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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50화 (150/183)

150화

“내,내가 언제?”

라우넬리안이 당황하며 제 뺨을 쓸었다.

“지금요.”

라우넬리안은 자신과 똑같은 빛깔을 한 동생의 눈을 바라보 다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맞추지 못한 채 그녀가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댈 수 있 도록 도와주었다.

아리스티네는 더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기에 라우넬리안은

초조함을 느꼈다. 결국 그의 입 술이 열렸다.

“타르칸이 크리세아꽃을 구하러 갔어.”

아리스티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데 모아진 크리세아꽃이 하나,하나 시들고 있었다.

그나마 그 시기를 늦추는 것은 성수 덕분이었다.

“저 귀한 성수를……”

“너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라우넬리안이 단언했다.

“칸이 크리세아꽃을 가져오는데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황제가 눈치챘어. 크리세아 궁의 병력이 강화됐다. 만만치 않아.”

“그런 곳에 칸을 혼자 보낸 거예요?”

동생의 물음에 라우넬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미안.”

보낼 땐 몰랐었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응?”

“내 남편은 그렇게 약하지 않으니까.”

아리스티네가 빙긋 웃었다.

걱정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두 눈동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애타는 마음이 느껴 졌다.

타르칸의 실력을 믿고 안 믿고 의 문제가 아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우넬리 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네,정말 타르칸을 사랑하는 구나.”

깨달음과도 비슷한 말에 아리스티네는 시선을 내렸다.

“타르칸은…… 제게 처음으로 외로움을 알려 준 사람이에요.”

아리스티네는 항상 혼자였다.

유폐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마 찬가지 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곁에 있었지만,어떤 의미도 되지 않았다.

황제가 그녀의 잠재력을 각성 시키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

주변의 도움이 있으면,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여기면 잠재력은 꽃피우지 못한다.

하루라도 빨리 아리스티네를 각성시키고 싶어 했던 황제는 그녀의 주변에서 사람을 없앴다.

시중드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바뀌고 아무도 아리스티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가끔씩 라우넬리안이 몰래 숨 어들어 왔다.

하지만 들켰을 때 그가 어떤 벌을 받는지 알게 된 후로 아리스티네는 그가 찾아와도 외면했다.

외롭다는 말을 알기 전부터 외 로웠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어느새 깊게 박인 굳은살처럼 단단히 자리 잡아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 지 않았다.

그리고 타르칸을 만났다.

“혼자 잠자리에 드는 게 낯설었어요. 그다지 큰 침대도 아닌 데 차갑고 넓게 느껴졌어요.”

혼자 저녁을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었다.

“그래.”

라우넬리안이 미소 지으며 아리스티네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었다.

이상한 미소였다.

대견하고,서운하고,뿌듯하고, 섭섭하고,안도하고,아쉬운 미소.

“내 동생에게 가족이 생겼구나.”

고위 귀족은 물론이고 황족과 왕족들은 정략혼을 한다.

결혼한다고 해서 상대와 가족 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도 타르칸을 가족으로 인정해야지.”

라우넬리안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리스티네의 마음이었다.

동생에게 이런 마음을 알려 준 남자인데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응,두 사람이 친하게 잘 지 냈으면 좋겠어요.”

“친하게 잘…… 말이지.”

라우넬리안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열게 웃은 아리스티네의 눈에 침대 머리맡에 놓인 대야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열이 올랐을 때 라우넬리안이 간호해 준 흔적인 듯 했다.

“오라버니도 바쁘실 텐데 이런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지.”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대야에 담긴 수면이 흔들렸다.

제왕안이 발현할 징조였다.

아리스티네는 숨을 죽였다.

그때, 라우넬리안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리네,타르칸이 실바누스 황실의 능력이나 권능에 관 해 알고 있던데.”

아리스티네는 흔들리는 수면에서 고개를 들어 라우넬리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아리스티네는 그가 눈치챘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우넬리안은 머리가 좋은 남자였다.

타르칸이 황실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이미 의심했을 것이다.

