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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46화 (146/183)

146화

“황자 전하,레타나시아 황녀님 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말에 라우넬리안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뭘 그런 것까지 보고해? 쫓아 내.”

“하,하지만……”

시종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라우넬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아는 시종은 ‘아무리 그래도 황녀 전하신데 어찌 저희 가 쫓아냅니까’라는 답답한 소리를 할 위인이 아니었다.

“왜.”

“……기자들이 따라붙었습니다. 이미 아리스티네 황녀님의 병문안을 간다고 궁에서 출발할 때 부터 행선지를 밝혔다고 합니다.”

“아주 작정을 했군.”

“어찌할까요. 이대로 문전박대 하면 그대로 보도가 나갈 텐데요”

라우넬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들여보내.”

그렇게 말하며 그는 펜을 내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리스티네를 만나겠다고 설치 기 전에 재빨리 내보낼 생각이 었다.

레타나시아는 육중하게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언론 플레이는 혼자만 하는 줄 아나 본데,이쪽에서도 마찬 가지라고.’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마차 창문을 열었다.

사진을 찍는 소리가 더 거세진다.

“그러면 저는 이만 들어가 볼 게요. 날이 제법 쌀쌀한데 서 계 시지 마시고,어디 들어가 계세요”

“그 말씀은 병문안 후 인터뷰에 응하시겠다는 뜻입니까?”

레타나시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이지요. 제국민이 아리스티네 언니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고 있는데,당연히 알려 드려 야지요.”

“그럼 지금 황녀 전하께서도 아리스티네 황녀 전하의 용태를 모르시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그 말에 레타나시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처연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네,부끄럽습니다만…. 라우넬리안 오라버니께서 워낙 아리스티네 언니를 소중히 여기시니까요. 물론,저도 그 마음은 이 해해요. 아무래도 저는……”

모친이 다른 이복 남매니까요.

레타나시아는 뒷말을 생략하고 입을 다물었지만,이 자리에 있는 모든 기자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뭐야,황자와의 불화설이 사실 인가?’

‘어렸을 때부터 이복 남매라서 둘째 황녀가 따돌림당했다던데…….’

최근 갑자기 도는 소문이었다.

기자들이 펜대를 바쁘게 놀렸다.

“저,언제쯤 귀궁하실 예정이신 지요?”

“글쎄요. 간만에 언니를 만나는 거라 회포를 풀고 싶은데…. 언니 상태가 안 좋으면 오래 있는 게 실례니까요. 그럼.”

레타나시아의 말이 끝나는 것 과 동시에 마차가 천천히 정문을 지났다.

창문을 닫은 레타나시아는 홋, 하고 웃었다.

‘좋아. 이걸로 기자들은 계속 저택 앞에서 기다리겠지.’

인터뷰를 할 거란 떡밥을 던져놓고 들어가는데 안 기다리고는 못 배길 터.

이윽고 마차가 거대한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저는 오라버니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 아리스티네 언니의 병문안을 온 건데요.”

레타나시아가 딱딱한 미소를 지으며 따지듯 라우넬리안에게 말했다.

“말했잖아. 아파서 누굴 만날 상태가 아니라고. 환자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라우넬리안의 보랏빛 눈동자가 차가운 경멸을 담고 레타나시아를 쏘아봤다.

“사람도 못 만날 정도라니. 어 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걱정되니 무슨 병인지라도 알아야겠어요.”

“네가 뭔데?”

라우넬리안이 날카롭게 웃었다.

레타나시아의 눈매가 꿈틀했다.

그러나 그녀는 분노하는 대 신 미소 지었다.

“지금 밖에는 기자들이 쫙 깔려 있어요. 들어오자마자 축객령 이라니, 제가 나가서 어떤 말을 할지 생각은 안 해 보셨나 봐요?”

그 말에 라우넬리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역시 성가시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그가 언론을 움직여 황제의 발 을 묶었던 것을 되돌려 주듯 레타나시아가 기자들을 움직였다.

“목적이 뭐야. 진짜 병문안 온 것도 아니잖아.”

“아이참,무슨 말씀을. 언니가 걱정되어서 온 거라니까요.”

레타나시아가 쿡쿡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언니가 정 아파서 저를 못 볼 정도면一.”

말끝을 끈 그녀가 생긋 웃었다.

“형부라도 봐야겠어요. 우리 가족이 된 건데 어제 잠깐 스치둣 얼굴 본 게 전부잖아요?”

라우넬리안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레타나시아를 바라보았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꺼림칙한 반응에 레타나시아가 미간을 찌푸렸을 때 라우넬리안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만나 보는 것도 좋겠 지.”

