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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02화 (102/183)

102화

“뭐라?”

왕후의 눈빛에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찾 아온 것은 불신이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라 디오나는 당황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실바누스 시녀들이 아리스티네 왕자비를 음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체하긴 했으나,저는 한때나마 그들과 꽤 돈독한 관계였습니다.”

디오나가 시녀들에 관해 증언했던 것은 왕후도 알고 있는 사실이 었다.

“그때 그들로부터 들은 말이 있습니다. 왕자비의 소지품에 독약이 있다고요.”

디오나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 시에 왕후는 물론이고 하미르의 얼굴에도 경악이 스쳤다.

“지금 그게……”

왕후는 더 말을 잇지 않고 입 을 다물었다.

한층 차분해진 시선이 디오나에게 내리꽂혔다.

“실바누스에서부터 가져온 독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한 번에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극독이라고요.”

왕후가 말이 없자 디오나는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그러면서 침통하게 고개를 숙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이루고에 독을 가져왔는지 무서워서 짐작하기도 싫습니다.”

왕후는 사뭇 냉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인가? 아닐 경우엔 감히 본 왕후에게 거짓을 고한 죄로 네게 극형을 내릴 것이야.”

“저는 제가 들은 것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느냐 묻는 것이야.”

“폐하께서 왜 저를 의심하시는 지 압니다.”

디오나가 호소하는 얼굴로 왕후를 올려다보았다.

“저는 타르칸 전하께 충성을 바친 몸. 과연 비전하에 대해 밀고하는 게 옳은 일인가 저 역시 저어되었습니다.”

디오나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엔……. 제 오라버니는 아이루고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왕후를 올려다보는 디오나의 모습은 정의롭고 진실해 보였다.

두렵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있지만,대의를 위해 자신의 사감을 누르는 숭고함이 얼굴에 깃 들어 있었다.

“저 역시 이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타르칸 전하를 따르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이루고에 있으니까요.”

왕후는 말없이 디오나를 내려 다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네 충심이 갸륵하구나”

“부족한 저를 그렇게 봐 주시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가련하게 고개를 숙이는 디오나를 보는 왕후의 입매가 썰룩 거렸다.

속내가 빤히 보이는데 잘 통했다고 착각하고 저러는 게 우스웠다.

디오나가 순수한 충심으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건 아리스티네를 범인으로 몬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왕자비 자리를 탐냈다는 건 왕후도 아는 일이었다.

겉으로야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타르칸을 위하는 양 따라다녔지만,그 안에 깃든 건 탐욕이었다.

‘지금 황녀를 왕자비 자리에서 끌어내면 자신의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나 본데.’

우스웠다.

저런 착각을 할 수 있으려면 대체 얼마나 아둔해야 하는지.

하긴,그러니 이런 밀고를 하는 것이다.

아리스티네가 독살범으로 지목 당하면 타르칸 역시 무사하지 못한다.

아무 상관이 없더라도 왕후가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어 타르칸까지 공범자로 만들 테니까.

공범자로까지 몰아가는 게 힘들면 입지가 약해진 틈을 타 정치적으로 완전히 매장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 계산이 안 설 정도로 멍청해 보이진 않았거늘.

‘아니,제 손에만 들어온다면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건가?’

왕후는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디오나를 바라봤다.

커다랗게 웃어 주고 싶었다.

불쌍한 타르칸.

그녀는 여유롭게 타르칸을 동정했다.

‘뭐,아니면 복수일 수도 있지.’

어쨌거나 왕후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디오나의 말이 사실이어도 좋고,아니어도 괜찮다.

만약 아리스티네의 방을 수색 했는데 독이 없으면 디오나를 탓하면 된다.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구나. 설마 왕자비가 그럴 줄은……”

왕후는 입매를 틀어막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가린 입술은 짙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어.’

솔직히,왕후는 타르칸이나 아리스티네가 범인일 거라고 생각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네프테르는 원래도 타르칸을 아꼈지만,아리스티네가 오고 난 뒤 그 총애가 더 깊어졌다.

궁으로 돌아가 자숙하라는 말을 했던 것도 그저 정치적 우위를 공고히 할 생각으로 그랬던 것뿐이다.

하지만 디오나의 개입으로 일이 재밌게 됐다.

아리스티네가 독을 가져왔다는 게 꾸며 낸 말이고,디오나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지금 몰래 넣어 둔 거여도 모르는 척해 줄 생각이었다.

