리스티네의 호위를 맡겼다.

오늘 이렇게 일찍 끝날 줄 알았으면 자신이 갔을 텐데.

‘……지금이라도 대장간에 가볼까.’

그렇게 생각하던 그가 움찔, 고개를 들었다.

‘인기척?’

성큼성큼,부부 침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침실 안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 껴졌다.

아리스티네가 모처럼 일찍 귀가했나 보다.

어느새 그의 표정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방문 앞에서,그는 걸음을 멈췄다.

기척이 여럿이었다.

금안이 날카로워졌다.

‘……궁인들이랑 같이 있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얼마 전 브로디와의 일이 있었던지라 신경이 쓰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이건.....’

치자 꽃처럼 은은하면서도 청량한 향기가 났다.

끝이 아주 살 짝 달콤했다.

물기를 머금은 싱싱한 꽃에 코 끝을 묻을 때 나는,청아한 달콤함이었다.

여름밤에 어울리는 향기였다.

타르칸은 긴장했던 목덜미가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아리스티네와 닮은 향이기도 했다.

‘궁인들의 짓인가.’

항상 침대,침대 하면서 주접을 떨더니 또 무슨 이벤트를 준 비했나 보다.

궁인들의 계략으로 아직까지도 부부 침실엔 등이 없었다.

촛불 만 있을 뿐.

‘오늘 무슨 특별한 날인가?’

낮에 아리스티네가 초콜릿 퍼지를 보내온 것도 의미가 있었던 걸까?

아리스티네처럼 무심한 여자가 그런 섬세한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타르칸은 저도 모르게 날짜를 가늠해 보았다.

결혼한 지 한 달…… 은 이미 훨씬 지났고-이때 타르칸은 아 무 생각도 없던 아리스티네의 모습을 보고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았다. 한 달 기념을 챙기고 싶었던 건 절대! 아니다-딱히 생 각나는 건 없었다.

침대의 레이스 휘장은 안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단 휘장의 붉은색이 야릇한 분위기를 풍겼다.

타르칸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침대로 다가가는 그의 발걸음은 빨랐다.

“대체 무슨 장난을……”

一까지 말하던 타르칸의 목소 리가 뚝 끊겼다.

침대 위에는 아리스티네의 시녀 둘이 기묘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옷인지도 모르겠는 천 쪼가리를 걸친 채.

예전에 궁인들이 아리스티네의 것이라며 골랐던 란제리였다.

그에게 어떤 게 좋으냐고 팔랑 팔랑 흔들며 물었던,그 흉측한 것들.

* * *

“무칼리 경은 장군인데 이렇게 날 호위해도 괜찮아?”

직급이 안 맞잖아.

걱정스러운 아리스티네의 물음에 무칼리가 하하 웃었다.

“괜한 걱정을 다 하시오.”

이 자리를 탐내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리스티네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일반 전사들은 깜에서 밀려나 후보에도 못 오른다.

타르칸의 최측근인 장군급 전사들끼리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어 내는 자리다.

전우애도 사라지는 그 잔혹하고 비정한 경쟁!

그곳에서 무칼리는 승리했다.

제비뽑기에서 이겼다는 소리다.

무칼리는 자랑스레 가슴을 폈다.

다른 전사들이 모두 부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자신을 볼 때 그 쾌감이란!

무칼리는 원래도 아리스티네의 총애를 받고 있는지라 전사들은 더 눈총을 보냈다.

비전하의 총애를 혼자 독식하는 나쁜 놈!

그게 무칼리의 새 타이틀이었다.

‘사내들의 질투란 참으로 추하지.’

무칼리는 행,하고 콧김을 뿜었다.

요 며칠 타르칸 대신 아리스티네를 호위하러 대장간에 들르면서,무칼리는 리트렌과도 꽤 친해졌다.

두 사람은 이야기가 잘 통했다.

무엇보다 합금에 대한 것이나 공정 과정,화학 원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많았다.

다른 사람과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지라 서로가 더 반가웠다.

