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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86화 (86/183)

86화

타르칸은 그 미소가 제 심장을 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략혼을 했다고 해도 진짜 부부가 되는 건 맞지. 하지만.”

아리스티네의 보랏빛 눈동자가 타르칸을 마주 보았다.

그 난처한 눈빛이 화살촉 같았다.

“너는 죽고 못 사는 연인이 있잖아.”

타르칸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아주 가느다랗고 질긴 실이 되어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았다.

Chapter 26. 내 아내

무조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우미루의 명령은 강력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궁인들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었기 때문에 아리스티네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 반쯤 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점심 먹을 때까지만 어울려주자.’

궁인들이 울 것 같아서 아리스티네는 일단 대장간에는 오후에 가 보기로 했다.

‘그 전에 나도 생각을 정리해 봐야 할 것 같고.’

아리스티네가 전생에서 보고 생각해 낸 타개책은 제련 방식의 변화였다.

일단 그걸 위해서는 동력원이 필요했다.

‘하미르 왕자가 새로 발견된 마력석 광산을 맡고 있다고 했지.’

아리스티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래서,제가 꼭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니까요.”

“아까는 며칠 잘 쉬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근데 왜 네가 옆에 붙어 있어야 하지?”

“잘 쉬시면서 저를 옆에 두면 괜찮을 거라는 뜻이었어요.”

“너는 챙겨야 할 다른 환자들 도 있을 텐데?”

“그 무식,아니,전사분들은 회복력이 워낙 좋으니까요.”

아리스티네를 가운데에 두고 타르칸과 우미루는 아까부터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이젠 도저히 안 되겠다.

“저기,둘 다 조용히 좀 해 줄래? 나보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며.”

그 말에 타르칸과 우미루가 조용해졌다.

“비의 휴식에 방해되니 시끄럽게 굴지 마라,우미루.”

“전하께서 나가시면 환자와 의사인 저 단둘이 최적의 휴식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딱,1초간만 조용해진 거였지만.

결국 아리스티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축객령을 내리려고 하는데,궁인이 다가왔다.

“비전하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대답은 아리스티네가 아니라 타르칸에게서 나왔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궁인을 바라봤다.

“예,병문안을 오셨습니다.”

“병문안? 혹시 무칼리 경이야?”

아리스티네가 대번에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다른 장군들 께서도 오셨고요.”

확 밝아진 아리스티네와 달리 타르칸과 우미루의 표정은 탐탁지 않아졌다.

“비전하께서는 지금 안정을 취 해야 하셔. 그렇게 덩치 산만 한 놈들이 앞에서 거슬리…… 아니, 아무튼 방문객을 받으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어.”

“의사의 말을 듣는 게 좋을 거 같군.”

아리스티네는 황당한 얼굴로 우미루와 타르칸을 바라봤다.

멀쩡하니 아무 증상도 없구먼 대체 무슨 증상이 악화된단 말인가.

“들어오라고 해.”

아리스티네는 두 사람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궁인에게 명했다.

본디 타르칸의 말을 더 우선으 로 들어야 할 궁인들은 아리스티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문을 열었다.

그들은 이미 이 궁의 최고 권력자가 타르칸이 아니라,아리스티네라는 것을 파악한 뒤였다.

아니나 다를까,타르칸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전하,주군.”

무칼리와 자칼렌 그리고 듀란테가 방 안에 들어와 인사했다.

무칼리의 손에는 소담스러운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와,무칼리 장군님이 자기 손으로 꽃다발을 들 줄이야……”

우미루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칼리가 누구던가.

조금이라도 귀엽고 아기자기한건 무조건 학을 떼며 질색하는 사람아닌가.

물론 그가 남들 눈을 피해 화단에 쭈그려 앉아 여린 꽃잎을 소중히 보듬는다는 소문도 있긴 했다.

하지만 목격자는 없는 뜬소문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의지로 꽃다발을 들고 있다니.

그것도 엄청나게 센스가 좋았다.

연한 파스텔 톤의 수국과 장미,별모양 꽃잎의 옥시 그리고 푸릇함을 더해 주는 글라디을러스까지.

꽃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안목이 좋았다.

무칼리는 조금 쭈떳거렸지만 아리스티네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병문안 오면서 빈손으로 올 수는 없어서……”

풍성한 꽃다발이었지만 무칼리의 커다랗고 굵은 손 안에서는 앙증맞게 보였다.

“와,너무 예쁘다. 고마워.”

아리스티네는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무칼리의 손에서 한줌이던 꽃다발은 아리스티네의 품에 한가득 들어왔다.

아리스티네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그 달콤하고 싱그러운 향기를 맡았다.

