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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33화 (133/183)

133화

아리스티네가 긴 소파 위에 앉자 라우넬리안이 냉큼 그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네프테르가 다른 한쪽에 앉았다.

결국 소파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게 된 것이다.

‘아니,왜……?’

아리스티네는 황당한 눈으로 비어 있는 다른 소파를 바라보았다.

“아이루고에 방문하겠다는 제 갑작스러운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폐하.”

라우넬리안이 웃는 낯으로 네프테르에게 인사했다.

“내 식구의 혈육이니 갑작스러워도 들어주어야지.”

“하하,제 동생 덕에 남의 집에서 이렇게 환대를 받는군요.”

아리스티네는 내 식구다.

아리스티네는 내 동생이고 댁은 남이다.

두 사람의 접전이 치열했다.

“이제 우리 며늘아기의 배 속에 내 손주가 있다지.”

“제 동생은 저와 닮았으니 제 조카도 저를 닮을 것 같아 기대 됩니다.”

그 말에 네프테르의 눈매가 꿈틀했다.

‘이놈 만만찮군.’

그러나 쉽게 반박할 순 없었다.

‘아들 녀석보다는 역시 며늘아기를 닮는 편이……’

아리스티네를 닮으면 좋겠다는 게 네프테르의 솔직한 심정이었으니까.

네프테르가 침묵하자 라우넬리 안이 미소지었다.

하지만 숭리를 자신하기엔 아직 일렀다.

궁인들이 내오는 다과를 본 네프테르가 혼잣말을 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못했는지 팔이 아프군.”

아주아주 큰 목소리로.

그러고는 은근슬쩍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응? 부왕 폐하께서는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리는 걸 극도로 꺼리실 텐데?’

네프테르의 성정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갸웃하다 가 일단 포크를 들었다.

아무래도 케이크를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대신 집어 줄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하하,그것참 불편하시겠군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라우넬리안이 엄청난 속도로 케이크를 떠 네프테르에게 내밀었다.

“자,아〜 아시지요,폐하.”

귀족적인 얼굴이 비뜰어진 미소를 짓자 그렇게 오만해 보일 수가 없었다.

네프테르는 미간을 찌푸리곤 거칠게 라우넬리안의 손에서 포크를 채갔다.

그가 적을 바스러트리듯 케이크를 씹었다.

두 사람의 눈빛에서는 불꽃이 튀었지만 더 이상 말은 오가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상황이 소강 되나 싶었다.

라우넬리안이 폭탄을 던지기 전까진.

“제 동생이 워낙 몸이 약하다 보니 임신 기간 동안 잠시 실바누스로 요양을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뭐라?!”

네프테르로서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는 아리스티네의 팔을 꽉 붙잡았다.

내 며느리 절대 못 내줘!

그런 의지가 느껴지는 손짓이었다.

“몸이 약하면 약한 대로 어디 갈 생각 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야지. 몸도 무거운데 어딜 가겠다고.”

“실바누스인에게 아이루고의 풍토는 맞지 않습니다.”

‘권능’에 대한 말은 할 수 없으니 돌려 말했다.

그 말에 네프테르가 코웃음을 쳤다.

“흥,그래서 우리 며늘아기가 실바누스에서 잘 지냈고?”

그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라우넬리안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보랏빛 눈동자에서 보이는 후회와 고통,자괴감에 네프테르는 턱을 쓸었다.

‘그래도 제 동생 생각할 줄은 아는 놈이군.’

하지만 그건 그거고,이건 이 거다.

“내 손주와 며늘아기는 내가 알아서 잘 돌볼 테니 걱정 마시게.”

“제 동생은 저와 돌아가고 싶어할 텐데요.”

그 말에 네프테르의 시선이 아리스티네를 향했다.

라우넬리안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

두 남자의 시선에 아리스티네는 부담스러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네프테르가 이렇게나 자신을 곁에 두고 싶어 할지 몰라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부왕 폐하,저는一.”

그 순간이었다.

거친 파동이 아리스티네의 몸을 휩쓸었다.

내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충격에 아리스티네가 헉, 하고 숨을 삼켰다.

“리네!”

“어서 궁의를 데려와라!”

두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허물어지는 아리스티네의 몸을 받았다.

핏기 없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식은땀이 배어나 있었다.

이미 의식은 없었다.

Chapter 37. 폭군의 아이를 임신하고 도망쳐 버렸다

겨울이 오기 전 마수 평원을 정리하는 가을 토벌.

매년 반복되는 이 대규모 토벌은 원정 준비와 사후 처리까지 합쳐 거의 계절 하나를 다 잡아 먹는 일정이었다.

광활한 마수 평원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조차도 정말 대단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올해, 가을 토벌의 새 역사를 썼다.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건 처음 아닙니까.”

