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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44화 (144/183)

144화

“치킨……? 닭 요리?”

“이 세상의 모든 닭 요리를 준 비하마!”

당당히 외치는 라우넬리안에게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닭을 튀긴 거야. 밀가루 옷을 입혀서 양념하고……”

그 말에 셰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이드치킨을 말씀하시는군요.”

닭은 오래된 전통의 식재료로 당연히 여러 가지 조리법이 있 었다.

보통 귀족이나 황족들은 오븐 에 구운 것을 더 선호하긴 해서 의외이긴 했지만,어려운 주문은 절대 아니었다.

닭을 튀기는 것은 간단한 일이 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비전하. 곧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비전하께서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실바누스와 아이루고의 셰프들 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방을 나 섰다.

반면 타르칸과 라우넬리안의 기분은 착잡했다.

‘프라이드치킨이라니.’

‘조금 더 좋은 요리를 먹어도……’

그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눅눅하고 기름내가 심한 프라 이드치킨은 아무래도 하층민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임신한 동생 혹은 아내에게 가 장 좋은 것만 먹여 주고 싶었던 그들에게는 참 안쓰러운 일이었다.

유폐당해 제대로 된 음식을 먹 지 못하고 자라서 그런 음식을 찾나 싶어서 더더욱 가슴이 아 팠다.

‘드래곤의 레어에만 있다는 식 재료여도 다 구해다 주었을 텐 데.’

‘다른 사람은 평생을 바쳐도 구하지 못할 것들을 가져다줄

수 있는데.’

안타까워하는 그들의 마음과 달리 아리스티네는 설레어하며 치킨을 기다렸다.

라우넬리안과 타르칸이 자신을 짠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 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치킨의 위대함을 모르는 그들이 불쌍했으니까!

* * *

“황녀 전하.”

시녀의 부름에 입욕을 즐기고 있던 레타나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폐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선물을?”

“예,황제 폐하께서는 정말 전하를 귀애하시나 봅니다. 유일하게 선물을 챙기는 자식이 아닙 니까.”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아부에 레타나시아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아부성 짙은 발언이라고 해 도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폐하께서 보내신 선물이라니, 당장 확인해 봐야지.”

레타나시아가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물 이 좌악 흘러내렸다.

티 하나 없는 눈부신 나신에 시녀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시중을 들며 항상 봐 오는 모 습이었지만 마주할 때마다 감탄

이 나왔다.

천재라 불리는 최고의 조각가 가 백옥을 깎아 만들면 이럴까, 싶었다.

까다로운 주인을 모시고 있었 기에 그들은 감탄하면서도 빠르 게 손을 움직였다.

부드러운 수건으로 물기를 훔 치고 도톰한 배스로브를 레타나 시아에게 걸쳐 주었다.

레타나시아는 욕실을 나서며 시녀들에게 명했다.

“마사지 준비해.”

“예,황녀 전하.”

욕실을 나가자마자 황제가 보 냈다는 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수많은 드레스와 장신구 그리고 향수.

마치 유명 디자이너의 VIP 부 티크에 들어선 것과 같은 광경 이었다.

레타나시아는 옷과 장신구를 살펴보더니 픽,웃었다.

“부황께서 아주 작정을 하셨군.”

드레스는 하나같이 가슴이나 등이 깊게 파여 있었고,망사 레이스로 된 것들이 많았다.

“이 목걸이 좀 봐.”

레타나시아가 웃으며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목 근처에 가져다 대자 벌어진 배스로브 앞섶 사이로 금빛 체 인이 흐르듯 떨어져 내렸다.

저렇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이 런 목걸이를 착용하면 시선이 어디에 집중될지 뻔했다.

‘하여간 천박하다니까.’

레타나시아는 속으로 황제를 비웃었다.

남자를 유혹하랍시고 정말 이런 물건을 보내다니.

,하지만 이런 게 또 먹히기 마련이지. 사내들이란.’

천박한 건 싫다, 음전한 게 좋 다 하면서도 가슴을 드러내고 가져다 붙이면 아주 손쉽게 넘 어갔다.

무엇보다 레타나시아는 천박해 보일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됐다.

타고난 기품과 고귀함이 천박 은커녕 차림새마저도 고급스럽 게 만들어 줄 테니까.

레타나시아는 속이 훤히 다 비치는 망사 레이스를 손으로 살 살 쓸다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한번 입어 봐야겠어.”

그 말에 시녀들이 일사불란하 게 움직였다.

마도구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제거한 후 배스로브를 벗기고 옷을 준비했다.

