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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01화 (101/183)

101 화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이 오찬 장소에 도착했을 땐 아직 아무도 없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아리스티네가 부산스레 일찍 가자고 했기때문이다.

두 사람은 궁인들이 안내해 준 자리에 착석했다.

아리스티네는 매의 눈으로 테이블을 확인했다.

아직 음식이 서빙되기 전이었지만 노란 국화를 메인으로 테이블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역시.’

장식을 확인한 아리스티네의 눈매가 깊게 가라앉았다.

오늘 이 오찬이 문제의 날인 게 확실하다.

그때, 식당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런,먼저 와 계셨군요.아리스티네”

부드러운 온기가 촉촉이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아리스티네는 그 음성이 귀에 익다고 느꼈다.

단순히 제왕안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 들었던 목소리보다도 더 귀에 익은 어조였다.

‘설마.’

아리스티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창을 타고 들어오는 능염한 가을 햇볕 아래 백금발이 반짝거 렸다.

커다란 키,아이루고인답지 않게 섬세한 얼굴.

예니카리나가 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리스티네는 깨달았다.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하미르 왕자님.”

“비전하.”

아리스티네의 부름에 하미르가 부드럽게 답했다.

‘맞구나.’

아리스티네는 시선을 내렸다.

왜 몰랐을까.

하미르가 마력석 광산에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 편견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

인종이 달라 세심한 인식이 힘든 것을 감안해도,사실 예니카리나와 하미르의 생김새는 누가 봐도 남매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꼭 닮지는 않았다.

하지만 튀르쿠아즈빛 눈동자만큼은 똑같았다.

‘눈 색이 비슷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걸로 혈연관계라고 생각 하면 가족이 아닌 사람이 드물 것이다.

하미르와 아리스티네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에 예니카리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하지만 예니카리나가 조금 더 살펴보기 전,아리스티네는 외면하듯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설핏 보이는 눈빛이 냉담하고 차가웠다.

예니카리나는 제가 꼬옥 붙들고 있는 하미르의 팔이 순간 움찔한 것을 느꼈다.

왜 그러지,하며 하미르를 올려다보니 그는 아리스티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걸려 있던 미소가 잦아든 얼굴.

아주 작은 동요였지만,언제나 물 흐르듯 모든 것을 웃으며 관조하던 하미르답지 않았다.

‘설마 지금 저 황녀 때문에 이러는 거야?’

순간 떠오른 생각에 예니카리나는 속으로 픽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예니카리나는 테이블 가까이로 걸음을 옮기며 아리스티네에게 말했다.

“리네 언니는 처음 보죠? 우리 하미르 오라버니.”

“응. 처음 봐.”

처음 본다는 말이 이렇게 관계를 잘라내듯 날카로울 수 있나.

하미르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리스티네는 자신을 쳐다보는 하미르와 타르칸의 시선을 느꼈다.

‘왜 보는지 알겠지만 지금은 그런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제왕안 속에서 자신이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지 이제 알겠다.

하지만 지금은 온 신경을 네프테르에게 쏟아야 할 때였다.

타르칸은 아무 감정 없이 냉정하기만 한 아리스티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하미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항상 여유로웠던 얼굴이 지금은 설핏 굳어있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타르칸은 그가 꽤 안달이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미르에게서 저런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다.

‘역시 이래야 내 아내지!’

타르칸은 하미르를 외면하는 아리스티네를 보며 뿌듯하게 생각했다.

남의 아내에게 꼬리를 흔들어 대던 여우 놈이 충격받은 걸 보니 고소했다.

‘아무리 꼬리를 살랑대봤자 저 연애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 는 여자가 넘어갈 것 같아?’

철벽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철벽이 바로 몰라서 치는 철벽이다.

남편인 타르칸도 아내를 꼬시기 위해 매일매일 얼마나 고통스러운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생각하고 나니 조금 우울해졌다.

그러는 사이 다른 공주들과 왕자도 속속히 도착했다.

이윽고 네프테르와 왕후가 함께 등장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프테르의 안색을 확인한 아리스티네의 눈매가 움찔했다.

만약 네프테르가 건강 문제가 아니라 독을 복용해 죽음을 맞이했다면.

‘돌이킬 수 없어.’

크게 티 나진 않지만 살짝 창백한 안색을 보니 이미 음독했다고 봐야 한다.

아리스티네는 서늘해진 가슴을 눌렀다.

