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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87화 (87/183)

87화

디오나가 파들파들 경련하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되물었다.

아리스티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당황스러운 얼굴로 디오나와 아리스티네를 번갈아 봤다.

‘디오나에게 애인이 생겼나?’

‘타르칸 전하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그 애인이랑 비전하와 무슨 상관이지?’

듀란테만이 가라앉은 눈으로 디오나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디오나의 전신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리스티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인지 디오나는 아까보다 더 동요한 것처럼 보였다.

원래도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는데,지금은 탈색된 것처럼 완전히 하얗다.

‘왜 저렇게 당황하는 거지?’

“무,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디오나는 딱딱한 안면 근육을 최대한 움직여 웃는 얼굴을 만들어 내려 노력했다.

“어?”

“제가 걱정한 거라면…… 비전하의 건강뿐이에요.”

“내 건강?”

“네, 비전하께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찾아온 거니까요.”

‘뭐지?’

아리스티네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더 캐묻기도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시녀들 때문에 난리 났을 때도 걱정이라며 달려오더니 이번에도 자신을 걱정하며 달려올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 그럴 사이는 아닌데.’

저번은 몰라도 이번에는 타르칸 때문에 온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저렇게 말하는 건…….

‘커플 사이의 자존심 싸움인가?’

나는 아무렇지 않다,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걸 타르칸에게 어필하는 건가.

아니면 변명은 아리스티네의 입이 아니라 타르칸의 입에서 듣겠다거나.

아리스티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고마워. 일단 앉으렴.”

“감사합니다,비전하.”

디오나는 다소곳이 앉으면서 입 안의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설마 아리스티네가 저렇게 말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기 남편의 애인한테 ‘남편과는 아무 일 없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다니.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싶었는데 바로 눈앞에 있었다.

디오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그것도 타르칸의 앞에서 들키는 순간 어떻게 될지 눈에 선했다.

자신이 누려 왔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고,타르칸의 옆에도 설 수 없게 되리라.

타르칸은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차갑게 내칠 것이다.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여자야.’

디오나는 아리스티네를 힐끗 쳐다봤다.

‘실바누스 시녀들과 내가 결탁 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 르니까.’

저번에 아리스티네는 실바누스 시녀들에 관련해서 디오나에게 증언해 달라고 했었다.

디오나는 아리스티네를 돕기 위해 시녀들에게 타르칸의 취향을 알려 주었고,그 자리에 로잘린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연히 자기가 했던 말은 쏙 빼놓았다.

아리스티네는 그 중언을 받아 내고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한 일이었지만, 여지를 남기는 느낌도 받았다.

〈너도 참 고생이다.〉

〈힘내렴.〉

그때 시녀들을 욕하는 디오나에게 아리스티네가 했던 말을 보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도 입을 다물고 있다니.

-나는 언제든지 너의 목줄을 조일 수 있어. 그러니 알아서 잘 하렴.

디오나에겐 그런 뜻으로밖에 안 읽혔다.

완전히 착각이었지만, 디오나가 알 길은 없었다.

아리스티네는 표정이 좋지 않은 디오나를 보고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아닌 척하면서 날 노려 보는 거 같은데…….’

노려보더라도 타르칸을 노려보지 왜 자신을 노려본단 말인가.

‘둘이 자존심 싸움을 하든 말든 아무래도 좋은데,중간에 나를 놓지 말라고.’

둘이 다시 열렬한 사랑을 확인하든,지지고 볶든 상관없으니 이 찜찜한 상황을 벗어나면 좋겠다.

‘커플끼리 하는 자존심 싸움에 왜 내가 어울려 줘야 하지? 그럴 거면 날 노려보질 말든가.’

누구라도 기분 나쁠 상황이었지만,아리스티네는 타르칸과 깔끔한 비즈니스 파트너 사이를 추구하는 만큼 더더욱 짜증이 났다.

개인사가 사업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딱 질색이다.

특히,지금은 철광석 확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런 데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디오나가 자존심 세우고 싶어 하니 내버려 두려 했지만,저렇 게 나오는 이상 봐줄 필요가 없다.

