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리네.”
귓가에 녹아들둣 부드러운 목 소리였다.
동시에 흉포한 기색을 잔뜩 감 춘 목소리이기도 했다.
밤의 기운을 머금어 낮게 갈라 진 목소리에 아리스티네는 저절 로 몸이 떨려 왔다.
스르록,튜닉의 끈이 잡아당겨지며 부드럽게 마찰하는 소리가 조용한 막사 안에서 유독 크게 울렸다.
“자,잠깐만……”
아리스티네는 저도 모르게 타르칸의 손을 꽉 붙들었다.
타르칸이 약간의 불만을 품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식사를 방해받은 맹수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눈빛을 누그러트리며 말 잘 듣도록 길들여 진 짐승처럼 온순한 시선을 보 냈다.
혹시라도 겨우 손안에 넣은 아 내가 도망갈까 봐.
아리스티네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시선을 내리깔았다.
“밖에 다들 있는데……”
전사들은 특히 기감이 예민하다.
술과 연회를 즐기는 중이라고 해도 분명 안의 기척이 귀에 들릴 것이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줄은 몰랐는데.”
타르칸이 픽 웃으며 아리스티네를 올려다봤다.
“하도 침대 부쉈다고 광고하고 다녀서.”
“그건"
아리스티네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솔직히 할 말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다.
“그거랑 이거랑 다르잖아. 진짜인데 소문나면……”
부끄럽다.
얼굴을 붉힌 아리스티네를 바 라보는 황금빛 눈동자가 한층 더 짙고 어두워졌다.
“그 말은 소문만 안 나면 내가 진짜를 해도 괜찮다는 걸까.”
타르칸은 아리스티네의 손을 얹은 그대로 손을 음직였다.
그가 잡고 있던 끈이 전부 다 풀어졌다.
아리스티네는 입 안쪽을 꽉 깨 물었다.
시선에 온도가 있다면 자신은 분명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만큼 뜨거운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타르칸은 아리스티네를 만지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고,바라보다가 아리스티네가 더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 때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게 튜닉의 경계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
천 너머로 느껴지는 감촉에 오히려 아리스티네의 감각이 더 민감하게 곤두섰다.
조금만 더 옆으로 움직이면 예민한 맨살이 닿을 것만 같았다.
아리스티네는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이를 악물었다.
그럼에도 흐,하고 흐트러진 호흡이 잇새로 새어 나왔다.
사실 그의 손을 붙잡은 손에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끝날 일이 었다.
타르칸의 손가락은 한없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리스티네가 조금 힘주어 붙잡는 것으로 충분히 멈출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티네의 손에서는 오히려 힘이 점점 더 빠지고 있 었다.
그녀의 허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타르칸이 나머지 한 손으로 꽉 잡아 주었다.
“저런.”
그의 얼굴에 나른한 미소가 떠 올랐다.
“조심해야지.”
아리스티네는 입술을 깨물며 불만스레 그를 노려봤다.
“누구 때문인데.”
“당연히 나 때문이지.”
타르칸이 뿌듯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네가 싫어하면 나는 손 끝 하나 대지 않을 거야. 지금처럼.”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더 사나워졌다.
대체 이게 어디가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있다는 건가.
물론 아리스티네에게 직접적으로 닿은 부분은 없었다. 전부 다 옷 위였지.
아리스티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까부터 충족되지 못한 감각이 등줄기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타르칸에게 끌려가기에는…….
얄밉다.
그래,얄미웠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던 한 손에 힘을 꾹 주었다.
그리고…….
타르칸은 아리스티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보고 불안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타르칸의 잇새로 나직한 신음이 홀러나왔다.
그의 위에 앉아 있던 아리스티네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너....”
타르칸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 했다.
아리스티네가 다시 한번 허리를 들썩였기 때문이다.
“그만해.”
타르칸이 눈매를 찌푸리며 말 했다. 목소리가 살짝 쉬었다.
그의 눈가가 붉은빛으로 물들 어 있는 게 왠지 모를 가학심을 자극했다.
아리스티네는 아까보다 더 심 해진 갈증에 마른 입술을 핥았다.
“조금 더 정중하게 애원하면 그만둬 줄 수도 있는데.”
생긋 웃으며 다시 한번 허리를 움직이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에 타르칸은 이를 사리물었다.
이 여자는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서 저러는 걸까.
발긋하게 달아오른 아리스티네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풀려 있었고,긴 눈매는 젖은 채 음영에 잠겨 있었다.