‘궁의는 폐하를 못 뵌 건가?’

음독했을 경우,최대한 빨리 조처를 취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아리스티네는 식당에 오는 네프테르와 궁의가 마주치도록 계획을 짰다.

하지만 계획은 예정대로 홀러가지 않았고 이미 늦었다.

‘아니.’

아직 한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다.

‘폐하께서 음독하지 않으셨을 경우.’

그리고 아리스티네는 이쪽에 더 무게를 두고 대비했다.

* * *

식사는 제왕안에서 봤던 것과 거의 똑같이 진행되었다.

왕후는 하미르의 공로를 칭찬했고,네프테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치하했다.

“이제 하미르도 슬슬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미르가.”

“결혼에 순서를 따지는 건 옛날 일이라고 하지만,하미르보다 더어린 타르칸도 혼인하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하미르 오라버니께서도 슬슬 총명하고 아리따운 영애와 가정을 꾸릴 때지요. 예니카도 어서 새언니를 보고 싶네요.”

네프테르만 주시하고 있던 아리스티네는 진득한 시선을 느꼈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하미르였다.

왕의 등장 후에 잦아들었던 눈길이 다시금 아리스티네를 향하고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조금 성가심을 느꼈다.

대체 정체를 알게된 자신이 어떤 반응을 해 주었으면 해서 이러는 건지.

‘그러고 보니 본인 결혼 이야기인데 정작 하미르 왕자는 가만히 있네.’

그냥 잠자코 있는 게 아니라 아리스티네를 바라보고 있다.

예니카리나까지 나서서 거드는 판국에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아리스티네는 얼굴에 꽂히는 시선을 무시하고 네프테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왕안에서 봤던 그대로 말했다.

단 하나의 변수라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왕 폐하,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지요?”

“거의 드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 부왕 폐하께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예니카가 드릴까요?”

그녀가 본 미래처럼 파엘라미엔과 예니카리나 역시 한 마디씩 했다.

네프테르는 고개를 저었다.

“속이 조금 안 좋을 뿐이야.”

“편찮으신 건가요? 당장 궁의를....”

“그렇게 수선 떨 필요 없다. 체한 것뿐이야.”

단호하게 말한 네프테르가 자 리에서 일어났다.

아리스티네는 그와 거의 동시에 일어나 그의 쪽으로 다가갔다.

“폐하!”

네프테르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아리스티네가 부축했다.

“어서 궁의를.....!”

시종이 궁의를 부르기 위해 문 을 여는 것과 동시에 궁의가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마치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

궁의는 쓰러진 네프테르를 보고 깜짝 놀라 다가왔다.

네프테르를 부축하고 있던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그와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고,곧 시선은 비꼈다.

우연히 마주친 것뿐인 둣 두 사람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폐하께서 드신 음식을 확인해 보아라!”

왕후가 엄중한 얼굴로 명하자 예니카리나가 숨을 삼켰다.

“설마 독……?”

그녀의 말에 궁인들이 바닥에 무릎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모든 것이 제왕안에서 본 대로였다.

궁의가 식당에 이미 도착해 있는 것만 제외하면.

아리스티네는 궁의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툭툭,일정한 간격으로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걸 확인한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한차례 흔들렸다.

파랗게 질린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네프테르를 눕힌 궁의가 다급하게 말했다.

“당장 폐하를 치료실로 옮겨야합니다. 궁의장께도 연통을 넣어주십시오.”

“음독인가?”

“지금으로써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궁의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가능성일 뿐이라고 하지만 거의 그렇다는 말로 들렸다.

섣불 리 확답을 할 수 없어 그렇게 답한 것일 뿐.

왕후가 비틀거렸고,아직 어린 공주 몇몇은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네프테르가 식당 밖으로 이송 되어도 어수선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부왕께선 괜찮으시겠죠? 예니카를 두고 가시면 안 돼요.”

예니카리나가 하미르를 파악 끌어안으며 울상을 지었다.

잠시 열린 문을 바라보던 왕후가 차가운 얼굴로 궁인들을 돌아봤다.

네프테르에 대한 걱정은 걱정이고, 그녀는 이 나라의 통치자 였다.

또한 다음 대 왕위를 놓고 치열하게 정치 싸움을 하는 자이기도 했다.

최고 통수권자의 신변이 불확실한 것은 엄청난 위기이자 기회였다.

지금 이 상황을 그녀가 주도해야 한다.

