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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35화 (135/183)

135 화

“뭐라고……?”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그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동생은 내가 잘 돌보고 있으니 넌 빠져.]

그 말을 듣는 순간 타르칸의 머리에서 이성이 뚝 끊어졌다.

안 그래도 임신한 아내가 사라져서 신경이 곤두서 있던 상태다.

아내의 오빠라는 것을 생각하라고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던 경고등이 파삭 박살 났다.

“내 아내를 멋대로 납치해 놓고 잘도 지껄이는군.”

타르칸이 으르렁거렸다.

[납치? 우리 리네도 좋다고 해서 온 건데? 내가 내 동생 의견을 듣지 않을 리가 없잖아.]

리네가 좋다고 했다고?

그건 타오르는 분노마저 단숨에 꺼트릴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곁에 없는 남편보다는 역시 하나뿐인 오빠가 더 의지되는 법이지. 내 동생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도 그럴 게 유일한 혈육이잖아? 아,곧 내 조카가 세상에 나올 테지만.]

“리네의 가족은 나야. 그리고 네 조카가 아니라 내 자식이다.”

[아,그래? 근데 내 동생은 지금 왜 네가 아니라 나랑 있는 거지? 그딴 야만적인 곳에서 내 동생을……. 어?]

무언가에 놀란 둣 라우넬리안의 목소리가 순간 끊겼다.

그 직후 뭔가 부산스러운 기색 이 나는 것과 동시에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르칸에게 말할 때와 달리 꿀 이라도 떨어질 둣 진득하고 달콤한 목소리가.

[리네,왜 나왔어. 방에서 쉬고 있…….]

통신이 끊겼다.

타르칸은 그대로 통신석을 들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뭐? 유일한 혈육? 내 조카? 내 동생은 나를 사랑해?’

무엇보다 저딴 말을 듣느라 아리스티네의 목소리는 듣지도 못 했다.

까드득!

곧이어 통신석이 그의 손아귀에서 바스러졌다.

황금빛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돌보다도 더 단단한 것을 단숨에 먼지로 만드는 모습에 궁인 들과 아세나가 기함했다.

궁인들은 납작 엎드려 주인의 심기를 살폈다.

“타,타르칸 전하……”

“그래도 다행히 비전하께서는 정신을 차리신 것 같습니다.”

아리스티네의 건강이 호전된 것 같다는 소리에 타르칸의 분노가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다.

네프테르가 어쩔 수 없이 라우넬리안에게 아리스티네를 내준 이유가 그거였다.

아리스티네의 건강을 위해선 실바누스로 데려가야 한다는 말.

마치 그 말을 증명하듯 궁의는 아리스티네의 증세를 제대로 짚어 내지 못했다.

그저 체력이 약하신 분이다 보니 임신 때문에 몸에 무리가 온 것 같다는 말만 할 뿐.

아직 임신 초기라는 것을 생각 하면 이렇게까지 몸이 안 좋은 게 납득 가지 않았다.

원인도 제대로 못 밝혀낸 상태 에서 용태가 호전될 리 없었다.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에 결국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를 내주었다.

‘그래,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타르칸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안쪽으로 아리스티네의 긴 은발이 부드럽게 휘날렸다.

그 끝을 따라가 보면 저를 향 해 환히 웃는 얼굴이 보인다.

‘칸.’

속삭이듯 부르는 목소리.

품에 쏙 들어오는 가느다란 몸. 부드러운 피부. 뻗어 오는 손.

“나도……”

지금 라우넬리안 그놈은 아리스티네의 곁에 있겠지.

아리스티네와 이야기도 하고 눈도 마주치고 배도 한번 쓸어 보고…….

“나도 내 아내 수발 잘 들 수 있는데……”

힘없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납작 엎드려 주인의 분노를 대비하고 있던 궁인들은 ‘응?’ 하고 고개를 들었다.

명운을 다한 통신석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애쓰던 아세나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모두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얼 떨떨한 얼굴로,대마수를 둘이나 도륙한 위대한 전사를 바라보았다.

“나도 리네 힘들다는 거 다 받 아 주고 먹고 싶다는 거 다 구해다 주고 그럴 수 있는데……”

그곳엔 위대한 전사 따윈 없었다.

아내 노예가 노예 짓을 못 해서 슬퍼하고 있을 뿐.

아세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궁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타르칸의 마음을 십분 이해 했다.