타르칸은 지금도 엄청난 인내 심으로 참고 있는 거였다.
더 자극해 봤자 안 좋은 건 본인인데 이런 식으로…….
타르칸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이어지지 못했다.
아리스티네가 더 아래로 내려 갔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타르칸의 몸이 굳으며 꽉 힘이 들어갔다.
몸이 굳기는 아리스티네 역시 마찬가지 였다.
그녀는 조금 하얗게 질려서 뒤 를 돌아보았다.
방금 닿았던 감촉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뭔가 형용할 수 없이 엄청난 게 느껴졌는데 그게…….
‘설마,아니겠지. 아닐 거야. 타르칸은 일단 인간이라고.’
아리스티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확인을 했다.
‘오,신이시여.’
그리고 저도 모르게 신을 찾았다.
옷자락이 가리고 있음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무언가가 거대하게 자기주장 중이었다.
아무리 인종적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인간의 규격 사이즈가 아니었다.
“하,하하……. 이건 실수一.”
그녀가 다시 타르칸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을 때였다.
획!
갑자기 끌어당겨져 아리스티네의 몸이 아래로 쏠렸다.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그대로 입술이 먹혔다.
잡아먹힐 듯 정신없이 갈구해 와 아리스티네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헐떡였다.
등허리를 끌어당기는 성마른 손이 뜨거웠다.
하아,날카로운 숨결이 아리스티네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그마저도 아깝다는 둣 타르칸 이 집어삼킨다.
그녀의 입술을 빨아먹은 그의 입술이 자리를 비꼈다.
턱 선을 지나 쭉 뻗은 새하얀 목에 키스를 퍼붓고 더 아래로,
더 아래로 향했다.
아리스티네는 더운 숨을 몰아 쉬며 흐린 시야로 제 품에 얼굴을 묻은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아!”
그 순간 날카롭고 선연하게 등 줄기를 내달리는 감각에 아리스티네가 몸을 휘었다. 뜨겁고 습 했다.
생경한 감각에 그녀는 저도 모 르게 타르칸의 머리를 밀어냈다.
하지만 다시금 그 감각이 찾아 오자,손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그의 머리를 밀어내던 손은 어 느새 검은 머리카락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먹먹한 귓가에 날카로운 소리가 둔하게 울렸다.
한 박자 늦게 그게 무슨 소리인지 깨달은 아리스티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튜닉이 찢겨져 있었다.
“자,잠깐……!”
“천이 너무 약하네.”
타르칸이 그녀의 품에서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의 입술이 유독 붉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닿았던 곳 역시도.
아리스티네는 그 광경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어쩌지? 찢어진 옷을 입고 있을 순 없잖아.”
타르칸이 매끄럽게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벗어야겠는데.”
그의 커다란 손이 아리스티네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그것만으로 이미 제 기능을 잃 은 옷은 쉽게 벗겨졌다.
스르록,천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아리스티네를 눈에 담은 타르칸의 동공이 흑 좁아졌다.
그 집요한 시선이 부끄러워 아리스티네는 한 팔로 제 몸을 가렸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타르칸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푹신한 양털 러그가 등 뒤에 닿고,타르칸이 그녀의 위를 덮치듯 내리누르고 있었다.
서로의 손이 얽힌 상태로 아리스티네는 타르칸과 마주했다.
주홍빛 불빛이 그들을 비추었다.
타르칸은 잠시 말이 없었다.
“예뻐.”
이윽고 그가 한없이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얽혔던 손가락이 스르록 풀리 고 그의 손이 움직였다.
꿈에서,상상 속에서 몇 번이 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몸은 꿈보다도 더 보드 람고 상상보다도 더 유연했다.
아리스티네는 손등으로 입술을 막으며 터져 나오는 소리를 억눌렀다.
바보,진짜 밖에 다 들린다
거친 숨결 사이로 말하자 타르칸이 피식 웃었다.
“얼마나 고운 소리를 내시려고.”
아리스티네는 발끈해서 뭐라 되받아치려다가 멈칫했다.
침상 주변에 황금빛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막이 씌워져 있었다.
정신이 없던 데다가 이렇게 눕기 전까진 아래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어서 몰랐다.
“언제부터……?”
“처음부터?”
타르칸이 씨익 웃었다.
설마하니 다른 놈들이 아내의 소리를 듣게 할까.
만약 실수로라도 듣게 된다면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타르칸은 스스로가 두려웠다.
“뭐야. 놀리니까 재밌어?”
