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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79화 (79/183)

79화

생각만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당연히 아리스티네가 화를 낼 줄 알고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

그런데 돈에 홀랑 넘어가는 게 아닌가.

‘사람을 돈으로 꾀다니.’

꼬심을 당한 아리스티네는 그의 안중에도 없고,조디악만이 괘씹했다.

‘거기다 내 허락도 안 받고 그 딴 짓거리를 벌였단 말이지.’

파지직 소리가 날 것 같은 금안이 조디악을 노려봤다.

눈치 빠른 조디악은 타르칸이 무엇에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바로 알아채고 다급히 해명했다.

“이 소파에 앉아 비전하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여성분들뿐입니다!”

이전에도 여자만 가능했고 앞으로도 여자만 가능하다.

경호 직원-무려 사진을 경호 하는-이 상시 대기하며 철저히 감시했다.

그러나 그런 말이 타르칸에게 통할 리가 없다.

“치워.”

“그,그럼 아이들로만 한정할까요?”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조디악의 몸에 흐르는 상인의 피가 입을 나불거리게 만들었다.

“치워.”

그르렁거리는 목소리에 조디악은 입을 다물었다.

“넵”

아리스티네는 황당하단 얼굴로 타르칸을 바라봤다.

‘아니,일 잘하는 사람한테 왜 그래?’

무려 마케팅으로 매출 14배를 달성한 직원이다.

‘나 같았으면 둥기둥기 어부바해서 온 거리에 자랑했을 텐데.’

일 잘했는데 오히려 혼나는 조디악이 불쌍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럼 나한테 주기로 했던 사진 사용료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자 타르칸이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당당히 들고 꿋꿋이 조디악을 바라봤다.

앞으로 사진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까지 쓴 게 있잖아?

“아,당연히 지금까지의 비용은 드려야지요. 다만 액수가……

조디악이 아까 합의했던 숫자를 찍찍 긋고 새로 숫자를 적었다.

“이 정도로 낮아져야 할 것 같 은데요.”

쿠궁,아리스티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0이 두 개나 사라졌어……’

그럼에도 많은 액수였지만,받을 거라 생각했던 돈이 있었던만큼 실망감이 컸다.

줬다 뺏은 느낌.

“내 돈.............”

아리스티네의 보랏빛 눈동자에 깊은 슬픔이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새벽의 빛과 닮은 눈동자가 우수에 젖자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 위를 소복이 덮은 은빛 속 눈썹이 처연함을 더했다.

‘아니,돈 때문에 뭐 이렇게까지.’

타르칸은 어이가 없었다.

쓸데없이 분위기 있는 아리스티네의 얼굴 때문에 자신이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 은 기분이 들었다.

“모자란 액수 내가 채워 주면 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내가 무언가를 해서 직접 버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명확 했다.

초점이 선명한 눈동자는 자주 적이고 독립적이었다.

타르칸은 어쩐지 섭섭함을 느 끼면서도, 그 눈동자가 품고 있는 빛에서 시선을 델 수가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눈치를 보던 조디악이 슬쩍 물었다.

“등신대는 치우고,사진 패널은 그대로 두는 것으로.”

“뭐?”

타르칸이 곧장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봤다.

조디악은 마른 입술을 살짝 핥고는 재빨리 말했다.

“두 분께서 다정하신 모습이 이렇게 선명하고 크게 나오니 다들 잘 어울린다고 난리입니다.”

“딱히 다정한 건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타르칸이 인상을 쓴 채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조디악은 보았다.

한순간 타르칸의 입꼬리가 움찔한 것을.

지금도 딱딱한 얼굴이지만 귓등이 붉었다.

“어쨌거나 두 분은 이 대륙 최고의 화제 커플이 아닙니까. 이 기회를 잘 살려야지요.”

“그것도 그렇네. 정치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고.”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로선 원래 사진 사용을 허락할 생각이었으니 딱히 걸리는 게 없었다.

두 사람이 모두 장점을 말하자 타르칸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교체할 사진이 몇 개 보이니까 사전에 내게 검수 받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조디악은 정중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의 상사를 바라봤다.

‘비전하 독사진은 전부 빼고 다 커플 사진으로 채울 생각이구만,쯧쯧.’

비록 속으론 혀를 차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는 능력 있는 사업가답게 눈치가 빨랐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가 만든 메스를 위탁 판매하라는 명령을 했을 때부터 그가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챘다.

‘사람들이 운명적인 사랑 어쩌고 할 때는 코웃음 쳤는데.’