“우리 비전하 마사지도 해 드려야 하는데……”

“우리 비전하께선 뭐든 잘 드 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 리는 음식도 있으신데……”

“싫어도 올리면 그냥 다 드시 니까 저희가 살펴 드려야 하는 데……”

시무룩해진 궁인들이 울멍울멍 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어서 실바누스로 갈 채비를 해라.”

타르칸이 명하며 입매를 비틀 었다.

‘내가 갈 거라고는 생각 못 했 나 본데. 어디 두고 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으로 불 안함에 마음이 술렁거리기도 했

〈납치? 우리 리네도 좋다고 해 서 온 건데? 내가 내 동생 의견 을 듣지 않을 리가 없잖아.〉

〈곁에 없는 남편보다는 역시 하나뿐인 오빠가 더 의지되는 법이지.〉

〈근데 내 동생은 지금 왜 네가 아니라 나랑 있는 거지? 그딴 야만적인 곳에서 내 동생을............〉

라우넬리안이 했던 말이 귓바 퀴에 묻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타르칸 역시 생각했던 문 제였기 때문이다.

아리스티네가 임신했다는 사실 을 알았을 때 당연히 곁에 있어야 했다.

아내 혼자서 얼마나 불안했을까,얼마나 쓸쓸했을까,얼마나 빈자리를 크게 실감했을까.

‘그 중요한 때 같이 있어 주지도 못하고.’

아리스티네가 제게 실망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내 잘못이다.’

임신인 걸 몰랐다거나,마수를 토벌 중이었다거나,통신이 먹통이 된 상태였다거나.

그런 수많은 상황과 이유는 하 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내가 임신해서 찾는데 남편 인 자신이 곁에 없었다는 것.

그 사실만 중요했다.

‘뭐가 어찌 됐든 무조건 내 잘못이야.’

어쩌면 아리스티네가 원망할 수도 있다.

왜 이 중요한 때 없었냐고 꼴 보기 싫다고 화를 낼 수도 있다.

라우넬리안이 얼씨구나 하고 옆에서 바람 넣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냉대받아도 상관없어.’

아리스티네는 한번 돌아서면 쉽게 용서하지 않았다.

미련조차 남겨 두지 않았다.

‘루’에게 몇 안 되는 친구라고 그렇게 정을 주었는데 한순간에 돌아서지 않았던가.

아리스티네에게 외면받는 하미르를 보고 그렇게나 고소해했는데 지금은 그 모습에 자신이 덧 씌워졌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타르칸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리네 곁엔 내가 있어야 해.”

그때였다.

통신석이 울렸다.

타르칸이 부순 통신석이 아니라,궁인이 가지고 다니던 통신석이었다.

타르칸은 궁인에게서 통신석을 벳다시피 건네받았다.

그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그의 아내라고.

아니나 다를까 통신을 연결하 자마자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 임에도 타르칸은 잠시 아무 말 도 하지 못했다.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와 순간 적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리네.”

겨우 나온 그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 있었다.

[마수 평원에서 돌아왔구나. 일찍 왔네.]

반가움만 가득한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타르칸은 어딘지 울 컥했다.

임신한 몸으로 두 번이나 쓰러지고,그 상태로 사라지기까지 하고.

사람 속이 다 문드러지게 걱정만 시켰으면서.

“……실바누스엔 왜 간 거야.”

조금만 더 날 기다려 주지.

기다리겠다고 했으면서 왜 기다려 주지 않은 것인가.

이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타르칸은 터져 나오는 감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돌아오기만 하면 널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네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타르칸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거기다 임신하고 쓰러졌다는 말까지……”

타르칸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꺼져 들어갈 듯 희미

가날픈 아리스티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한 건가.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그가 아니라 아리스티네였다.

지금 목소리가 그늘 한 점 없이 밝다고 해서 아리스티네가 정말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타르칸은 제 뺨을 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며 다급히 아리스티네에게 말했다.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더 빨리 돌아왔어야 했는데.”

“네 얼굴을 보고 싶어.”

왜 통신석은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가.

“널 끌어안고 네 머리칼을 쓸고 내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켜고 싶어.”

곁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네 곁에는 내가 있어야 하잖아.”

아리스티네는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르칸은 아리스티네가 지금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지 손에 잡힐 둣 분명하게 보였다.

분명 그 고운 미간을 잔뜩 일 그러트린 채 입술을 꾹 깨물고 있겠지.

