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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28화 (128/183)

128화

타르칸과 이렇게 누워 있을 때 가 아니었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어깨를 쭈욱 밀었다.

“비켜 봐. 사람들이 알아채기 전에 어떻게든 빨리 수습을 해야겠어.”

대체 언제 저 사달이 났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워낙 정신이 없어 기둥이 기울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아니,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다른 것도 아니라 밤일 때문에 군용 막사 기둥이 기우는 게.

타르칸은 한쪽 눈썹을 까닥하더니 저를 밀어내는 아리스티네의 손을 붙잡아 살짝 키스했다.

“타르칸.”

아리스티네가 불만스레 그를 불렀다.

지금 저는 급해 죽겠는데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인가.

타르칸이 어깨를 으쑥하더니 말했다.

“저거 원래 그랬어.”

“진짜?”

아리스티네가 반색했다.

그러나 곧 타르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근데 오러 방어막이 기둥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막사 설치할 때부터 이상했는 데 다들 지쳤을 테니 내버려 두라고 했어. 다른 기둥이 받치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중으로 무게를 오래 받다 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오러로 막은 거야.”

“그랬구나.”

아리스티네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퍼져 나갔다.

하긴,아무리 격하게 움직였다고 해도 기둥이 기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간인 이상 그럴 순 없다.

일어나려던 아리스티네의 몸에 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타르칸이 그녀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과 마주 본 채 그의 위에 누운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여전히 밖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지금 몇 시인데. 다들 일어났으면……”

“밤새도록 술 마시고 놀았을 테니 오후 느지막이 겨우겨우 일어날걸. 전사들도 마수 평원에서 긴장 풀고 밤을 보내는 건 처음일 테니까.”

그 말대로였다.

마수 평원에 인간에게 안전한 곳 따위는 없다.

병영 안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습격에 대비해 쉴 때도 신경을 곤두세 워야 했다.

그런데 방벽으로 인해 처음으로 안전지대가 생긴 것이다.

“그렇겠지.”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타르칸은 제 몸에 온전히 기대는 아리스티네를 느끼고 긴장했던 몸을 풀었다.

‘다음에 막사를 설치할 땐 침대를 기둥에 붙여놓지 말고 떨어트려 놔야겠군. 반드시.’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의지로 빛났다.

은빛 실타래처럼 늘어진 아리스티네의 머리카락에 타르칸이 손가락을 얽었다.

나른한 기분이 들어 아리스티네는 그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 을 기댔다.

타르칸의 손이 느릿하게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주길 반복했다.

평화로운 시간에 아리스티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힐끔 눈만 들어 위를 바라보자 타르칸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눈길을 돌린 적 없이 오로지 아리스티네만 보고 있었던 같은 시선이었다.

‘조금 전 자세에서는 내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아리스티네는 괜히 부끄럽고 민망한 기분에 장난스레 물었다.

“그렇게 내가 좋아?”

“다시 재회의 소감을 알려 줘야 해?”

몸으로.

그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아니요……”

아리스티네가 바로 꼬리를 말았다.

타르칸이 가볍게 웃으며 긴장한 그녀의 등을 쓸었다.

부드럽고 편안한 손길에 아리스티네는 흐물흐물 녹아 찹쌀떡처럼 타르칸의 위에 착 달라붙었다.

“나도 황당하긴 해.”

타르칸이 중얼거렸다.

“평생에 걸쳐 단 두 여자한테 반했는데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니.”

그가 한숨처럼 웃었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가슴에 팔을 대고 얼굴을 들어 그와 눈을 맞췄다.

“칸,참 한결같은 취향을 가졌구나. 그 정도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조금 변태一.”

아리스티네의 말은 타르칸의 입술에 막혔다.

쪽,하는 소리와 함께 타르칸 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싫어?”

씩 웃으며 묻는 말에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참 나,이 남자는 왜 이렇게 끼를 부리고 난리람. 사람 두근거리게.

그녀는 괜히 입을 비죽이며 투덜거렸다.

“변태라는 건 인정하는 거야?”

“예전부터 네가 날 변태 취급하는 게 어이없었지만.”

타르칸의 손이 스르륵,아리스티네의 벗은 허리를 쓸었다.

“이제는 부정하지 못하겠네.”

그가 아리스티네와 눈을 맞추며 입술을 늘였다.

황금빛 눈동자가 진득한 욕망을 담고 어둡게 빛났다.

순식간에 어젯밤이 생각나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붉어졌다.

“너 진짜!”

그녀가 그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발을 굴렀다.

