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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29화 (129/183)

129 화

Chapter 36. 오빠가 여기서 왜 나와?

“비전하.”

“귀환을 환영합니다,비전하.”

주인을 맞은 궁이 활기를 띠었다.

아리스티네는 도열한 궁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별일은 없었지?”

“예,비전하.”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인테리어만 조금 바꿨습니다.”

“그래.”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기 전에 궁인들이 겨울이오니 궁의 인테리어를 바꿔도되느냐 물었다.

계절마다 조금씩 인테리어를 바꾸긴 했지만 아리스티네에게 직접 물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대대적으로 바꿀 생각이라 그런 듯했다.

아리스티네는 돈 버는 일에 관 심이 있었지 궁을 꾸미는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라 그 냥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떠나 있는 동안 집이 새롭게 싹 바뀌어 있는 것도 꽤 괜찮은 일 아닌가.

“목욕부터 할래.”

“예,준비해 놓았습니다.”

역시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욕실은 아리스티네가 탈의해도 춥지않을 정도로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때였다.

묵묵히 그림자처럼 시중을 들던 궁인들의 눈이 흡뜨였다.

‘이건……!’

아리스티네의 몸에 남은 붉은 자국에 그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맞지?’

‘의심할 여지 없이.’

궁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나……!,

첫날밤부터 지금까지 매일 밤 대체 몇 번의 합방이 있었던가.

침대까지 부수는 위용을 보였으나 이상하게 비전하의 몸은 항상 깨끗했다.

궁인들의 입꼬리가 썰룩썰룩 올라갔다.

침대를 부술 때도 없었던 자국이 남았으니 그보다 더 대단한 밤을 보낸 게 틀림없었다.

하긴,그럴 것이다.

매일매일 보던 부부가 처음으로 멀리 떨어졌다가 재회한 것 아니던가.

그간 참았던 것의 이자(?)까지 쳐서 한 번에 처리하려면 그냥 격한 것으로는 부족했을 터다.

‘비전하께서는 계산이 철저하신 분이시니까!’

‘타르칸 전하께서는 비전하에 관해선 이성이 없으시고!’

궁인들이 응힉힉, 웃음을 홀렸다.

‘이번엔 막사를 무너트리신 게 아닌가 몰라!’

‘아이참,두 분께서도 정말 자제 좀 하시지.’

환희에 물든 궁인들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밝게 빛났던 게 거짓말처럼 어둡게 그늘졌다.

‘내가 따라갔어야 하는데!’

‘내가 자리를 봐 드려야 했어!’

궁인들의 눈에 후회가 가득했다.

그사이에도 궁인들은 프로답게 아리스티네를 따뜻한 욕조로 안 내하고 여행으로 굳은 어깨를 풀어 주었다.

아리스티네는 그 손길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

뜨거운 물에 몸이 풀리며,딱 좋은 곳을 마사지해 주는 손길 에 뒷골이 쭈햇 설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 역시 집이 최고야.. ’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생각에 아리스티네는 조금 놀랐다.

어느새 이곳을 집이라고 느끼 게 된 것이다.

아리스티네는 유폐당해 갇혀 있던 곳을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아리스티네가 처음으로 갖게 된 ‘집’이었다.

‘우리 집.’

아리스티네가 감았던 눈을 떴다.

투명한 구 안에 하얀 자갈을 조금 채워 넣고 주홍빛 마법등과 포근포근한 눈송이 같은 목 화로 꾸민 장식품이 눈에 들어 왔다.

곧 다가올 겨울에 맞는 따스한 장식이 었다.

장식이 바뀌긴 했지만,욕실은 아리스티네가 알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궁에 없으니까 인테리어 에 관해 허락 맡았던 건가.’

어쨌거나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기분 좋았다.

아리스티네는 미소 지은 채 촛 불처럼 천천히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눈을 내리깔았다.

왠지 쓸쓸해졌다.

우리 집.

그 말은 아리스티네 혼자만의 집이 아니라는 뜻이다.

‘타르칸도 함께 있으면 좋을 텐데.’

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부터 보고 싶었다.

눈치 빠른 궁인들이 아리스티네에게 말을 붙였다.

“비전하,몸이 풀리셨으면 마사지를 받으시는 게 어떨까요?”

“지난밤…… 아니,여독을 푸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좋아하시는 향유를 준비해 두었어요.”

아리스티네는 궁인들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궁인들이 미소 를 짓는다.

아리스티네는 단 한 번도 어떤 향유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 적 이 없었다.

그런데 궁인들은 이미 아리스티네의 기호를 알고 있었다.

