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화
타르칸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린다.
그녀의 허리를 감싼 그의 팔 위로 힘줄이 돋는다.
커다란 손이 아리스티네의 등 줄기를 따라 올라가며 더 깊게 끌어안았다.
두 남녀의 몸이 틈 없이 밀착 되며 얽혀 들었다.
타르칸의 입술이 벌어지는 것 과 동시에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열렸다.
와인 향이 흑 끼쳐 들며 달큼한 술이 타르칸의 혀를 적셨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술이 마치 화약처럼 불을 지폈다.
와인으로 차가워진 아리스티네 의 혀가 그의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맛을 알려 주겠다는 것처럼 입 안 구석구석을 문지르고 할는다.
“하아……”
타르칸의 체열이 옮은 것처럼 순식간에 아리스티네의 혀가 뜨거워 졌다.
밭은 숨결이 두 사람의 입 속 에서 터져 나왔다.
긴,그러나 너무나 짧게 느껴지는 키스 후,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들었다.
붉게 부풀어 올라 번들거리는 입술을 손등으로 슥 닦곤 미소 지었다.
“맛있지?”
툭.
타르칸은 제 안에서 가느다랗 게 유지되던 무언가가 끊기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그는 짐승처럼 아리스티네에게 달려들었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고,단단한 그의 몸이 가녀린 몸을 짓눌렀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 고 혀가 거칠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끌어안은 부드러운 몸을 꽉 조이자 바스락,하며 낭창하게 감겨들었다.
바스락?
사람 몸이 바스락거린다고?
타르칸은 눈을 번쩍 떴다.
사주식 침대의 천장이 보였다.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에는 커 다란 거울이 달려 있었다.
궁인들이 응흐흐,웃으며 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 거울 속에서 타르칸은 애꿎은 이불을 쥐어짜듯 끌어안고 있었다.
“하……”
기가 믹힌 한숨이 입술을 비집 고 튀어나왔다.
‘그러니까,그게 꿈이라고?’
어쩐지 아리스티네가 적극적이다 싶었다.
타르칸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제 아리스티네가 입에 브루 스케타를 먹여 주고,네가 곁에 있어서 좋다는 말을 하고, 그리고서-.
잤다.
그래,중의적인 의미 하나도 없이 말 그대로 잠을 잤다.
잠만 잤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꿈이라니....’
아리스티네에 관한 꿈은 많이 꿔 왔지만 이번 꿈은 너무 생생한 데다가 현실적인 느낌이라--.
타르칸은 눈가를 덮었다.
슬쩍 제 아래를 내려다보니 윽,하고 신음이 나왔다.
아리스티네가 깨기 전에 슬금 슬금 화장실로 가려 하는데,기척을 느낀 건지 아리스티네가 뒤척였다.
타르칸은 혹시 아내가 깰까 더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지금은 곤란하다. 지금은.’
깨어난 아내가 자신을 어떻게 볼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거울을 통해 아리스티네를 살폈다.
이불을 다 렛겨 버린 아리스티네는 추운지 인상을 쓴 채 부르 르 떨더니 온기를 찾아 꿈지럭 댔다.
뒤척이던 그녀는 뜨거운 발열체를 발견하고 만족스레 미소 지으며 찰싹 붙었다.
온기를 내는 발열체……,그러니까 타르칸에게 찰싹 붙었다는 뜻이다.
타르칸은 제 몸을 끌어안은 채 딱 달라붙은 아리스티네의 보드라운 몸을 온전히 느끼며 심호 흡을 했다.
그녀의 숨결이 하필이면 다 드러나 있는 가슴에 닿았다.
‘헉……’
타르칸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힘을 빼야 할 곳이 더 강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리스티네의 손이 꼬물꼬물 움직이더니 타르칸의 가슴팍에 착 달라붙었다.
아주 당연하고 편안하다는 둣 손가락이 쭈물쭈물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남의 것이 아니라 제 것 을 만지는 듯한 자연스러움.
‘신이시여
타르칸은 태어나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신을 찾았다.
지옥이 시작됐다.
Chapter 33. 이게 바로 몸정인가……?
“이게 정말 실현되면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겠어.”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가 들고 온 서류를 넘겨 보며 감탄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데이터상 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확실합니다.”
아리스티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네프테르는 흡족한 기색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원인 사업 허가를 내주겠다고 했지만,이건 내가 부탁 해야 하는 일 같은데.”
“과찬이세요.”
마수 방책 사업.
아리스티네가 새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이었다.
국경 그리고 국방과 관련된 아주 민감한 사업이었다.
‘그래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부왕께서 이렇게 좋아하실 줄이야.’
