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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95화 (95/183)

95화

물을 마셨는데도 목이 마르는 느낌.

아리스티네는 충동에 따라서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웃거 렸다.

“글쎄,잘 모르겠는데……. 우 리가 부부 사이 같아 봤어야 말이지.”

“뭐?”

타르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파르르 흔들렸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흔들림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왜인지 더 갈증이 일었다.

“아리스티네.”

그녀를 부르는 어조에는 초조함과 불만과 절박함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사납게 안광을 빛내는 타르칸의 모습이 왠지 비 맞은 채 귀를 뒤로 젖히고 있는 맹수처럼 보여서,아리스티네는 빙긋 웃었다.

“그래,우리가 결혼하긴 했으니까. 그런데 진짜 부부 사이라면 이 정도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 겠지?”

“무슨一.”

아리스티네가 에잇,하고 타르칸의 팔을 끌어당겼다.

타르칸의 몸이 그녀를 향해 숙여지자 아리스티네는 발꿈치를 살짝 들며 그에게 팔을 뻗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손이 탄탄한 타르칸의 가슴을 스치듯 지나쳐 두꺼운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에게 달랑 달랑 매달린 채 히히 웃었다.

“그렇지?”

“너……”

타르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 술을 꾹 다물었다.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얼굴과 달리 부드러운 그녀의 가슴이 그의 단단한 가슴에 꽉 눌리고 있었다.

타르칸은 맨가슴을 거의 드러 내고 있는 데다가,아리스티네가 입고 있는 아이루고식 드레스는 코르셋 없이 천이 몸의 굴곡을 따라 그대로 홀러내리는 스타일이라서......

“윽.............”

심지어 지금은 아직 늦여름.

무더위는 물러갔지만 아리스티네가 입은 드레스의 천은 얇디 얇았다.

“장난치지 마.”

타르칸은 이를 악물고,최대한 신경을 분산시키며 말했다.

일부러 시선은 멀리 두었다.

아리스티네를 내려다보면,그건 그것대로 또 난감해서.

‘왜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있는 거야.’

항상 가슴팍을 반절 이상 내놓 고 다니는 그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싫은데요? 부부 사이에 이 정도는 할 수 있는데요?”

아리스티네는 곤란해하는 타르칸의 반응을 즐기며 달랑달랑 발을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맞닿은 부드러운 몸 역시 살랑살랑 흔들려서 타르칸은 고역이었다.

결국 이렇게 견디다가는 큰일 (?) 나게 생겨서 타르칸은 아리스티네를 향해 왈칵 인상을 찌 푸렸다.

“너 진짜……!”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의 눈이 동시에 화등잔만 해졌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 쪽으로 거칠게 고개를 돌리며 의도치 않게 접촉 사고가 난 것이다.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타르칸의 입술 끄트머리에 닿았다.

사실 입술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턱과 뺨에 걸쳐진 어딘가. 아랫입술이 아주 살짝,닿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조금 닿았을 뿐.

그러나 입술이었다.

타르칸은 자신의 입술에서 그 녀의 입술을 느꼈다.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거리 에서 놀란 두 사람의 눈이 마주 쳤다.

그녀의 체온과 그녀의 숨결,

그녀의 감촉이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타르칸의 눈빛이 깊어졌다.

밤의 장막이 드리운 것처럼 어 둡고 습하고 짙은 것이 금안에 일렁인다.

그 잡아먹을 것 같은 시선에 아리스티네는 몸을 떨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당황하는지 모르는 채,그저 입술이 닿아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얼른 몸을 떼어 냈다.

괜히 머쑥하고 민망하고 조금 미안하기도 해서 그녀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부,부부 사이니까. 이 정도는..........”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을 바라보 지 못하고 시선을 사선으로 피 한 채,괜히 앞코로 톡톡 바닥을 치며 말을 흐렸다.

하얀 뺨이 복숭앗빛으로 달아 올라 있었다.

짙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아,배부르다! 씻어야지!”

견디지 못한 아리스티네는 그 말만 남긴 채 쌩하고 도망갔다.

타르칸은 우두커니 서서 그녀 를 바라보다가 “아一” 하고 얼굴을 감싸 쥔 채 주저앉았다.