“아직 단풍이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귀환이라니.”

“정말 엄청났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일정이었다.

아무 문제 없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빨리 평원을 정리하는 것은 힘들었을 터다.

그런데 통신석이 먹통이 된 데다가 그 탓에 계획에 차질이 있었다.

흩어진 사단이 다시 합류하는 것에도 긴 시간이 소요됐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빨리 귀 환할 수 있게 된 것에는 새로 얻은 방책이 다양한 전술을 가능하게 한 덕도 있지만,무엇보다一.

‘진짜 아내를 보고 싶어 하는 남자의 의지는 대단하군.’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으셨어.’

‘진짜 그 모든 게 하루라도 더 빨리 아내 얼굴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이뤄졌다니.’

전사들은 감탄하다 못해 기가 질린 얼굴로 타르칸의 등을 바 라보았다.

그 괴물 같은 일정은 타르칸만이 소화한 게 아니었다.

전사들은 몸이 갈려 나가는 기분으로 어떻게든 타르칸의 뒤를 따랐다.

‘정말 우리 주군이시지만...........’

지난 며칠 동안 폭삭 늙은 전사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선두에 선 타르칸의 앞 으로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고개를 치켜들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성벽.

국경을 알리는 아이루고의 성 벽이었다.

‘드디어!’

타르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일주일 만에 정리하고 간다는 게 2주가 지나 버렸다.

‘합류만 더 일찍 했어도.’

타르칸이 일정을 더 당길 수 있었을 거라고 후회한다는 사실을 전사들이 알았으면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기에 그들은 거침없이 환호했다.

“이제 귀환이다!”

“드디어 이 지옥이 끝났어!”

“잠을 잘 수 있다! 밥도 5분 내로 안 먹어도 돼!”

그 환호 소리에 타르칸의 입매에도 서서히 미소가 어렸다.

이제 곧이었다.

포털만 통과하면 사랑스러운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돌아가면 그녀를 끌어안고,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쓸고,그녀의 향기를 들이마시고,입술을 맞추고,그리고.

그리고.

‘진정하자.’

타르칸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하지만 들뜬 마음은 쉬이 가라 앉지 않았다.

“이랴!”

타르칸은 군마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 * *

포털이 밝게 빛났다.

빛이 점점 잦아들자 그 안에서 사람 그림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포털 주위에 시립해 있던 이들이 얼굴을 굳히고 몸을 긴장시켰다.

“이런.”

포털 안쪽에서 가벼운 목소리가 들렸다.

빛이 완전히 거둬지고,목소리의 주인이 제 모습을 온전히 드 러냈다.

한낮에 떠오른 찬란한 태양과도 같은 금발,새벽하늘이 그대로 깃든 것 같은 보랏빛 눈동자.

그 오묘한 대비를 이루는 색이 감히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얼굴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그런 남자의 품에는 비단 로브를 걸친 사람이 안겨 있었다.

‘누구지?’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 굴이 보이지 않았다.

시립해 있던 자들은 의문을 느꼈지만,그보다 황제의 명을 이행하는 게 먼저였다.

“황자 전하.”

그들은 가슴에 주먹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 반응에 라우넬리안이 미소 지었다.

“황실 기사단이 여기 모여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귀환하신 황자 전하를 모시고 오라는 폐하의 명이 있었습니다.”

“이게 날 모시는 건가?”

라우넬리안의 눈이 무장을 갖춘 기사들을 훌었다.

비록 검을 뽑진 않았지만 황자를 대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전하께서는 무단으로 포털을 이용해 아이루고에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폐하께서 노하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글쎄,난 잘 모르겠는데.”

서른 명이나 되는 무장 세력 앞에서도 라우넬리안은 여유롭고 당당했다.

양손이 자유로운 기사들에 반해 그는 품에 안고 있는 사람 때문에 손이 모두 묶인 상태였다.

공격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힘든 것은 물론,아예 선공을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그러나 긴장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수적으로 완벽한 우위에 있는 기사들 쪽이었다.

라우넬리안이 생명을 취하는 데에는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 으니까.

그렇게 기사들을 압박한 상태에서 라우넬리안이 느긋하게 입 을 열었다.

“포털 이용은 황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폐하께 따로 허가를 구해야 하는 것은 적대 국가에 갈 때뿐이지.”

“아이루고는……”

곧 실바누스와 전쟁을 할 적대 국가였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 낼 순 없었다.

라우넬리안이 피식 웃었다.

“아이루고가 적대 국가였던가? 폐하께서 사랑해 마지않는 딸을 아이루고에 보내 평화 협정을 맺었던 것 같은데.”

기사들 그리고 시녀들의 일이 있고 나서 제국 내 여론이 들끓 었다.

