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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37화 (137/183)

137화

타르칸은 빛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끼고 감았던 눈을 떴다.

거대한 포털석과 발밑으로 뻗은 진. 그리고 황금으로 만든 부조로 장식된 화려한 양식의 건물.

‘드디어 도착했군.’

아이루고와 확연히 다른 모습에 잠깐이라도 시선을 햇길 법도 하건만 타르칸은 단번에 발 걸음을 떼었다.

입덧으로 고생하는 아내에게 어서 가고 싶었다.

포털 진 앞에 도열해 있던 사 람들이 타르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실바누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 니다,타르칸 전하. 안내를 맡게 된 궁내부 차관,모로이텐이라 합니다.”

“……실바누스의 환대에 감사하오.”

조용한 가운데 울리는 낮은 목소리는 숨길 수 없는 위엄을 품고 있었다.

불의 냄새를 품고 있는 목소 리,웃음기 한 번 머금어 본 적 없는 것 같은 굳은 얼굴.

야생의 맹수처럼 안광이 맺힌 황금빛 눈동자는 제왕다운 흉포 함으로 번뜩였다.

궁내부 차관,모로이텐 백작은 버석 마른 입술을 혀로 할았다.

아이루고 야만인에게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굳어 있는 사이,타르칸은 천천히 걸어 모로이텐 백작 에게로 다가갔다.

모로이텐 백작은 타르칸이 한 걸음,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뒷 걸음질 치고 싶은 마음을 내리 눌렀다.

아니,기실 내리누를 필요조차 없었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몸이 바짝 굳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이윽고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큰 타르칸이 앞에 섰을 때,모로이텐 백작은 손바닥이 축축해지 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감히 고개를 들고 타르칸 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황동처럼 단단하고 강인한 타 르칸의 몸에서 풍겨 오는 철의 냄새에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아이루고 최강의 무력.’

일인 병기나 다름없는 최강의 전사가 지닌 카리스마였다.

황제에게 걱정 마시라고 그깟 야만인 따위 기죽여서 데려오겠다고 큰소리쳤건만,타르칸 앞에서 숨조차 함부로 내쉴 수 없었다.

지금 타르칸은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명백히 압박하고 있 었다.

그저 방만한 자세로 앞에 서 있을 뿐인데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정작 무력시위는 이쪽에서 준비해 왔건만.’

모로이텐 백작은 제 뒤에 도열 해 있는 황궁 기사들을 힐끔 곁눈질했다.

타르칸과 무력 충돌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문관인 자신이 그냥 같 이 가자고 하는 것과 병장기를 허리에 찬 기사들을 대동한 채 같이 가자고 하는 것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과연 허투루 얻어진 위명 은 아니라는 건가.’

실바누스의 체면을 생각해서라 도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모로이텐 백작의 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충실한 안내인처럼 한 걸 음 물러나 길을 트듯 옆으로 섰다.

고개는 여전히 숙인 채였다.

이 상태로도 압박감이 장난 아닌데 자신을 내리눌러 버릴 듯 응시하고 있을 타르칸과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로이텐 백작이 이렇게 겁을 집어먹는 사이,아이루고 최강의 무력이자 일인 병기라는 타르칸은 생각했다.

‘아,빨리 내 아내 얼굴 보고 싶다.’

그의 시선은 모로이텐 백작을 떠난 지 오래였다.

위에서부터 내리늘러 버릴 듯 바라보긴커녕 출구를 찾은 뒤로는 계속 그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나 열망이 가득한 시선인 지 누가 보면 출구를 시선으로 불태워 버리려는 줄 착각할 정 도였다.

‘빨리 가서 수발들어야 해.’

아내 노예는 어서 노예 짓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아주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없었다.

급해 죽겠는데 별말 없는 안내 인이 짜증 났다.

그제야 타르칸의 시선이 다시 모로이텐 백작에게 향했다.

모로이텐 백작은 갑자기 오한 이 들어 고개를 숙인 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안내를 시작하지 않는 모습에 타르칸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가 입을 열었다.

“내 아내는 어디 있소?”

아리스티네를 찾는 질문에 모 로이텐 백작은 입술을 달싹였다.

타르칸의 위압감에 짓눌리긴 했지만,우선은 황제의 명을 수 행해야 했다.

아무리 야만인이라고 해도 갑 자기 마음에 안 든다며 칼을 빼 들진 않을 것이다.

그는 한 번 더 입술을 축인 뒤,최대한 당당해 보이려 애쓰 며 답했다.

“이,일단……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 아내도 거기 있나?”

재차 같은 질문에 모로이텐 백 작의 등에 식은땀이 축축이 배어 나왔다.

