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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07화 (107/183)

107화

Chapter 32. 영 앤 리치,톨 앤 핸섬

네프테르의 건강은 순조롭게 회복되었다.

아리스티네는 그의 옆에 앉아 수프를 휘휘 저어 식히곤 그릇을 내밀었다.

그런데 정작 네프테르는 스푼을 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말없이 빤히 아리스티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폐하?”

“아프구나.”

“불편하세요? 궁의를 부를까요?”

“아니,손이 안 움직일 뿐이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폐하께서 편찮으신 곳은 손이 아니지 않나요?”

“윽,손이……”

갑자기 네프테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신음했다.

아리스티네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했다.

“역시 궁의를 불러야……”

“됐다. 밥 먹으면 힘이 나서 움직일 수 있을 게야.”

네프테르가 딱 잘라 말했다.

‘설마.’

아리스티네는 미심 쩍어 하면서도 스푼으로 수프를 떠 네프테르에게 내밀었다.

네프테르는 기다렸다는 둣 입을 열었다.

타르칸은 가증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노련한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 안 하던 사람이 뭐? 손이 아파?

그러나 네프테르는 당당했다.

이건 환자의 특권이었다.

그는 오히려 ‘부럽냐? 부러우면 너도 아프다 하든가’ 하는 눈으로 타르칸을 쳐다봤다.

칫.

타르칸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리네,네가 내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다.”

“그럼요. 제가 구했지요.”

아리스티네가 씨익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제왕안을 통해 봤던 미래에서 네프테르는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아리스티네는 당당히 가슴을 폈다.

네프테르는 피식 웃으며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왕후가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다고 들었다.

안 그래도 스키엘라 공작가의 권력을 줄이고 싶었던 네프테르 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타르칸의 계승권을 높이느라 스키엘라 공작을 위시한 왕후파의 반발이 심했다.

그걸 달래느라 그들이 힘을 키우는 걸 너무 방관했던 모양이다.

지난번 스키엘라 공작가가 철강 산업을 마비시켰던 것은 도를 지나쳤다.

그래서 언제 이권을 뺏을지 재고 있었는데 아리스티네가 이렇게 대신 해결할 줄이야.

네 프테 르로서는 아리스티네 를 총애하지 않는 게 더 힘든 상황이었다.

정치적인 것을 차치하고서도 그랬다.

“리네,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거라.”

“네?”

“내 생명의 은인이 아니냐. 당연히 네 소원을 들어줘야지.”

“이미 주신 걸로 충분한데요.”

아리스티네는 네프테르를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갖가지 하사품을 받았다.

온갖 보물이 산을 이뤘으며 심지어 겨울에 쓸 별궁까지 주어졌다.

입욕제가 아니라 진짜 온천을 즐기라며 온천이 있는 겨울 별궁을 선물한 것이다.

건물주가 된 아리스티네는 무척 기뻤다.

다만 세입자를 둘 수 없다는 게 흠이었다.

“내 목숨값은 그렇게 저렴하지 않다. 자,말해 보거라.”

네프테르는 어린 딸에게 선물 을 골라 보라고 하는 아빠처럼 신이 나서 말했다.

‘내 나이가 그렇게 적진 않은데……’

아리스티네는 그렇게 생각하면 서도 뭘 말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이런 대우를 받아 본 적 없어서 가슴이 간지러웠다.

열심히 고민하던 그녀는 원하는 선물을 입에 담았다.

“음,그러면 사업 하나를 더 하고 싶은데요. 아무래도 국가사업이라 폐하의 인가가 필요한데……”

난데없는 사업 이야기에 네프테르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아들을 보니 아들 녀석은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결국 네프테르는 허,하고 웃었다.

“그래,네가 원하는 게 그거라면 그것도 좋겠지.”

“네,자세한 건 제가 정리해서 자료와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흡사 국가사업 입찰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과도 같은 태도였다.

며느리인지 사업가인지 모를 모습에 네프테르가 껄껄 웃었다.

왕위를 이어도 똑 부러지게 잘 하겠지 싶어 절로 흐뭇했다.

“그래,기대하고 있으마.”

잠시 담소를 나눈 후 아리스티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부왕께서도 쉬셔야지요.”

병자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안 된다.

네프테르는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가 보거라. 타르칸,너는 잠시 할 말이 있으니 남고.”

아내와 함께 돌아갈 생각이었던 타르칸은 한쪽 눈썹을 치켜 들었지만, 상대는 왕이었다.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를 붙잡을 순 없었다.

* * *

쨍그랑一!

집기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몇 날 며칠째 왕후의 궁에서는 흉흉한 파열음이 끊이질 않았다.

