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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52화 (152/183)

152화

타르칸은 어찐지 자신감이 내 려갔다. 추욱,그의 어깨가 처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 는 기사들의 눈빛도 가라앉았다.

타르칸의 가슴에 난 실금 같은 상처를 아까워하는 모습이 참으로…….

기사들은 괜히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았다.

내상을 입어 피를 쿨럭쿨럭 토해 내는 것은 기본이요,입은 자상 역시 습격자보다 훨씬 깊고 컸다.

애인 없는 솔로 기사들의 눈망울이 서러워졌다.

열심히 싸웠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런데 저 꼴을 보고 있자니....

‘아니,목숨 걸고 싸울 만큼 진짜 세긴 한데……’

‘대단하긴 정말 대단한데,으음......’

이 물밀듯 밀려오는 후회란 무어란 말인가.

‘근데 아리스티네 황녀님? 황녀님 맞지?’

‘머리랑 눈 색은 왜 바뀌신 거야? 순간적으로 레타나시아 전하이신 줄 알았어.’

수군거리는 수하들의 목소리에 알라우트 백작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들의 말대로 아리스티네의 은빛 머리카락은 햇살과 같이 짙은 금발로 변해 있었고, 눈동자는 보라색과 보색을 이루는 연둣빛이었다.

‘저건 설마……’

알라우트 백작이 마른침을 꿀 꺽 삼켰다.

고위 귀족인 그는 저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허황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인지라 보고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가 동요하는 사이에도 기사들의 속닥거림이 계속되었다.

‘근데 황녀님은 대체 여긴 어 떻게 오신 거지…….’

갑자기 뽕,하고 나타났다.

눈앞에서 보고도 이해할 수 없 었다.

‘진짜 모르겠다…….’

‘사랑의 힘……?’

‘가슴의 힘?’

가슴의 힘이라니…….

기사들의 눈빛이 서먹해졌다.

‘알고 싶지 않아…….’

때로는 그냥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다.

본격적인 격돌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기사들은 습격자의 정체가 아이루고의 왕자인 타르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의 무위를 지닌 자는 극히 드물었다.

거기다가 황금빛 오러까지 있 으니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는 게 힘들었다. 명확한 증거가 없을 뿐.

가히 대륙 최고의 무력이라 할수 있는 존재와 검을 맞댄다는 생각에 피가 끓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얼굴은 인 생의 모든 번뇌를 내려놓은 현 자와도 같았다.

전투의 흥분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아리스티네는 달랐다.

‘정말……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그녀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 었다.

가슴의 생채기를 보며 어쩔거냐고 호들갑을 떨었지만,진심이 아니었다.

그러지 않으면 목 놓아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엉엉 울면서 나 두고 가지 말라고 매달릴 것 만 같아서.

수면 거울에 타르칸의 뒷모습 이 비치고 무방비 상태인 그를 향해 검격이 휘둘러졌을 때.

새빨간 피가 눈앞을 물들였을 때.

아리스티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짓누르는 듯한 몸의 통증도 잊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 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 게 손을 내뻗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정말로 타르칸이 눈앞에 있었다.

어렸을 적의 그때처럼.

생각에 잠길 틈도 없었다.

붉은 피가 눈앞에 선명해 그녀는 순간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몇 초 되지도 않는 그 짧은 순 간이 그녀에겐 영원처럼 느껴졌다.

타르칸이 다친다면, 죽는다면, 눈앞에서 사라진다면.

입술이 발발 떨리고 아무 생각 도 들지 않았다.

옛날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렇 게 거울을 통과한 상태에서는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을 텐데.

지독한 한기가 전신을 지배해 온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아리스티네가 감당할 수 없는, 처음으로 맛보는 지독한 고독.

내게 외로움이 뭔지 알려 주었으면서,그러면 나를 외롭게 두 지 말아야 하잖아.

걱정으로 애가 타다 못해 원망 마저 들었다.

눈물이 왈칵 새어 나왔다.

그리고 타르칸이 그녀를 돌아 보았다.

마치 내가 널 외롭게 둘 리가없다는 것을 알려 주듯, 멀쩡한 모습으로.

그 순간 맥이 탁 풀릴 정도로 짙은 안도감이 찾아왔다.

진짜 크게 다치는 줄 알았다고 투덜거리려는 순간,가슴팍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멀쩡한 줄 알았더니 가슴에 상처를 달고 온 것이었다.

저 상처가 조금만 더 깊고 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타르칸은 이렇게 자신을 마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정말 모든 것 을 놓아 버리고 싶었다.