순식간에 레타나시아는 황제가

선물한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되었다.

“목걸이는 이걸로.”

“예.”

“귀걸이는 다른 걸로 해. 실제 로 입을 땐 머리카락을 다 올려 서 목선과 가슴,등을 다 드러낼 거니까.”

“알겠습니다.”

시녀들은 정중히 답하면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레타나시아는 사랑스러운 황녀님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단장 을 하곤 했다.

머리카락도 업스타일보다는 자 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것을 선호 했다.

장신구 착용까지 마친 뒤 레타 나시아는 잠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시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워낙 사랑스러운 외양의 황녀 님이라 안 어울릴까 걱정했는데 웬걸,처음부터 레타나시아를 위 해 만들어진 옷처럼 잘 어울렸

다.

사랑스럽고 귀엽게 꾸미고 다 녀서 그간 잘 몰랐을 뿐, 레타나 시아는 이미 성숙한 여인이었다.

“어때?”

레타나시아의 물음에 시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감히 아름답다고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십니다.”

“그간 이런 스타일은 왜 안 하 셨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어울리세요.”

“벌써부터 어떤 식의 화장이 좋을지 영감이 떠오릅니다.”

“사교계에 또 새로운 유행이 생기겠군요.”

시녀들의 말에도 레타나시아는 딱히 반응이 없었다.

당연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빙그르르,몸을 돌렸다.

그 움직임에 시녀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터닝이 우아하고 기품 있으니 저렇게 파이고 붙는 옷을 입었는데도 경박해 보이지 않았다.

“남자들은?”

“예?”

예상치 못한 질문에 시녀들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답답했는지,레타나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남자들의 반응은 어떨 거 같아?”

“남자들은 당연히 황녀 전하의 앞에 무릎을 꿇겠지요.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요.”

“황녀 전하와 춤 한 번이라도 춰 보고 싶어서 사족을 못 쓸 겁니다.”

“한데 그건 평소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딱히 신경 쓰이는 부 분이 있으신지요.”

레타나시아는 대답 대신 다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여자라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완벽한 미인이 서 있었다.

단장을 다 한 것도 아니고 옷과 장신구만 걸쳤는데도 그랬다.

남자라면 이성을 잃기 충분한 모습.

‘그래,이 정도면 충분하지.’

레타나시아는 낮에 보았던 이복 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더 예뻐졌어.’

살이 붙어서 그런지,제대로 된 옷을 입어서인지,아니면 사랑을 해서 그런지.

‘사랑?’

레타나시아는 자신의 마지막 생각을 비웃었다.

‘언니, 똑똑하신 분이 정말 사랑 따위를 하는 건 아니겠죠. 사실이라면 정말 실망할 거 같은 데.’

그녀는 가슴골 사이로 내려온 목걸이를 쓸었다.

‘진짜 타르칸 왕자를 사랑한다면……. 이거 어쩌죠?’

비릿한 비웃음이 그녀의 얼굴 에 떠올랐다.

‘언니를 슬프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이것도 인생 공부다.

비록 나이는 제가 더 어렸지만 갇혀 살아 세상을 모르는 아리스티네보다야 자신이 인생 선배 라 할 수 있다.

‘공부,제가 제대로 시켜 드릴 게요. 그래도 반쪽이나마 피가 섞였는데 도와 드려야지요.’

쿡,하고 웃은 레타나시아가 시녀들에게 명했다.

“기자들을 섭외해.”

“내일 아리스티네 언니의 병문 안을 갈 거야.”

시녀들은 모두 레타나시아의 수족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병문안을 간다는 사람이 왜 기 자들부터 부르라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들은 반문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언니가 아프다는데 내가 안 가 볼 수가 없지.”

레타나시아의 붉은 입술이 완벽한 호선을 그렸다.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비전하!”

“황녀 전하,프라이드치킨을 가져왔습니다!”

아이루고와 실바누스의 셰프들이 앞다투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리스티네는 두근거리는 마음 으로 그들이 끌고 있는 트롤리를 바라보았다.

클로슈에 덮여 있어 치킨의 아리따운 자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그래서 더 기대가 됐다.

사실 이 세계에서 태어난 뒤 닭을 튀긴 건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했다.

유폐당했을 때는 그런 음식조 차 사치였고,아이루고에 와서는 여러 닭 요리를 많이 먹긴 했지만 그중에 치킨은 없었다.

‘무슨 맛일까……!’