아리스티네는 재촉하지 않고 두 사람이 수다를 떨도록 내버려 두어서,귀가가 더 늦어질 때도 있었다.

“그나저나 비전하.”

“응?”

아리스티네가 무칼리를 바라봤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환히 비추고 여름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한쪽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무칼리가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소?”

그 말에 아리스티네가 눈을 깜빡이고는 씨익 웃었다.

“티 나?”

“이제 비전하의 표정 정도는 읽을 수 있소.”

기본적으로 무표정하지만,알면 알수록 그 안에 풍부한 감정이 녹아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럼 무칼리 경에게 먼저 귀뜸해 줄까.”

아리스티네가 흥얼거리듯 말하고는 짓궂게 눈을 반짝였다.

“성공했거든.”

무칼리의 외눈이 번쩍 뜨였다.

“설마?”

“응,기대해도 좋아.”

자신만만하게 웃는 아리스티네를 보고 무칼리의 얼굴에도 서 서히 미소가 피어났다.

아리스티네와 새로 사귄 친구인 리트렌이 그간 얼마나 고생했는지 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둘 다 무겁고 거대한 피로를 등에 이고 다니는 게 보였다.

“잘됐소,정말 잘됐소!”

무칼리의 두툼한 손이 아리스티네의 작은 손을 꽉  붙들고 거칠게 흔들었다.

아리스티네는 그가 이끄는 대로 붕붕 팔을 흔들면서 하하,웃 었다.

밤공기 속에 그녀의 맑은 웃음 소리가 녹아들었다.

“그런데 대체 어떤 물건이오? 이전의 것도 그 돌팔이는 혁명이라고 했소만.”

돌팔이는 우미루를 뜻했다.

그렇게 부르고 있긴 하지만, 무칼리가 가장 실력을 인정하는 의사였다.

오히려 그렇기에 돌팔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아웅다응하며 서로라면 질색을 하지만,아리스티네가 보기에 두 사람은 꽤 친했다.

“말해 주고 싶은데 아직은 비밀.”

아리스티네가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붙이며 미소 지었다.

“비밀.. ”

무칼리는 조금 섭섭했다.

오늘도 대장간에서 나오며 리트렌과 수다를 떨었으나 성공했다는 언질조차 듣지 못했다.

‘두 사람과 가깝다고 생각한 건 나 혼자인가.’

메스를 어떻게 개량하는 것인 지도 말해 주지 않았다.

“미안,가장 먼저 말해 주지 않으면 삐질 사람이 있거든.”

아리스티네는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무칼리를 바라봤다.

처음 메스를 만들었을 때,무 칼리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러 갔다고 타르칸이 어찌나 눈치를 주던지.

처음에는 설마 했지만,계속해서 자신이 첫 번째 사업 파트너 라느니,뭐니 하면 알아첼 수밖 에 없다.

‘역시 손이 많이 가는 남자라니까, 내 남편님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리스티네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뭐,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무칼리는 순순히 물러났다.

아리스티네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챘기 때문이다.

솔직히 후폭풍이 무서운지라 타르칸보다 먼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대신 그다음 자리를 예약하겠소.”

아리스티네가 씩 웃었다.

“응,꼭 보여 줄게. 기대해도 좋아.”

이 나라에,아니,이 세계에 폭 풍을 몰고 올 테니까.

‘돈 폭풍!’

휘몰아치는 돈다발 사이에 서서 두 팔을 치켜들고 있는 상상 만으로 행복해졌다.

싱글벙글 침실에 도착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응?’

침실 앞에 사람들이 경멸과 혐오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우와아…….’

왠지 모르겠지만 시녀들이 바닥에 패대기쳐져 있었다.

그것도 야한 속옷 차림으로.

정말 저런 천 쪼가리를 입는 사람이 다 있구나싶어서 아리스티네는 감탄했다.

“세상에,어쩜 이렇게 파렴치한……!”

“고상하고 품위 있는 레이디인 척은 다 하더니.”

“모시는 분의 남편을 탐내 저런 차림으로 침대에 숨어들다니.”