아리스티네는 후,하고 한숨을 내뱉곤 입을 열었다.

“디오나, 지금 속이 말이 아니라는 건 알아.”

“네?! 왜 제 속이 말이 아니죠?”

디오나가 과민 반응을 하며 방어적인 태도로 되물었다.

“아니야?”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기울이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걱정했다며.”

물론 그 걱정이 정말 날 걱정하는 게 아니라,타르칸과 내 사이를 걱정한 거겠지만 말이야.

아리스티네는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렇게 말하면 디오나가 타르 칸과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절대 아니라고 할 것 같았다. 대신 눈빛을 보냈다.

‘다 알아들었으니까 자존심은 일단 접어 둬라.’

“아……”

디오나는 타르칸의 눈치를 힐끔 살피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렇죠.”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데,듀란테와 눈이 마주쳤다.

디오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듀란테는 그녀가 결혼식 날 아리스티네에게 찾아가 한 짓을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아리스티네에게 불륜이라는 소문이 나도록 무칼리를 충동질했던 것도.

과악,디오나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듀란테가 지금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볼까.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재밌을까?

‘내 오라버니 덕분에 살아 있는 주제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디오나는 저도 모르게 무칼리를 바라봤다.

무칼리라면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게 분명하니, 은연중에 제 편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

자신을 바라보는 무칼리의 표정을 본 디오나가 흠칫 몸을 굳혔다.

‘...........왜?’

그런 얼굴로 자신을 보는가.

무칼리는 언제나 자상하게,그러면서도 죄책감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봐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디오나가 더 깊게 생각하기 전에 아리스티네가 말을 건네서 디오나의 신경은 그쪽으로 쏠렸다.

“그래,치정 문제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기로 하고. 난 끼어들기 싫으니 사실만 정리해 줄게.”

“네?”

디오나의 눈이 흔들렸다.

아까 잘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 이야기가 또 나온단 말인가.

“내가 어제 욕실에서 쓰러진 걸 타르칸이 구했다고 해서 놀랐을 거야.”

아리스티네는 다리를 꼬며 말했다.

욕실에 두 남녀.

딱 오해하기 좋은 상황 아닌가?

디오나는 입을 뻐끔거렸다.

아리스티네의 말은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안 놀랐다고 부정하면 아리스티네가 쓰러졌는데 놀라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존재했다.

디오나가 말을 고르는 사이, 아리스티네가 말을 이었다.

“나 혼자 목욕했고 내가 하도 안 나와서 타르칸이 들어온 거 였어. 그리고 쓰러진 나를 발견했지”

디오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뭐라 하면 아리스티네가 쓰러진 과정을 설명하는 것에 뭐라고 하는 게 될까 봐 말을 얹기 힘들었다.

차근히 생각하면 적절한 말을 찾을지도 모르겠지만,생각하기 힘들었다.

아리스티네를 구해 내는 타르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부부 사이라서,욕실에도 마음 껏 드나든다고 자랑하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딱히 우리 둘이서 목욕을 했다거나,뭔가 있었다거나-그런 건 절대 아니야.”

아리스티네는 다시 한번 강조하고는 각오를 다진 뒤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 타르칸이 나와 침대 위에서…… 그랬던 건 어디까지나 내 저체온증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어.”

아리스티네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려 했다.

솔직히 창피했다. 뺨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뭐?’

디오나는 순간적으로 이해되지 않아서 멍하니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점점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침대 위에서 그랬다니? 뭘 했다는 건데?!’

저체온증 치료.

당연히 디오나에게도 민간요법에 대한 상식은 있었다.

‘분명 벗은 상태로 끌어안아 체온을一.’

“뭘 그렇게 돌려 말하세요.”

우미루가 어깨를 으쑥였다.

“홀딱 벗은 채 밤새도록 끌어 안고 있었다고 하면 되지요.”

그녀는 빙긋 웃으며 부끄러워하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신나게 입을 놀렸다.