“오늘 오찬에 관련된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감히 폐하의 목숨을 노린 짓거리라면 내 가 만두지 않을 것이다.”

“와,왕후 폐하,저희는 억울하옵니다.”

“저희는 결백합니다……!”

“정말 결백하다면 조사 과정에서 밝혀질 테지.”

궁인들의 외침을 단호하게 일축한 왕후가 왕족들을 둘러봤다.

“비록 폐하의 핏줄이라고 하나 오늘 오찬을 함께 한 자들 역시 완벽하게 죄에서 자유로울 수없다.”

날카롭게 날 선 왕후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타르칸을 향했다.

“전말이 밝혀질 때까지 모두 각자의 궁에서 자숙하고 있거라.”

이건 너무 과한 처사였다.

하지만 공주들과 왕자들은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왕후가 누구를 노리고 이런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화가 자신들에게 미치진 않을 것이다.

‘과연 이래서 타르칸과 내가 궁에 돌아와 있었구나.’

예상한 대로였다.

아리스티네가 한 발 앞으로 나서자 왕후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아리스티네가 자신의 명을 거역할 거라고 생각하는 눈초리였다.

“왕후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리스티네에게 ‘내 명을 거역 하는 건 켕기는 구석이 있어서냐’고 몰아가려고 했던 왕후는 당황해서 그녀를 바라봤다.

“왕후 폐하의 말씀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사안인데 예외가 있어선 안 되지요. 폐하께서 명명백백하게 오늘 일에 대해 밝혀 주시리라 믿습니다.”

왕후는 찜찜한 얼굴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하지만 뭐라 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결국 그녀는 아리스티네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말거라. 내 단 하나의 작은 의혹도 태양 아래 드러낼 테니 그 누구라도 단죄의 검을 피해 갈 수 없다.”

그 누구라도,하고 말할 때 왕후의 시선이 경고하듯 날카로웠다.

아리스티네는 순종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략혼을 명받았을 때 아비인 황제에게 그랬듯이.

* * *

갑자기 수십 명에 달하는 궁인들이 잡혀 들어갔다.

왕궁 안에는 공포와 불안이라 는 폭풍이 불었다.

네프테르가 쓰러졌다는 소식과 음독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그 폭풍을 타고 순식간에 일파 만파 퍼졌다.

왕이 중태에 빠진 건지,궁의장은 아직도 치료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사이 궁인과 시종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왕후는 이 일을 지휘하며 오찬 때 네프테르가 손댄 모든 것을 조사했다.

“반드시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부왕께서 앓고 있던 병환일 확률은 없습니까?”

하미르의 말에 왕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갑자기 쓰러지실 병은 없으셨다. 병환이라면 궁의장이 언질이라도 주었을 게야.”

치료실로 들어가기 전 시종이나 궁인에게 한마디 할 법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 아니냐. 필시 해독할 수 있는 것을 실험 중이겠지. 음독이 확실해.”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정황이나 증거품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하긴,이렇게 쉽게 꼬리를 밟힐 일이었으면 애초에 독살 시도를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아리스티네의 태도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예민하게 곤두서 있던 왕후는 신경질적으로 밖으로 나갔다.

“웬 소란이냐!”

“와,왕후 폐하.”

궁인들이 놀라 왕후를 바라보 았다.

왕후는 그들 틈에서 한 여자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넌……”

시선을 받은 여자가 왕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깊게 고개를 숙이는 움직임을 따라 그녀의 군청빛 머리카락이 홀러내렸다.

“디오나 영애.”

왕후의 부름에 디오나가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벌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제 말을 들어 주시길 간청합니다.”

왕후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디오나를 바라보았다.

감히 나라의 명운이 왔다 갔다 하는 이 급박한 때에 허락도 없이 찾아와 심기를 어지럽히느냐 며 당장 내쫓을 생각이었다.

디오나가 타르칸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만큼 더더욱.

심지어 어떻게 하면 디오나를 이용해 타르칸이 자신의 조사를 방해한다는 판을 짤 수 있을까 고민까지 하던 차다.

하지만 왕후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제게 선물을 들고 온 것이라고.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예,왕후 폐하께 꼭 알려야만 하는 사실이 있어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별일이 아닐 경우 내 화를 면치 못할 것이야.”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디오나가 고개를 들어 왕후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침통한 얼굴로 입을 열 었다.

“감히 지엄하신 국왕 폐하를 해한 간악한 독살범이 누구인지 고하고자 합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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