궁인들은 모두 주인의 심기를 살피며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발 끝으로 조심히 다녔다.

그래도 분노한 왕후의 분풀이는 피해 갈 수 없었다.

“요,용서해 주십시오, 왕후 폐하!”

“네가 나를 우습게 보고 차도 제대로 우리지 않는데 어찌 용서하겠느냐!”

“죄송합니다,폐하. 제발 자비를..... ”

그저 차를 우린 것뿐인데 맛이 떫다며 이 사달이 났다.

그러나 억울해도 비는 수밖에 없다. 왕후가 용서치 않을 것을 알아도.

그때,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구원의 목소리였다.

“모후.”

“……하미르”

왕후가 방 안에 들어온 아들을 돌아봤다.

“추태를 보였구나.”

“모후의 심기를 어지럽힌 자가 잘못한 거지요.”

아들이 제 편을 들어주자 마음이 조금 풀렸다.

왕후는 흥, 하고 코웃음 치며 엎드린 궁인을 지나쳤다.

“돌아올 때까지 깨끗이 치워라.”

“예,왕후 폐하.”

엉망이 된 방 안에서 담소를 나눌 수 없었기에 왕후는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미르는 그녀의 곁에 서며 에스코트했다.

“역시 모후께서는 자비로우시군요.”

그 말에 왕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듣기 싫은 말은 아니 었다.

왕후가 심히 패악을 부리는 만큼,하미르에게까지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그때마다 부드럽고 자상한 성정이라며 그를 의지하는 궁인들이 많았다.

‘귀찮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하미르는 왕후를 향해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회랑을 걸어 다실로 갔다.

다실은 부드러운 색채로 풍요 로운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모후,이런 때일수록 심기를 굳건히 하셔야지요. 건강이 걱정됩니다.”

“그러려고 해도 속에서 자꾸 천불이 치솟는구나.”

왕후는 저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맡고있던 사업에서 전부 물러나게 됐다.

사적인 감정과 자신의 이익에 눈이 가려져 경솔하게 판단한 자에게 국가의 주요 정책과 사업을 맡길 수 없다는 네프테르의 결정이었다.

스키엘라 공작을 비롯한 왕후 파에서 반발을 했지만, 통하진 않았다.

그들의 손을 들어 주는 귀족들 이 눈에 띄게 줄어든 탓이었다.

권력이 어떻게 옮겨 가고 있는 지 훤히 보여서 왕후로서는 치욕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에서 더 따질 순 없었다. 심지어 왕후는 국제적인 외교관계에도 피해를 주었으니 더할 말이 없었다.

실바누스 황제는 이때다 싶었는지 신나서 어떻게 황녀에게 그런 누명을 씌울 수 있느냐며 공문을 보내왔다.

그 결과 아이루고는 실바누스에게 몇 수 양보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 왕후궁이 내게 감옥이나 다름없어.”

왕후가 한탄했다.

자숙하라는 말로 모든 활동을 중지당하니 사슬이 없으나 감옥에 있는 것 같고,몸이 있으나 팔다리가 잘린 마음이었다.

이 왕후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나 매한가지니.

왕후가 아리스티네를 정말 죄인으로 판명해 벌을 준 것도,가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왕후라는 지위의 특성상 본격적이 처벌이 내려지지 않고 자숙하는 선에서 끝났다.

그러나 디오나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그녀는 왕자비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독약을 갖고 있다고 하며 거짓 중언을 했다.

이건 왕후와 아리스티네 그리 고 아이루고의 신성한 재판-물론 정식 재판은 아니었지만-을 기만한 행위였다.

또한 그녀는 아리스티네를 독살범으로 모함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디오나의 가문에서도 그녀를 변호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크게 꾸짖으며 제대로 죗값을 치르라고 했다.

찬트라에 대한 죄책감과 우정 으로 디오나를 아꼈던 전사들 역시 다 돌아섰다.

디오나는 지금 이끼 냄새가 가득한 돌 감옥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디오나 그 계집만 아니었어도!”

왕후가 이를 갈았다.

그녀는 궁인들을 시켜 디오나에게 배급이 제대로 가지 않도록 했다.

돌 감옥은 가을임에도 한겨울처럼 추울 터.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막혔던 속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내가 궁에 갇히지만 않았어도 당장 감옥에 찾아갔을 터인데……!”

가서 디오나의 머리카락을 다 뽑아 주어야 성에 찰 것 같다.

“애초에 나는 황녀를 독살범으로 몰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그 계집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게아니냐.”

하미르는 대답 없이 매끄럽게 미소 지었다.

“하미르!”