아리스티네가 왈칵 인상을 찌 푸린 채 그의 어깨를 투닥거렸다.
타르칸이 픽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누워 황금빛 오러의 막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아리스티네는 치,하고 입을 비죽이며 결국엔 타르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넌 진짜 바보야.”
“덕분에 너랑 잘 수 있다면.”
타르칸이 웃었다. 사나운 웃음 이었다.
“미안하지만 더 이상은 못 참아 줘.”
그 말을 끝으로 타르칸이 다시 입술을 내리곤 사랑하는 이를 덧그렸다.
밭은 숨결이 아리스티네의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그의 손가락은 섬세한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아리스티네는 하프의 현처럼 바르르 떨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손가락 사이 로 양털 러그가 미끄러졌다.
“달콤한 냄새가 나.”
그가 속삭였다.
아리스티네는 붉어진 얼굴로 눈을 꾹 감았다.
그가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
이끄는 대로 따르자 그가 깊은 숨을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온몸에서 힘이 풀려 흐물흐물 해진 그녀와 달리 그는 제련된 검처럼 단단했다.
타르칸이 거칠게 아리스티네를 갈구했다.
그가 맞닿아 아리스티네는 눈 앞이 새하얗게 점멸되었다.
그의 등을 안은 그녀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날카로운 신음이 절로 아리스티네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강렬 한 감각이 온몸을 질주하다 소용돌이치며 고였다.
타르칸이 음직일 때마다 고인 감각이 폭발할 것만 같아 아리스티네는 그를 꽉 끌어안은 채 울먹였다.
방 안에 진 그림자가 달싹이며 떨리길 반복했다.
타르칸은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이를 악물었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그의 목에서 비어져 나왔다.
그녀가 질척이는 늪처럼 그를 끌어당겨 도저히 헤어 나올 수 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좋았다.
타르칸은 이 여자에게서, 제 아내에게서 헤어 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내린 땀방울이 그녀의 몸을 적셨다.
가물가물 풀린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그가 솜털처럼 부드럽게 그녀의 콧잔등에 입을 맞췄다.
정중하고 산뜻한 키스와 달리 아래의 움직임은 달랐다.
무언가를 느낀 아리스티네가 흠칫,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도망갈 곳은 없었다.
지친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 * *
“왜 그러십니까?”
자칼렌은 전사의 물음에 기우뚱거리던 고개를 바로 했다.
“아니,취해서 그런가. 느껴질 리 없는 기운이……
그의 말에 술을 퍼마시던 전사 들이 기감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오러?”
“오러가 느껴지는데요?”
“어,진짜입니다!”
술이 번쩍 깼다.
전사들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둘 러보았다.
언제 주정을 부리며 술 마셨냐 는 듯 경계 태세를 갖춘 그들의 눈빛은 매서웠다.
누군가 오러를 사용했다는 것은 곧 적과 전투 중이라는 뜻이다.
“가깝습니다.”
“설마 방벽 안에 마수가……
전사들은 술도 내팽개치고 서둘러 뛰어갔다.
그들이 그렇게 박차고 나가니 나머지 사람들도 무슨 큰일이 생겼나 긴장하며 따라갔다.
그리고 아닌 밤중에 무기를 든 사람들이 보게 된 것은一.
“...........”
“...........”
“...........”
들썩이는 타르칸의 막사였다.
“……왜 오러가 천막 안에서 느껴지죠?”
“……왜인지 알고 싶지 않군.”
자칼렌이 낮게 옮조렸다.
검을 움켜쥔 그의 손에 힘줄이 돋았다.
아무리 존경하는 주군이시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셨다.
막사가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 의 정신 역시 혼미하게 흔들렸다.
“아니,신성한 전투에 사용하는 오러를……
전사들이 가진 자긍심의 근원이자 모두가 선망하는 오러.
그런 오러를 이런 망측한(?) 일에 사용하다니....
전사들은 물론이고 정황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를 챈 사람들이 흐린 눈으로 막사를 바라보았다.
정말 상상치도 못한 초유의 사태에 얼이 나가 도저히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지켜보고 얼 마나 지났을까.
흔들흔들,위태롭게 흔들리던 막사가 한층 더 크게 흔들렸다.
“어어……”
“설마..?”
사람들은 지켜보면서도 설마, 했다.
그렇지 않은가.
설마 밤일 때문에 막사가 무너질 수는…….
사람들이 날카로운 숨을 들이 삼켰다.
그 설마가 진짜로 일어났다.
남편은 됐고, 돈이나 벌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