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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90화 (90/183)

90화

아이루고에서 마력석 광산이 발견되었고,하미르가 총책임자가 되었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국제 정세가 안정되고,광산 개발이 진척되자 밝힌 것이다.

“하미르 전하께서 마력석을 내 주실까요?”

리트렌의 말에 아리스티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미르를 추대하는 왕후파에서 이 사달을 냈다.

그러니 선철을 독점하는 계획에 하미르도 가담했을 거다.

그런데 하미르가 이 난관을 타개할 계책을 도와준다고?

“그럴 리가.”

“그럼 어떻게……”

“걱정하지 마. 마력석 사업은 국책 사업이잖아.”

아리스티네가 씨익 웃었다.

“하미르 왕자가 총 책임자이긴 하지만,어디까지나 네프테르 폐하께서 일임한 권한이야.”

“그 말씀은.”

“응,폐하를 설득하면 돼.”

네프테르는 노련한 정치가였다.

아리스티네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고, 메스 사업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마력석을 내어줄 리 없다.

마력석의 일부를 아리스티네가 사용하는 만큼 다른 곳에는 쓰지 못한다.

네프테르는 그 기회비용에 대 해 생각할 터였다.

‘그 계산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야 해.’

아리스티네는 기합을 단단히 넣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아리스티네는 그 즉시 네프테르에게 연통을 넣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다행히 바로 알현해도 된다는 답이 와서,아리스티네는 의관만 조금 정제하고 왕의 궁으로 향했다.

아리스티네를 깨지는 유리처럼 다루는 궁인들이 꼭 오늘 알현 해야 하냐며 만류했지만,막을 순 없었다.

왕의 궁에 도착한 아리스티네는 게임 룸으로 안내되었다.

‘게임 룸이라니.’

대신들과 카드 게임이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방해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잘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필요했다.

“어서 오거라,리네.”

네프테르는 나른하게 턱을 관 채 오후의 햇빛이 가득 비치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부왕 폐하를 뵙습니다.”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를 바라 보다가 툭 내뱉었다.

“아프다고 들었는데.”

“부왕 폐하께서 염려하실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리스티네는 예의 바르게 대 답하며 네프테르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그러나 네프테르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턱을 관 자세 그대로 말했다.

“글쎄, 걱정할 만한 일 아닌가?”

“네?”

“자식이 잔기침만 해도 걱정하는 게 부모 마음이지.”

아리스티네는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가슴이 봄날의 솜이불처럼 따뜻하고 폭신해져서 괜히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의 흰 뺨이 살짝 상기되는 것을 바라 봤다.

엄청난 수완을 가진 정치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네 말대로 메스 사업을 잘 성공시켰더구나.”

그 말에 아리스티네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예,폐하.”

“메스 디자인만 바꾸는 줄 알았는데 설마 녹이 슬지 않는 철을 만들어 낼 줄이야. 믿고 맡긴 보람이 있어.”

“폐하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네프테르의 표정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나,아리스티네는 그의 시선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다.

아리스티네스는 빙긋 미소 지 었다.

“해결할 수 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요.”

“해결할 수 있다?”

네프테르의 청안에 흥미가 깃들었다.

그는 턱을 괴었던 자세를 바로 하고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사실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가 이 비정상적인 독점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찾아온 줄 알았다.

그녀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이 행태를 지적하는지,독점으로 야기될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집어내는지 볼 생각이었다.

이 영리한 며느리가 자신을 얼마나 잘 설득할지 기대하고 있었건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돌아올 줄이야.’

네프테르는 느른히 턱을 쓸었다.

아리스티네는 항상 그의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을 깨는 행동 모두가 네프테르에게 기꺼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로 날 놀라게 할까.’

네프테르의 시선이 아리스티네 에게 드리웠다.

시험하는 듯한 시선에 흥미와 기대 그리고 호기심이 더해졌다.

그 뚜렷한 감정에 아리스티네 는 마른침을 삼키곤 고개를 끄 덕였다.

“네,해결할 수 있습니다.”

흔들림 하나 없는,자신 있는 어조였다.

그녀의 투명한 시선이 똑바로 네프테르를 직시했다.

하지만 속으론 긴장이 되어서 궁인이 가져다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떨리는 마음을 감추듯 여유롭게 차향을 음미하며 느리게 입에 머금었다.