아리스티네가 왜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하고.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저의 권능인 제왕안에 대해 말하면서 알려 줬어요.”

라우넬리안의 눈가에 어쩔 수 없는 동요가 스쳤다.

곧 눈을 감은 그의 입술에서 침음과 함께 “역시……” 하는 말 이 흘러나왔다.

“오라버니까지 속이려던 것은 아니에요.”

알게 되면 라우넬리안이 위험 해질 거라는 생각은 하긴 했다.

동생이 학대당하는 것을 제가 혼나는 것보다 더 가슴 아파하던 어린 라우넬리안.

그가 아리스티네가 제왕안을 각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그 걱정에 입을 다물고 숨겼다.

하지만 일부러 그를 속이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을 뿐”

타르칸이 처음이었다.

아리스티네는 이제 잠잠해지기 시작한 수면을 바라보았다.

곧 수면 위에 이곳이 아닌 다 른 곳의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 했다.

수면 거울을 살피면서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타르칸에게 제왕 안에 대해 말했던 순간이 되살아났다.

* * *

〈그런데 어떻게 온 거야?〉

마수 평원,한쪽 천장이 폭 가 라앉은 막사 안에 나란히 누운 채 타르칸이 물었다.

아리스티네는 조금 생각한 후 에 되물었다.

〈옛날에? 아니면 어제?〉

〈둘다.〉

아리스티네는 잠시 침묵했다.

과연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 까?

진실? 혹은 거짓?

아리스티네는 흠,하고 숨을 내쉬며 타르칸을 향해 뒹굴 돌아누웠다.

타르칸이 자연스레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옛날에는 나도 잘 모르겠어.

“왜 갑자기 마수 평원으로 가게 되었는지,왜 내 머리카락 색과 눈색이 변했는지.”

아주 아팠고 정신이 없는 상황 에서 수면에 비친 장면을 보았다.

그 상태에서 수면을 건드리니 그대로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제왕안의 다른 능력인 걸까, 하는 의심이 안 든 것도 아니었다.

돌아와서 제왕안이 발현되었을 때 수면을 만져 봤지만 같은 일이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 었다.

그래서 아리스티네는 꿈으로 치부했다.

꿈으로 치부할 근거는 충분했다.

죽을 듯 고열에 시달렸는데 ‘저쪽’으로 건너가는 순간 고통이 사라졌던 것.

머리카락 색이 바뀌고 눈 색이 반전되었던 것.

그리고 마치 예지하듯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앞에 겹쳐 보였던 것.

모두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아리스티네는 땀에 젖은 이불을 몸에 감은 채 여전히 누워 있었다.

마치 꿈을 꾸고 깨어난 것처럼.

꿈이라고,실제로 일어나지 않 은 허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웠다.

꿈속의 그 소년이 대마수를 물리치는 것을 끝까지 보고 싶었다.

함께 기뻐하고 싶었다. 헤어지기 싫었다.

하지만 마지막 일격이 들어가 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아리스티네의 몸은 발 아래로 쑥 꺼졌다.

마치 수면 거울 안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처럼.

〈어제는 널 구하러 가는 길에 길잡이를 만난 거였고.〉

〈길잡이?〉

〈네 말 말이야.〉

〈그 녀석…….〉

타르칸은 자신의 군마를 떠올 리며 낮게 읊조렸다.

사람을 찾아가라고 했더니 아리스티네에게 간 모양이었다.

영특한 녀석이었지만,그 탓에 아리스티네가 그 위험한 곳으로 왔다고 생각하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리스티네가 손가락을 들어 타르칸의 미간을 슬슬 문질렀다.

〈칭찬해 줘. 잘 안내해 줬잖아? 덕분에 내가 헤매지도 않았고. 평원에서 너랑 못 만났을 때 가 더 큰일이야.〉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타르칸은 한숨을 내쉬며 아리스티네를 더 꽉 끌어안았다.

하지만 아리스티네의 설명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아직 의문 이 사라지지 않았다.

