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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27화 (127/183)

127화

거대한 막사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 하나가 움직임을 이기지 못하고 기울었다.

이 초유의 사태에 온갖 돌발 상황에 익숙해진 전사들조차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냥 막사도 아니고 군용 막사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왕자이자 총사령관인 타르칸의 막사였다.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아이루고인들인지라 막사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아하게 웅크린 흑범처럼 묵직하고 위압감 넘치는 막사였다.

크기와 튼튼함은 말해 봤자 입 아플 정도다.

그런데 대체 안에서 뭘 어떻게 하면 그런 막사가 기울어진단 말인가.

아니,알고 싶지 않았다. 상상 조차 하기 싫었다.

다행히도 기둥은 어느 정도 기우는 것으로 끝났다.

막사의 각 하나가 폭 내려앉긴 했지만 그뿐.

아예 막사 전체가 폭삭 무너져 내렸으면 정말 위험하고도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자칼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 면서도 눈을 가늘게 떴다.

‘오러 방어막이……’

오러가 그 크기를 더한 것이 기감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뻔했다.

반원구 형태의 오러 방어막이 기울어진 기둥을 받치고 있는 것이다.

막사가 무너지지 않아서 참 다 행이긴 한데 전사들의 자긍심이나 다름없는 오러를 저렇게 사용하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해후의 정을 나누시길 바랐지만 결코 이런 식의 정을 뜻한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제 좀 진정하시고 그만하시겠지.’

인간적으로 설마 막사가 무너 질 뻔했는데 계속하겠는가.

하지만 자칼렌은 그의 주군이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존재라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은 전투에서 보여 주시는 것으로 충분했건만.’

그는 흐린 눈으로 생각했다.

물론 오러 방어막으로 인해 막사 안의 기척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만둔다면 뭔가 반응이 있을 것 아닌가.

무너진 막사를 수습한다거나, 상황을 정리하거나.

그런데 그럴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힐끔 주변을 살폈다.

전사들이야 그렇다치고 마법 사들과 대장장이들이 뭐라 말할 수 없는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 어흠! 두 분 모두 곤히 주무시는 중인가 보군.”

자칼렌은 애써 헛기침하며 다 들으라는 둣 큰 소리로 말했다.

주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이 대단했다.

사실 가장 황당한 건 그일 텐 데 이런 변호까지 해 주다니,타르칸을 향한 자칼렌의 충정이 바다보다도 넓었다.

“막사는 내일 날이 밝고 손보는 게 낫겠습니다.”

“그렇죠. 보니까 딱히 위험할 일도 없을 것 같고요.”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다른 전사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칼렌을 거들었다.

외부인 앞에서 어떻게든 주군의 면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정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뭐,기둥이 오래되어 약해지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기둥은 내일 저희가 손 보지요!”

대장장이들이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사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고 기둥 탓으로 돌려 주는 것이다.

참 고마운 말이었지만 전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마주 웃을 수 가 없었다.

‘그 기둥은……’

여차할 때 공성용 무기로 쓸 정도로 단단했다.

전사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들은 왕성한 호기심과 지적 탐구욕을 접어 두었다.

솔직히 그들은 미지의 영역에 서 인간의 한계를 마주한 기분이라 이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뭐,딱 한 번 있는 현상도 아닌 것 같으니까.’

아세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이 정도의 일은 왕자 부부 사이에서 매일 밤 일어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첫날밤에 침대를 부수지 않았던가.

‘궁인들을 취재해 볼까.’

왠지 이 일에 관해선 아주 잘 설명해 줄 것 같았다.

그렇게 사태가 대강 마무리 지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리트렌의 말만 아니었으면.

“저,내일 고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기둥이 계속 기울 텐데……”

그 말에 사람들은 황당한 눈으로 리트렌을 바라봤다.

그러나 리트렌은 한없이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박한 청년의 눈은 강아지처럼 한없이 맑고 깨끗했다.

그 눈을 마주한 사람들이 주춤했다.

‘진짜다.’

‘진짜 몰라서 저러는 거야.’

하지만 그들은 이 순수한 청년에게 차마 진실을 알려 줄 수 없었다.

“아,아니,무너진 각을 볼 때 분명 다른 기둥에 걸려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마,맞아요. 내일 낮은 물론이고 1년 후에도 멀쩡할 것 같은 데요.”

사람들이 애써 괜찮을 거라는 걸 어필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럼 다른 기둥에 이중으로 하중이 걸리는 거니까……”

‘아니,그게 아니라 오러가 받치고 있다고!’

‘타르칸 전하께서! 직접! 안전 하게!’