“천박해라.”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아리스티네의 시녀,셀리안과 멜로디아를 홀껏댔다.

그 시선이 채찍과도 같이 느껴져 두 사람은 몸을 옹송그렸다.

처음 타르칸의 궁에 왔을 때, 더러워진 아리스티네가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보고 깔깔거리며 비웃던 사람치고는 초라한 반응이었다.

“뭐야? 누구인데 그래요?”

“그 뻔뻔한 낯짝 한번 좀 보자.”

뒤늦게 합류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시녀들은 하얗게 질린채 얼굴을 가렸다.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건 아나 보네.”

“알면 하질 말든가.”

퇘,사람들이 침을 뱉었다.

시녀들은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무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타르칸이 그녀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조차 없는 고요한 시선이 었다.

동시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 고 사냥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시선 같기도 했다.

그는 고함치지도,때리지도,무언가를 던지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시녀들은 목이 졸리는 듯 숨이 꺽끽 막혀왔다.

‘왜, 왜 이렇게 된 거야…….’

분명 자신 있었다.

타르칸과 친하다는 그 디오나라는 야만인 계집도 그랬다.

〈외람된 말씀이지만,솔직하게 알려 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디오나는 목소리 를 한껏 낮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지금 타르칸 전하께서 비전하께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건 오 로지 밤일 때문이에요.〉

밤일?!

시녀들은 깜짝 놀랐지만,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아리스티네에게 그것 말고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무엇보다 두 사람이 초야에 침대를 부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디오나의 말이 더더욱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아직 신혼일 때 확실하게 꽉 잡아둬야 해요.〉

바꿔 말하자면,지금 못 잡으면 타르칸은 아리스티네를 거들떠보지 않을 거란 소리였다.

〈남자들은 그렇잖아요? 뒤로 빼느라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여자를 찾기 마련이죠.〉

그렇게 말하며 디오나는 제 풍만한 가슴을 쭉 내밀었다.

시녀들은 ‘그런가?’ 하며 고개 를 가웃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디오나는 남자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그게 야만인답게 천박하다고 생각하면서도,어쩐지 이쪽이 남자를 잘 모르는 숙맥으로 보이 긴 싫었다.

〈그러니까 비전하께 침대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디오나는 조금 망설이더니 한 숨을 푹 쉬고 속삭였다.

〈타르칸 전하의 지극히 사적인 취향까지 알려 드리긴 정말 그렇지만……. 저도 두 분께서 잘 지내야 두 나라 모두에게 이롭다는건 알고있으니까요.〉

그녀는 은근슬쩍 자신이 타르칸의 내밀한 취향까지 다 안다는 점을 자랑했다.

시녀들은 더 안달이 났다.

자신이 원하는 남자의 내밀한 취향을 알고 싶어 하는 건 당연 하지 않은가.

〈뭔데 그래요?〉

〈타르칸 전하의 취향인 란제리 말이에요.〉

란제리?

시녀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은 낯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지만,머릿속으로는 다른 것 을 상상하고 있었다.

〈제가 특별히 보내 드릴게요. 그러니까 꼭 두 분 사이가 좋도록 비전하를 잘 보필하셔야 해요?〉

시녀들은 자신들만 믿으라고 호언장담했다.

당연히 아리스티네를 잘 보필 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으면 반대였지.

그리고 오늘 밤,아리스티네가 또 늦는다는 정보를 로잘린이 가져왔다.

거사를 치르기 딱 좋은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리스티네가 오는지, 안 오는지 망볼 사람이 필요해서 로잘린이 맡기로 했다.

그간 아리스티네를 속이느라 시녀들을 괴롭혔던 것에 대한 사죄라고 했다.

계획은 완벽했다.

‘그래서 디오나가 보내 준 란제리까지 입었는데……’

디오나가 말한 대로 향수도 뿌 리고 온갖 준비를 다 했다.

타르칸이 침대 휘장을 거칠게 젖힐 때까지만 해도 기대와 흥 분으로 두근거렸다.

그런데.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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