치킨은 전생의 자신이 가장 좋 아하던 음식이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도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비록 맛은 모르지만,아니,오히려 그렇기에 아리스티네의 상상 속에서 치킨은 최고의 음식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그렇게 먹었을까.’

아리스티네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홀로 지냈다.

우연히 보이는 다른 사람의 현재,과거,미래를 보고 곱씹으며 외로움 달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시간을 전생을 보며 지냈다.

전생은 원하는 때 마음대로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전생에서 날이 더우면 덥다고,추우면 춥다고,기분이 꿀꿀하다면 꿀꿀하다고,기쁘면 기쁘다며 나오는 것이 치킨이었다.

즉,아리스티네는 성장 과정 내내 남이 치킨 먹는 것만 지켜보다가 드디어 치킨을 직접 영접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치느님……!’

전생의 자신이 치킨을 볼 때 외쳤던 말을 그대로 외치며 아리스티네는 직접 클로슈를 열었다.

그리고.

“우욱!”

갑자기 확 풍기는 닭 비린내에 아리스티네는 입을 틀어막았다.

닭 비린내뿐만이 아니라 기름이 전 냄새가 났다.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전생의 나는 이런 걸 맛있게 먹었단 말이야?’

단순히 입덧 중이기에 역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타르칸과 궁인들이 정성 들여 맛난 것만 먹인 상태라서 아리스티네는 저절로 미식을 즐기게 되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임신 중이 아니어도 맛없다.

“비,비전하,괜찮으십니까?”

아이루고의 셰프가 당황해서 물었다.

“보면 몰라?”

라우넬리안이 성을 내며 아리스티네가 떨어트린 클로슈를 집어 접시에 덮었다.

아리스티네가 숨을 골랐다.

냄 새가 사라지자 울렁거리던 속이 가라앉았다.

“여기 물.”

타르칸이 건네는 물을 마시고 좀 진정하자 실바누스의 셰프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비전하,아직 식욕이 사라 지진 않으셨는지요.”

걱정하는 어조에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그가 가져온 접시의 클로슈를 열었다.

“괜찮아. 한번 먹어 볼一

그리고 열자마자 다시 닫았다.

숨을 고른 아리스티네를 보는 타르칸과 라우넬리안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리네가 먹고 싶어 하는 것도 제대로 못 만드는 거냐!”

채찍 같은 일갈에 셰프들이 몸 을 떨었다.

“저,저희는 프라이드치킨을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만들었을 뿐인데……”

“최대한 정석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억울해하는 그들의 항 변이 두 남자에게 먹힐 리가 없 었다.

“그래서 잘했다는 거냐?”

“원래 임산부의 입맛은 1분이 지나면 바뀌기 마련이다.”

“모든 음식을 내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대령 했어야지!”

“지금 내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한 지 한 시간이나 지났다.”

“한 시간이라면 입맛이 276번은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지.”

언제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렸 냐는 둣 쿵짝이 잘 맞는 두 사 람이 었다.

셰프들은 오들오들 떠는 수밖 에 없었다.

뭔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눈 돌아갈 정도로 잘 생긴 미남 둘이 당당한 태도로 윽박지르자 그냥 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 같았다.

“시,시정하겠습니다!”

“모든 음식을 1분 내에 대령하 도록 하겠습니다!”

대답하긴 했지만 참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두 남자는 흥,하고 팔짱을 꼈다.

“당연하지.”

“이번만 봐준다.”

셰프들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사표 낼까…….’

그때 숨을 고르던 아리스티네 가 중얼거렸다.

“아니야……”

“응? 아니라니?”

“무슨 뜻이야?”

두 남자가 재깍 반응했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라고.”

그 말에 셰프들의 눈동자가 감동으로 흔들렸다.

슈퍼 갑의 부당한 요구에 찍소 리도 못 하고 있었던 차다.

그런데 우리 비전하,우리 황 녀 전하께서는 본인이 힘든 와 중에도 그 부당함을 지적하시다 니!

‘역시 우리 비전하셔……’

‘황자님께 사표 내고 황녀님을 따를래…….’

그들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며 감격하는 순간이었다.

“이건 나의 치느님이 아니야!”

아리스티네가 빽 소리를 질렀다.

“네?”

“응?”

“치느님……?”

사람들이 당황해서 아리스티네 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치킨은 이렇지 않아! 색도,모양도,냄새도 완전히 다 다르다고!”

이런 걸 프라이드치킨이라고 부르다니,이건 치느님에 대한 모욕이다!

아리스티네가 발끈했다.

이건 종교 전쟁이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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