신뢰를 받고 있구나,싶어서 저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이 사업은 돈벌이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수익성 사업이 아니라 그야말 로 세금으로 방책을 만드는 것 이니 돈을 많이 벌겠다는 아리스티네의 다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타르칸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평원의 마수들로부터 아이루고 를 지키기 위해 타르칸과 휘하의 전사들은 정기적,비정기적으로 마수를 토벌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대규모 토벌을 한다고 들었으니 그때는 타르칸도 오랜 기간 원정을 나갈 것이다.
항상 아이루고에 승리를 안겨준 위대한 전사라고 해도 걱정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방책 사업이 성공하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대륙으로 뻗어 나간 메스 사업 덕분에 금화 속에서 헤엄쳐도 될 정도로 돈을 많이 벌고 있었다.
거기다 스텐의 로열티 덕분에 숨만 쉬어도 돈이 쌓이는 중이다.
‘특허권 너무나 최고시다.’
아리스티네는 잠시 황홀감에 젖었다.
“하지만 가볍게 시도할 만한 비용은 아니야. 당장 전 국경에 설치하는 건 힘들겠어.”
“네,그래서 시범 지역에 우선적으로 설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데이터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다고 해도 실제로는 어떤지도 실험해 봐야 하고요.”
똑 부러지는 대답에 네프테르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스티네를 바라보는 시선이 봄볕과도 같았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차 한 잔이라도 마시고 가지 그러느냐.”
“그러고 싶지만 이 좋은 소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마법사들과 대장장이들이 있어서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본인이 참 을 수 없어 하는 것 같았다.
아리스티네의 눈동자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기대와 열의로 반짝이고 있었다. 새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
네프테르는 결국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당연히 기다리고 있겠 지. 가 보거라.”
“예,부왕 폐하. 몸조리 잘하시고요.”
“이제는 다一.”
나았다고 하려던 네프테르가 멈칫했다.
“다 괜찮아지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하더구나. 외출도 자제하라 는 말에 하지도 못하고……. 나도 늙었는지 쓸쓸하구나.”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순식간에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부왕 폐하. 제가 좀 더 자주 찾아뵈도록 할게요.”
“정말이냐?”
“정말이지요.”
아리스티네는 안쓰러운 얼굴로 네프테르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네프테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래,더 붙잡지 않으마.”
“폐하……”
“가 보래도.”
재차 재촉을 받고 나서야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섰다.
이제 기다리고 있을 리트렌과 아세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때다.
* * *
마수 방책.
말 그대로 마수에게서 국경을 방어하기 위한 방책이다.
단단한 성벽과 해자,그리고 경계를 지키는,전사들과 마법사들,병사들로 이뤄진 상비군.
엄중한 방어였지만 겨울에 마 수가 파도처럼 밀어닥치면 방어 가 뚫리는 경우가 있었다.
인력은 한정되어 있고 어느 한 부분의 방어에 치중하면 다른 부분이 소홀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하여 아이루고에서는 오래 전부터 겨울이 오기 전에 먼저 마수를 토벌하곤 했다.
적지 깊숙이 원정을 나가는 토 벌은 당연히 큰 위험을 안고 있 었다.
몸을 숨길 곳이나 단단한 방어 벽이 없는 평원에서 전사들은 해마다 힘든 전투를 이어 나가야 했다.
이동식 목책 따위,마수가 발 톱 한 번 휘두르면 산산조각 났으니까.
‘이게 성공하면 전투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거야.’
아리스티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리스티네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물리 방어 마법과 내구도 강화 마법을 몇 중으로 중첩시 킨 방책이었다.
말이 중첩이지 떡칠이나 다름 없다.
당연히 만드는 데에도,유지하는 데에도 엄청난 양의 마력석이 들어간다.
방책에 방어 마법을 건다는 아이디어는 예전부터 있었지만,여태까지 결코 만들지 못했던 이유가 있다.
‘효율이 지독하게 나쁘니까.’
그 돈이면 국경에 성벽을 한 바퀴 더 두르고도 남는다.
물론 성벽을 한 바퀴 더 두르는 것은 무식하게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 무식하게 비효율적인 방법 보다도 더 비효율적인 짓을 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서.’
메스 사업이 더 이상 손쓸 필 요 없이 잘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아리스티네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합금을 통해 마력 전도 율을 극한으로 올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그러면 타르칸과 전사들이 매 년 마수 평원의 중심부까지 토벌을 나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이루고의 사람들 역시 보다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될 터.
