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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18화 (118/183)

118화

아리스티네는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 보는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나 봐.”

전혀 아닌 티가 났지만 다들 그러시냐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리스티네는 기합을 다졌다.

지금은 타르칸이 죽은 거면 대체 어떻게 하냐고 눈물을 흩뿌리며 엉엉 울 때가 아니다.

‘그럴 시간 따윈 없어.’

아리스티네는 차를 호로록 원샷했다.

“비전하……”

“리트렌,방책은 당장 설치할 수 있다고 했지.”

안쓰러운 얼굴로 아리스티네를 부르던 리트텐이 그 말에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시범 지역에 대한 거라면…. 그런데 봄으로 미뤄졌던 게 아닌가요?”

“준비해 둬. 어쩌면 당장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리트텐은 왜인지 묻지 않고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바로 대장장이들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세나는 당혹스러운 듯 보였으나 부산스레 움직이는 대장장이들을 따라나섰다.

다른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 였다.

아무래도 아리스티네보다는 대장장이들에게 무슨 일인지 묻는 게 빠르다고 판단한 듯했다.

‘어차피 리트렌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할 텐데.’

어쨌든 제게 묻지 않아서 편했다.

지금은 일일이 답변해 주고 설명하는 데 할애할 시간도,정신도 없다.

‘일단 내 방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아리스티네가 다루려는 자료는 기밀이니 남에게 보일 것이 아니었다.

아리스티네는 대장간을 나와 침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차를 타며 궁인들에게 명했다.

“전략용 통신석을 가져와. 그리 고 마수 평원 지도도. 이왕이면 축척이 큰 것으로.”

“네?”

궁인들은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한 듯했지만,곧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탁,소리와 함께 풋맨이 마차를 닫았다.

아리스티네가 탄 마차는 주인 의 뜻을 읽은 것처럼 빠르게 달려 대장간 부지를 벗어났다.

* * *

아리스티네가 방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궁인들이 지도와 전략용 통신석을 가져왔다.

“여기 이건 연결 코드입니다.”

궁인이 건네준 표를 보고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궁인들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하더니 방을 나섰다.

‘음,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아무래도 아리스티네가 타르칸이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통신석을 가져오라 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런 이유로 군사 기물을 가져 올 수 있다니 역시 권력이란 최고였다.

아리스티네가 피식 웃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연결 코드를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타르칸과 통신을 연결했다.

연결 신호가 뜨자마자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어째서인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목에 무언가가 턱 걸린 것처럼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

낮고 나른하면서도 위압감이 배어 있는 목소리.

타르칸의 목소리다.

[지정된 코드가 아닌데. 누구냐.]

타르칸이 아무 말 없는 상대를 향해 물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나오는 건 떨리는 숨결뿐이다.

아리스티네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타르칸.”

겨우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마저도 통신기에 닿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작게 떨리는 목소 리였다.

그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것인지,통신기 너머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렸다.

[리네?!]

“ 응”

몸은 괜찮은지,어디 다치거나

아픈 곳은 없는지,잠은 잘 자는 지,밥은 잘 먹고 있는지,언제 돌아오는지,나는一.

나는 보고 싶었는지.

수많은 말이 가슴속에서 비눗 방울처럼 한가득 부풀어 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주 자그마한 충격으로도 툭, 터지는 비눗방울.

아리스티네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감정이 터져 목 놓아 울지 않도록 그저 꾹꾹 눌러 담은 숨 결로 응,하고 대답하는 것밖에 없었다.

고작 그 한 마디뿐인데 타르칸 은 그녀의 마음이라도 읽은 것 인지 부드럽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빨리 돌아간다고 했잖아.]

“응”

타르칸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마치 물거품처럼 사라져 가슴 속에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이렇게 목소리를 들으니 그저 좋고 안타깝고 걱정만 되었다.

[조금만 기다려. 아주 조금만.]

고개를 끄덕이며 타르칸의 목 소리를 듣다가 아리스티네는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타르칸,거기 상황은 어때?”

[괜찮아. 순조로워.]

“나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진짜야.”

타르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배어 나왔다.

진짜구나.

아리스티네는 안도하며 물었다.

“다른 전사들은?”

[그놈들이 왜 궁금해?]

타르칸의 목소리에 살짝 날이 섰다.

[지금은 사단이 나누어져 있어서 곁에 없어. 그래도 다들 잘 있어. 걱정하지 마.]