“진짜 내가 너를.”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잠행을 나갔을 때나 저번에 간지럽힌다며 난리 쳤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자신의 아내는 장난기가 심해서 난감했다.

‘아니,꼭 난감하지는.........”

타르칸은 무심코 그녀의 감촉을 떠올렸다.

기감이 발달한 그에게는 그녀의 모든 것이 섬세하고 확실하게 느껴졌고,그건 아직까지도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 있었다.

“읏……”

그의 잇새로 열은 신음이 홀러 나왔다.

역시 난감하다.

타르칸을 바라보는 궁인들의 시선에 언뜻 연민이 어렸다.

‘아주 타르칸 전하를 들었다 놨다 하시는구나.’

‘이건 비전하께서 좀 심하셨네.’

‘저렇게 만들었으면 책임도 지셔야지!’

‘타르칸 전하, 힘내세요! 하지만 조금만 더 고생하셨으면 좋겠다.’

‘옆에서 지켜보는 거 너무나 재미지니까요.’

결국 궁인들의 연민 따위는 악어의 눈물일 뿐이었다.

* * *

아리스티네는 홧홧한 얼굴을 식히기 위해 연거푸 물을 끼얹었다.

찬물이 시원하게 얼굴을 적셔도 열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붉어.’

그것 빼고는 평소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얼굴인데,이상하게 입술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더듬었다.

타르칸의 피부 촉감.

뜨겁고 매끄럽고,강인한.

그에게서는 불과 철의 냄새가 났다.

아리스티네를 달구어 지금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제련하는 냄새.

변화할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다.

알면 돌이킬 수 없어질 것 같았기에.

아리스티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물을 퉁겼다.

점점이 튄 물은 빛을 난반사 해,아리스티네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호하게 만 들었다.

‘정신 차리자.’

아리스티네는 방으로 돌아와 시녀들을 물리고 꽃이 떠 있는 수반을 바라보았다.

게임 룸에서 봤던 수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그녀는 자신의 방에도 수반을 놓을 것을 명했다.

아리스티네가 직접 실내 장식 에 무언가를 요청한 것은 처음 이라서,궁인들은 신나게 수반을 가꿨다.

그 결과 수반 위에는 아침저녁으로 새로운 꽃이 띄워져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손가락으로 물을 살짝 저어 탐스럽게 핀 달리아 를 가장자리 쪽으로 밀어 둔 후 수면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무언가가 비칠까 보는 것이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부터 매일 이렇게 확인했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실패인가.’

아리스티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수면이 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왕안이 발현될 징조였다.

아니나 다를까,일순간 잠잠해 진 수면에 현실이 아닌 무언가가 비쳤다.

‘미래인가?’

수면 거울에 비친 것을 보자마자 아리스티네는 바로 시점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아직 아리스티네가 겪지 않은 일이니 미래가 확실했다.

문제는 어느 시기냐는 것.

언뜻 보이는 창밖으로 나뭇잎 끝이 노랗고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초가을이려나? 이왕 보는 거 너무 먼 미래가 아니라 올해였으면 좋겠는데.’

수면 거울 속 아리스티네는 소파에 앉아 거의 눕다시피 누군가에게 기대 있었다.

말이 기대 있다는 거지 거의 폭 안겨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의외라 고 해야 할지 상대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으응?’

그 모습을 보고 아리스티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왜 이렇게 붙어 있어? 거 기다 이 분위기는 대체 뭔데?!’

수면에 비친 아리스티네는 소파에-아니,타르칸 위에 누워서 그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맞닿는 시선에서는 뭐라 말하기 힘 든 감정들이 흘러나와 두 사람을 적셨다.

‘진짜 왜 이래!’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과 타르칸의 모습을 본 적 없는 아리스티네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우린 그냥 쿨한 비즈니스 쇼윈도 부부 사이였는게....’

남들이 보기엔 전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리스티네는 철석같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타르칸과 딱 달라붙어 다니면서도 딱히 그와 스킨십을 한다는 자각도 없었다.

[리네.]

타르칸의 입술에서 낮게 가라 앉은 음성이 밀려 나왔다.

아주…… 그런…… 목소리였다.

‘넌 또 왜 나를 애칭으로 부르는데. 그 목소리는 뭔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데!’

내 자유는!

아무리 봐도 코가 꿴 느낌이라 지켜보는 아리스티네는 등 뒤가 서늘했다.