아리스티네의 몸을 받치고 있는 타르칸은 아무 타격도 없는지 그저 웃을 뿐이다.

아리스티네는 그 모습을 보고 기가 찬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매에도 열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어젯밤 유부녀로서 깨달았다.

남편은 얌전한 것보다 조금 변태인 편이 좋다는 걸.

그녀는 표정을 바꿔 당부하듯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 둘이 끝이어야 해. 앞으로는 또 누군가한테 반하면 안 돼.”

“글쎄,그게 내 마음대로 되어야지.”

“뭐?”

발끈하는 아리스티네를 보고 타르칸이 웃었다.

“어차피 또 누군가한테 반하면 그게 너일걸.”

아리스티네가 치,하며 타르칸을 흘겼다.

그가 그런 그녀의 눈가에 키스했다.

아리스티네는 웃으며 고개를 좀 더 들었고,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막사 안으로 파고든 햇빛이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연인의 얼굴을 비췄다.

막사 안에 둘만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바깥에서 이런 말을 주고 받았으면 닭살로 인해 전사들의 전투력이 급격하게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온 거야?”

타르칸의 물음에 아리스티네가 잠시 생각한 후 되물었다.

“옛날에? 아니면 어제?”

“둘다.”

아리스티네는 잠시 침묵했다.

과연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 까?

진실? 혹은 거짓?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 * *

아리스티네가 막사 밖으로 나온 건 한낮이 한참 지나서였다.

그녀는 나오자마자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에 흠칫했다.

‘뭔가……’

아주 묘한 시선이었다.

‘왜들 그러지?’

찔리는 게 있긴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이었다.

막사가 가라앉은 건 아리스티네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부서진 침대 잔해가 신경 쓰이 긴 하지만 막사 안에 들어온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보지 못했을 터.

아리스티네는 애써 가슴을 당당히 펴며 물었다.

“왜 그래?”

“아,아닙니다. 아무것도……”

자칼렌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리스티네를 빗긴 그의 눈동자가 열게 떨리고 있었다.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흐음.”

“저,정말입니다. 그나저나 식사하셔야죠. 벌써 점심시간이 훌 쩍 지났습니다.”

침실…… 이 아니라 막사였지만,아무튼 너무 늦게 나왔다는 생각에 아리스티네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핑계를 댔다.

“아,칸과 너무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이야기할 게 많아서 시간이 늦었네.”

“아,예. 나누실 이야기가 많아서요……. 물론 그러셨겠지요, 하하……”

그런데 어쩐지 자칼렌의 눈빛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아까보다 한층 더 기묘한 시선으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들었어? ‘칸’이래……’

‘세상에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타르칸’이었잖아.’

‘대체 밤새도록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신성한 전장에서 왜 연애 질을..’

‘부러우면 지는 거다.’

‘돌아가서 여친 만든다!’

쑥덕거리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왜들 그러지?’

설마,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리스티네는 속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럴수록 당당해야 한다.

아리스티네는 자신의 질문이라면 언제나 성심성의껏 답해 줄 사람을 향해 물었다.

“리트렌,분위기가 왜 이래?”

“부,부,분위기요?!”

리트렌이 화들짝 놀라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리스티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획,고개를 돌렸다.

금갈색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목덜미가 새빨겠다.

“리트렌?”

“그,그게,저,저는……”

아리스티네의 채근에 올리브빛 눈동자가 다시 그녀를 향했다.

붉게 익은 얼굴은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아리스티네는 미간을 모았다.

대체 왜 리트렌이 믿었던 주인에게 뼈다귀를 뺏긴 강아지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 까.

“아,그,그러니까 죄,죄송합 니다!”

그 말과 함께 리트렌이 꼬리를 말고 호다닥 도망갔다.

아리스티네는 멍하니 그 뒷모 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충실한 강아지가 제게서 도망치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때 아세나가 입꼬리를 사악 말아 올린 채 아리스티네에게 다가왔다.

“비전하.”

“아세나.”

“간밤에 잘 주무셨나요?”

아리스티네는 뜨끔했지만,표정을 갈무리하며 답했다.

“낯선 자리라 불편하긴 했지만,그래도 잘 잤어.”

“후후,그렇군요. 그럼 어제 입으셨던 옷 주실래요? 마법으로 세탁해 드릴게요.”

“그,그건.....”

찢어졌다.

아리스티네는 차마 그렇게 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거기서 물러날 아세나가 아니었다. 그녀는 눈을 빛내 며 물었다.

“그건요?”