그는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대답하지 않아 아리스티네가 계속 전사들을 걱정하게 하느니 답해 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 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었지만, 아리스티네는 통신석을 꽉 쥐었다.

사단별로 역할이 분리되어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제왕안 속에서 봤던 장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느낌인 걸까.

아리스티네는 마른 입술을 할았다.

아니라는 답이 돌아오길 바라 며 조심스레 물었다.

“자칼렌 경은 네 곁에 있어?”

[응.]

야속할 정도로 산뜻한 긍정이었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숙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시 눈을 번쩍 뜨고 빠르게 물었다.

“지금까지 다른 전사들과 통신 은 잘 연결되었어? 끊기지 않고?”

[응,왜 그래?]

아리스티네의 질문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타르칸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아리스티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타르칸,잘 들어. 만약 통신이 끊겨서 다른 사람들과 연락이 안 되면 작전은 전부 취소하고 합류를 우선시해. 지금 당장이라도 다른 사단에 연락해서 통신이 두절될 경우 합류 지점을 정 하고……”

한창 말하던 도중 아리스티네 는 이상함을 느꼈다.

조용했다.

그것도 불길하리만치 지나치게.

“타르칸……?”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타르칸!”

그 외침에도 돌아오는 건 침묵

아리스티네는 통신석을 탁탁 두들기다가 다시 통신을 연결했다.

그러나 연결 신호가 뜨지 않았다.

몇 번이나,몇 번이나 다시 연 결해도.

‘설마 지금……?’

아리스티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통신석을 붙잡은 손이 덜 덜 떨리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침착하자,침착해. 괜찮아.’

아리스티네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른 전사들에게 통신을 돌렸다.

무칼리나 듀란테,혹은 다른 전사들 아무나 좋았다.

아리스티네는 적힌 코드를 모두 입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그 누구하고도 통신이 연결되 지 않는다.

아리스티네는 숨이 꽉 막힐 정 도로 강렬한 통증에 가슴을 움 켜쥐었다.

아주 얇게 포를 뜨는 것 같았다. 핏물이 배어 나와도,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쳐도 아랑곳하지 않고,계속해서 일정하게 가슴을 저미는 것 같은 고통.

절로 헐떡이는 숨이 터져 나왔다.

역시 제왕안에서 본 장면은 곧 다가올 미래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하루 이틀 내로 있을 일 같았다.

‘정신 차려.’

그렇다면 이렇게 가슴 아파할 여유도 없다.

아리스티네는 재빨리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지형이 상세하게 그 려져 있었지만 아리스티네가 이 전에 본 것처럼 군사 이동이라 든지 전략 시뮬레이션 같은 건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때 아리스티네가 본 건 군사 기밀이었으니까.

아리스티네는 펜을 들고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마음이 어지러워도 생각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명료했다.

아리스티네의 손은 거침없었고,지도 위에는 순식간에 직선과 곡선,그리고 동그라미가 생겨났다.

‘이건 올해.’

아리스티네는 잉크의 색깔을 바꿔 또다시 아까와 같은 작업을 했다.

‘이건 작년.’

그렇게 아리스티네의 머릿속에 있는 다년간의 전략이 고스란히 지도 위에 재현되었다.

아리스티네는 완성된 지도를 보았다.

수년간의 마수 토벌 전략을 한 눈에 보니 전쟁의 양상이 보이 는 듯했다.

아리스티네는 올해의 전략을 보다가 제왕안으로 봤던 전투지가 어디일지 잡아냈다.

‘이곳.’

원래는 마수를 몰아 한 곳에 집중시킨 후,타르칸이 이끄는 사단이 전면에서 공격하면 다른 사단이 각기 양옆과 후방에서 포위하듯 기습하는 식이었다.

지난 몇 년간 이런 식의 작전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하지만 통신이 두절되며 연락을 하지 못해서 제왕안에서 본것 같은 사태가 일어난 것 같았다.

연락이 다 끊겼는데도 타르칸이 작전을 강행한 이유는…….

‘만약 다른 사단이 작전을 그대로 수행하는 경우,자신이 가지 않으면 그 사단이 전멸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고도 남을 남자였다.

‘바보.’

그렇게 생각하며 울상 섞인 미소를 짓다가 아리스티네는 흠칫 했다.

‘이상해.’

타르칸뿐만이 아니라 다른 전사들 또한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렇게 오랜 기간 합을 맞춘 사람들인데,연락이 안 될 경우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예상할 터다.