아리스티네는 가슴의 상처를 바라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날카로운 시선이 기사들을 향 했다.

“감히 황족에게 검 끝을 향하는 것인가!”

언제 가슴 운운하며 칭얼거렸냐는 둣 무게 실린 목소리에 기사들이 찔끔했다.

무표정하게 기사들을 바라보는 아리스티네에게는 황제에게 없는 위엄이 가득했다.

반사적으로 검을 내리는 이들이 있었으나 몇몇의 생각은 달랐다.

“저희는 황실 기사단이 아니라 황제 폐하의 명만 듣는 폐하의 직속 부대입니다!”

“폐하의 명은 크리세아 궁에 침입하는 자는 그 누구든,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검을 내렸던 이들도 다시 임전 태세를 갖추기 시작 했다.

아리스티네의 난입으로 느슨해 졌던 분위기가 이전보다 더 팽팽하게 조여졌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를 보호하듯 끌어안으며 검을 바투 잡았다.

기사들의 시선이 알라우트 백작을 향했다.

그의 명령만 떨어지면 다시 타르칸을 몰아세울 것이다.

아까의 오러 폭발로 내상을 입어 전력 손해가 있었지만,조금 쉬며 뒤틀린 기혈을 어느 정도 바로잡은 상태다.

저쪽은 아리스티네라는 혹이 있으니 움직임이 확연히 제한될 터.

‘승기는 우리 쪽에 있어.’

‘거기다 전투 사실이 알려졌을 테니 곧 지원 병력이 올 터.’

‘시간만 끄는 것으로도 이길 수 있다.’

수하들의 시선을 받은 알라우트 백작이 눈을 감았다 떴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열렸다.

* * *

“폐하,크리세아 궁이 습격당했다고 합니다!”

“오냐,그럴 줄 알았지!”

시종의 보고에 황제가 옳다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레타나시아에게서 아리스티네가 권능을 지닌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곧바로 오다니.

“아주 좋구나.”

황제가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 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들은?”

“대기 중입니다.”

“추가 병력은?”

“이미 그쪽으로 향하게 명했습 니다.”

“잘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이건 반역의 증거나 다름없다. 감히 황제가 거하는 궁에 무장 세력을 끌고 들어오다니!”

진노한 양 언성을 높였으나 황제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득했다.

라우넬리안과 아리스티네를 한 번에 보낼 기회였다.

귀환한 라우넬리안이 반역을 꾀하며 감히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잡아내려 해도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덮어놓고 처형시키려 해 도 여론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라우넬리안이 돌아오고 나서 유독 짜증 나게 구는 귀족들 역시 반발이 거셀 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놈이 망나니처럼 날뛰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아야 했다.

“하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야.”

황궁에 무력을 이끌고 온 라우 넬리안은 역심을 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본보기 삼아 산 채로 광장에 내걸어 살점을 까마귀에게 뜯어 먹히며 서서히 말라 죽어 가게 할 것이야.”

그럼 제게 대드는 귀족들도 조용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 귀여운 손주도 데려와야지.”

아리스티네에겐 이걸 빌미로 자식을 빼앗을 것이다.

역모를 저지른 죄,죽어 마땅 하지만 태중의 손주를 생각해 선처를 내리겠다고 하면 여론 역시 황제의 쪽으로 흐를 것이다.

“역시 내 딸은 똑똑하다니까.”

물론 황제가 말하는 딸은 아리스티네가 아니라 레타나시아였다.

레타나시아가 아리스티네의 임신 사실을 말하며 제안한 술수 였다.

아주 좋은 수였다.

이렇게 하면 아이루고 쪽에서 도 왕손을 찾겠다며 강력히 나올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지.’

하지만 굳이 그러겠는가.

타르칸은 대역죄를 지은 아리스티네와 파혼하고 새 아내를 맞으면 그만이다.

역당인 아리스티네와의 혼인을 유지하는 것이 그에겐 손해가 될테니까.

또,아리스티네의 배 속에 있 는 아이는 아이루고의 왕태손이 아니었다.

타르칸은 왕태자가 아니지 않 은가. 왕위 계승 서열 1위와 왕태자는 확연히 다르다.

‘아이루고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하며 지킬 아이가 아니라는 뜻이지.’

어쩌면 이 일로 하미르의 세력 이 다시 부상할 수도 있다.

‘내가 아이를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외조부되는 자로서 불쌍히 여겨 어미의 죄를 묻지도 않고 잘 키우겠다는 건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고있다.

황제는 미소 지으며 크리세아 궁으로 가는 마차에 올랐다.