“…화,황녀님께선 지금 몸이 안 좋으셔서 밖으로 잘 나오시지 않습니다.”

거짓은 아니었다.

라우넬리안은 황궁 기사들에게 아리스티네의 몸이 안 좋다고 말하며 사저로 갔고,그 후 아리스티네는 저택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으니까.

‘몸이 안 좋다고?’

타르칸의 미간이 깊게 패었다.

입덧이 많이 심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건가 걱정이 됐다.

‘목소리는 괜찮아 보였는데.’

역시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내가 빨리 가서 간호해 줘야 해.’

타르칸의 가슴이 꿈틀했다.

어쨌거나 우선 모로이텐 백작 의 안내를 따라가는 게 좋을 듯 했다.

황제가 있는 곳에 아리스티네 는 없겠지만,황궁 안에 있을 것 아닌가.

‘설마 유폐당했던 곳에 있는 건 아니겠지.’

타르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갑자기 분위기가 벼려진 날처럼 날카로워져 백작은 저도 모 르게 숨을 들이켰다.

‘내,내가 무슨 실수라도……?’

아무리 야만인이라고 해도 이곳에서 대뜸 칼을 빼 들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지금은 달랐다.

타르칸이 금방이라도 허리춤에서 칼을 빼 자신의 목을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지.”

그러나 타르칸은 그 말만 남긴채 스스로 앞장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로이텐 백작이 급히 타르칸에게 따라붙 어 길 안내를 시작했다.

황제가 기다리는 곳으로.

비취 기둥이 질서 정연하게 늘 어선 회랑을 걸으며 타르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내리눌렀다.

곧 아리스티네와 아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들떴다.

그는 제 쪽으로 걸어오는 기척 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실바누스 황궁의 회랑은 대로 처럼 넓었고,언뜻 보이는 그림자는 아내와 달랐다.

아내 생각에 여념이 없는 그가 눈길조차 주지 않은 건 당연했다.

타르칸은 드러난 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옷은 괜찮겠지.’

이제 늦가을이라 제법 바람에 매서운 기색이 섞이기 시작했음 에도 그는 가슴을 드러낸 옷을 입고 있었다.

딱히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루고 의복의 양식이 이런 식이니까 입은 것일 뿐.

물론 이렇게 추워지면 보통은 가슴을 여몄다.

이런 식으로 단추를 푸는 것은 참 예외적인 일이긴 했으나,특 별한 뜻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마도.

‘그냥 답답하니까……’

대흉근이 워낙 발달했다 보니 단추를 여미면 답답했다.

이유는 그뿐이다.

흠흠,타르칸이 괜히 헛기침을 했다.

아내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때였다.

타르칸은 무언가가 자신을 향 해 기우뚱 쓰러지려는 것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아……”

봄꽃처럼 싱그럽고 달콤한 목 소리가 조용한 회랑에 울렸다.

타르칸은 제가 붙잡은 것을 내 려다보았다.

여자였다.

벌꿀처럼 짙은 금발이 흐트러지는 것을 보며 그는 오래된 기 억을 떠올렸다.

마수 평원에서 만난 어린 아리스티네의 금발 역시 이런 색이었다.

햇빛을 그대로 머금은 것처럼 농도 짙은 금발.

옛 기억에 그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을 때였다.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리스티네와 비슷한 금발이 사르륵 홀러내리며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말랑해 보이는 흰 뺨은 장밋빛 으로 물들어 있고,도톰한 입술은 이슬이 맺힌 꽃잎처럼 윤기가 흘렀다.

상대의 모습을 그대로 비출 듯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는 봄을 불러오는 새순과도 같았다.

“어머나,죄송해요.”

사랑스러운 입술에서 꾀꼬리가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가 홀러나 왔다.

실바누스의 귀족이라면 누구나 감탄할 정도로 발성과 어조,억양이 완벽한 한마디였다.

타르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모습에 황녀,레타나시아는 타르칸의 팔을 붙잡은 채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 운이 좋은데?’

그녀가 타르칸에게 좀 더 가까이 붙으며 눈을 맞추려 하는 순간이었다.

‘응?’

레타나시아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당연히 저를 향하고 있을 줄 알았던 타르칸의 시선이 묘하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

‘능력’을 사용하느라 언뜻 봤을 때는 몰랐는데 얼굴을 살짝 비껴 나간 것 같은 게…….

그때였다.

타르칸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둣,지금 보고 있는 게 감히 현실이 맞는지 감격한 얼굴.

“리네.”

깊은 울림을 가진 목소리였다.

동시에 녹아내릴 듯이 달콤한목소리이기도 했다.

그저 이름을 부른 것뿐인데 레타나시아는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을 엿들은 느낌마저 들 었다.

