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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13화 (113/183)

113화

귀부인들은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벙긋거렸다.

“어머,그러셨구나.”

“어머어머,처음……”

입술을 꾹 다무는데도 광대가 올라가 자꾸 이빨이 보이려 했다.

귀부인들이 빠르게 눈짓을 주 고받았다.

어서 이 특종을 일파만파 퍼트 리고 싶다는 눈초리였다.

그 이후로 티 파티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아리스티네에게 시비를 걸던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차만 홀짝였고,귀 부인들은 최근 유행하는 문화 사조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예술 동향에서는 아리스티네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녀와 타르칸의 결혼식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문화 예술의 뮤즈라고 할 수있는 사람이 티 파티에 참석했으니 당연히 이야기가 길어졌다.

아리스티네는 힐끗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파할 거라고 예상했던 시 간을 넘겼다.

“어머, 비전하 벌써 가시게요?”

“아,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너무 아쉬워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귀부인들이 아쉬운 얼굴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저도 대화가 즐거워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이후 일정이 있어서요.”

“역시 비전하께선 바쁘시군요. 여러 가지 사업을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다음에는 사업 이야기도 들려 주세요. 사실 제 조카가 이번에 비전하께서 만드신 메스로 수술 했거든요. 경과가 아주 좋다고 하더라고요.”

“어머,그것참 다행인 소식이네요.”

아리스티네가 눈을 반짝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건 참 기쁜 일이구나.’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메스 사업이었지만,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에 따뜻한 물이 스미는 것 같았다.

“바쁘신데 참석해 주셔서 감사해요,비전하.”

이사라 후작 부인의 말에 아리스티네는 하하,웃었다.

“제가 오고 싶어서 왔는걸요. 일 때문에 먼저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런 말씀 들으니 조금 민망하네요. 너무 저를 띄워 주시는 것 아닌지.”

그 말에 귀부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 때문이 아니시라고요? 그럼……”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아니라 다른 곳에 서 나왔다.

“어머, 타르칸 전하세요!

한 귀부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네? 타르칸 전하께서 왜....”

그리고 전면 유리창을 통해 보 이는 모습에 모두 숨을 삼켰다.

본관 현관 앞에 멈춰 선 새하 얀 마차에서 타르칸이 내리고 있었다.

“설마 지금 비전하를 마중 오신 거예요?”

모두의 시선이 다시 아리스티네에게 모였다.

아리스티네는 어쩐지 멋쩍은 기분에 뺨을 붉혔다.

그게 이렇 게 놀랄 일인가.

귀부인들의 눈에는 남편과의 알콩달콩한 연애에 수줍게 볼을 붉히는 새색시로 보였다.

“그냥 외출한 김에 같이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것뿐이에요.”

“어머나,근사해라.”

“타르칸 전하께 그런 다정한 면모가 있으실 줄이야.”

“역시 사랑을 하면 사람이 달라지나 봐요.”

귀부인들이 까르륵거리며 좋아했다.

“타르칸 전하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지요.”

이사라 후작 부인이 아리스티네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나며 말했다.

하녀가 다가와 숄을 둘러 주 자,아리스티네는 이사라 후작 부인과 함께 다실을 나섰다.

나란히 복도를 걸으며 이사라 후작 부인은 아리스티네를 힐끔바라보았다.

양 뺨을 상기시킨 채 정면을 바라보고 걷는 게 어서 남편을 보고 싶어 하는 새색시의 모습이라 웃음이 나왔다.

‘의외인데.’

이렇게 둘이 남으면 분명 자신에게 따로 말을 걸 줄 알았다.

요즘 들어 왕후 쪽에서 적극적으로 접선을 해 오고 있으니 당연히 아리스티네도 그걸 견제하기 위해 왔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아리스티네의 모습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티 파티를 즐기고 깔끔하게 떠나는 모습.

결국 이사라 후작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비전하께서 제 티 파티에 참 석하신 목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리스티네는 입술 끝을 올렸다.

아까부터 이사라 후작 부인이 자신을 곁눈질하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내는 것보다 물 어서 대답하는 편이 훨씬 나으 니까.’

정치적 결속을 맺으려 할 때 아쉬워 보이는 것은 기피해야 한다.

“말씀드렸듯이 편한 모임 하나 쯤은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에요.”

“어떠셨나요,티 파티는.”