타르칸을 실제로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설마 타르칸 전하께서 비전하께 쩔쩔 맬 줄이야.’

현실은 항상 픽션보다 더 놀라운 법이다.

조디악은 실질적인 갑인 아리스티네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전하께 잘 보여야 해!’

사업가의 감각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타르칸이 절절매는 상대라 그런 건 아니었다.

‘메스에 관한 자료를 받아 보고 깜짝 놀랐었지.’

의료계의 권위자인 우미루가 책임지고 진행한 메스 안정성 시험.

그시험 항목은 아리스티네가 직접 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자료를 활용 해 어떤 식으로 마케팅할 수 있는지 가이드까지 달려 있었다.

‘엄청난 사람이야.’

전문 경영인으로 상단을 이끌어온 그로서도 혀를 내두를정도의 자료였다.

덕분에 메스 자체는 아리스티네의 사진과 관계없이 출시와 동시에 매진이었다.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관심을 끌어 상단의 이윤을 극대화시키 기 위해 사진을 쓴 것일 뿐.

“그럼 이 건은 그렇게 마무리 하고,비전하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메스를 최대한 많이 입고해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바쁘게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걸론 부족해?”

“턱도 없습니다. 주문이 밀려들 고 있어 항상 물량이 부족합니다”

“하긴 이 매출을 찍으려면 그 런 상황이겠지.”

아리스티네가 메스 판매 추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재고 들어오면 물건 보내 달라고,일단 예약부터 할 테니 선계약하자는 곳도 많고 요”

“없어서 못 판다는 건 즐거우 면서도 아쉬운 일이네.”

아리스티네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대장간에도 말해 볼게. 인력을 충원해도 좋을 것 같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아리스티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지만,이렇게 결과가 나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조디악 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비전하와 이렇게 만나게 되면 여쯤고 싶었던 게 있었습 니다.”

“뭔데? 녹슬지 않는 철을 어떻게 만드는 거냐는 건 못 알려 줘.”

씩,웃으며 하는 능담에 조디악이 미소 지었다.

“비전하께 그걸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나 보군요.”

“엄청 많았지.”

“그만큼 신기하고 대단한 것이니까요. 저도 궁금합니다만,제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닙니다.”

“그럼?”

“저는 물건을 파는 상인이라서 물건 자체보다는 ‘파는 행위’에 더 관심이 가거든요.”

조디악이 은테 안경을 슥 치켜 올렸다.

“메스 안정성 시험 결과를 보고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

“그야 메스는 항상 의료 소송에 시달리는 품목이잖아? 그걸 미연에 방지하려면 필요한 일이 지.”

약물을 만들 때도 시험을 거치지 않는가.

아리스티네는 문제없이 돈을 벌기 위해 그랬다고 설명하는 거였지만,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다르게 들렸다.

의료 소송의 원인은 의료 사고다.

즉,아리스티네는 의료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잘못된 수술로 사망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시험을 한 것이다.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조디악은 그렇게 이해했다.

‘정말 소문처럼 백성을 돌보고 사랑하는 분이시구나.’

그는 감탄하며 아리스티네를 봤다.

오로지 메스를 더 많이 팔 생각만 가득했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웠다.

“그렇군요. 새로운 메스를 사용 해 수술할 때,감염 사망률이 어떻게 감소할지 예상한 리포트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조디악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은 그걸 보고  ‘이걸 활용하면 엄청나게 잘 팔리겠다’  같은 생각만 했다.

‘하지만 비전하께선 다르셨겠 지.’

“아,그게 핵심이지. 역시 알아 봐 줬구나.”

아리스티네가 해사하게 웃었다.

‘그걸 보면 의사들이 살 수밖에 없지! 환자들도 새로운 메스를 원할 거고.’

그야말로 판매 전략의 핵심이 었다.

아리스티네가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조디악은 감동한 눈으로 바라봤다.

‘사망률 감소 리포트가 핵심이라니,역시 비전하께서는 사망률을 감소시키는 게 목적이셨구나. 메스를 많이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정말 완벽한 오해였다.

“정말 어쩜 그런 생각을 하신 건지……”

조디악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아리스티네의 마음에 감격했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알 길 없는 아리스티네로서는 조디악이 리포트 자체에 감격한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그가 아리스티네의 리포트에 감탄한 건 사실이긴 했다.

‘이게 이렇게 감격할 일일 줄이야.’

사실 아리스티네가 이런 그래프를 준비하게 된 데엔 따로 배경이 있었다.