황제는 아리스티네를 아끼는 양 포장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께서 왜 노하셨는지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데. 이유, 아는 사람?”

라우넬리안이 싱긋 웃었다.

결국 기사단장이 한 발 물러났다.

무력으로 압박을 하고자 이렇게 대열을 갖춰 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압박용이었다.

라우넬리안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충돌을 할 생각은 없었다.

“제 실언이었습니다. 하나 폐하 께서 황자 전하를 찾으시니 함께 가시지요.”

“아,나도 그러고 싶은데.”

라우넬리안이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사람이 쓴 후드를 살짝 내렸다.

“황녀 전하?”

드러나는 눈부신 은발에 기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황녀가 귀환 하다니?

아이루고에서 이렇게 쉽게 황녀를 내주었다고?

아리스티네는 아이루고에서도 중요한 정치적 열쇠였다.

왕위 다툼에서 타르칸이 쓸 수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

심지어 지금은 타르칸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리스티네마저 왕궁을 비운다고?

그건 하미르에게 빈집을 털어 가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라우넬리안은 당황하는 기사들 에게 틈을 주지 않고 말했다.

“내 동생이 좀 아파서. 사랑하는 딸이 아프다는데 폐하께서 억지로 보자고 하시진 않을 거야. 무리해서 움직이느라 병이 더 심해질 수도 있잖아?”

그는 아리스티네에게 다시 후 드를 씌운 후 걸음을 옮겼다.

기사들은 멀어지는 라우넬리안을 막아야 하는지,말아야 하는 지 갈팡질팡했다.

“가시게 두어라.”

기사단장이 말했다.

만약 이대로 라우넬리안을 황제에게 데려갔다가 저쪽에서 아리스티네의 몸 상태에 이상이 생겼다고 주장하면 끝이다.

‘진짜 아픈 게 아닐 확률이 훨씬 크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주장하는 순간 저쪽에 정치적으로 공격할 거리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단 폐하께 보고하는 게 우선이다.”

* * *

포털에서 밝은 빛이 터지고 인영이 나타났다.

“타르칸 전하.”

포털 수호자가 고개를 숙였다.

타르칸은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뒤따르는 자는 없었다.

다른 전사들은 모두 국경에 버려두고 타르칸이 홀로 먼저 귀환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타르칸도 탈리스탄 백작이 여는 승전 연회에 참석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는 빠르게 자신의 궁으로 향 했다.

“전하.”

“귀환을 환영합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갑작스러운 주인의 등장에 궁인들이 깜짝 놀라 몸을 조아렸다.

오늘 토벌대가 국경 지역으로 귀환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하지만 타르칸이 곧바로 왕도 에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일주일 정도 그곳에서 전투의 피로를 풀고 왕도에 귀환하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일 귀환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적어도 미리 언질은 줄 줄 알 았다.

“죄송합니다, 전하. 미처 귀환하실 걸 생각하지 못해 준비가 미흡합니다.”

“됐다. 일부러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말하지 않고 온 것 이니까.”

화려한 영접 따윈 관심도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건 단 하나였다.

“리네는?”

그의 아내.

그러나 궁인들의 반응이 이상 했다.

어디에 계신다고 대답하는 대신 그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타르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하미르 놈이……’

“내 아내는 어디 있지?”

아까와 달리 딱딱하게 굳은 음 성이었다.

결국 궁인이 입을 열었다.

“전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들으시겠습니까.”

“말장난은 안 좋아하는데.”

주인의 심기가 단단히 뒤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궁인이 서둘러 말을  올렸다.

“비전하께서 회임하셨습니다.”

타르칸은 순간적으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감축드립니다,전하.”

축하 인사를 받고 나서야 겨우 반응할 수 있었다.

“뭐라고……?”

“비전하께서 회임하셨습니다.”

그 말이 머릿속에 정확히 박혀 드는 순간,타르칸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빠르게 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임신이라니, 임신이라니!

‘나와 리네의 아이가 이 세상에 있다니.’

그 존재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고 눈앞이 뜨거워졌다.

‘너무 늦게 왔어.’

회임 사실을 알고 아리스티네가 얼마나 놀랐을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계획에 없던,상상도 하지 못 한 순간에 선물처럼 찾아온 아이였다.

‘내가 곁에 있어 주었어야 하는데.’

안 그래도 몸이 약한 아내인지라 더 걱정이 됐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붙어 있으리라.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노예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내 아내는 어딨지? 침실에 있나?”

타르칸이 침실로 가는 회랑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궁인들은 잠시 숨을 멈췄다.

대답이 없자 앞서가던 타르칸이 걸음을 멈췄다.

뒤돌아보는 그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 있었다.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듯이.

결국 궁인이 칼을 씹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비전하께서는 실바누스에 계십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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