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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54화 (154/183)

154화

아리스티네가 손을 들어 타르칸의 뺨을 쓸었다.

그가 아리스티네의 손을 꽉 잡으며 그녀의 손에 제 뺨을 묻었다.

촉,손바닥 안쪽의 오목한 곳에 뜨거운 입술이 닿는다.

아리스티네가 미소 지었다.

“리네.”

나지막한 목소리는 애틋하고 절절하게 끓고 있었다.

타르칸 역시 아리스티네가 어떤 기분인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눈을 맞추고 서로를 바라보고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옛날 모습대로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이 모습이 더 좋아?”

아리스티네의 말에 타르칸이 웃었다.

“넌 항상 예뻐.”

예쁘다는 말이 이렇게나 간질거리고 설레는 말이었던가.

타르칸의 눈빛과 목소리가 더 해지자 그 말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도 특별해졌다.

“그래서 난 널 보면 가슴이 뛰어.”

단단한 손이 아리스티네의 허 리를 휘감았다.

“네가 너인지 몰랐을 때도,네 가 너라는 걸 알고 있는 지금도.”

타르칸이 허리를 숙였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아리스티네의 금발과 섞여 들었다.

콧날이 살짝 스치고 모양 좋은 그의 입술이 열렸다.

“항상 너한테만 가슴이 뛰어.”

아리스티네는 눈을 감았다.

타르칸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호흡이 얽히고 아리스티네가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발치에서 빛을 발하던 크리세 아꽃이 흑,짙은 향기를 피워 올렸다.

황금빛 빛무리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핑그르르,소용돌이치 듯 날아올랐다.

찬란한 빛 사이로 두 사람이 눈을 맞췄다.

그리고.

“......?!”

그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언제 빛을 뿜어냈냐는 둣 고요 히 바람에 흔들리는 크리세아꽃 만이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 * *

타르칸은 이변이 감지되는 것과 동시에 아리스티네를 꽉 끌어안았다.

몸을 바쳐서라도 그녀와 아이를 보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一.

‘침대?!’

주변을 살펴보자 아주 익숙한 방 안이었다.

라우넬리안의 저택에서 아리스티네가 사용하고 있는 방이었다.

“같이 와 버렸네.”

아리스티네가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면서 말했다.

그녀를 풀어 주던 타르칸이 멈칫했다.

“머리가……”

아리스티네의 머리카락은 다시 찬란한 은발로 돌아와 있었다.

눈동자 역시 반전된 색이 아니라 새벽하늘을 닮은 보랏빛이었다.

“아,거울 속에서 빠져나오면 원래대로 되돌아와.”

“거울 속? 예전에 말했던 그 수면 거울을 말하는 건가.”

“응,거울은 반전된 모습을 보여 주잖아?”

그래서 눈동자 색이 반전되어 보색인 연둣빛이 된 거였다.

은발이 금발로 변하는 것은 실바누스 직계의 체모는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금발이 아니면 은발이었고,은발이 아니면 금발이었으니까.

“거울 속에 들어갔다 나온다는 표현보다는 〈개화〉한다는 말이 더 맞겠지만.”

“개화?”

“곧 알게 될 거야.”

아리스티네가 미소 지으며 타르칸을 끌어안았다.

“같이 올 수 있는 걸 보니 진짜구나.”

“뭐가?”

“네가 나의 꽃이라는 것이.”

타르칸을 꽉 끌어안고 넓은 가 슴에 뺨을 대자 저 깊은 곳에서 충족감이 가득 차올랐다.

미소 짓는 아내의 모습에 타르칸은 더 물어보려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마주 끌어안았다.

참 이상했다.

아리스티네를 안고 있으면 언제든 가슴이 빠듯해져 오며 설 랬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 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더 깊고 내밀하게 맞닿아 있는 기분이었다.

‘기분 좋아.’

타르칸은 아리스티네의 목덜미 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 마셨다.

아리스티네를 끌어안은 그의 팔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두 사람 모두 제 상황을 알리는 것도 잊고 한참 부둥켜안은 채 온기를 나눴다.

걱정으로 속이 타들어가던 라우넬리안이 뒤늦게 두 사람의 꽁냥거림을 목격한 고용인에게 보고를 받고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음은 말할것도 없었다.

