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넌 못생겼잖아.”
타르칸의 말에 레타나시아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들은 것 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무슨……”
“너 못생겼다고.”
망설임 없이 이어진 확인 사살에 레타나시아는 비틀거렸다.
무 릎에 힘이 빠질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못생겼다고? 이 내가……?’
레타나시아는 살면서 단 한 번 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에 어떻 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도 그녀의 미모를 칭송하며 찬양했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넌 못생겼잖아.〉
넌 못생겼잖아. 못생겼잖아. 못 생겼잖아. 못생겼…….
못생겼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쉼 없이 메아리쳤다.
충격이 가시자 용암 같은 분노 가 차올랐다.
“눈이 뻔 거 아냐? 아니면 못 생겼다는 말의 뜻도 모르는 멍청이야?”
레타나시아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타르칸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를 유혹해 아리스티네와의 불화를 조장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갔다.
난생처음으로 받는 취급에 이 쪽으로 면역력이 없는 레타나시아는 항상 쓰고 있던 가면을 집어던졌다.
“그러는 본인은 잘생긴 줄 아 나 보지? 마음에도 없는 칭찬한 건데 진짠 줄 알았나 봐?”
“아,그런 소리 했었나?”
흥분한 레타나시아와 달리 타르칸은 느긋하게 되물었다.
비딱한 자세가 어디서 개가 짖나,하는 태도였다.
“난 내 아내 말 아니면 귀담아듣지 않아서.”
“뭐?”
“너한테 잘생길 필요 없어. 난 내 아내한테만 잘생기면 돼.”
그렇게 말한 타르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아내에게 잘생겼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가슴은 좋아하는 게 확 실한데,얼굴은 취향이 아닌 건가.
황당한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레타나시아를 앞에 두고 타르칸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명백히 딴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에 레타나시아는 뒷목이 땅겨 왔다.
길가의 돌멩이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녀가 뭐라 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이었다.
“맞아. 내 남편은 나한테만 잘 생기면 되지.”
들려오는 목소리에 레타나시아 가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걸어오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이 보였다.
뒤로는 실바누스 의 시녀들과 아이루고의 궁인들 이 보좌하고 있다.
레타나시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리스티네는 황녀이면서 부리는 시녀 한 명 없던 처지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시중을 받 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였다.
마치 그렇게 타고난 것처럼.
과악,레타나시아가 주먹을 쥐었다.
상상치도 못했던 타르칸의 반응에 사라졌던 이성이 다시 돌아온다.
레타나시아가 생긋 웃으며 아리스티네를 반겼다.
“아리스티네 언니,몸은 괜찮으신 거예요? 병문안을 받기 힘들 정도라고 들었는데.”
“보다시피 병문안은 받을 수 있는 상태란다. 다만 정말 병문 안을 온 사람만 환영할 뿐이지.”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레타나시아를 훌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은 누가 봐도 병문안을 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아이참,언니도. 마음이 중요 하지 옷이 뭐가 중요한가요. 오랜만에 외출하는 것인데 명색이 황녀가 초라한 차림으로 궁을 나설 순 없잖아요.”
생긋 웃은 레타나시아가 아차, 하고 입을 가렸다.
“아,언니는 이런 거 잘 모르시죠.”
유폐당했던 것과 사가의 영애들보다도 더 초라한 차림이었던 아리스티네에 대한 조롱이었다.
“제가 외출하면 기자들이 따라 붙거든요. 오늘도 조용히 나오려고 했는데 참 난감했어요. 물론 관심은 감사하지만요.”
“기자들과 관계가 꽤 좋나 봐?”
아리스티네의 물음에 레타나시아가 홋,하고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무래도 그렇죠?”
기자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 은 곧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뜻했다.
당연히 아리스티네가 질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 는 아무 사감도 없는 눈으로 신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그럼 너도 네 사진 수백 장 찍어서 기자들한테 돌리고그래?”
“네?”
레타나시아의 얼굴이 확 붉어 졌다.
“아니야?”
“……그건 황실 대외부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라서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레타 나시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뭐야,자기는 그런 거 안 해도 알아서 기사화된다는 거야?’
한 방 먹었다고 생각하니 짜증 이 났다.
“아무튼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걱정했어요. 하긴,딱히 걱정할 일이 아니긴 했죠? 그 반대면 모를까.”
레타나시아가 묘한 말을 덧붙 이며 아리스티네에게 다가갔다.
사이좋은 척 그녀의 손을 잡으 려고 했다.
제게로 뻗어지는 새하얀 손을 보는 순간,아리스티네는 아까 이 손이 타르칸의 팔을 잡던 것을 떠올렸다.