향유뿐만이 아니었다.

음식부터 시작해서 색상까지 아리스티네가 뭘 더 선호하는지 전부 알고 있다.

사소한 반응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며 아리스티네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티네는 궁인들을 향해 마주 미소 지었다.

그래,타르칸이 없더라도 자신 은 혼자가 아니 었다.

“그럼 그럴까.”

주인의 긍정에 제안했던 궁인 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 얼굴을 보며 아리스티네는 쓸쓸함을 털어 냈다.

무엇보다一.

‘빨리 돌아오겠다고 했으니까.’

곧 돌아올 날을 기대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마사지를 받아 모든 근육이 말 랑말랑하게 풀린 아리스티네는 노곤노곤한 기분으로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그대로 곯 아떨어질 것 같았다.

아리스티네는 가물가물한 눈으로 침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이게 뭐야?!”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침실은 침실이 아니었다.

아니, 침대가 있으니 침실이 맞긴 한데 아리스티네가 알고 있는 침실이 아니었다.

통상적인 침실 풍경과 전혀 다 른 모습에 반쯤 감겼던 아리스티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인테리어를 바꿔도 되냐는 게 다른 곳이 아니라 침실 이야기 였냐..

다른 곳은 모두 겨울맞이용으 로 장식이 바뀌었을 뿐인데 침 실은 아예 이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체 잠만 자는 침실에 왜 저 렇게 커다란 거울이 있는 거 지……

침대 천장에 거울을 달아 놓은 것도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 데 더 추가되다니.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었다.

‘왜 침대 주변에 빨간 창살이 있는 걸까.’

커다란 새장처럼 생긴 새빨간 창살 안에 갇혀 있는 침대를 보니 정말 심란했다.

아리스티네는 아연한 표정으로 침실을 둘러보다가 침대로 다가 갔다.

‘일단 자자.’

주변이 어떻든 침대에 누워서 눈 감으면 끝이다.

자면서 주변을 둘러볼 것도 아 니지 않은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아리스티네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다행히 침대는 멀쩡했다.

종류가 달라진 것 같긴 하지만

크기도 푹신함도 익숙했다.

아리스티네가 조금 안심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이불을 들추던 그녀의 손이 침 대 옆에 있는 어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리스티네는 이변을 느꼈다.

“침대가……”

침대가 움직인다.

잠이 싹 달아났다.

상식 외의 사건에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잠을 잘 수 없을 뿐.

아리스티네는 새빨간 창살 안에 있는,움직이는 침대 위에 오 도카니 앉아 거울 속 자신을 한 없이 노려보았다.

“비전하, 이르게 기침하셨네요

아리스티네는 동이 트자마자 침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궁인들이 언제나처럼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언제나처럼 그녀들을 대할 수 없었다.

쿵쿵거리며 궁인들에게 다가간 아리스티네가 이글이글하는 눈으 로 말했다.

“내 침실 돌려줘.”

“어머나, 마음에 안 드셨어요?”

“아,아무래도 혼자 주무시기에 는 조금 그렇지요.”

궁인들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아리스티네는 뒷골이 당겨 왔다.

“혼자든 둘이든 잠을 잘 수가 없는 방이잖아! 침대가움직였다고,침대가!”

“후후,저희가 심혈을 기울여서 주문 제작한 것이에요.”

“어떻게 하면 타르칸 전하와 비전하를 더 잘 보필할 수 있을 까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랍니다.”

궁인들이 응흐흐, 웃으며 뿌듯 하게 말했다.

아리스티네는 현기증이 나 이마를 짚었다.

더 잘 보필한다는 방향이 뭔가 크게 어긋나 있는 것 같은데.

궁인들이 비틀거리는 아리스티네를 보고 서둘러 그녀를 부축 해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서둘러 젖은 수건과 미지근한 물을 가져왔다.

“괜찮으세요,비전하?”

“안 그래도 몸이 약하신 분이 그제 밤에 그렇게 격…… 아니, 마수 평원에 가시느라 체력이 다하셨나 봐요.”

“저혈압도 있으시니 아침에는 특히 조심하세요.”

‘아니,지금은 혈압이 떨어지긴 커녕 수직 상승해서 문제인 것 같은데.’

아리스티네는 고혈압의 원흉들을 바라보다가 제풀에 지쳐 한 숨을 내쉬었다.

걱정 가득한 얼굴을 상대로 화 를 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암튼 거기서 못 자겠으니까 원래 침실을 돌려줘.”

“네,역시 그 침실은 타르칸 전하께서 돌아오신 후에 쓰는 게 좋겠죠.”