리트렌을 필두로 한 대장장이들과 마력로를 구축하며 연을 맺은 마법사들에게 제 생각을 털어놓자 그들은 아리스티네가 놀랄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또 다른 혁명의 심지나 마찬가 지였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아주 적은 마력으로도 중첩 마법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 전도율과 유지율이 뛰어난 합금을 개발하게 되었다.
국경 지대에 이 방책을 전부 설치하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들긴 하겠지만,평범한 방책에 마법을 거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비전하!”
회의실에 모여 있던 마법사들과 대장장이들이 아리스티네의 등장에 벌떡 일어났다.
초조함이 범벅되어 있는 그들 의 얼굴을 보니 아리스티네는 기분이 묘해졌다.
마력로 시설을 만든 후,마법 사들이 비밀 유지 조항을 이야기하며 제 이익을 철저하게 계 산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별로 이익도 안 되고 힘들기만 한 일에 이렇게 모두가 마음을 쓰고 있다.
힘을 합쳐 조금 더 나은 미래 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되었나요?”
마법사 길드 프렉탈의 길드장,아세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아리스티네의 말에 리트텐이 화악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폐하께서 허락하셨군요!”
“정답. 그리고 이건 책정해 주신 예산안.”
아리스티네가 종이 한 장을 테이블 위에 탁,올려놓으며 말했다.
숫자를 본 리트렌과 아세나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와.......”
“폐하께서 통이 참 크시네요.”
아세나가 혀로 입술을 할았다.
“그만큼 이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시다는 거겠지.”
아이루고의 국방에도 막대한 보탬이 되지만,그 후 무역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리스티네가 좌중을 쭉 둘러 보았다.
“그리고 난 그대들이 그 기대 에 부응할 수 있는 자들이라 믿어”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자부심이 가득한 눈으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아리스티네는 이미 세계를 변화시킨 사람이었다.
“자,그럼 일을 시작해 볼까?”
아리스티네가 싱긋 웃었다.
* * *
“다시 바빠졌군.”
타르칸이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그는 아리스티네의 목에 목걸이를 채워 주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리스티네는 속으로 입을 삐죽였다.
‘이번에는 널 위해서 하는 사업이라구.’
하지만 방책 사업의 목적이 사실은 타르칸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부끄러웠다.
“왕자비가 팽팽 노는 것보단 바쁜 게 낫지.”
“내 생각은 다른데.”
타르칸이 그녀의 쇄골 위에 드리워진 목걸이를 천천히 매만지며 말했다.
어찐지 등줄기에 오싹,소름이 돋아 아리스티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러지?’
“아무튼 모처럼 귀부인들과의 만남이야. 열심히 해야지.”
아리스티네는 이상한 감각을 털어 내곤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는 모처럼 귀족가의 티 파티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초대에 응하겠다고 답신을 보내자 티 파티를 주최하는 이사라 후작가는 물론이고 다른 귀족가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간 왕궁 밖에서 열리는 모임 에 참석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럴 만했다.
아리스티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타르칸이 자연스레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남편이 아내의 치장을 돕는 모습을 응흐흐,웃으며 지켜보던 궁인들이 서둘러 다가와 숄을 건넸다.
타르칸이 그 숄을 받아 들어 드러난 아리스티네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나란히 걸으며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타르칸도 가려는 건가? 유부녀들의 모임인데……’
생각해 보니 자신보다는 타르 칸이 더 상식 있는 사람이었다.
‘그냥 마차까지 바래다주려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타르칸이 기특해 보여서 아리스티네는 빙긋 웃으며 그의 팔을 꾹 잡았다.
“세상에,그 마차예요!”
“폐하께서 왕자비께 내렸다는 그 마차죠?”
“왕후 폐하의 마차보다도 더 좋은 마차라더니 과연……. 저 티 하나 없는 순백의 색 좀 보세요.”
“아르젠아쿠아는 어떻고요. 하 아,정말……. 이렇게 멀리서 보기만 해도 황홀하네요.”
이사라 후작저 안으로 들어서 는 마차를 보며 티 파티에 참석한 귀부인들이 부채를 팔랑이며 감탄했다.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마차였다.
그런 마차를 봤으니 더 이상 놀랄 것도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귀부인들은 모두 제 눈을 의심하며 부릅떴다.
‘타,타르칸 전하?’
이 자리에서 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이 마차에서 내렸다.
세상에 어느 남편이 아내가 부인들의 티 파티에 가는 데 에스코트를 한단 말인가.
그것도 그냥 남자도 아니고 ‘그 타르칸 전하’셨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그 싸늘하 고 냉철한 남자.
여자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 멩이만도 못하게 본다는 남자.
‘왕자비에게는 다정하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이건 그냥 다정하다고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