따뜻한 차가 들어가자 굳었던 몸이 조금 풀린다.

네프테르가 먼저 자리를 깔아 주었으니 지금이 적기다.

“부왕 폐하.”

진중한 부름에 네프테르가 아리스티네를 직시했다.

선명한 푸른 눈동자가 햇빛 아 래 유독 밝게 보였다.

“제가 마력석을 매입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네프테르의 동공이 한순간 흑 좁아들었다가 커졌다.

눈매가 가늘어진다.

“마력석을 네게 팔아 달라?”

그가 느릿하게 말하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긴 다리를 여유롭 게 꼰다.

“그건 하미르가 맡고 있는데.”

하미르에게 맡겼으니 모든 것은 하미르의 소관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하미르에게 갈 순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거절이 돌아올 테니까.

‘아니,거절만 돌아오면 다행이지.’

네프테르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거다.

지금 그는 명백히 아리스티네를 재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폐하께서 위임한 권리지요.”

네프테르는 여유롭게 받아치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마력석은 누구나 탐내는 자원이다.

귀족원에서도 지금 마력석 거래권을 놓고 핏대를 세우며 설전을 주고받고 있다.

캐낸 마력석을 어디 한 곳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었지만,유통을 국가에서 제한하고 있는 만큼 자릿수는 정해져 있었다.

지금 아리스티네는 그 한정된 자릿수에 자신을 넣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메스랑 마력석은 하등 상관이 없을 텐데?’

남들이 다 탐내는 보물이니 욕심을 내는 걸까?

아니면 철괴 독점으로 자신을 물 먹인 하미르 왕자 일파를 이번에는 제 쪽에서 한 방 먹여 주려고?

마력석 거래를 따내기 위해 귀족들 상당수가 하미르에게 몰리고 있다.

네프테르의 명으로 그중 한 자리를 아리스티네에게 내주게 되면 결탁할 세력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정치 싸움에서는 꽤 의미가 있지.’

더불어 마력석도 얻어 놓으면 다른 때 이득이 될 테고 말이다.

‘하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별로야.’

그 중요한 자원을 쓸데없이 놀리게 된다.

많은 귀족들이 제 잇속을 채우기 위해 하는 행태지만,그건 국가의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악수이기도 했다.

아리스티네는 정치적 입지를 위해 그런 방법을 택한 걸까.

‘하지만 왜인지……’

툭,툭.

네프테르의 손가락이 느릿하게 벨벳에 감싸인 팔걸이를 두드렸다.

‘리네의 생각은 다른 것 같군.’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아리스티네의 시선에는 절개가 있었다.

단순히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저런 눈빛을 하진 못할 터다.

네프테르는 그 간절하고 절실한 눈동자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력석의 중요함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그저 욕심 때문에 이러는 것도 아니군.”

아리스티네는 미소 지었다.

그녀가 마력석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기도 전에 네프테르가 말했다.

“게임을 한 판 하도록 할까.”

네프테르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플레잉 카드를 섞었다.

‘왜 갑자기 게임을?’

의아했던 것도 잠시,네프테르의 입가에 스친 미소를 본 아리스티네는 카드를 잡았다.

스페이드 에이스. 그다음은 하트의 7.

네프테르가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건 아리스티네에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무슨 카드인지 확신했다.

클럽의 퀸.

그리고 자신이 다음에 집을 카드는一.

‘역시.’

다이아몬드의 킹이다.

아리스티네는 꽃을 띄운 수반 에 담긴 물을 바라보았다.

물 위에는 아리스티네와 네프테르가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도 양쪽의 패를 다 볼 수 있게,시야각이 넓게 전환되면서.

‘이 타이밍에 이런 장면이 비치다니. 이건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리스티네는 네프테르가 얻게되는 모든 패를 파악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패를 어떻게 쓰는지도.

‘물론 내 행동이 달라지면 폐하의 행동 역시 달라지겠지만.’

이미 카드가 나오는 순서를 모조리 암기했다.

사람의 행동이 변하더라도 패가 나오는 순서는 변하지 않는다.

“카드 게임은 처음이라고 했지?”

“네,부왕 폐하.”

원래라면 네프테르의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을 알고 패의 순서를 모두 파악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었다.

‘이거 좀 사기 치는 기분인데.’