“차가 맛있더군요. 제 파티시에가 만든 케이크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중의적인 말에 이사라 후작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비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잘 어울리나 궁금해지네요.”

“한번 함께 먹어 보면 알겠지요. 어떨지.”

노회한 이사라 후작 부인과 아리스티네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 쳤다.

저택 문이 열렸다.

늦은 오후의 햇볕 아래 성숙한 가을 향기가 가득한 정원을 배경으로 타르칸이 서 있었다.

로비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이사라 후작 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정치적인 교분을 나누는 것에는 관심 없고 빨리 아내를 데려가고 싶다는 마음이 읽혀서.

“타르칸 전하.”

“이사라 후작 부인.”

타르칸이 이사라 후작 부인에게 눈짓하고 아리스티네의 어깨 를 부드럽게 감쌌다.

아리스티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차가웠어?”

타르칸이 놀라서 그녀의 어깨를 짚었던 손을 물렸다.

아리스티네는 그 손을 잡아서 따뜻한 숨결을 호호,불어 주었다.

타르칸의 눈매가 움찔했다.

이사라 후작 부인은 타르칸의 얼굴을 보고 어머,하고 입술을 가렸다.

〈제가 처음이라서요.〉

당당했던 왕자비의 말이 머릿 속에 울려 퍼졌다.

‘과연.’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을에 그렇게 다 드러내고 다니니까 차갑지.”

아리스티네가 반쯤 드러나 있는 타르칸의 가슴을 보며 말했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눈동자가 미세하게 한 바퀴 굴렀다.

타르칸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어서 가자. 배고프지.”

“아니,나 케이크 많이 먹어서……. 아,이사라 후작 부인, 멋진 티 파티 감사해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둘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아리스티네가 말했다.

“저야말로 와 주셔서 감사하죠. 두 분 데이트 잘하세요.”

데이트.

그 말에 타르칸의 금안이 이채를 띠었다.

‘이사라 후작 부인……. 꽤 괜찮은 사람이군.’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 은 마차에 올랐다.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이사라 후작 부인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의외야. 당연히 이쪽을 포섭하 려 할 줄 알았는데.’

왕후 쪽에서 투병 중인 손주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접근 중이라 아리스티네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아리스티네는 애써 포섭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 면서도 함께 뜻을 모으면 좋을 거라는 여지는 주었다.

그 여유로움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터.

‘제법이셔. 아직 어린 왕자비께서.’

이사라 후작 부인은 다른 귀부 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다실로 걸음을 옮겼다.

타르칸 전하의 차가운 손을 호 호 불어 주던 왕자비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전하의 눈빛 같은 것을 말해 주면 다들 좋아할 터였다.

* * *

“나가 보니 어땠어?”

“다들 우리한테 관심이 많더라.”

아리스티네가 마차에 나란히 앉은 타르칸에게 자연스럽게 기대며 말했다.

타르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제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그 상태로 아리스티네가 시선 을 살짝 옆으로 옮기자 탄탄하게 발달되어 있는 대흉근이 보였다.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빵빵한 근육에 고정되었다.

딱히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그렇게 됐다.

몸정.

오늘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 떠 올랐다.

정말로 몸정이 든 걸까?

그래서 타르칸에게 첫사랑이 있다는 말에 그렇게 동요한 것이고?

그때 순간의 기분을 참지 못하 고 되물은 건 스스로 생각해도 의외였다.

원래라면 타르칸에게 첫사랑이 있든 말든,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든 말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을 텐데.

‘다시 생각하니 또 기분 나쁘네.’

확실히 이건 이상하다.

아리스티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 너한테 몸정이 들었나 봐.”

타르칸이 아무것도 먹고 있지 않으면서 사례들리는 묘기를 선 보였다.

아리스티네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뭐,뭐라고?!”

타르칸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 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대체 그 늙은이들과 무슨 대화 를 했길래 이런 말을 한단 말인 가.

“아니,다들 첫인상보다는 결혼 해서 몸정이 드는 게 중요하다고……”

타르칸은 기가 막혔다.

‘진짜 몸정이 들 일이라도 하고 그런 말을 하든가.’

정작 몸정이 들 거사(?)는 하나도 하지도 않고 이러니 억울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든 생각에 타르칸은 멈칫했다.

몸정이 들었다. 그 말은…….

‘아리스티네가 내게 마음이 좀 기울었다는 뜻,아닌가……’

마치 맞다고 화답이라도 하듯 그의 대흉근이 자랑스레 꿈틀했다.