바위처럼 무뚝뚝하고 단단했던 타르칸의 얼굴이 단비라도 내린 것처럼 부드럽게 피어났다.

그 생생한 변화에 레타나시아 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강렬한 예감을 느꼈다.

‘설마?’

그녀는 타르칸의 시선을 따라 획 몸을 돌렸다.

그곳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자 신의 반쪽짜리 자매가 서 있었다.

제비꽃 물이 살짝 든 것 같은 신비로운 은발,별이 내린 새벽 하늘같이 신비로운 보랏빛 눈동 자.

감히 완벽하다 할 수 있는 비율로 이뤄진 이목구비.

생기 도는 얼굴빛이 실바누스 에 있을 때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으나 레타나시아는 한눈 에 알아보았다.

“아리스티네 언니.”

자신의 최대 정적이 기어코 돌아왔다.

한없이 순진해 보였던 레타나 시아의 눈이 가라앉으며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이루고로 잘 치워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리스티네는 거의 평생을 유 폐당한 채 납작 엎드린 상태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방심할 순 없었다.

레타나시아는 단 한 번도 아리스티네를 상대로 방심해 본 적이 없다.

대놓고 황제와 반목하고 있는 데다가 반역이 무리가 아닐 정 도로 세력을 얻고 있는 라우넬 리안보다 아리스티네를 더 경계 했다.

천천히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열렸다.

레타나시아는 저도 모르게 마 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입술에서 대체 어떤 말이 나올지…….,

지금 정치적 상황이 복잡한 만 큼,재회한 자신에게 분명 뼈가 있는 한 소리를 할 터였다.

그러나 아리스티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레타나시아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칸……!”

아리스티네가 만개한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리,리네,조심해야지!”

뒤에서 라우넬리안이 급히 그녀를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리네!”

타르칸이 번쩍 아리스티네를 안아 들었다.

아리스티네의 드레스 자락이 허공에 넓게 퍼지며 그녀의 머 리카락이 흩날렸다.

행복한 미소를 지은 연인이 이 마를 맞댄 채 재회의 기쁨을 누 렸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를 들어 올린 채 한 바퀴 핑그르르 돌았다.

두 사람의 모습이 화보 속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왠지 주변에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로 단내가 진동했다.

그러나 레타나시아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까르륵거리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자신뿐인지,타르칸을 뒤따라온 아이루고 궁인들은 눈물을 훌쩍 이면서 감격하고 있었다.

“정말 잘됐어요……”

“이걸로 타르칸 전하께서도 잠 을 편히 주무실 수 있게 되었어 요.”

“비전하께서도 마찬가지겠죠.”

“역시 그 침대를 가져왔어야 했어요.”

‘침대? 웬 침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오갔다.

그때 였다.

찰칵찰칵 一.

갑자기 들린 소리에 레타나시 아는 식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궁인 한 명이 눈물을 홀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뭐야,이거…….’

지금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머릿속에 꽃밭이 든 것처럼 반응하고 있 었다.

‘……아리스티네 언니의 묘수인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방심하게 한 뒤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휩쓸릴 내가 아니지.’

레타나시아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에요,아리스티네 언니.”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아리스티네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뻗어 오는 손길에 레타나시아를 바라보기도 전 에 고개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 갔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빨을 감싸 자신을 보게 했기 때문이다.

황금빛 눈동자가 깊은 늪처럼 아리스티네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담기는 게 자신뿐이었으면 하는 열망으로 불 타는 눈동자였다.

명백히 자신을 원하는 눈빛에 아리스티네의 뺨이 붉어졌다.

“칸一.”

그녀의 말은 끝맺어지지도 못 했다.

타르칸이 참지 못하고 아리스티네의 입술을 삼켜 버렸으니까.

“뭐,무슨……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전개에 레타나시아는 품위도 잊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놀람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혀,혀가……’

그냥 입술만 부딪치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부부는 부부답 게 짙은 농도의 말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생으로 중계 되는 딥 키스에 레타나시아의 눈빛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은 여전히 자신뿐인지,옆에서 궁인들이 “까아一!” 하며 비명을 질렀다.

말이 비명이지 즐거운 기색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손으로 눈을 가렸는데 손가락이 다 벌어져 있다.

찰칵찰칵찰칵찰칵 一.

심지어 셔터 소리는 아까보다 빨라졌다.

문제는 궁인들만이 아니었다.

“너 이 새끼가……!”

라우넬리안의 분노에 타르칸이 서 있던 대리석 바닥이 푹 패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키스는 멈추지 않았다.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황금빛 오러로 이뤄진 막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레타나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여기……. 정상인이 없어……’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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