* * *

그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풀렸다.

원래도 반정을 일으킬 준비는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카넬리언 후작이 바로 아리스 티네의 명에 따라 황제를 포박하고 압송한 것에는 그런 배경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라우넬리안의 말을 듣고 달려 온 순간부터 그는 황제와 척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고,반정의 주역 중 하나가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실정을 이유로 황제를 축출하는 것.

신께서 내리신 새 황제의 명으로 실정을 저지른 황제를 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비교할 필요도 없이 후자다.

하여 라우넬리안과 마지막 협상을 앞두고 미적지근하게 굴었던 게 거짓말처럼,카넬리언 후 작은 앞장서서 황제의 세력을 처단했다.

사실 강력히 처단할 것도 없었다.

처음 아리스티네의 〈개화〉를 목격했을 때는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건국 신화에서 초대 황제가 권능을〈개화〉해 이 땅을 평정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그게 대체 어떤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또,어떤 것인지 알더라도 얼 떨떨하여 이게 진짜인가 싶은 마음에 주저하는 자들도 있었다.

신화 속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 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내 무슨 일이 일어났 는지 정확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전설과도 같은 일화 는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건국 신화와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데.

정치와 상관없는 일반 병사들은 감화되어 투항했고,황제와 정치적으로 결탁했던 세력들은 목소리를 낮췄다.

이미 명분도,정통성도,국민감 정도 아리스티네에게 있었다.

거기다가 카넬리언 후작을 필 두로 군권마저 장악하고 있으니 살고 싶다면 몸을 숙일 때였다.

“이제라도 한 발 걸치겠다는 거지,뭐.”

라우넬리안이 치킨을 소금에 찍으며 투덜거렸다.

“그러면 어때요. 어쨌든 잘됐잖아요.”

카넬리언 후작이 마지막 협상에 미온적으로 굴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반정 후,콩고물을 더 얻어먹고 싶다는 것.

그런데 아리스티네가〈개화〉하 는 바람에 협상은 물 건너갔다.

이미 반정은 성공했다.

그 상황에서 카넬리언 후작이 미온적으로 굴었던 것을 만회하려면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거기다 카넬리언 후작이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온 덕분에 무 혈입성이 가능했고.”

압도적인 무력 차이는 안 그래 도 우왕좌왕했던 병사들의 사기를 단숨에 꺾었다.

거기에 황제가 무릎을 꿇었다 는 소식까지 더해지니 싸울 의지를 갖는 이가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라우넬리안이 치킨을 아리스티 네의 입에 넣어 주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여러 세력과 협상하며 있었던 일들이 짜증 나서 그렇지.”

처음 제도에 올라와서 귀족들 과 있었던 일을 떠올린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막 제도에 올라왔을 때,중앙 귀족들은 황제에게 미움을 사 북방으로 쫓겨난 황자를 무시했었다.

물론 그가 자신의 힘을 증명한 후로는 아무도 감히 그러지 못 했지만.

“리네,네가〈개화〉할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괜히 쓸데없는 수고를 했어.”

“무슨 소리예요. 다 라우넬 오라버니께서 기틀을 마련해 주신 덕분에 이렇게 수월하게 넘어가 는 거죠.”

오랜 세월 불가능했던〈개화〉 가 일어났다.

그 사실은 아리스티네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강력한 힘이 뒷받침될 때의 이야기.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개화〉 의 진정한 능력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현재 와 맞지 않다.

실바누스는 새로운 질서 아래 천 년을 번성한 제국이다.

그 능력이라는 것도 전설이 과 장된 것이 아니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나 올 수도 있었다.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개화〉가 일어나지 않게 된 제국은 황위 계승에 있어서 독자적인 체제를 만들어 왔다.

신이 정한 황제가 아니라 인간 이 정한 황제를 추대했다.

이는 곧 인간의 이권에 따라 황제를 지지하는 자들이 갈린다는 뜻이다.

이미 권력의 단맛을 알아 버렸고,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전통으로 굳어졌다.

알피어스의 치세 덕분에 이권을 움켜쥐고 있던 사람들.

그들이 과연 해묵은 전설이 재 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반정을 가만히 두고 볼까?