네 주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야.

라우넬리안은 뒷말을 삼키며 짙게 미소 지었다.

순진한 동생의 마음을 홀랑 가져간 타르칸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그래도 단 하나만큼은 인 정했다.

그가 세상 누구보다도 아리스티네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

‘물론 이 세상에서 내 동생을 가장 사랑하는 건 나지만.’

적어도 그다음 위치는 타르칸 놈에게 줘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던 차다.

‘뭐,앞으로 지켜봐야지. 임신한 내 동생을 혼자 둔 죄는 크니까.’

라우넬리안의 허락에 레타나시아는 당황했다.

‘이렇게 쉽게?’

라우넬리안의 미소 역시 꺼림 칙했다.

하지만 곧 그녀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기회를 잡았으니 놓치 지 않을 것이다.

레타나시아는 자신 있었다.

“아니,난 내 아내의 수발을 드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왜........”

타르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내를 끌어안고 함께 배를 쓰담쓰담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던 차라 더 짜증이 났다.

〈그럼 리네랑 개를 만나게 하리? 그 계집은 우리 리네의 심신에도,아이의 태교에도 안 좋아〉

내켜 하지 않는 타르칸의 반응에 라우넬리안이 신경질을 부렸다.

타르칸은 라우넬리안이 이렇게 까지 레타나시아를 싫어하는 게 의외였다.

아리스티네는 제 이복 여동생에 대해 딱히 아무런 감정도 내 비치지 않았기에 더더욱.

〈리네는 그 계집 때문에 유폐 당했어.〉

〈리네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인간이야.〉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타르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타르칸 왕자님.”

그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 렸다.

여름의 종소리처럼 맑고 깨끗한 목소리였다.

레타나시아가 그를 향해 생긋 미소 지었다.

“라우넬리안 오라버니께서 바 쁘시다고, 왕자님께서 대신 정원을 안내해 주실 거라고 들었어요.”

타르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분명 레타나시아가 먼저 자신을 만나게 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는데.

왜 그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레타나시아의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타르칸과 눈이 마주친 레타나시아가 눈매를 휘며 살포시 미 소 지었다.

뭇 남성들을 잠 못 들게 만든 완벽한 미소였다.

“가을 정원이 이렇게 봄처럼 화려하다니. 어서 꽃향기를 맡고 싶어요.”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레 타나시아가 설레어하는 소녀처럼 뺨을 붉혔다.

‘자, 어서 손을 내밀어.’

그녀는 타르칸이 에스코트하길 기다렸다.

손을 잡으면서 균형을 잃은 척 그의 품에 안길 생각이었다.

물론 접촉하며 과거를 읽는 것은 덤.

‘아리스티네 언니가 꾀병이라는 증거까지 얻으면 금상첨화야.’

레타나시아가 수줍으면서도 요 염한 얼굴로 타르칸을 올려다보았다.

남자들은 그녀가 이렇게 바라 보기만 해도 서로 손을 내밀며 춤이라도 한번 춰 보고 싶어 안 달이었다.

타르칸 역시 마찬가지일 터.

그녀가 속으로 미소 짓는 순간이었다.

타르칸은 힐끗 그녀를 곁눈질하더니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레타나시아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멀어지는 타르칸의 뒷 모습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지,지금 나 까인 거야?’

에스코트는 당연한 신사의 예의였다.

‘이래서 야만인 놈은……!’

그녀가 입술을 콱 깨물었다.

하지만 더 화가 나는 것은 타 르칸의 눈빛이었다.

아무 감흥도 없는,아니 오히 려 더러운 것을 보듯 경멸이 담긴 눈빛.

레타나시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두고 봐.’

그녀가 타다닥 뛰듯이 걸음을 옮겼다.

“왕자님,같이 가요.”

타르칸의 옆까지 따라잡은 그 녀가 숨을 몰아쉬며 종달새처럼 말했다.

“제 보폭이 작아서 왕자님과 이렇게 차이가 나네요. 왕자님은 정말 키도 크시고 멋있…… 아,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레타나시아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머리 위로 타르칸의 시선이 느 껴졌다.

레타나시아는 고개를 수그린 상태로 미소 지었다.

결국 타르칸도 사내였다.

까칠하게 굴더라도 자신 같은 미인이 사근사근하게 굴면 결국엔 넘어오고 마는 것이다.

그녀는 표정을 바꿔 아련한 눈으로 타르칸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왕자님이셨군요.”

가을 햇살 아래 그녀의 금발과 연둣빛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났다.