‘아니, 타르칸이 있든 말든 평생 안 쓰고 싶은데.’

아리스티네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올라가는 혈압을 낮추려 노력했다.

궁인들이 어찌나 자신을 잘 보 필하는지 저혈압 치료제가 따로 필요 없었다.

“걱정 마세요. 두 분 전하께서 신혼을 보내신 침실인데 저희가 그걸 아예 없앴겠어요.”

“예전 침실은 다른 방에 그대로 재현해 두었어요. 물론 침대 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쓰시던 그대로고요.”

“가끔씩 첫날밤의 추억을 되새 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도 그럴 게 초야는 딱 한 번 뿐이잖아요?”

궁인들이 아주아주 자랑스럽다 는 얼굴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명백히 칭찬해 달라는 표정이었다.

아리스티네는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한참 후,지친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그래,아무래도 좋으니까 다른 곳에서 잘래……

마수 평원에서 돌아왔는데 왜 더 피곤한 걸까.

‘단거 먹고 다시 자야겠다.’

어젯밤엔 환경이 환경인지라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 탓인지 몸이 무거웠다.

그렇게 결심한 아리스티네가 아이스크림을 얹은 뜨거운 애플 타르트로 당분 섭취를 하고 있을 때였다.

“비전하.”

시중을 드는 궁인 외에 다른 궁인 하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따로 고할 게 있는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야?”

“하미르 왕자 전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여기……”

아리스티네는 궁인이 내미는 새하얀 초대장을 받아 들었다.

카드를 열자 유려한 필치로 함께 오찬을 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거절하기도 힘들게 정식으로 초대장까지 보냈네.’

하지만 아리스티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힘들겠다고 전해 줘.”

“예? 그럼 답신은……”

하미르가 직접 초대장을 써서 보냈으니 아리스티네도 그에 맞 게 직접 답신을 써서 보내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

“기력이 없어서 뭘 적기도 힘드네.”

아리스티네가 열심히 포크질을 하며 뻔뻔하게 말했다.

뜨거운 타르트와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아이루고보다 예법을 더 중시하는 실바누스의 황녀이니 이 방법이 통할 거라 생각했나 본데. 무시하면 그만이지,뭐.’

아리스티네는 다른 실바누스인과 달리 예법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 말에 궁인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비전하.”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시중을 들던 궁인 들이 환한 얼굴로 재잘재잘 떠 들었다.

“잘하셨어요,비전하.”

“그 정도면 하미르 전하께서도 더 이상 초대하지 않겠지요.”

“아니,하미르 전하는 우리 타르칸 전하와 사이도 안 좋으면 서 왜 자꾸만 비전하께 그런답 니까.”

그 말에 아리스티네가 포크질 을 멈췄다.

“하미르 왕자가 나한테 자꾸 뭘 어쩌는데?”

‘루’와 있었던 일은 궁인들이 모른다.

타르칸이 떠나는 날 빗속에서 있었던 일도 마찬가지.

겉으로 보기에는 하미르와 아리스티네의 접점 따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무슨 소리일 까.

아리스티네의 눈동자와 마주친 궁인들이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주인께 고의적으로 말 을 숨길 순 없는 법.

“그,그게 비전하께서 마수 평원으로 향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하미르 전하께서 조금……”

“본인도 평원으로 가겠다고 하셔서 왕후 폐하와 예니카리나 전하께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저희한테도 비전하를 말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제대로 보필한다면 당연히 위험한 곳에 못 가시게 막았어야 했다고....”

“그래,고생 많았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이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왕후의 속을 긁으려면 하미르와 한번 만나는 것도 나쁘 지 않을 듯 보이지만.’

무엇보다 아리스티네는 군용 통신석이 먹통이 된 것에 관해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나 확인은 굳이 하미르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

‘칸이 질투할 테니까.’

남편은 의외로 질투심이 많았다.

하미르의 정체를 모르던 아리스티네가 그와 가깝게 지내는 것도 그렇게 질투를 했는데,알고서도 만나면 얼마나 속이 타 들어 가겠는가.

‘어휴,질투쟁이 변태 남편을 둬서 진짜 나만 힘들지.’

아리스티네는 끙, 하고 허리를 두들기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몸이 무거운 게 여행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진짜 몸이 눅진눅진한데. 원래 다들 이런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궁인 들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일단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니 잠을 푹 자고 좀 쉬면 나아지겠 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타르칸과 떨어져 있는 덕에 아리스티네는 아무런 방해 없이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몸 상태는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아리스티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하미르의 초대를 거절한 것,그리고 몸 상태를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이 두 가지가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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