‘하지만 그 상태로도 일을 멈 추지 않는다고!’

‘인간이 아냐!’

사람들이 답답한 얼굴로 입을 열었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금붕어처럼 입술만 뻐끔뻐끔할 뿐.

“으음,막사를 설계할 때 그 정도 하중 부하는 충분히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니까……”

“그렇긴 하겠지만,그래도 시간을 끌수록 안 좋잖아요.”

겨우겨우 쥐어짜 낸 변명은 리트렌의 반론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결국 보다 못한 아세나가 끼어 들었다.

“그냥 내일 고쳐요.”

“그러다 무너지면 어쩔 겁니까? 안에 비전하께서 계신데.”

우리 비전하를 요만큼의 위험에도 빠트릴 수 없다!

리트렌의 눈동자가 주인을 따르는 충견처럼 반짝였다.

아세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깊게 한숨을 후우,내쉬었다.

“진짜 괜찮으니까 내일一.”

“안 괜찮습니다.”

“괜찮다니까요?”

“안 괜찮습니다.”

“아,괜찮다고! 침대를 부수고도 아침까지 잘 잤던 사람들이야!”

결국 참다못한 아세나가 소리를 빽 질렀다.

“어?”

리트렌의 올리브빛 눈동자가 커다랗게 뜨였다.

녹안이 바람에 흔들리는 녹음처럼 한차례 흔들렸다.

깨달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어,어어,아……. 그,그렇군요.”

리트렌의 얼굴이 잘 익은 과일처럼 화아악 붉어졌다.

고개를 푹 수그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세나는 팔짱을 끼고 흥,하고 콧방귀를 꼈다.

승리감이 그녀의 얼굴에 엿보였다.

마법사들은 그들의 길드장을 보고 머리를 싸댔고,대장장이들은 우리 애의 순수함을 파괴한 아세나를 노려보았다.

전사들은 그냥 창피했다.

* * *

아리스티네는 아늑한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엎드려 있는 그녀의 아래로 부 드러운 양털 러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벗은 등 위로는 타르칸의 두꺼운 가슴이 느껴졌다.

시야에 보이는 자신의 팔 위로 타르칸의 팔이 얽혀 있었다.

타르칸이 그녀를 뒤덮듯이 끌어안고 있었다.

겹쳐진 몸이 뜨거웠다.

아리스티네는 몸을 움직이려다가 포기했다.

온몸이 삐걱거리고 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 만했다.

어젯밤을 떠올린 아리스티네의 뺨이 붉어졌다.

‘그런 자세는 태어나서 처음 해 봤던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탓일까.

몸에 닿은 채 미동도 없던 것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아니,같은 게 아니라 진짜인데.’

“타르칸.”

아리스티네가 불만 가득한 어조로 타르칸을 불렀다.

목소리가 다 쉬어 있었다.

비단 막 일어났기에 잠겨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일어났어?”

타르칸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관자놀이에 입을 맞추며 물 었다.

시치미를 뚝 떼는 모습에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그를  흘겼다.

“진짜 더는 안 돼.”

“어젯밤에도 몇 번이나 그 말을 했지만 결국 좋아했잖아.”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아리스티네는 고집스레 입을 꾹 다물었다가 툭 내뱉었다.

“지금은 진짜야.”

타르칸이 웃고는 그녀의 날개 뼈에 입을 맞췄다.

그 역시 더 이상 아리스티네를 괴롭힐 생각이 없었다.

아직 그녀를 갈구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긴 했지만,이건 아마 그가 평생 느낄 감각이었다.

채워도,채워도 결코 가득 차 지 않는 부족함.

아리스티네는 빙글 몸을 돌렸다.

양손을 뻗자 곧장 그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래서,첫사랑을 다시 본 소감이 어때?”

그렇게 묻는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살짝 짓궂었다.

타르칸은 피식 웃었다.

“어떨 것 같아?”

그가 그녀를 더 깊게 끌어안아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붉어졌다.

짓궂은 기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깐만,진짜 안 돼. 나 너무 힘들어. 이거 어서……”

“이 정도면 재회의 소감,알겠지?”

“알겠으니까,빨리……”

항복 선언에 타르칸이 픽 웃으 며 몸을 물렸다.

장난이긴 했지만 그의 얼굴에 는 아쉬운 기색이 살짝 남아 있었다.

아리스티네가 입술을 비죽이며 그의 어깨를 밀었다.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데.”

타르칸이 한숨처럼 말하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리스티네가 제 품 안에 있는 것을 온전히 느끼려 하는 것처럼.

“그랬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나한테 뭐라 그랬지?”