꽃을 선물한 무칼리는 물론 방 안에 있는 사람 모두 잠시 아무 말 없이 꽃을 든 아리스티네의 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우리 비전하께서는 요정이셔.’

‘천사야.’

‘엄지 공주!’

궁인들이 감격한 얼굴로 소리 없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나 남자한테 꽃 선물 받는 거 처음이야.”

아리스티네가 환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사람들이 움찔 몸을 굳혔다.

타르칸의 시선이 무칼리를 향했다.

무칼리는 식은땀을 홀렸다.

솔직히 아리스티네가 기뻐할 만한 선물을 했다는 게 흐뭇했다.

거기다 처음 받아 봤다고 하니 괜히 더 뿌듯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목숨은 소중했다.

자칼렌의 시선이 풍랑을 만난 배처럼 타르칸과 무칼리를 왔다갔다 했고,듀란테의 표정은 마수를 앞에 둔 것처럼 평소보다 더 서늘했다.

궁인들은 어쩔 줄 몰라 했으며 우미루는 아주 재밌다는 얼굴로 구경했다.

그 가운데 정작 폭탄을 던진 아리스티네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화병에 꽂아 두는 게 좋겠지?”

아리스티네의 말에 궁인들이 자리를 피하듯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그들이 부산스레 움직이는 와중에도 타르칸의 시선은 무칼리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그러게 진작 꽃다발 선물을 하셨어야지!’

무칼리는 억울한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지만,현실적으로 타르칸이 여자에게 꽃다발을 선물할 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르칸과 꽃다발이라니, 무칼리와 꽃다발보다도 더 안 어울리 는 조합이었다.

타르칸이 꽃을 보고 하는 생각이란 독성이 있는가,없는가뿐일 게 분명하니까.

“듀란테 경도, 자칼렌 경도 와 줘서 고마워.”

듀란테와는 진작 알던 사이였고,자칼렌은 저번에 훈련장에 갔을 때 안면을 렀었다.

“별말씀을요. 병문안을 처음 와 봐서……. 빈손으로 와서 죄송합 니다.”

병문안이라고 해 봤자 동료들의 병실에 쳐들어가는 게 전부 였던지라,선물을 들고 올 생각을 못 했다.

“아니야. 사실 병문안 올 것까지도 없는데. 서 있지 말고 어서 앉아.”

빨리 꺼지라는 타르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세 사람은 아리스티네의 권유대로 착석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가뿐해. 아픈 곳 하나도 없고. 원래 과로라는 게 푹 쉬면 낫는 거잖아.”

“너무 무리하시면 좋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연약하신 분

“아니,그렇게 연약하진 않은데. 적어도 실바누스에선……”

한창 서로 근황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궁인이 트롤리를 끌고 들어왔다.

“우미루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수프를 만들어 왔습니다.”

“응? 점심은 아직이지 않아?”

“계속 드셔야 해요. 기운 차릴 수 있게. 어제저녁을 거르신 데다가 오늘 아침도 적게 드셨잖아요.”

우미루가 수프를 확인하며 말했다.

고소한 냄새가 나서 아리스티네는 순식간에 식욕이 돌았다.

사실 아침도 많이 먹고 싶었는데 빈속에 많이 먹으면 부담된다고 제한당해 조금밖에 못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 혼자 먹으라고?’

식사는 아니어도 다들 다과라 도 같이 먹든가 해야 하지 않을 까,싶었다.

수프를 휘젓던 우미루가 한 숟 가락 떠서 후후,불었다.

‘간을 보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미루는 그대로 아리스티네에게 스푼을 내밀었다.

“비전하,아〜 하세요.”

아리스티네는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스푼을 바라봤다.

네프테르라면 몰라도 자신의 손은 멀쩡하지 않은가.

“……우미루.”

“안 돼요. 이거 드셔야 해요. 어서,아〜.”

우미루가 짐짓 엄하게 말하며 다시 스푼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탁,강한 힘이 우미루의 팔목을 잡고 뒤로 물렸다.

타르칸이었다.

우미루는 아주 흥미로운 시선 으로 타르칸을 바라봤다.

“전하께서 먹여 주시게요?”

그 말에 타르칸은 눈매를 살짝 찡그렸다.

“아니,나는……”

“그럼 놓아주세요.”

우미루가 싱글거렸다.

“……내가 준다.”

타르칸은 짓씹듯 말하며 우미루의 손에서 스푼을 채 갔다.

우미루의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도 짜증 나지만,전사들의 기함한 표정과 반짝반짝 빛나는 궁인들의 눈빛이 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타르칸은 꿋꿋하게 스 푼을 쥐고 아리스티네에게 내밀었다.

‘아니,뭐 하는 거람?’