* * *

크리세아 궁에 도착했을 때, 황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한창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지나치게 고요했다.

‘뭐지?’

의문은 곧 사그라들었다.

‘벌써 제압했나 보군.’

황제의 직속 부대는 꽤 공을 들여 투자한 무력 집단이었다.

‘돈값을 하는군.’

황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멀리서 각 잡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추가로 지원 온 병력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였다.

“이것 참,내가 내 아드님을 너무 과대평가했나 봐. 추가 병력 따위 필요 없었는데 말이야.”

황제가 픽,조소를 터트렸다.

이제 본궁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몇 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기대감에 가득한 황제에게는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윽고 기자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화려한 마차가 따라오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고운 여인이 황제를 보고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부황 폐하.”

“레아,네가 여긴 어떻게……”

“부황 폐하께서 숙원을 이루시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제가 빠질 순 없지요.”

황제의 곁으로 다가온 레타나시아가 소리를 낮춰 속삭이며 생긋 웃었다.

“그래,날 생각하는 자식은 너 뿐이구나.”

흡족해하는 황제를 보며 레타나시아가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황제를 축하해 주러온 것은 아니었다.

이 판은 레타나시아가 짠 것이었다.

제 쪽으로 공로가 돌아오도록 하려면 이 자리에 있는 편이 유리했다.

“이야기는 들었겠지?”

황제의 물음에 기자들이 고개 를 수그렸다.

“이 안에 감히 황궁을 습격한 역당의 무리가 있다! 용기 있는 자들이 병장기가 부딪치는 전쟁 터를 뚫고 역사적인 진실을 퍼 트리는 법. 준비되었는가?”

“예,폐하!”

기자들은 각오를 마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내는 달랐다.

사실 크리세아 궁은 이미 포위 되었으니 각오를 다질 것도 없었다.

이렇게 기자들을 부르고 기다리는 것부터가 그랬다.

게다가 안에서는 시끄러운 소리 하나 안 들리지 않는가.

기자들은 황제가 반역자의 사진을 찍어 만천하에 퍼트리길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역자가 누구일지는 예상 가능했다.

특종을 잡게 되었다는 기쁨 반, 그리고 라우넬리안의 반역이 실패했다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 반.

그런 애매한 상태로,그들은 크리세아 궁의 담벼락 앞에 섰다.

“좋다.”

황제의 눈짓에 시종이 크리세아 궁의 문을 열었다.

기자들은 경쟁적으로 궁 안으로 들어섰다.

안이 어떤 상태인지 보기도 전 에 사진 한 장이라도 더 건지고자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황금빛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무릎 꿇고 있는 기사들.

그들은 마치 대관식에서 새로운 황제를 맞이하듯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표표히 서 있는 존재.

황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 부꼈다.

신록보다도 더 빛나는 연둣빛 눈동자가 기자들을 향했다.

처음 보는 이였다.

아니,생김새가 익숙했다.

특히 기자들은 타국에 시집가 이런저런 일을 벌인 아리스티네에 대한 보도를 했기에 더더욱 익숙함을 느꼈다.

“아리스티네 전하……?”

긴가민가한 목소리에 아리스티네가 미소 지었다.

“뭐야? 왜 멈춰 있는 거야?”

황제는 제 생각과 다르게 홀러가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기자들이 먼저 들어가 분위기를 잡으면 천천히 들어가 자신 의 위엄을 뽐낼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그가 크리세아 궁 안으로 들어섰다.

레타나시아 역시 황제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너……”

황제의 입술이 벌어지며 신음 같은 말이 홀러나왔다.

그러나 그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은빛 머리카락이 금발로 바뀌고,눈동자의 색이 반전된 딸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 했으니까.

황제가 오래도록 꿈꿔 왔던 장면이다.

자신의 자식 중 한 명이 이런 변화를 이뤄 낼 수 있기를.

그래서 제 손에 모든 것을 안겨 주기를.

하지만 얻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오실 줄 알고 있었어요,부황 폐하.”

아리스티네가 생긋 웃었다.

그녀가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크리세아 꽃이 황금빛 빛무리를 터트렸다.

마치 제왕을 맞이하듯,자신의 몸을 누이고 빛을 뿜어내 그녀의 발걸음을 밝혔다.

“너,네년이……”

황제의 눈동자가 폭풍이 인 바다처럼 흔들렸다.

“네년이라니요. 말조심하셔야지요.”

아리스티네가 사르르 웃었다.

“신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실바누스의 정당한 황위 계승자 앞에서.”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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