“언니?”
아리스티네가 팔을 뒤로 물려 허공을 움키게 된 레타나시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리스티네를 불렀다.
“왜 그러세요? 제가 뭐 실수라 도 했나요?”
레타나시아가 다시금 아리스티네의 손을 잡으려 했다.
‘응?’
아리스티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손을 완전히 물렸다.
그리고 레타나시아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의심과 낭패감, 곤혹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흐음……’
아리스티네는 관찰했다는 기색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으며 일부러 감정적인 어조로 말을 내 뱉었다.
“실수했냐고? 그런 말이 나와? 내 남편을 붙들고 속살거리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사실 일부러 애쓸 필요도 없었다. 생각하니 다시 화가 났으니 까.
“아,그건……”
레타나시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일이 귀찮게 됐다.
타르칸은 아내가 질투해 준 건가 싶어서 조금 설랬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아리스티네의 눈매가 뾰족해졌다.
뭘 좋아하고 있어! 붙잡자마자 뿌리쳤어야지!”
“아니,신기해서 살펴보느라 나도 모르게……”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에 아리스티네가 눈살을 찌푸렸다.
“신기하다니,대체 뭐가 그렇게 신기했는데?”
“그래도 자매인데 하나도 안 닮은 게.”
그 말에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레타나시아가 순하니 사랑스러운 눈매를 갖고 있다는 차이는 있었지만,그녀와 자신은 꽤 닮은 편이었다.
“하나도 안 닮았다고?”
“ 응”
대답한 타르칸이 레타나시아를 봤다.
“못생겼잖아. 실바누스 제일의 미녀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고 알고 있는데.”
거짓 한 톨 없이 오롯이 진심 만이 담긴 목소리였다.
아리스티네는 유치한 걸 알면 서도 조금 기분이 좋아지려 했다.
그녀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 써 내리누르며 큼큼, 헛기침한 후 물었다.
“나는?”
“너는……”
타르칸의 시선이 다시 아리스티네를 향했다.
가만히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뺨이 조금씩 발그레해 졌다.
그 모습을 보는 아리스티네의 뺨 역시 발그스름해지기 시작했다.
“왜 대답 안 하는데.”
“알잖아.”
갑자기 둘만의 세계에 빠져든 부부가 아웅다응하기 시작했다.
레타나시아는 병풍이 된 느낌 으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말 안 하면 모르는걸.”
입술을 비죽 내미는 아내의 모습에 타르칸이 소리 없이 신음을 흘렸다.
그는 허리를 숙여 아내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펑,하고 터질 듯 빨개졌다.
“아,진짜 못 살아. 이런 데서 그런 말을! 아 진짜! 못 하는 말 이 없어!”
목덜미까지 빨개진 아리스티네 가 타르칸의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흐린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타나시아가 참지 못하고 아리스티네를 불렀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잊은 두 사람이 끝없이 알콩달 콩거릴 것 같으니까.
“언니.”
“너한텐 못 알려 줘. 이건 결혼한 사람만 들어야 해. 미혼자 청취 불가야.”
“아니, 알려 달라는 말이 아니었는데요.”
누가 그딴 걸 궁금해할 것 같냐.
레타나시아가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
제 존재를 잊은 것부터가 자존심 상하는데 아주 사람을 우습게 보고 있다.
애써 자신의 존재를 알린 레타나시아에게는 안타깝게도 부부 는 다시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 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기해서 뿌리칠 생각도 없었다는 거야?”
“그것도 있고. 어이없기도 해서”
“뭐가?”
타르칸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런 주제에 네 행세를 하잖아.”
그가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 도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도 얼굴 보라면서.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레타나시아가 허, 하고 기가 막힌 숨을 토해 냈다.
물론 이 세상에 서로만 존재하는 줄 아는 타르칸과 아리스티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다들 레타나시아랑 나랑 닮았다고 그러던데.”
“어디가?”
타르칸이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어느새 타르칸은 한 팔로 아리스티네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아리스티네는 그의 가슴팍에 기댄 채였다.
아리스티네는 부끄러운지 시선을 내리깐 채 괜히 검지를 그의 가슴팍에 대고 꼼지락거렸다.
“아까 말했잖아. 너랑 개는 ……. 다시 말해 줘?”
“아,진짜. 그런 말은 밖에서 하지 마.”
“그럼 안에서는 해도 돼?”
“……침대에서는.”
“침대에서는 또 다른 말이 하고 싶어지는데.”
