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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06화 (106/183)

106화

디오나와 자신을 같은 선상에 두고 함께 염가에 처리하는 것 같아서 더 치욕스러웠다.

그러나 아리스티네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제가 오찬 장소에 일찍 도착 한 것마저 범행의 증거로 몰아 붙이셨지요. 저는 단지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모든 직계 왕족이 모이는 자리라 예의를 차린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네프테르가 음독할 경우를 대비한 거였지만,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며느리로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조금 설레기도 했어요.”

아리스티네가 살며시 눈을 내 리깔았다.

긴 속눈썹이 드리우고 얼굴에 음영이 더해지는 것만으로도 처연하고 가련한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왕후 폐하께서는 저를 어떻게든 독살범으로 몰아가려 하시고... ”

순식간에 잘해 보려고 애쓰는 며느리를 왕후가 핍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심지어 타르칸 왕자가 제가 부왕 폐하의 자리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음에도 공범으로 몰았죠.”

왕후는 뒤통수가 얼얼했다.

아리스티네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쯤이면 무서울 정도다.

그러나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래,네게 정말 미안하구나. 섭섭한 것도 이해해. 부끄럽지만 폐하께서 갑자기 쓰러지시고 마음의 평정을 잃었단다.”

왕후는 자애로운 얼굴로 아리스티네의 손을 토닥였다.

“그럴 때일수록 왕후로서 굳건히 버텨야 하는데 내가 부족했 어. 그런 와중에 디오나가 내게 찾아와 네가 범인이라고 하 니……”

그녀는 침통한 얼굴로 눈을 꾹 감았다.

“네가 독약을 소지했다는 디오나의 증언도 있고, 은침까지 변 색되니 거짓이 내 눈을 가렸다. 부끄럽구나.”

“그렇게 말씀하시니 궁금해지 는 게 있네요.”

가만히 왕후가 하는 양을 지켜 보던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비스 듬히 기울였다.

“부왕 폐하께서 쓰러지신 게 정말 독 때문이 맞나요?”

움찔.

아리스티네의 손을 잡은 왕후의 손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아리스티네는 입을 다문 채 왕후를 바라보았다.

덫에 걸린 사냥감이 홀로 발버 둥 치다 힘이 빠지는 것을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뭐지?”

“왜 대답을 안 하셔?”

“설마 음독해서 쓰러지신 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왕후의 침묵에 회장 안이 술렁 였다.

왕후의 눈매가 파르르 경련했다.

그녀는 아리스티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복통을 호소하시며 쓰러지셨다. 거기다 호흡도 힘들어 보이셨지. 이건 통상적인 급성 비소 중독 증상이야.”

“네,그래서 정말 비소 중독이 맞느냐는 것을 여쯤는 거예요. 궁의의 진단이 궁금해요.”

왕후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당연히 궁의로부터 그런 확언은 못 들었다.

“설마 중독이라는 진단도 나오 지 않았는데 저를 독살범으로 지목하신 건가요?”

“……비소 중독 증상을 보이셨으니 범인이 증거를 인멸하기 전에 빠르게 잡는 게 중요하다 고 생각했다.”

“비소가 아니어도 그런 증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어요.”

아리스티네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급성 심근 경색이 라든가.”

급성 심근 경색.

관상 동맥이 갑자기 막혀 심장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심장 박동이 멈추는 병중이다.

그 말에 사람들 사이에 소요가 일었다.

“급성 심근 경색?”

“확실히…… 증상이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

“그런데 왕후께서는 음독이라 는 진단도 나오지 않았는데 왕자비를 죄인 취급 하며 연행해 온 건가?”

“디오나의 모함 때문에 왕자비를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말은 역시……”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왕후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며 아리스티네에 대한 사람들의 눈빛은 보다 더 호의적으로 변했다.

“저는 처음부터 독살 시도라는 극악무도한 범죄보다는 급성 심근 경색이 아닌가 의심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대륙은 지금 유례없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했잖아요. 이런 때 암살 시도라니요.”

타르칸과 아리스티네의 결혼으로 인해 생긴 평화였다.

그런 그녀가 평화를 입에 담으니 유독 더 무게감 있게 들렸다.

또,굳이 독살로 여론을 조장했던 왕후에게는 평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인상이 덧 씌워졌다.

‘확실히,실바누스 출신인 왕자 비가 무고하게 독살범으로 몰린 상황은 대륙을 다시 긴장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어.’

‘이 일이 밝혀지면 실바누스에서 또 어떻게 반응할지……’

황녀의 명예는 곧 실바누스의 명예이기도 하다.

실바누스에서 공식적으로 항의 해도 할 말 없는 일이었다.

‘왕후께서 이리 경솔하시다니!’

