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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39화 (139/183)

139화

숨죽이고 있던 모로이텐 백작 이 입을 열었다.

“이,이제 황제 폐하께서 계시 는 곳으로 안내해도 괜찮을는지요……”

그가 아까보다 배는 더 공손해진 어조로 조심스레 말했다.

솔직히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 만,이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황제에게 한 소리 듣는 것으로 끝 나지 않을 터다.

그게 지금 덜덜 떨면서도 말을 꺼낸 이유였다.

“지금 내 동생 몸 안 좋은 거 안 보여? 뭘 안내해. 가서 쉬어야지.”

“예? 하,하지만……”

모로이텐 백작이 눈을 굴렸다.

황제는 타르칸을 데려오라고 했지만,그건 아리스티네가 황궁에 오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아리스티네 황녀를 만났는데도 그녀를 데려오지 못했다는 게 알려지면…’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쭈햇했다.

“모처럼 황궁에 오셨는데 간만에 부황을 뵙는 게 좋지 않을는지요. 원래 부정과 모정은 자식의 병도 낫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라우넬리안이 코웃음 쳤다.

“병이나 얹어 주지 않으면 다행이지.”

모로이텐 백작은 얼굴을 붉혔으나 반박할 수 없었다.

황녀로 태어난 아리스티네가 불행한 삶을 산건 전부 황제의 탓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보통은 황제에 관한 말이니 이렇게 말하지 못 했다.

하지만 돌아온 라우넬리안은 황제 따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다는 듯 이렇게 방만하게 행동 하고 있었다.

문제는 황제가 그것을 강력히 벌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세력 이 강하다는 데 있었다.

“돌아가자, 리네. 황제 폐하가 부른 건 저놈이니 저놈이 가든 말든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라우넬리안이 아리스티네의 손 을 잡았다.

“화,황자 전하……”

“여기 온 것도 무리해서 온 건데 쉬지 않고 알현하러 가다가 쓰러지면 백작이 책임질 텐가?”

“그건……”

사나운 물음에 모로이텐 백작이 입을 다물었다.

라우넬리안은 비식 웃고는 아리스티네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옮기려 고 했다.

“.....?”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에 라우넬리안이 의아함과 불길함을 느 끼며 뒤를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다른 쪽 손을 꼬옥 붙든 채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부부는 일심동체. 아내가 가는 곳엔 남편이 가는 것이 합당합니다”

뒤에서 궁인들이 주먹을 불끈 쥔 채 “맞아,맞아!” 하며 고개 를 주억거렸다.

“아내가 아픈데 어디 남편이 딴 곳으로 새겠습니까. 당연히 내 아내 수발들어야지.”

모로이텐 백작은 기겁했다.

이러다 아리스티네는커녕 타르칸마저 데려가지 못하게 생겼다.

‘안 돼……!’

그는 절망감에 눈을 감았다.

앞이 새까만 것이 마치 ‘이것 이 너의 미래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타르칸에게 뭐라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가 벌벌 떨면서 겨우겨우 한 마디 꺼내려 했을 때였다.

구원의 손길은 의외로 다른 곳 에서 뻗어 나왔다.

“내 동생은 내가 챙길 테니 너는 가서 일이나 봐. 아픈데 괜히 사람 많으면 번잡하기만 해.”

“제 아내니 제가 챙기는 것으

족합니다. 우리 부부 외에 다 른 사람이 없으면 번잡할 일도 없을 텐데요.”

“야,너 내 동생이랑 피 섞였냐? 피붙이는 피붙이가 돌봐야 지.”

“그러는 너는 내 아내랑 결혼 이라도 했냐? 남편이 아내 챙기는 게 더 당연한 일 아니냐?”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의 기백 에 모로이텐 백작의 오금이 바 들바들 떨렸다.

“흥,됐고. 황제가 부른다니 거 기나 가 봐. 안 가면 나중에 뭐라 할지 모르니까. 그러다 내 동 생 귀찮게 만들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설마 아픈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발걸음하지 못하는 것을 책하겠습니까. 다른 누구도 아 닌,첫째 딸을 그렇게나 아낀다는 실바누스의황제께서요.”

뒷말을 하며 타르칸의 번뜩이는 금안이 모로이텐 백작을 향 했다.

모로이텐 백작은 찔끔해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궁내부 차관도 동의하지 않습니 까.”

타르칸이 그것 보란 듯이 턱을 치켜들며 한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

라우넬리안의 우아한 눈매가 파들파들 떨렸다.

‘만만찮은 놈.’

그는 쌩 소리 나게 뒤돌아서며 외쳤다.

“난 분명 경고했다. 이 일로 내 동생 귀찮게 되면 내가 널 죽인다고.”

“걱정 마십시오. 내 아내 귀찮 게 하는 일은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낮게 읊조리는 타르칸의 눈매에서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일단 휴전을 한 두 남자는 아리스티네의 손을 꼭 잡은 채 동시에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고 모로이텐 백작은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왜 거기서 고개를 끄덕 여선……!’