아리스티네는 황당한 얼굴로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귀가 새빨겠다.

아리스티네는 눈을 한 번 깜빡인 뒤 입을 열어 얌,하고 스푼을 물었다.

움찔,아리스티네의 입술이 닿은 건 스푼인데,타르칸은 제 손에 닿은 것처럼 동요했다.

그때 였다.

“……타르칸 전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디오나였다.

그녀는 눈을 부릅뜬 채 믿기지 않는 얼굴로 타르칸과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지금……

디오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타르칸을 보러 궁에 들어오는 중 전사들이 급하게 어디론가 향하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혹시 출정할 일인가 걱정하는데 무칼리의 손에 꽃이 들려 있었다.

세상에 그렇게 안 어울리는 조합은 처음이었다.

궁인들에게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아리스티네가 어제 쓰러졌다고 했다.

쌤통이다.

디오나는 웃음을 삼키며 타르칸의 행방을 물었다.

‘잘됐어. 황녀가 자리보전하는 동안 내가 타르칸 전하를 독차지해야지.’

디오나는 웃음을 삼키며 타르칸의 행방을 물었다.

그런데 정작 타르칸은 아리스티네와 함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제 쓰러지셨을 때부터 타르칸 전하께서 손수 간호중이세 요.〉

그 말에 속에서부터 열불이 솟았다. 감히 타르칸을 병수발이나 들게 하다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러다 그 여우 같은 계집이 병약하고 연약한 척 보호 본능을 자극해 타르칸을 완전히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네 뜻 대로 될 줄 알고?’

그렇게 생각하며 서둘러 아리스티네의 방으로 왔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본 장면이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에게 수프를 먹여 주는 것이었다.

타르칸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먹여 주다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디오나는 창백하게 질린 채, 열게 도리질쳤다.

지금껏 타르칸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녀는 꿈조차 꾸지 못했 던 일이다.

그저 내쳐지지 않고 곁에 머무르는 것.

그것만 바랐다.

더 바라고 싶어도 더 바랄 수 없었다.

고작 곁에 있는 것조차도 너무나 힘든 것이었으므로.

디오나뿐만이 아니라,누구에게도 그랬다.

그런데 어째서.

‘저 황녀에게는……!’

디오나의 바닷빛 눈이 거칠게 파도치며 아리스티네를 노려봤다.

‘음……’

아리스티네는 조금 당황해서 시선을 굴렸다.

‘조금 그런가?’

디오나를 한 번,타르칸을 한 번.

정작 제일 당황해서 당장 디오나에게 싹싹 빌어야할 타르칸은 시큰둥했다.

‘아니,애인한테 다른 여자 수프 먹여 주는 걸 들켰으면 좀 동요하라고.’

타르칸은 그저 순수하게 간호 하기 위해 먹여 준 것이라고 해도,디오나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만한 일 아닌가?

심지어 아리스티네는 그냥 다른 여자가 아니라 타르칸의 아내였다.

‘아무리 명목상이라고 해도.’

아리스티네는 꿀꺽, 수프를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어서 와,디오나.”

디오나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충격을 아직도 갈무리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히 왕자비가 먼저 인사해 주었는데 그걸 무시하는 건 무례한 행위였다.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디오나를 꾸짖을 생각이 없었다.

‘설마 어제 내 저체온증을 회복시켜 준다고 타르칸이 나를 그런.. 어,음... 아무튼 그랬다는 걸 들었나?’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인이 다른 여자를 침대에서 몸으로 데워 주었다. 그것도 홀딱 벗은 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이 어디 있겠는가.

‘아, 진짜 찜찜하게 됐네. 완전히 삼각관계에 끼었잖아.’

그것도 그냥 낀 게 아니라 질척질척하게 끼어 버렸다.

‘이런 거 정말 싫은데. 치정 싸움을 하더라도 난 빼고 둘이서 했으면 좋겠는데.’

이 와중에 타르칸이 디오나를 부채질했다.

“지금 비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

나직하지만 채찍 같은 꾸짖음 에 화들짝 놀란 디오나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 봤다.

“아,저……”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디오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 에 웃음을 덧그렸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비 전하.”

“신경 안 쓰니 괜찮아.”

아리스티네는 그렇게 말하며 타르칸을 찌릿 째려봤다.

달래 주지는 못할망정 왜 혼내는지.

‘나라도 빨리 이 오해를 풀어야겠어.’

어서 이 질척거리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차피 다른 전사들도 알고 있을 테고.’

디오나가 신부 대기실에 찾아 와 당당히 말했던 것도 그렇지만,그날 듀란테의 반응으로 볼 때 확실했다.

아리스티네는 디오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어제 네 연인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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