독만 있으면 당장 아리스티네를 범인으로 몰아가면 된다.

왕후의 감대로 디오나는 정말 선물을 주었다.

‘진범이야 나중에 찾아내면 그만이지.’

지금은 독살범보다는 정적을 잡을 때였다.

“당장 왕자비의 처소를 수색하 라 명해야겠다. 내 디오나 영애의 충정은 잊지 않지.”

“그저 폐하를 해친 독살범을 찾아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디오나는 자리를 옮기는 왕후 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왕후가 자신을 스쳐 지나간 다음에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닷빛 눈동자가 폭풍을 몰고 오는 적란운처럼 번뜩였다.

가슴속에서부터 미소가 우러나 왔다.

왕후가 제게 속아 넘어가 뜻대로 움직이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피식 웃던 디오나의 얼굴이 순간 흑 굳었다.

하미르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미르 전하.”

디오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왕후와 함께 자리를 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단 말인가?

“비전하께서 독약을 지니고 있다라.”

하미르의 음성은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온화했다.

하지만 디오나는 서늘한 뱀이 제 목줄을 조이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정적인 아리스티네를 제거할 만한 소식이니 하미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저는 들은 대로 말했을 뿐입 니다.”

그 말에 하미르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 있는 왕후를 향했다.

왕후는 수사관에게 무언가를 명하고 있었다.

필시 아리스티네의 처소를 탈탈 털라는 명이리라.

“정말 흥미로워.”

디오나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대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미르는 아무 말 없이 미소 짓곤 자리를 떴다.

디오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부르르,떨었다.

* * *

아리스티네는 소파에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궁의가 바로 왔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불안은 앙금처럼 가슴속에 가라앉았다.

‘수면 거울 안에서 내가 왜 타르칸과 그랬는지 알겠어.’

먼저 미래를 보고 대비한 지금도 이렇게 심장이 떨리는데 아 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오죽 했을까.

‘그리고 폐하의 아들인 타르칸은 나보다 더하겠지.’

그런데 제왕안 속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타르칸에게 위로받았다.

이제는 제가 타르칸을 위로해 줄 차례였다.

아리스티네는 미소를 지으며 타르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괜찮아, 괜찮아.”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니 타르칸이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뭐 하는 거지?”

“아니,폐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아리스티네가 다시금 타르칸을 달래듯 도닥도닥 두드려 주었다.

“걱정하지 마. 폐하께선 곧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털고 일어 나실 거야.”

타르칸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리스티네에게 물었다.

“왜 그래?”

“그냥 널 안심시켜 주려고 그러는 거지.”

아리스티네는 미소를 지었다.

제법 다정해 보이려고 노력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一.

“그럼 왜 그렇게 멀찍이 있어?”

“어?”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을 토닥토닥해 주면서도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게 팔만 쭉 뻗어 손끝으로만 살살 두드렸던 것이다.

“아니,그냥……”

아리스티네는 우물쭈물하며 시 선을 돌렸다.

그녀답지 않은 행동에 타르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리스티네는 그의 시선에 더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이 되었다.

입술에 절로 힘이 들어가 뾰족 하게 오므라든다.

‘으,왜 자꾸 생각나는 거야.’

타르칸이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걸 생각해서일까?

지금과 똑같은 시각,똑같은 방 그리고 똑같은 소파 위에서 타르칸과 둘이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의 팔이 자신의 허리에 닿았고, 자신의 팔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온전히 타르칸을 의지한 채 늘 어져 있어 온몸이 밀착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은 그의 빵빵한 가슴에…….

‘아니, 아니! 진짜 그건 아니지!’

“왜 그래?”

“어? 내,내가 뭘?”

타르칸의 질문에 아리스티네는 소파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왜 그렇게 자꾸 사람한테서 뒷걸음질 치냐고.”

“ 내가?”

아리스티네는 기가 막힌 웃음을 지었지만 실제 그녀의 몸은 점점 타르칸에게서 멀어져 소파 끝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꿈지럭꿈지럭 다시 타르칸 가까이 다가갔다.

그에게 가까워질수록 수면 거 울 속에서 그녀가 얼굴을 비볐던 가슴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탄력까 지 있는 가슴이 얼굴에 닿는 감 촉은 과연 어떨까?

자신이 그랬다는 걸 보기만 하 고 정작 촉감은 느끼질 못했으니 억울했다.