그리고 참다 참다 못해 말할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투정 섞인 아리스티네의 말에 타르칸은 심장이 멈출 듯 가슴이 아려 왔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일찍 온다고 해 놓고.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해.”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토벌대 역사를 새로 쓸 만큼 귀환이 빨랐다던가,하는 것은 전부 핑계일 뿐이었다.

[바보. 미안하단 말 듣고 싶어 서 이러는 게 아니잖아.]

“내가 갈게.”

네 곁으로.

[빨리 와.]

그 말에 타르칸이 미소 지었다.

“몸은 괜찮아? 우리 아이는?”

[괜찮아. 아이도 건강해.]

아리스티네의 대답에 타르칸이 안도하며 신께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라우넬 오라버니 덕분에.]

덧붙여진 말에 타르칸의 입가 에서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 오라버니께서 정말 잘해 주셔. 내가 따로 뭘 부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저 다 챙겨 주시고.]

타르칸의 되물음을 어떻게 생 각했는지 아리스티네가 상냥한 어조로 타이르듯 말했다.

물론 역효과였다.

타르칸의 턱에 힘이 꽉 들어갔다.

“……나도.”

[응?]

“나도 잘해 줄 수 있어. 아니, 내가 더 잘해 줄 수 있다!”

[어?]

“무조건 그놈보다 내가 더 잘 살펴 줄 수 있어!”

“...........”

“나한텐 네 수발들 기회도 주지 않고.”

[아니,수발들 기회라니, 대체…….]

“임신했다는 소식도 내가 제일 늦게 듣고.”

“...........”

“내가 다 해 주고 싶었는데.”

타르칸은 분하다는 듯 이를 악 물었다.

그 모습만 보면 당장이라도 마수를 처단하러 갈 둣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실상은 아내의 수발을 들고 싶다며 찡찡거리는 것뿐이었지만.

[귀엽긴.]

아리스티네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통신석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 말의 의미가 온전히 이해되는 순간,타르칸의 눈가에 발긋한 홍조가 올라왔다.

내 아내가 나 보고 귀엽대!

아세나는 흐린 눈으로 타르칸을 바라보며 “중증이군……”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면 궁인들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배부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네,조금만一.”

[아,오라버니 고마워요.]

타르칸의 들뜬 말은 아리스티네의 목소리에 막혔다.

‘오라버니’라는 말에 그의 얼굴이 굳었다.

“리네?”

[아,제가 먹을 수 있어요.]

[내가 옆에 있는데 왜 네 손을 써. 자,어서 아〜 해.]

통신석을 통해 가감 없이 들려 오는 대화에 타르칸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저놈이 아리스티네가 저와 통신하는 걸 방해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게 틀림없다.

목소리도 가증스러웠다.

아까 타르칸과 통신하던 놈과 같은 인물인지 의심될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였다.

[오라버니도 참…….]

아리스티네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읽혔다.

[어때? 곁에 없는 놈보다 이렇게 옆에서 다 챙겨 주는 오빠가 최고지?]

“저놈이……”

통신석을 틀어쥔 타르칸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손아귀에서 힘을 빼려 노력했다.

부수면 아리스티네와의 통신이 끊긴다.

그때였다.

[우움!]

헛구역질하는 소리에 타르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리네?”

[리네!]

[움…….]

“리네,괜찮아?”

하지만 다급한 타르칸의 목소리는 아리스티네의 귓가에 닿지 못했다.

그대로 통신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타르칸은 황망한 얼굴로 통신석을 바라보았다.

“비전하께서 입덧을 시작하셨나 봅니다.”

“어서 저희가 가서 봐 드려야 하는데……”

궁인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입덧하면 엄청나게 괴롭다던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타르칸이 걱정으로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안 그래도 자그마한 아내가 밥까지 제대로 못 먹게 생겼으니 속이 타들어 갔다.

“당장 떠나야겠다! 다들 준비는 끝냈겠지!”

“물론입니다,전하.”

“비전하께서 좋아하시는 건 전부 다 챙겼습니다.”

“무조건 우리가 저 형님 놈보다 잘해야 한다.”

“당연하지요!”

궁인들이 주먹을 꽉 쥐고 콧김을 흥,뿜었다.

아세나는 조금 아연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저기 ……” 하며 손을 들었다.

“아직 실바누스에서 허가가 안 나서 기다리고 있던 거 아니었나요? 이제 관계가 우호적이 되었다고 해도 타국에 그렇게 멋대로一.”

“내 아내가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타르칸이 아세나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아,틀렸어. 눈에 이성이 없어……’

황금빛 눈에는 이성 대신 ‘아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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