어떤 의미이든 타르칸을 비즈니스 파트너로만 보고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매일 밤 가슴을 들이댄 게 효 과가 있었던 건가.’

타르칸은 아까 자신의 가슴을 한바퀴 훌던 아리스티네의 시선을 떠올렸다.

타르칸은 겨울이 와도 가슴을 까고 다니기로 결심했다.

크흠,하고 헛기침한 타르칸이 은근슬쩍 아리스티네의 허리를 감싸 그녀가 제 가슴에 머리를 기대도록 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뭐가?”

아리스티네는 저도 모르게 따 끈하고 탄력 있는 감촉을 즐기 며 물었다.

“몸정이라는 거 엄청 중독적이 라던데. 내가 원정 나가면 그 시간 동안 외로워서 어떻게 해.”

그 말에 아리스티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확실히……”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매일 함 께 저녁 식사를 하고 함께 잠들 던 타르칸이 사라진다면一.

‘꽤 쓸쓸할 것 같아.’

아리스티네는 제 생각에 깜짝 놀랐다.

항상 이혼 후의 삶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타르칸이 곁에 없다면 쓸쓸할 거라니.

정작 이혼 후의 하루하루가 어 떨지 자세하게 생각해 보지 않 았다.

“진짜 몸정이 중독적인 건가 봐. 그 생각 하니까 벌써부터 좀 허전해. 어쩌지?”

타르칸은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아리스티네를 보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당장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지 않으려면 목 근육이 뻐근할 정 도로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가 곁에 없을 생각에 허전하다는 아내를 두고 이렇게 참아야 하다니.

가혹한 고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흑 다가가면 도망갈 테니까.’

타르칸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어쩌긴 뭘 어째. 그때 못 보고 못 만질 것까지 미리미리 해 야지.”

“그런가?”

“그러니까 계속 꼭 붙어 있어야 해.”

““응.”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계속 붙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싫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매달렸다.

Chapter 34. 소나기

마수 방책 사업의 진행은 순조 로웠다.

물론 이론상으로 완벽해 보였던 것도 실제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오류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예상했던 범위 안 이었고,마법사들과 대장장이들 이 합심해서 오류를 수정해 나갔다.

다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당연히 마력석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마력석이 이렇게 쉽게 구해지는 거였나요.”

아세나의 허탈한 중얼거림에 아리스티네는 웃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 아래의 속은 복잡했다.

아무리 아이루고 내에 마력석 광산이 발견되어 국내 유통이 원활해졌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국가사업이라서 이런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야.’

만약 모든 국가사업에 다른 행 정 부처가 호의적이었으면 예산 싸움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사이가 나쁜 행정 부처가 얼마나 많은가.

이건 확실히 특혜를 받는다고 봐야 했다.

‘하미르 왕자가…….’

마력석 광산의 총책임자가 하미르인 만큼 아리스티네의 생각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서로에게 상관 안 하 고 정적으로서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도와줘서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지.

아리스티네가 마수 방책 사업을 성공시키면 타르칸의 입지는 이전과 비교도 안 되게 상승할 것이다.

하미르에게 불리한 일인데도 수월하게끔 뒤에서 도와주다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선철을 못 구해서 마력로를 만들 때도 그랬어.’

하미르 쪽에서 짜 놓은 함정이었는데 그걸 벗어나게 도와준 사람 역시 하미르였다.

아리스티네는 이마를 문질렀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찾아와 마력석 유통을 도와주지 않았냐고 생색이라도 내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하미르는 아리스티네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없이 그림자 속에서 도와주고 있다.

“비전하,합금에 마법진을 세공하면 더 효율이 올라가요!”

리트텐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칭찬해 달라는 듯 보이지 않는 꼬리를 붕붕 흔들고 있다.

‘후,신경 쓰지 말자.’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내고 미소 지었다.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만큼 총 책임자인 자신이 이것에만 신경 써도 부족했다.

“좋아. 그러면 오히려 예상 수 치보다 더 효율이 좋은 건가?”

“네,시제품을 만들어서 테스트 해 봐야겠지만요.”

“슬슬 어디에 시범적으로 방책 을 설치할지도 생각해 봐야겠 네.”

시범 지역은 중요하다.

확실하게 아이루고를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으니까.

실패하거나 예상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괜히 예산만 낭비 했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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