아리스티네는 무의식적으로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며 감촉을 가늠했다.

그러다 핫,하고 정신을 차렸다.

대체 뭐가 억울하단 말인가!

‘아이루고 의복은 왜 조신하지 못하게 가슴을 저렇게 드러내는 거야.’

자신이 변태인 것은 아니다.

애꿎은 옷만 탓하며 아리스티네는 치맛자락을 꾹 말아 쥐었다.

그때 타르칸이 소파에 기댔던 몸을 세웠다.

애써 유지하고 있던 안전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져서 아리스티네는 저도 모르게 등받이에 딱 달라붙었다.

“너 진짜 아까부터 계속 왜 그래?”

“뭐가? 난 그냥 부왕 폐하께서 편찮으시니 걱정하고 있을 너를 위로해 주려고 했던 건데?”

아리스티네의 말에 타르칸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안 그래도 심란한데 아리스티네까지 자꾸 이상하게 구니 답답했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이쪽도 생각이 있다.

“위로해 주는 거라고?”

“ 응”

아리스티네가 다시 손을 뻗어 소심하게 타르칸을 토닥토닥했다.

타르칸이 그 모습을 보고 입매 를 늘였다.

“내가 원하는 위로는一.”

앗,하는 사이 타르칸의 손이 아리스티네의 팔을 잡았다.

순식간에 아리스티네가 그의 품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의 팔이 가느다란 아리스티네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아리스티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워낙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렇기도 했지만…….

‘뜨거워

타르칸의 헐벗은 가슴이 바로 뺨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하면 서도 단단한 탄력이 있는 빵…… 아니,가슴이 그녀의 뺨을 꾹 누르고 있었다.

손으로 만지작거렸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아니,맛이 아니라 감촉.’

아리스티네는 저편으로 흘러가려는 의식을 다잡으려고 애를 썼다.

타르칸이 그녀의 목덜미에 얼 굴을 묻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말랑하고 따뜻한 아리스티네의 체온을 느끼고 그녀의 향이 품 안에서 가득 피어오르자,순식간 에 진정이 되며 머리끝이 아찔해진다.

타르칸은 그제야 제 신경이 꽤 곤두서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부왕은 죽여도 죽지 않을 사람이라고,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저 구석에는 나약한 마음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렇게 아리스티네를 끌어안고 있으니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소복소복 안도감이 쌓였다.

“이런 건데.”

그가 속삭이자 숨결이 예민한 살갗에 닿아 아리스티네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타,타르칸……”

아리스티네는 애써 정신을 차리며 그의 가슴에 찰싹 붙은 얼굴을 떼어 냈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타르칸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속삭였다.

“위로는 원래 받는 사람한테 맞춰 줘야 하잖아,응?”

황금빛 눈동자가 꿀 같았다.

그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다가 가면 끈적하게 몸을 잡아채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는.

“위로해 줘.”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었다.

까마귀의 깃털처럼 윤이 나는 머리카락이 아리스티네의 은발과 뒤섞여 들었다.

살짝 이마를 비비는 것이 쓰다듬어 달라는 둣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리스티네는 주저하면서도 그 에게로 손을 뻗었다.

나중에 이혼할 걸 생각하면 너 무 가까워져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심지가 다 타 들어 간 촛불처럼 희미하게 점멸할 뿐이다.

수면 거울 속에서 타르칸이 그 랬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이 그를 위로할 차례였다.

아리스티네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천천히 파고들 었다.

부드럽게 쓸어내리고,다시 한 번 파고든다.

타르칸이 눈을 감으며 그녀의 손길을 깊게 느꼈다.

아리스티네의 허리에 두른 그 의 팔에 힘줄이 돋으며 그녀의 몸이 바짝 끌어당겨진다.

몸이 틈 없이 맞닿았다.

아리스티네의 눈이 느릿하게 깜빡였다.

조금만 더 고개를 들면 입술이 맞닿을 듯 가까웠다.

그녀는 타르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던 손을 거두지도 못한 채,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긴 속눈썹에 빛이 고여 찬란하게 빛났다.

타르칸은 흰 피부 사이로 유독 붉은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리스티네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열기가 일렁였다.

소리 없이 그의 고개가 숙여졌다.

무언가를 예고하듯,그의 숨결이 아리스티네의 입술에 닿았다.

남편은 됐고, 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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