그런데 원래 계획대로 전투에 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아리스티네의 손가락이 툭툭,지도 위를 두드렸다.

그녀는 다른 사단의 위치를 확 인했다.

전략대로라면 언제든 합류할 수 있도록 전투 장소와 가까운 곳에 포진해 있었을 것이다.

‘산이나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야말로 사방의 시야가 탁 트인 평원이라고. 아무리 멀어도 그 정도의 대규모 전투였는데 뒤늦게라도 알아채야 정상 아니야?’

그리고 통신석이 먹통이 되는 건 그렇다고 쳐도 후속 대응이 너무 이상했다.

통신이 불통일 때 서로 신호나 파발을 보내 확인할 수 있지 않나?

평야 지대니 연기나 신호탄 같은 걸 쏘아 올리면 아주 잘 보일 것이다.

‘……연기나 신호탄 같은 건 마수들이 있으니까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마수가 신호탄이나 연기에 반응하는 특성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후속 대응이 미심쩍고 전투가 일어난 후에 원군이 오지 않은 건 확실히 이상했다.

마치 다른 전사들에게 작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고 연락이 간 것처럼.

떠오른 생각에 아리스티네는 날카로운 숨을 삼켰다.

‘설마.’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저어 뻗어 나가는 생각을 눌렀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아무리 정적이라고 해도 왕후나 하미르가 그런 짓을 꾸밀 리 없다.

만약 타르칸이 잘못되는 바람에 마수 토벌이 실패로 끝나면 그건 고스란히 아이루고의 피해 로 돌아온다.

미처 수를 줄이지 못한 마수가 국경을 침범할 것이기에.

‘설마 실바누스에서……?’

전쟁을 치를 생각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실바누스와 아이루고의 전쟁에서 아이루고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 바로 타르칸이었다.

이걸로 타르칸을 처리하고 아이루고의 전력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파삭,아리스티네의 손바닥 아래에서 지도가 구겨졌다.

그녀는 애써 심기를 다스렸다.

‘일단 그것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문제야.’

아리스티네는 시각을 확인했다.

이미 오후에서 저녁으로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두세 시간 뒤 면 해가 질 것 같았다.

마수 평원은 아리스티네가 있 는 왕도보다 더 동쪽에 있으니 이미 저녁일 터.

‘오늘은 아냐.’

제왕안으로 본 장면은 오전이나 적어도 한낮이었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마수들은 본디 야행성이라 날이 밝기 시작하면서부 터 활동성이 약해지니까.

‘내일 아침. 아니면 늦어도 모레 아침.’

연락이 두절되었음에도 강행하 는 것을 보면 내일일 확률이 더 높았다.

‘지금 포털을 타고 마수 평원에 파발을 보내도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국경 지대에서 타르칸의 진지 까지 얼마나 걸릴까.

기동성을 최우선으로 했는데 밤에 마수를 마주치면?

타르칸에게 당도하지도 못하고 파발꾼이 죽는 것 아닐까?

아리스티네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휙휙 빠르게 스쳤다.

〈우로 퇴각하라!〉

〈주군,이대로 가면…….〉

타르칸의 외침. 그리고 우려 섞인 자칼렌의 말.

그건 뒤에서 마수가 쫓고 있는 걸 떨쳐 낼 수 없어 언젠간 따 라잡힐 거라는 뜻이었을까?

타르칸은 왜 홀로 빠져나왔을 까.

무수히 많은 마수들을 홀로 저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혼자서 저지하기엔 너무 많지 않나?

게다가 마수들은 당연히 홀로 빠져나온 타르칸이 아니라,수가 많은 자칼렌 쪽의 뒤를 쫓았다.

만약 마수들을 저지하려는 거라면 좀 더 이목을 끄는 방향으로 행동하지 않았을까?

지도를 보던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타르칸과 자칼렌이 퇴각했던 우측을 향했다.

그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확인 한 아리스티네의 동공이 흑 좁아 들었다.

〈여기는 왜 비워 둬?〉

〈거기는 대마수 중 하나의 영역이라서.〉

타르칸과 나눴던 대화가 머릿 속을 헤집었다.

아리스티네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 쭉 가면 대마수의 영역이야!’

자칼렌이 지적한 것은 단순히 이대로 가 봤자 쫓아오는 마수들을 떨쳐 낼 수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대마수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는 거였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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