결국 아리스티네는 사실대로 이실직고했다.

“찢어져서……”

“어머나?”

“그게,여행 때문에 옷이 많이 해졌나 봐.”

“그렇군요.”

아세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혀 납득한 눈빛이 아니었다.

아리스티네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어서 왕도로 돌아갈 준비를 하자.”

“네? 벌써요?”

아세나가 놀란 눈으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봤다.

마수 평원에 가기 싫다고 했던 사람이 맞나 싶은 반응이었다.

“우리가 여기 있어 봤자 방해만 될 거야. 머물면 머무는 만큼 토벌이 더뎌지겠지.”

“그건 그렇지만……. 알겠습니다.”

아세나는 고개를 숙였다.

타르칸과 바로 헤어져도 괜찮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일단 통신석 좀 조사해 줄래? 보안이 철저한 군용 통신석인데 먹통이 된 게 이상해서. 할 수 있겠어?”

“우선 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장비 없이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응,부탁해. 그리고一.”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돌리며 리트렌을 찾다가 아차,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까 내버려 두자.’

그녀는 리트렌 대신 다른 대장 장이에게 명했다.

“자칼렌 경에게 방책과 방벽의 사용법을 알려 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가 시범 지역에 설치하는 것보단 지금 실전에서 시험적으로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평원에서 테스트를 못 해 본 만큼 맹신하지 말라는 것 꼭 강조하고.”

“예.”

이것저것 열심히 바쁘게 명하는데 누군가 그녀의 몸을 잡아 제게 기대게 했다. 타르칸이었다.

“칸?”

“허리 아프지.”

아리스티네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아무도 이쪽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바보.”

아리스티네가 타르칸의 가슴을 툭,때렸다.

타르칸이 웃으며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아프잖아. 이래서 어떻게 돌아가려고.”

“돌아가야지.”

“나랑 더 있고 싶지 않아?”

“있고 싶지만……. 그래도 내가 빨리 돌아가야 토벌도 빨리 끝나니까.”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들어 타르칸을 올려다보았다.

“토벌이 완전히 끝나야 쭉 같이 있을 수 있잖아.”

타르칸은 참지 못하고 아리스티네의 입술에 쪽,하고 입을 맞췄다.

퍼억一!

갑작스레 들린 커다란 소리에 아리스티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하하……. 이게 왜 터졌지? 힘을 너무 줬나……. 죄송합 니다.”

취사병이 터진 밀가루 포대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러다 크게 혼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웬걸,사람들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위로했다.

“아니야. 상황이 상황인데 터질 수 있지,암.”

“나라도 터트렸을 거야.”

아리스티네는 관대한 분위기에 놀랐다.

‘군기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

그 후로 일사불란하게 떠날 준 비가 진행되었다.

아리스티네는 감탄해서 자칼렌에게 말했다.

“다들 숙취에 시달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멀쩡하네.”

“예,뭐……. 어젯밤 갑자기 술 깰 일이 생겨서요.”

“그래? 무슨 일인데?”

자칼렌은 아리스티네의 의문 어린 눈동자를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은 무슨 일이겠습니 까.’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긴,비전하께서 무슨 죄가 있으시겠어. 아니,오히려 비전하도 피해자시지……. 모든 원흉은 주군이시다.’

자칼렌이 불손한 태도로 존경하는 주군을 바라보았다.

‘눈 깔아라.’

‘넵’

소리 없는 시선이 오가고 자칼 렌은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포털이 있는 국경까지 돌아가는 길에는 전사들의 호위를 받았다.

그들과 함께하자 국경 수비대 를 비롯해 오는 길 내내 긴장했던 사람들의 얼굴에 한결 안도감이 서렸다.

행군 속도도 탄력을 받아 그들은 빠르게 국경에 도착했다.

포털의 경계 밖에서 타르칸은 아리스티네의 손을 잡았다.

“먼저 가 있어. 곧 따라갈게.”

“응,빨리 돌아와.”

포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타르칸은 참지 못하고 아리스티네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에 따스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진 것은 찰나였다.

곧 입술도,맞잡고 있던 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타르칸은 아쉬움과 상실감에 천천히 눈을 떴다.

저를 바라보고 있던 아리스티네의 모습 대신 텅 빈 공간이 그를 맞았다.

타르칸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일주일 내로 정리하고 올라간다.’

드디어 아리스티네와 마음도, 몸도 온전히 이어졌다.

이제 그와 아리스티네의 사이 에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타르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인생이란 가장 안심하고 행복한 순간에 뒤통수를 치기 마련이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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