그의 감정이 느껴져 아리스티네는 부끄러움에 괜히 투덜거렸다.

결혼 전은 물론이고 첫날밤에 도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꼬집었다.

아리스티네는 아무 타격도 없었고 오히려 깔끔하니 비즈니스 관계로 정리되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통 신부였다면 아무리 정략혼이라고 해도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농담을 건 것이었는데 타르칸의 얼굴에 심각한 그늘이 생겼다.

지독한 후회가 타르칸의 눈에서 엿보였다.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 몰랐던 아리스티네는 깜짝 놀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뭐,머리카락 색이나 눈색도 달랐으니까,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똑같아.”

타르칸이 중얼거렸다.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천천히 다물렸다.

황금빛 눈동자가 그녀를 온전 히 담았다.

“넌 그때랑 같아.”

분명 금발에 연둣빛 눈동자였던 그때와 달리 지금 아리스티네는 은발에 보랏빛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았다.

타르칸은 몇 번이나 아리스티네에게서 그 소녀를 겹쳐 보았다.

바보같이 전혀 닮지 않았다며 몇 번이나 그 사실을 부정했다.

이상한 여자라고,그저 그뿐이라고 애써 관심을 끊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눈길이 갔다.

너 였기에.

못난 내 두 눈은 너라는 걸 몰라봤지만,내 마음은 알아봐서.

사실은 처음 봤을 때부터 특별했다.

먼지 가득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신경 쓰여 가장 값비싼 비단으로 감싸 품에 안을 만큼.

가시밭길 같은 시선 속에서 작은 두 발로 걸어가는 게 심히 거슬려 가슴에 품고 대신 걸을 정도로.

그저 이제 내 사람이 되었으니 당연히 남들에게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지 만,사실이 아니었다.

고작 그 이유뿐이라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겹쳐 보이는 걸 말이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과거와 같은 상황이 와서야 온전히 깨달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못 알아보고 상처 주는 말을 했다.

모든 것을 바쳐 소중히 대해도 부족한데.

“타르칸……”

아리스티네는 어쩐지 목이 메 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게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평원의 몇 날 며칠은 그저 열 병에 들뜬 상태로 꾼 한나절의 꿈에 불과하다고.

그 꿈을 그리워하고 소중히 하면 할수록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그건 허상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아리스티네는 그기억을 저 아래에 묻었다.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그 기억은 깊게 가라앉아 수면 위로 떠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타르칸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작 며칠간의 만남을 계속 그리며,반추하며 살아온 것일까.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 하니 가슴이 아팠다.

“날 다시 만나면 뭘 하고 싶었어?”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지.”

그 말에 아리스티네가 웃었다.

“내 이름은 아리스티네야. 네 이름은?”

“타르칸.”

“리네라고 불러도 좋아,칸.”

칸.

그 말이 아리스티네의 입술에서 나오는순간 타르칸의 동공이 옅게 떨렸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그가 아리스티네의 입술을 삼켰다.

아리스티네는 기꺼이 입을 벌 리며 그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긴 입맞춤이 오가고 그들은 서로의 이마를 맞대었다.

고작 애칭을 부르고 불린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나 충족감이 들일인가.

타르칸은 황당했다.

황당하면서도 입매가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마주 미소 짓던 아리스티네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팔각 형태로 처진 막사의 천장이 뭔가 이상했다.

“저기,있잖아.”

“응.”

아리스티네는 설마 아니겠지, 하는 얼굴로 천장을 살피며 말했다.

“막사 천장이 조금 이상한데……. 내 기분 탓이겠지? 왠지 한쪽이 폭 꺼져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이미 침대가 무너졌다.

간이침대는 그들의 움직임을 버티지 못해 폭삭 무너져 내렸다.

타르칸은 ‘해 본 적은 없지만 하기만 하면 부술 수 있다’는 자신의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어제야 워낙 정신이 없고,아리스티네 역시 이성을 잃은 상태라 침대가 무너지든 말든 하던 일을 속행했다.

어차피 막사의 바닥에는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려 있었고,침대가 무너지며 모포와 양털 러그도 함께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그 위에서 뒹굴었다.

타르칸은 물론이고 아리스티네는 침대가 어찌 되든 신경 쓰지 않고 꼭 붙은 몸을 떼지 않았다.

서로를 갈구하느라 그런 것을 신경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오히려 침대 잔해를 이용해 새로운 자세를…….

‘내가 미쳤지.’

어제 일을 회상한 아리스티네의 눈앞이 껌껌해졌다.

대체 왜 그랬을까.

침대가 무너진 것만 해도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는데, 막사까지 꺼진 상태라니--.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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