“그땐 왕자님인지 몰랐어요. 그도 그럴 게 그런 곳에 혼자 계셨으니까…”

이어지는 말에 타르칸이 미간 을 찌푸렸다.

지금 레타나시아의 말은 이상 했다. 아니,지금뿐만 아니라 저 번에도 이상했다.

“무슨 말이지.”

“……저 기억나지 않으세요?”

레타나시아가 가날픈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왕자님을 처음 보는 순간,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분이라는 걸 알아봤는데.”

타르칸을 올려다보는 커다란 연두색 눈에는 상처와 기대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대마수로부터 날 구해 준 나의 왕자님.”

마치 이끌리듯 타르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레타나시아가 그의 팔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정말로 왕자님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며 은근슬쩍 몸을 타르칸 에게 붙였다.

“알았다면 내가 왕자님의 비가 되었을 텐데.”

붉은 입술이 속삭였다.

* * *

“비전하!”

“황녀님!”

궁인들과 시녀들이 애타게 아리스티네를 불렀다.

그러나 아리스티네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레타나시아가 왔다니.’

시녀들의 행동이 이상해서 캐묻다 알아낸 결과였다.

‘레타나시아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만나는 건 위험해.’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티네가 테라스로 나갔을 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타르칸과 레 타나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당장 가까이 가 남편을 구해 오려고 했던 아리스티네의 발걸음이 멎었다.

“비전一.”

그리고 그렇게 급하게 걸으시면 안 된다고 말리려던 궁인의 목소리 역시 멎었다.

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타르칸과 레타나시아를 바라보았다.

타르칸을 애틋하고 아련한 눈 으로 올려다보는 레타나시아의 모습이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때 레타나시아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마수로부터 날 구해 준 나의 왕자님.”

그 말에 아리스티네의 눈이 흔 들렸다.

‘뭐지? 어떻게 그걸 레타나시아가……’

레타나시아가 아리스티네인 척 행세하는 것도 기가 막혔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그 일에 관해 알고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아리스티네의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타르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레타나시아가 그에게 찰싹 달라 붙었기에.

“아니,저 요망한 년이 어디다 가슴을 붙여!”

“옷 입고 온 것 좀 봐요. 살이 다 비치네!”

레타나시아는 새하얀 레이스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기품 있고 청순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섹시하고 야릇했다.

“작정하고 왔네!”

아이루고 궁인들이 소리를 낮춘 채 씩씩거렸다.

“타르칸 전하께서는 대체 뭘 하는 거죠?”

“어떻게 우리 황녀님을 두 고……”

실바누스의 시녀들 역시 도끼 눈을 뜬 채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리스티네에게는 주변 의 소란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타르칸의 팔을 꼬옥 잡은 채 연인처럼 속삭이는 레타나시아의 모습만이 선명했다.

‘왜.’

아리스티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 뿌리치지 않는 거야.’

사실은 답을 알고 있었다.

아리스티네 본인이 봐도,그때 어렸던 자신의 모습하고 레타나 시아는 꼭 닮았다.

머리카락 색도,눈 색도 다른 자신보다 훨씬 더.

타르칸이 레타나시아를 제 첫 사랑이라 오해해도 할 말이 없 었다.

이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왜,왜 가만히 듣고 있는 거야? 진짜는 나인데,거짓말하는 건데, 왜 못 알아봐?’

몇 초 지나지도 않은 이 순간이 아리스티네에겐 길고 고통스 럽게 느껴졌다.

동시에 아리스티네는 자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만약 타르칸이 오해해서 레타 나시아에게 간다면.

그 상상만으로 가슴이 쥐어 짜 이듯 아팠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절망 에 빠트리는 것은一.

‘타르칸이 오해해도 풀 방법이 없어.’

왜 하필이면 눈과 머리카락의 색이 레타나시아와 똑같이 변했던 것일까.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숙인 순간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널 구해 줬다고.”

어이없어하는 타르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레타나시아는 당황해서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기,기억 안 나세요? 어렸을 적에 마수 평원에서一.”

“아니, 아니. 당연히 기억하지. 기억못 할 리가 없지. 잊을 수 조차없는데.”

그를 잠 못 들게 만든 첫사랑 을 잊을 리가.

“근데 그거 너 아니잖아.”

그 말에 레타나시아가 애써 미소 지었다.

그녀가 읽은 기억에서 그는 최근까지도 그 첫사랑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생긴 것도 닮고 기억도 가지고 있으니 승산이 있다.

“아니라니요. 제 얼굴을 보세 요. 저는一.”

“네 얼굴 보고 하는 말인데.”

타르칸이 툭 내뱉었다.

“넌 못생겼잖아.”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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