타르칸의 커다란 손이 아리스티네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한 번 쓸어 넘기고,또다시 쓸어 넘기고. 이번에는 뺨을 살포시 움켜쥔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웠다.

아리스티네는 초조하게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면 거울을 바라보았다.

물론 오늘 자신이 장난치다 보니 어쩌다 입술이 슬쩍 닿긴 했지만,그건 사고였다.

아니,입술이 닿았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내가 미쳤나,아니면 술 취했나.’

얼굴을 보니 정상이 아닌 건 확실했다.

얼굴색이 붉고 눈에 물기가 가득한 것이 술에 취해 머리가 마비된 듯했다.

‘둘 다였구나……’

깨달음에 자괴감이 찾아왔다.

그러는 사이 수면에 비친 자신과 타르칸의 시선이 더 농염하게 얽혀 들었다.

‘설마? 이러면 안 돼!’

그 속마음을 들은 것처럼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비전하께서는 지금 휴식 중이 십니다!]

방 밖에서 궁인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 사이로 철커덕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끄럽다! 죄인을 연행해 가려 는 것뿐이다!]

그와 동시에 벌컥,문이 거칠게 열렸다. 십수 명의 병사들이 일시에 방 안에 들이닥쳤다.

전부 무장한 채 예를 갖추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지?]

타르칸이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른하게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아리스티네는 이미 그의 품에 서 떨어져 나온 상황이었고,타르칸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병사들을 바라봤다.

병사들은 타르칸의 모습에 순 간 주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제일 선 봉에 있던 사내가 앞으로 나와 아리스티네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왕자비 아리스티네,감히 국왕 폐하를 시해한 범인으로 연행한다!]

[폐하를 시해했다고……?]

수면 거울 속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단순히 자신이 어떤 범죄의 범인으로 몰려서 받는 충격이 아니었다.

[그럼 설마 폐하께서....]

붕어하셨단 말인가.

차마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지 만,현실의 아리스티네는 미래의 자신이 어떤 말을 삼켰는지 알 수 있었다.

[모르는 척도 적당히 하시오! 본인이 폐하를 독살한 장본인이면서!]

사내가 핏대를 세우며 삿대질 했다.

당장이라도 아리스티네를 자리에서 끌어내 무릎 꿇릴 기세였다.

[감히 누구를 모함하는 거냐.]

타르칸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사내의 시야에서 아리스티네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가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엄청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사내는 움찔했지만,침을 꿀꺽 삼키고 애써 당당한 척 말했다.

[타르칸 전하께서는 가만히 계십시오. 이미 증좌도 나왔습니다.]

[하,대체 얼마나 대단한 증거 길래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거지?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비에게.]

새파랗게 날 선 금안이 병사들을 훑자 그들의 기세가 움츠러 들었다.

저도 모르게 한두 걸음 뒷걸음치는 병사들을 본 사내가 입을 열었다.

[..비전하의 소지품에서 독약이 나왔습니다.]

그의 목소리 또한 아까 방문을 부술 둣이 열던 때에 비해 훨씬 온순해져 있었다.

[그게 정말 내 비의 소유물이 맞고? 아무런 확인 없이 바로 연행이라一.]

타르칸이 웃었다. 피 냄새가 나는 비릿한 미소였다.

[이,이렇게 자꾸 참견하시면 공범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주하든가.]

타르칸이 삐딱하게 말하며 양 손을 대충 모아 내밀었다.

[뭐 해? 어서 날 구속하지 않 고.]

사내는 차마 타르칸을 구속하지 못하고,그렇다고 그대로 물러나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아리스티네가 일어났다.

[잠깐만. 정말 폐하께서…… 붕어하신 거야? 아니면,독살 시도가 있었고 무사하신데 내가 범인으로 지목된 것뿐이야? 그냥 내가 지목된 것뿐이지? 무사하 실 거야.]

아리스티네의 얼굴에는 절박한 바람이 배어 있었다.

제발 후자였으면 하는,자신이 지금 왕을 시해한 범인으로 몰 린 것은 하나도 안중에 없는 태도였다.

그 모습에 사내가 잠시 머뭇거 렸다.

아리스티네는 끈질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결국,사내가 입을 열었다.

[폐하께 선 이미…… 안가하셨습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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