‘통신이 두절되는 상황에 위기 를 느끼고 원군을 끌고 왔다고 했지.’

다른 때도 아니고 그녀와 통신 하는 와중에 끊겼으니 불안할 만했다.

아리스티네는 전략도를 보며 토벌 전략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언제 어떤 공격을 할지 알고 있으니 통신이 안 돼도 그를 도우러 오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전략대로 흐르는 것은 아니지.’

타르칸이 대마수의 영역 안에 들어오는 것은 전략에 없던 일이다.

통신 두절로 인해 원군이 오지

않는,상정 외의 상황에 그가 순 간적으로 판단한 일이었으니까.

물론 지략이 뛰어난 아리스티네라면 그가 그런 판단을 내릴 것을 예상하고 움직였을 가능성 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타르칸은 귀환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 토벌을 서 둘렀다.

때문에 기존 전략상의 날짜와 실제 시행 시기는 달랐다.

훨씬 더 빨리 공격이 이뤄졌던 것이다.

과연 토벌이 얼마나 앞당겨졌 는지 예측하는 게 가능한가?

아리스티네가 토벌 과정을 짐 작할 수 있는 단서는 단 하나.

전략용 통신석이 먹통이 되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뿐이다.

그 대화로 아리스티네는 사단이 다 나뉘어져 있고 오로지 자칼렌만 타르칸의 곁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전략상 그렇게 움직이기로 한 전투는 딱 하나다.

‘하지만 그걸로 이렇게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아리스티네가 있어야 할 곳은 타르칸의 궁이 아니라 전략실이다.

〈궁금하다는 얼굴이네.〉

아리스티네가 씨익 웃으며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가르쳐 줄까,말까.〉

그녀의 손가락이 장난치듯 타르칸의 가슴 위에서 원을 그리 다가 대흉근을 꾹 눌렀다.

〈가르쳐 주면 내 소원 하나 이루어 줘.〉

그건 조건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타르칸은 아리스티네의 소원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고 싶었으 니까.

〈어떤 소원?〉

〈지금 말고 나중에.〉

아리스티네는 그렇게 답하며 웃었다.

웃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아리스티네는 평생 제왕안에 관해 숨기며 살아왔다.

아주 어렸을 적,처음으로 보 게 된 최악의 미래에 그렇게 결 정했다.

그런데 이렇게 가볍게 말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건가.

하지만.

‘타르칸이니까.’

아리스티네의 보랏빛 눈동자와 타르칸의 황금빛 눈동자가 마주 했다.

그이기에 난생처음으로 제왕안 에 대해 털어놓을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마음이 편한 것이다.

천천히,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열렸다.

〈사실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어.〉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

타르칸은 눈 아래 펼쳐진 크리 세아 궁을 내려다보았다.

황금빛 꽃이 물결을 이루며 만 발해 있었다.

아리스티네와 그의 아이를 구할 꽃이었다.

실바누스 황가의 권능과 능력.

마수 평원에서 아리스티네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는 실바누스의 직계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능력,‘권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

그 권능 탓에 아리스티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이제 그 권능 따위와 상관없이 마냥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현재,미래를 보며 골몰 하고 대비하고 불행을 막으려고 노력할 필요조차 없는,행복한 삶.

그런 삶을 제 손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어떤 권력자도 아리스티네 가 타고난 특별한 권능을 제 입 맛에 맞게 이용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울타리를 세워 주고 싶었다.

‘그건 나와 리네의 아이에게도마찬가지야.’

권능을 타고난 아이가 황제나 다른 권력자의 입맛에 맞춰 멋 대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지킬 것이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크리세아 궁을 내려다보는 타 르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황제가 작정한 것인지 군단이 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크리세아 궁에 잠입해 들키지 않고 꽃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두 송이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거니와 정원은 아무런 엄폐물 없이 키가 작은 크리세아꽃으로 만 이루어져 있다.

은폐 마법을 두르고 간다 해도 마법사나 오러를 사용할 줄 아 는 기사에게 들키는 건 마찬가 지였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강행 돌파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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