“타르칸 전하와 침대 위에서 더한 짓도 하신 분이.... 침대도 부쉈잖아요.”

“..............”

확인 사살까지 더해졌다.

디오나의 얼굴이 충격으로 꺼멓게 물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이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의 첫날밤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마다 가슴에서 치솟는 불길이 목구멍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또 뭐라고?

‘타르칸 전하께서 그냥 육체에 끌리는 게 아니라는 거야,지금?’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아리스티네를 치료하기 위해 밤 새도록 끌어안고 있었다.

그걸 자랑하는 것 아닌가.

타르칸이 그저 육체에 미혹된 게 아니라,그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보호해 주고,보듬고……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이어져 있다고.

디오나의 어깨가 경련했다.

진정해야 한다고,이렇게 반응 해선 안 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눈이 먼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리스티네는 당황하며 우미루를 바라봤다.

‘아니,지금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 아닌가.

‘물론 디오나는 나랑 타르칸이랑 첫날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알겠지만!’

타르칸이 당연히 얘기해 줬을 거다.

하지만 디오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게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네 여친이잖아? 좀 더 챙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타르칸을 봤지만,그는 디오나를 달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뭔가 탐탁잖은 둣, 미간을 찌푸린 채 디오나를 보고 있었다.

결국 디오나를 달래는 건 아리스티네의 몫이 되었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서둘러 이 삼각관계의 교통정리를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너네 사이가 최고예요.

나는 절대 못 따라가.

그런 뜻을 담아 입을 열었다.

“타르칸하고 나는 정략결혼 한 사이니까. 연애하는 사람들이랑은 다르지.”

푸욱.

아리스티네가 갑자기 던진 말 이 타르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전사들이 흠칫해서는 타르칸을 바라봤다.

그 어떤 강력한 마수도 타르칸의 가슴에 독니를 꽂지 못했다.

그런데 아리스티네가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가 그에게 직격탄이 되었다.

아리스티네의 뜬금없는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타르칸에게 거슬리는 사람이니까.”

“뭐?”

타르칸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 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네가 나한테 직접 그랬잖아.”

“그런 적 따윈一.”

타르칸의 말이 우뚝 멈췄다.

〈년 정말 거슬리는 여자야.〉

자신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타르칸은 당황했다.

그건 그런 뜻이 아니었다.

어떤 뜻인지는 자신조차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아리스티네가 저렇게 자조적인 표정을 짓게 할 뜻은 아니 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 보네.’

타르칸의 반응이 그랬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타르칸을 걱정하며 바라보던 전사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그건 궁인들과 우미루 역시 마찬가지 였다.

어떻게 아리스티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아리스티네는 담담했다.

그녀는 어느새 고개를 든 디오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에게 거슬린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디오나의 얼굴에는 기쁨이 번져 나가고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약간의 환멸을 느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안심해.”

그런데 반응은 디오나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왔다.

“안심하라고?”

타르칸이었다.

“왜 디오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그는 아리스티네의 얼굴을 들 여다보며 물었다.

아까부터 이상함을 느끼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차였다.

처음 연인 운운할 때까지만 해도 ‘디오나에게 연인이 생겼나, 그런데 그 연인과 아리스티네가 무슨 상관이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흐르는 대화가 이상했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과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이.

타르칸은 아리스티네가 황당하다는 둣 눈을 깜빡이는 것을 놓 치지 않고 바라봤다.

“응? 그야 당연하잖아.”

“ 비,비 전 하.! ”

그제야 정신을 차린 디오나가 다급히 아리스티네를 불렀다.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디오나를 향하려는 것을 본 타르칸이 그녀의 어깨를 꾹 잡았다.

보랏빛 눈동자에 다시 타르칸이 담겼다.

“말해. 뭐가 당연하지?”

“그야, 너랑 디오나랑 연인 사이라며.”

타르칸은 할 말을 잊었다.

“그것도 아주 열렬해서, 옛날부터 절절했다고. 이 세상에 너한테 특별한 여자는 디오나뿐이고, 모비께서도 디오나를 며느리로 인정하셨다며.”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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