톡,아리스티네는 카드를 튕겼다.

‘그래서 이기는 게 좋을까?’

아리스티네가 마력석 거래권을 요구했고,네프테르는 게임하자는 말로 대답했다.

이 경우 생각할 수 있는 건一.

네가 날 이기면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런 뜻이 아닐까?’

하지만 막상 지면 네프테르의 기분이 상할 것이다.

보통 권력자와 게임을 할 때 바람직한 태도는 일단 지고 보는 거라고 했다.

‘역시 져야 할까.’

이겨서 기분이 좋아 관대해졌을 때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게 정석이었다.

‘홈……’

아리스티네는 카드를 움켜쥔 채 고민했다.

안타깝게도 수면 거울은 결과의 승패나 그에 따른 네프테르의 반응이 보이기 전에 사라졌다.

아리스티네가 들고 있는 카드로 콧등을 톡톡 쳤다.

“그래서,마력석이 선철 부족을 해결할 열쇠인가?”

갑작스럽게 흑 치고 들어오는 물음에 아리스티네는 네프테르 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카드에 머물러 있었다.

“네,아주 중요한 열쇠지요.”

아리스티네는 손안에서 패의 위치를 바꾸며 말했다.

“호오?”

네프테르의 눈에 반짝 이채가 서렸다.

분명 메스와 마력석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련이 있나?

아니면 그저 정치적으로 해결할 열쇠라는 뜻일까.

그 의문을 풀 힌트를 주듯이 아리스티네가 씩 웃으며 카드를 하나 내려놓았다.

“마력석이 있으면 선철이 필요 없으니까요.”

카드를 확인한 네프테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재밌군.”

카드 게임도,아리스티네의 말도 재밌어졌다.

그간 미적미적한 태도로 카드를 내더니 드디어 결심이 선 모양이다.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의 카드 위에 제 카드를 내려놓았다.

아리스티네는 카드를 집어들고,다시 또 하나를 내려놓았다.

새 패를 집어 든 네프테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부왕 폐하.”

아리스티네가 빙긋 웃으며 네프테르를 바라보았다.

“제가 한 수 물러 드릴 수 있어요.”

그 패기 넘치는 말에 네프테르가 피식 웃었다.

저 말이 건방지게 들리지 않고 어린 딸의 재롱처럼 들리는 건 자신이 늙었다는 걸까.

“제가 폐하의 염원을 이루어 드리도록 하지요.”

“내 염원이라.”

네프테르가 카드를 쥔 손을 기 울이며 중얼거렸다.

지금 아리스티네는 단순히 한 수 물러 주겠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이루고 왕의 해묵은 염원.

즉,아이루고가 야만의 나라라는 오명을 벗게끔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한 수 물러 드릴까요?”

아리스티네가 도발하듯 말했다.

왕은 탁,소리나게 카드를 전부 다 내려놓았다.

“어디 한번 네 패를 봐 볼까.”

네프테르가 말하는 패는 카드의 패가 아니었다.

아리스티네가 마력석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묻는 거였다.

정확한 이유도 묻지 않은 채 게임부터 제안하던 아까의 태도와는 확실히 달랐다.

아리스티네는 씨익 웃었다.

그녀는 쥐고 있던 카드를 모조리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제 패야 완벽하지요.”

* * *

아리스티네는 가뿐한 마음으로 왕의 궁에서 나왔다.

푸른 정원수와 여름 장미가 만 개한 정원에 투명한 햇살이 가득 내리찍었다.

아리스티네는 마차를 대기시켜 놓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정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나긋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신선한 초록의 향이 코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 푸른빛 사이로 이질적인 무 언가가 반짝 눈에 들어왔다.

아이루고에서 보기 힘든 머리 색이다.

아리스티네는 저런 백금발을 가진 사람을 최근에 만난 적이 있었다.

〈오늘 만남은 이걸로 끝이고, 나는 비전하를 찾아다니지 않을 거예요. 물론 이곳에 오지도 않 을 거고.〉

〈대신 나중에 어디선가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면 친구가 되 는 걸로.〉

순식간에 그 특이했던 만남이 기억을 헤집고 떠올랐다.

아리스티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로 만났잖아. 그것도 우연히.’

신기한 일이었다.

시선을 느꼈는지,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남자가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연분홍 장미가 향기로운 화단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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