이제 황제에게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뒤에 있는 황궁 기사들을 힐끔 보았다.

그들이 직접적인 책임을 피하기위해 모로이텐 백작이 동의 했다는 것을 황제에게 말할 것 은 불 보듯 뻔했다.

‘젠장! 내가 왜 이 일을 맡아 선……!’

실바누스의 위엄을 보여 야만 인 하나 데려오는 건 일도 아니라며 큰소리 챙뻥 쳤던 과거의 자신을 때리고 싶었다.

그 순간,

“그래도 황궁까지 왔는데 황제 폐하를 뵙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너무 불효막심한 일인 것 같 아요.”

고요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가 회랑을 울렸다.

모로이텐 백작에게는 그 목소리가 천상의 노랫소리보다도 더 성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황녀님……!”

그는 감격한 얼굴로 아리스티네를 불렀다.

황제의 측근 중 한 명인 그가 이런 식으로 아리스티네를 부르 는 건 처음이었다.

아리스티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리네! 그게 무슨 소리냐. 황제 를 만나겠다니,네가……”

임신한 걸 들키면 어쩌려고!

라우넬리안의 눈이 그렇게 말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모처럼 친정에 왔는데 뵙지 않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지요.”

“먼저 부모 된 도리를 지켜야 자식 된 도리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라우넬리안이 차갑게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만一.”

아리스티네가 목소리를 낮췄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마수 토벌대의 전략용 통신석이 불통이 된 이유.

그 이유에 실바누스가 연관이 있는지,없는지.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한 번쯤은 꼭 확인해야 해.’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임신한 사실을 숨기기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기에 티가 나지 않는 지금이 적기였다.

‘오늘 컨디션도 괜찮고.’

아리스티네는 무의식적으로 배 에 손이 가려는 것을 막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아기에게 말 했다.

‘엄마 도와줄 수 있지?’

마치 화답하듯 배 속에서 파동이 일었다.

아리스티네가 찬찬히 미소 지었다.

“……내 동생 뜻이 그렇다면.”

결국 라우넬리안이 한발 물러났다.

“아내 가는 곳에 남편이 가는 건 당연하지.”

타르칸의 말에 아리스티네가 그를 보며 치,하고 입술을 비죽였다.

“그동안 떨어져 있었으면서.”

“앞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아.”

“진짜로?”

“진짜.”

타르칸이 허리를 숙여 아리스티네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콩,대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흐르는 핑 크빛 기류에 궁인들은 응힉힉 웃었고,모로이텐 백작의 얼굴은 현자처럼 변했으며,라우넬리안

“야,너 내 동생한테서 안 떨어져?!”

야차가 되었다.

‘……에휴.’

아리스티네는 뭔가 슬슬 익숙 해지려는 자신을 느끼며 두 사람에게 잡혔던 손을 빼냈다.

‘흠,그럼 모로이텐 백작을 한 번 흔들어 볼까.’

세상은 원래 기브 앤드 테이크 가 아니겠는가.

모로이텐 백작과 상관없이 황 제를 만나기로 결정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그 결정이 그를 살린 것은 확실했다.

‘이번에는 당신이 내가 원하는 걸 줄 차례야.’

아리스티네가 모로이텐 백작을 보며 생긋 웃었다.

그야말로 자애로운 여신같은 미소였다.

* * *

“뭐라? 이리스티네와 라우렐리안 놈까지?”

황제는 시종이 빠르게 알린 소식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잠시 생각하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덧그려졌다.

“이거 잘됐군”

타르칸을 붙잡아 라우넬리안과 의 동맹을 막으려 했지만,딱히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 도박판에 라우넬리안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 또한 있다는 것을 알리며, 제가 가진 판돈이 크다는 것을 넌지시 내 비칠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 타르칸의 선택지는 늘어나게 되고,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생각이 복잡해지는 걸 뜻 하니까.

타르칸이 결국엔 라우넬리안의 손을 잡더라도 시간을 버는 것 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타르칸과 작당을 하려 했던 것도 아니니 라우넬 리안이 함께 있어도 원래의 계 획은 얼마든지 진행 가능했다.

거기에 아리스티네가 온다면.....

“그 짜증 나는 소문을 일단락 지을 수 있는 기회군.”

“옳으신 말씀이십니다,폐하.”

“그리고 대체 뭘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야겠어.”

숨기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라우넬리안이 아리스티네를 꽁꽁 싸매는 것이야 그놈 성격을 봤을 때 당연한 일이었다.

또,아리스티네를 데려온 것은 분명 타르칸과 동맹을 맺기 위한 정치적 책략일 터.

하지만 북부에서 저리 강한 세 력을 키워 온 놈인 만큼 방심할 수는 없었다.

몇 번 국무 회의에서 라우넬리 안을 찔러 봤지만,그는 여태까

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기 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달라.’

‘권능’을 타고났으면서도 각성하지 못한 모자란 딸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반편 이였다.