왕후가 아들의 팔을 잡았다.

“너는 분하지도 않으냐? 이 일로 이 어미에게 납작 엎드려 빌빌거리던 귀족들이 얼마나 콧대 높게 구는지...!”

“원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 아닙니까. 새삼스러울 것 없습니다.”

왕후가 멈칫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미르는 언제나와 같은 미소 를 짓고 있었다.

그래,제 아들은 항상 동요가 없어서 바람이 불지않는 호수처럼 고요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불현듯 황녀가 비소인 줄 알았던 입욕제를 제 얼굴에 가져다 대려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하미르는 호수가 아니라 거친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았다.

제 아들이지만 그렇게 평정을 잃은 모습은 처음 봤다.

“하미르,너 설마 그 황녀에 게……”

차마 끔찍해서 그 뒷말을 할 수 없었다.

“황녀에게요?”

“그때 비소가 묻는 것도 상관 안하고 털었던 것은 왜 그랬던 거냐,응?”

다급하게 캐묻는 왕후의 모습에 하미르는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비소가 아니고 입욕제였죠.”

“하지만 그땐 비소인 줄 알지 않았느냐!”

“황녀가 아니라고 말한 뒤,본인 손에 쏟아붓길래 비소가 아닌 걸 눈치챘을 뿐이에요.”

“뭐?”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제가 황녀를 막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고요.”

그 말대로 그 덕분에 하미르는 왕후와 함께 정적인 아리스티네를 죄인으로 몰아가려 했다는 의혹을 벗어났다.

그제야 왕후는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미르까지 공격당했으면 지금 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왕후는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내 아들,현명하고 똑똑하구나. 역시 다음 대 왕위에는 네가 제일 잘 어울려. 그렇지 않으냐?”

하미르는 부드럽게 입매를 늘였다.

“당연히 제왕의 자리는 저의 것이죠.”

왕후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보며 짙게 미소 지었다.

비록 팔다리가 잘린 신세지만 뭐 어떤가 이런 아들이 있는데.

‘그래,괜한 기우였어.’

다시 생각하니 우스웠다. 어째 서 그런 의심을 했는지.

“그럼 회의가 있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바쁜데도 시간을 내 궁에 갇혀 있는 어미를 찾아왔구나. 어서 가 보렴.”

하미르는 짧게 고개를 숙인 뒤 다실을 나섰다.

가을 햇살이 그의 머리카락 위에서 새하얗게 부서졌다.

왕후는 아들의 늠름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 *

왕후궁에서 나온 하미르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깨끗한 손이었다.

그러나 하미르의 눈에는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이 덧씌워져 하얀 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짓말.’

모후에게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다.

하미르는 아리스티네가 들고 있는 게 독인 줄 알았다.

아니,독인 줄도,독이 아닌 줄도 몰랐다.

아리스티네가 비소일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는 그 새하얀 가루를 제 손에 쏟아붓는 순간,머릿속이 하얘졌다.

머릿속에 독이 퍼진 게 틀림없다.

그 새하얀 가루처럼 새하얀 독이 그의 머리를 하얗게 잠식했다.

그래서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제 자신이 독에 중독돼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아리스티네의 손에서 가루를 터는 데에만 급급했다.

왜 그랬는지 그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독인 거겠지.’

그 독의 형태는 가루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특이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지켜보면 재밌었다.

닥쳐오는 난관을 차근차근 쁠쁠 해결해 내는 모습을 보면 흥미가 일었다.

난관을 주는 것도, 그 난관을 벗어날때 손을 보태는 것도 유쾌한 일이었다.

자극-고난-을 주면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오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

어디까지나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후가 아리스티네를 음해하는 데 급급해서 허술하게 판을 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디오나가 아리스티네를 독살범이라며 모함했을 때는 기분이 정말 ……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즐거운 관찰에 다른 사람이 건방지게 끼어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티네에게 자극을 주는 건 자신 하나로 족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홀러가도록 내버려 둔 것은 아리스티네가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해서 였다.

사실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좋았다.

자신이 손을 뻗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아리스티네도 더는 자신을 외면하지 않겠지.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걸음을 옮기던 하미르가 멈칫했다.

아니,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짓말처럼 햇살 아래 아리스티네가 서 있었다.

붉은 단풍잎 사이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보석처럼 빛났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아리스티네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아.’

그러면 아리스티네도 더는 자신을 외면하지 않겠지.

태엽이 거꾸로 돌아갔던 것처럼 방금 했던 생각이 느릿하게 반복된다.

외면하지 않길 바라면서 도와 주고 싶어 하다니,그건 꼭.

꼭.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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