‘그저 경솔한 것이겠소? 정적 을 찍어 누르려 일부러 그런 것 이겠지.’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이러 시다니…….’

‘실바누스 놈들이 항의하면 우 리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 잖소.’

귀족들은 소곤거리며 탐탁지 않은 눈으로 왕후를 바라봤다.

앞으로 외교 문제가 귀찮게 터질 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눈길이 곱지 않았다.

아리스티네는 사람들의 반응을 충분히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쓰러지기 전에 체 하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급성 심근 경색은 체증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에 체한 것으로 오해하고 그냥 넘어가거나 느긋하게 병원을 가다가 사망하 는 경우가 많다.

아리스티네는 제왕안을 통해 전생에서 누군가 체한 줄 알았 는데 알고 보니 심근 경색이었다며 죽다 살아난 경험을 올린 글을 봤다.

그래서 ‘만약 음독이 아니라면 혹시……’라는 생각에 타르칸에게 부탁해 네프테르의 의료 기록을 살피고 우미루를 통해 궁의를 섭외했던 것이다.

‘혹시 급성 심근 경색이라면 일분일초가 중요하니까.’

네프테르의 목숨을 살리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시간 싸움이다.

‘그리고 정말 급성 심근 경색이 맞았어.’

네프테르가 쓰러지자마자 오찬 장소에 들어온 궁의.

그 궁의는 아리스티네가 섭외한 궁의였다.

그가 바닥을 툭툭툭 두드린 것은 급성 심근 경색이 맞다는 사인이었다.

‘잘 치료해야 할 텐데…….’

초기 대응을 빠르게 한 것 같긴 한데 무사히 눈을 뜨실지는 확신할 수 없다.

“폐,폐하께선 건강하셨으니 병 증일 확률은 적어서……”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타르칸이 왕후의 말허리를 석 둑 잘랐다.

“결국 왕후께서는 의도적으로 제 비를 독살범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늘진 목소리였다.

타르칸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다.

고저 없이 나지막한 목소리였으나,빛 하나 들지 않는 심해처럼 차갑고 어둡고 묵직했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에 왕후는 무거운 물살에 휘감긴 것처럼 숨이 막혔다.

“왕후 폐하,제가 독살범으로 몰린 것 자체는 괜찮아요.”

아리스티네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부왕 폐하의 신변이 걸린 문제예요. 만약 폐하를 노린 범행이 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초기 수사가 어떤가에 따라 범 인을 검거할 확률이 달라진다.

“엉뚱한 사람을 독살범이라 지 목해 신문하는 사이 진범은 유유히 빠져나갔을 거예요.”

아리스티네의 말에 사람들은 숙연해졌다.

본인이 받은 모욕보다 네프테르를 생각하는 모습이 심금을 울렸다.

“수사가 시작되기 전,저는 왕 후 폐하께서 명명백백하게 오늘 일에 대해 밝혀 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단 하나의 작은 의혹도 전부 밝혀 단죄하겠다 약조하셨지요.”

아리스티네는 격양되지 않고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폐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 결과인가요?”

그 태도가 사람들에게는 더 안쓰럽게 보였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어깨를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연약하고 심약한 비가 오늘 일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그가 중얼거리는 말에 사람들 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동의했다.

그들의 눈에 실바누스인인 아리스티네는 당연히 가녀리고 약해 보였다.

거기다 아이루고인들 중에서도 체격이 좋은 타르칸의 옆에 꼭 붙어 있으니 더더욱 그래 보였다.

가시적이고 직관적인 이미지는 그 무엇보다 선명한 효과를 발휘한다.

아리스티네는 저를 두고 심약 운운하는 타르칸의 말이 황당했지만,주변의 반응을 보고 호흡 을 맞추었다.

“저는 부왕 폐하께서 무사하시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그녀가 타르칸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드러난 가슴에 닿는 아리스티네의 숨결에 타르칸은 움찔하면서도 그녀를 꼬옥 안아 주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감명깊게 바라보았다.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 이었다.

타르칸은 아리스티네의 머리칼 을 쓸어 주고 아리스티네는 물기 어린 눈으로 그를 올라다 보고,아주 난리가 났다.

과연 세기의 커플이라는 말답게 쿵짝이 참 잘 맞았다.

하미르가 두 사람의 분위기를 자르듯 입을 열었다.

“일단 궁의를 불러오도록 하죠. 치료 중이라 힘들면 정황이라도 알아봐 오도록 하고.”

“그게 좋겠군요.”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칸은 제 품을 벗어나는 아리스티네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 봤다.

“궁의장께서는 치료에 열중하고 계셔서 제가 왔습니다.”

회장에 들어선 궁의가 고개를 숙였다.

바로 아리스티네가 섭외한 그 궁의였다.