그러니 죽으러 가는 혼삿길에도 반항 한 번 못 하고 끌려간 것 아니겠는가.

아이루고에서 일어났다는 여러 일에 당황하긴 했으나 어차피 그건 아리스티네의 능력이 아니었다.

붙여 보낸 기사들은 전사들에게 맞아 고자가 되는 바람에 귀환한 것이고,시녀들은 서로 싸우다 자멸했다.

‘메스는 아이루고의 전략적 사업이겠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야만인이 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은,황금의 피를 가졌다는 실바누스의 황녀로 포장한 것일 뿐.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직접 본 것처럼 눈앞에 보인다고.’

황제가 한쪽 입매를 끌어 올렸다.

“아리스티네 정도는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굴릴 수 있어.”

“언제나 폐하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나 다름없었죠.”

시종의 말에 황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늘 제 발로 날 만나러 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이윽고 그가 기다리던 소식이 울려 퍼졌다.

“폐하,라우넬리안 황자 전하와 아리스티네 황녀 전하 그리고 타르칸 왕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해라.”

이제 시작이었다.

제왕의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숨 막히는 도박판의 시작.

* * *

이 아니었나?’

황제는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도 잊고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분명 엄청난 신경전과 물밑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대로 파악도 못 하고 있을 아리스티네를 이용해 살을 취하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그 자리는 명백히 제 자리 같습니다만?”

“뭐가? 내가 내 동생 옆에 앉겠다는데 말이 많아.”

“보통은 부부가 동반으로 앉는 게 정상 아닙니까. 의전만 제대로 익혀도 부부가 함께 앉는 걸 알겠습니다.”

짜증 난다는 듯이 말한 타르칸이 “실바누스는 예법이 엄격하다더니 다 허명이었군. 황자란 놈이 이렇게 예법에 어두워서야” 하고 중얼거렸다.

혼잣말이었지만 다 들으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석에서 딱딱한 예법을 꼭 들고 와야 하나? 그런 고리 타분한 생각이 경직된 분위기를 만드는 거야. 아이루고는 자유분 방하다더니 사실 경직되어 있나 봐? 그런 곳에서 내 동생이 얼 마나 고생할지……

“내 아내는 내가 챙기니 걱정 마시죠.”

“흥,자리에도 없던 주제에 뭘 챙겨.”

콧방귀를 낀 라우넬리안이 다과를 집어 아리스티네에게 내밀었다.

“자,리네 아〜 하렴. 네가 좋 아하는 달다구리다.”

탁!

거친 소리와 함께 포크가 반짝 이며 저 멀리 날아갔다.

라우넬리안은 얻어맞은 손등을 감싸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차,실수. 손등 위에 날벌레가 있길래 그것만 잡는다는 게. 죄송합니다.”

하나도 죄송하지 않은 표정으로 타르칸이 책 읽듯 말했다.

“야!”

“리네,아~ 해. 아이루고에서 는 내가 이렇게 항상 먹여 주곤 했는데. 요즘 못 그래서 손 아팠겠다.”

‘……아니 어떻게 하면 밥 먹느라 손 아팠을 거라는 말이 나오는 거지.’

아리스티네는 황당한 눈으로 타르칸을 바라보았으나 어쨌거나 입을 벌렸다.

계절 과일을 얹은 바삭한 파블로바는 아무런 방해 없이 아리스티네의 입 안으로 들어갈 듯 했다.

‘응?’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혀끝 에 달콤한 맛이 닿지 않았다.

아리스티네는 당황해 포크를 바라보았다.

타르칸이 들고 있던 포크가 엿 가락처럼 휘며 아리스티네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흥,너 따위가 내 동생한테 먹여 주는 걸 보고 있을 줄 알았냐. 자,리네. 이 오빠가 먹여 줄게.”

그와 동시에 파블로바 조각이 허공을 날았다.

아리스티네는 멍하니 그 광경 을 보다 입을 다물었다.

“대체 뭐 하는 거죠?”

그녀의 날 선 물음에 서로를 향해 엄청난 기운을 내뿜어 내던 두 남자가 깨갱했다.

황제는 모처럼 아리스티네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게. 진짜 이게 대체 뭐 하 는 짓일까.’

제왕의 자리를 건 숨 막히는 싸움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싸움이 시작되긴 시작됐다.

문제는 제왕의 자리를 건 게 아니라 아리스티네의 애정을 건 싸움이라는 것뿐이지.

숨 막히기는커녕 유치해 죽겠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니,나름 숨 막히긴 한가……’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꾸는 이 능으로 인해 날아오르는 파블로바 조각과 그걸 저지하는 황금 빛 오러를 보며 황제의 안색이 흐려졌다.

능력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었다.

두 사람이 이딴 바보 같은 짓 거리를 벌이는 이유야 뻔했다.

진짜 아리스티네에게 예쁨 받 겠다고 이러는 건 아니지 않겠 는가.

그렇다면 답은 하나.

‘이놈들이 감히 나를 놀리나……!’

황제가 광,테이블을 내리쳤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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