‘고마워요, 나이팅게일.’

제왕안으로 본 전생에서 나이팅게일이라는 위인이 있었다.

백의의 천사, 등불을 든 천사.

그런 헌신적인 별칭으로 많이 불리지만,사실 나이팅게일은 고집 센 통계학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영국군의 사망 원인을 그래프로 그려서 군 병원의 위생 상태를 지적했다. 위생을 관리할 시 사망률이 현저히 감소할 것을 통계적으로 설득한 것이다.

위생이라는 개념을 실질적으로 현실에 도입하게 된 건 모두 나이팅게일의 통계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본받기로 했지.’

나이팅게일은 그걸로 사람들을 설득했고,의료계를 바꿨고,세 상을 바꿨으니까.

“국적에 상관하지 않고 온정을 베푸시다니……”

“어?”

조디악의 생뚱맞은 소리에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들었다.

“사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루고와 실바누스는 적대국이었잖습니까.”

“전쟁까지 했었지.”

“예,이런 말씀 드리긴 그렇지만…… 실바누스는 패전했고요.”

조디악이 힐끔 타르칸을 바라 봤다.

실바누스가 패전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타르칸이었다.

그걸 생각하면,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이 사이좋은 부부라는 게 의아하기도 했다.

아리스티네는 조디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탐욕스러운 지도자의 야망이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거지. 그건 실바누스 백성들에게도 득이 없는 전쟁이었어.”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타르칸을 향했다.

타르칸은 아까부터 계속 그녀를 보고 있었는지 곧장 시선이 마주쳤다.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부드럽게 올라갔다.

“나는 오히려 타르칸 덕분에 전쟁을 빨리 종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타르칸은 아무 반응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동도 없는 고 요한 시선으로.

“비전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니 다행입니다. 정말 생각이 깊은 분이시군요.”

그렇게 말하며,조디악은 ‘그 타르칸 전하’께서 왜 아리스티네에게 마음을 열었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적대국이었던 아이루고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는데 이렇게 아이루고 백성들을 위해서 메스도 만드시고……”

“아이루고 사람들도 나를 반갑 게 맞아 주었잖아.”

왕후나 다른 왕족들은 이야기가 다르지만,일반 백성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리스티네를 환영해 주었다.

아리스티네는 아마 평생 수많 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비록 곧 깨질 정략혼일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진실했으니까.

조디악은 미소 지었다.

아이루고 사람들이 그렇게 황녀를 환영할 수 있었던 건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승자의 입장과 패자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사람들이 비전하를 두고 평화의 여신이라 하는 이유를 알겠어요.”

“아니,지금 뭔지 몰라도 엄청 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아리스티네의 중얼거림은 그에 게 닿지 않았다.

‘나는 그냥 돈 좀 벌고 싶었을 뿐이라고.’

오해를 풀려 했지만 조디악은 정중하게 웃는 얼굴로 “네,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 태도였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부끄러워하는 겸손한 사람을 보듯 아리스티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지금 착각하고 있다니까?”

“네,그렇군요. 핑크 냥젤리 만져 보실래요?”

조디악이 정중한 얼굴로 묻는 말에 아리스티네는 “하……” 하고 고개를 젖혔다.

‘여태까지 내 말을 전부 한 귀로 홀려들었던 건가.’

괘씸하다.

아리스티네는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

“응,만질래!”

솔직히 엄청 귀여울 것 같아서 상단 이름을 들을 때부터 만져보고 싶었다.

* * *

“귀엽더라,고양이.”

핑크핑크 냥젤리 상단에서 나와 아리스티네는 만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엄청 따끈하고 보드라웠어. 혀가 까끌까끌할 줄은 몰랐는 데……. 신기해.”

아리스티네는 조디악이 키우고 있던 열세 마리의 고양이를 떠올렸다.

발라당 눕던 냥이, 허벅지를 꾹꾹 누르던 냥이,손을 핥던 냥이,애옹애옹 도망치던 냥이.

“왜 핑크핑크 냥젤리인지 알 것 같아……”

홀린 듯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타르칸이 물었다.

“키우고 싶어?”

아리스티네가 번쩍 고개를 들어 타르칸을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두 번 눈을 깜빡인 그녀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산뜻한 답이었다.

“한 생명을 들이는 건데 이렇게 쉽게 결정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물론 왕자비의 고양이가 되면 아리스티네가 딱히 관리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평생 호강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이혼할 때,고양이를 놔두고 갈 수도,데려갈 수도 없 을 것 같으니까.’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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