“잘됐네요. 그는 부왕 폐하께서 쓰러지셨을 때부터 상황을 봤으니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겠지요.”

아리스티네가 말했다.

왕후는 초조하게 궁의를 바라 보았다.

제발 음독이라고 하길....

이 판을 뒤집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급성 심근 경색으로 쓰러지신 겁니다.”

궁의의 말은 왕후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왕후는 비틀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었다.

“폐하의 상태는 어떠신가?”

아리스티네의 물음에 궁의가 정중히 답했다.

“다행히 초기에 잘 처치해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차후 경과를 봐야겠지만,현재로선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깊은 안도감이 샘물처럼 차올라 온몸을 적셨다.

아리스티네는 후,하고 숨을 내쉬었다.

‘살아나셨어. 폐하께서 살아 계셔.’

제왕안을 통해 봤던 비극적인 미래는 사라졌다.

죽음은 네프테르를 비껴갔다.

“모두 비전하 덕분입니다.”

궁의의 말에 안심하던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왕자비 덕분이라고?’

“비전하께서 일전에 폐하를 뵈었을 때 부종과 멍 자국을 봤다며 폐하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하셨거든요.”

물론 그 말은 궁의를 움직이게 하려고 했던 거짓말이었다.

심근 경색은 혈전이 관상 동맥을 막아 생기는 병이라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혈관 내에 혈전이 생기면 멍과 비슷한 자국이 생기거나 하지 부종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궁의장이 폐하를 진찰했을 때 딱히 이상 중세는 없었지만,제게 혹시 따로 폐하를 살펴 줄 수 없느냐 여쭤 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변에 있었던 것입 니다.”

“맞아요. 저는 혹시 혈전이 뇌 혈관처럼 중요한 혈관을 막으면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순간에 궁의가 곁에 있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어요.”

“예,혈관이 막힌 직후의 처치가 중요하니까요. 비전하의 혜안이 폐하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궁의와 아리스티네가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사실 단순히 저것때문에 궁의가 네프테르를 일대일로 마킹했던 건 아니다.

아리스티네는 누군가 네프테르를 독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고,그를 막기 위해 궁의가 항시 대기했던 것이다.

독살 계획 제보를 받았지만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데다가 겨우 정착된 평화 분위기에 찬물 을 끼얹을 수 있으니,이에 관해선 일단 함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만약 네프테르가 쓰러졌는데 독살이 아니라면 바닥을 툭 툭툭 두드려 알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아리스티네는 네프테르가 음독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왕후를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 덕분이라뇨. 폐하를 치료하신 분들 덕분이지요.”

겸손하게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모습에 사람들도 미소를 지었다.

‘왕자비의 의료 지식이 대단하군.’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으면 부종이 생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멍 자국은 몰랐는걸.’

‘정말 폐하께서 며느리 하나는 잘 들이셨군.’

‘왕자비가 만든 메스 덕분에 의료 강국으로 급부상하며 야만의 나라라는 오명도 씻기고 있고.’

‘거기다 스텐은 어떻고? 그야 말로 국격이 높아지는 위대한 발명 아닌가?’

‘이제는 폐하의 목숨까지 구하다니……’

‘그런데 왕후께서는 왕자비의 공로를 치하하진 못할망정 독살범으로 몰다니.’

‘그것도 실제로 독살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사람들의 옹성거림은 커지고 커져 구름처럼 회장을 뒤덮었다.

결국 왕후에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왕후 폐하,이 일에 대해서 어찌 해명하실 겁니까!”

“왕자비는 국왕 폐하를 살린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을 되레 독살 미수범으로 몰다니요!”

“폐하께서 음독하시지도 않은 상황에 그런 짓을 벌이다니……. 이건 정치적 보복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리스티네가 처음 아이루고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때는 다음 대 왕으로 하미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당시 그 분위기였다면 지금 사람들이 강하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리스티네의 행보가 타르칸의 정치적 입지를 나날이 향상시켰고,이제는 타르칸에게 연을 대 려는 귀족들이 상당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르칸과 아리스티네에게 잘 보이려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실바누스에서 이 일을 지적하면 대체 뭐라고 한단 말입니까!”

“아이루고 안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외교 관계에서도 나라의 체면이 상하게 됐습니다.”

“이게 왕후께서 하실 일입니까!”

왕후는 이를 악물었다.

무엄하다며 귀족들을 질책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하미르가 굳건한 다음 대 왕으 로 자리 잡았을 때와 지금의 상 황은 전혀 달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왕후는 입 안에서 단내가 풍기 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새하얗 게 질린 얼굴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아리스티네는 그저 한없이 고 요한 얼굴로 왕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왕후에게는 그 얼굴이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보다도 더 여유롭게 느껴졌다.

완벽한 패배였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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