쉴 새 없이 꽁냥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레타나시아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이건 절대 사이좋은 척하는 연기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정말 장미가 만발하고 일곱 색 무지개가 하늘을 수 놓은 세계에 있었다.
‘믿기지 않아.’
레타나시아는 결국 물을 수밖 에 없었다.
“아리스티네 언니,설마 해서 묻는 건데 진짜로 이 남자를 좋 아하는 거예요?”
제정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누가 그 질문을 듣고 사랑하는 척하는 거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만큼 레타나시아의 정신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생뚱맞은 질문을 하는 레타나시아를 황당하다는 눈으로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 았다.
그러나 그게 곧 대답이나 마찬 가지였다.
“뭐 이딴 남자를 좋아해?!”
레타나시아는 저도 모르게 소 리를 백 질렀다.
“이딴 야만인이 어디가 좋다고! 안목도,미적 감각도 없는 야만인이 뭐가 좋아서!”
감히 자신보고 못생겼다는 말을 한 남자였다.
“저는 잘생긴 줄 아나? 남자가 미끈한 맛이 있어야지,커다래서는!”
흥분해서 씩씩거리는 레타나시 아를 보고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타나시아,네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구나.”
“하! 언니 행세 하지 마시죠. 그래 봤자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데.”
레타나시아가 픽,비웃으며 한 쪽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그리고 인생 경험으로 치면 내가 선배 아닌가? 갇혀 살아서 세상 물정도 모르는 주제에 어디서! 일 몇 개 성공시켰다고 우쭐하지 말아요. 그 정도는 나도 할 줄 알아.”
곰곰이 그 말을 들은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내가 세상 물정은 잘 모 르는 거 같긴 해.”
순순한 인정에 레타나시아는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지만 난 유부녀잖니. 기혼자라고.”
아리스티네가 타르칸의 팔짱을 꼈다.
“남자를 보는 눈은 너보다 낫지”
레타나시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지금 못생겼다는 소리 들었다고 자길 무시하나 싶었다.
사교 파티에만 나가면 자신과 춤이라도 한번 춰 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남자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그런 건 제 입으로 말 하면 더 우스워지는 말이었다.
레타나시아가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동안 아리스티네의 말은 청산유수처럼 흘렀다.
“그래도 내가 네 언니 아니니. 네 언니로서 조언하마. 명심하렴.”
아리스티네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놀림당한다고 생각하는 레타나 시아의 착각과 달리,아리스티네 는 진심이었다.
“남자를 볼 땐 말이다. 그 무엇보다 一.”
보랏빛 눈이 예기를 띠고 반짝 였다.
진중한 눈이 레타나시아를 직시했다.
너무나 심각한 아리스티네의 모습에 레타나시아는 순간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갑작스레 아내의 취향을 듣게 된 타르칸이 귀를 종긋 세운 것 은 당연했다.
“마음을 봐야 해.”
마음.
레타나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딴 말이 나올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순간적으로 귀를 기울인 게 짜증이 났다.
“이러니까 언니가 세상 물정 모른다는 거예요. 마음이라니.”
그녀가 쯧,혀를 찼다.
“언니에게도 실망이에요. 저는 그래도 언니가 정치적 감각도 있고 능력도……”
레타나시아가 쏟아붓던 말을 일순 멈췄다.
복잡한 감정이 그녀의 눈빛에 스치고 난 뒤에야 말을 이었다.
“……능력도 출중하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남자를 볼 때 마음을 봐야 한다니.”
아리스티네를 바라보는 레타나 시아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여태껏 언니를 경계했던 제가 우스워지는군요.”
가만히 레타나시아를 바라보던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미혼은……”
“지금 저를一.”
“결혼할 남자의 세력과 정치력 을 생각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 이야”
아리스티네가 레타나시아의 말 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 신의 세력과 입지를 넓혀야 하 는,원하는 것을 혼자 스스로 할 수 없는 능력이 부족한 존재들 이나 하는 짓이지.”
능력이 부족한 존재들.
그 말을 듣는 순간,레타나시 아의 턱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아리스티네가 그런 그녀를 향해 생긋 웃었다.
“너는 알고 있지 않니? 적어도 나는 그럴 필요 없다는 걸.”
레타나시아의 연둣빛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역시.’
아리스티네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모처럼 하는 조언이니 꼭 새겨들어. 남자는 무조건 마음이 야.”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레타나시 아에게 아리스티네가 물었다.
때론 눈높이 교육이 필요한 법.
“자,마음은 어디에 담겨 있지?”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남편을 향했다.
정확히는 남편의 마음이 담겨 있는 빵빵한 가슴으로.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