당연히 제 밥줄을 위해 핏대 높여 싸웠을 것이다.

알피어스를 복위시키진 못하더 라도,자신의 이권을 조금이나마 유지시키기 위해 어떻게든 아리 스티네의 정당성에 홈집을 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모두 라우넬리안이 차근차근 반정을 계획해 기틀을 마련해놨기 때문이다.

“오라버니께서 이 많은 세력을 미리 규합해 놓은 덕분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 거죠.”

“리네……”

라우넬리안이 감격한 얼굴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내 현명한 동생,갇혀 살아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는데 어쩜 이리 시류를 보는 눈이 뛰어날까”

“제왕안으로 세상을 보긴 했으 니까요.”

“그러면 스스로 깨우친 것 아니더냐.”

계속되는 칭찬에 아리스티네는 머쓱해졌다.

‘치킨이나 먹자.’

더 말해 봤자 동생깍지가 거하게 씐 라우넬리안은 칭찬만 할 게 뻔했다.

아리스티네는 닭다리를 냠,뜯었다.

바삭,튀김옷이 부서지는 소리 와 함께 고소함이 혀끝을 자극하고,곧이어 촉촉하고 부드러운 육질이 씹혔다.

이것이 바로 환상의 하모니라는 것인가.

튀김은 뭐든 옳았지만,그중에 으뜸은 닭을 튀기는 것이었다.

치킨은 적당히 깝조름한 것이 간이 참 잘 배어 있었다.

‘맥주랑 먹으면 어떨지 너무 궁금해. 전생의 내가 항상 그렇게 먹었는데.’

고소하고 깝짤한 치킨과 시원 한 맥주.

상상만으로도 벌써 맛있었다.

구역질 한 번 하지 않고 만족스레 치킨을 먹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라우넬리안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라우넬리안과 타르칸이 가차 없이 튀는 기름방울을 염동력과 오러로 막아 가며 만들어 낸,눈물에 젖은 치킨이었다.

잘 먹는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리네,넌 좋은 황제가 될 거다.”

그 말에 아리스티네가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오라버니,저는……”

“너의 정당한 권리야.”

라우넬리안의 말에 아리스티네 는 침묵했다.

솔직히 말해서,아리스티네는 실바누스에 애정이 없었다.

어떻게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제국민들은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실바누스에서 아리스티네가 가진 기억에는 아픈 기억이 너무 많아서,다른 모든 좋은 기억들을 새까닿게 뒤덮어 버렸다.

라우넬리안은 능력을 갖춘 사 람이었다.

그가 황제가 되어도 제국민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집이라고 느 끼는 곳은 다른 곳이었다.

처음으로 편하게 느끼고 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곳.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말한 대로 피클을 무로 만들어 왔는데. 그 치킨 무라는 거.”

아이루고의 왕위 계승서열 1위 께서는 아내의 전용셰프가 된지 오래였다.

타르칸은 방 안에 감도는 분위기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문제 있어?”

“아냐.”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젓고 손을 씻었다.

“황제에게 가 봐야겠어요.”

그 차분한 말에 라우넬리안은 물론 타르칸까지 깜짝 놀랐다.

“그놈한테 가겠다고?”

“아서라,네가 직접 볼 것도없다. 그놈은 내가 세상에서 가 장 고통스럽게 죽여 줄 테니.”

“그래,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오도록 할 거야.”

안달복달하는 두 남자의 모습에 아리스티네는 웃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리네!”

“왜 굳이 더러운 물에 발을 담그려고 하는 거냐.”

두 사람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다른 무엇보다 아리스티네가 황제를 대면하고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제 몫이에요.”

흔들림 없는 눈빛에 결국 라우넬리안과 타르칸이 한발 물러섰다.

“그,그럼 함께 가자.”

“맞아. 독대하는 건 위험해.”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으르렁거렸던 게 거짓말처럼 쿵짝이 잘 맞는 두 남자를 보며 아리스티네가 웃었다.

그 미소에 두 남자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바위처럼 단단한 한마디였다.

“나의 복수를 빼앗지 마세요.”

그 말에 두 사람은 아리스티네를 막을 수 없었다.

뒤돌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 을 시무룩하게 지켜볼 수밖에.

탁,문이 닫히는 소리에 타르칸이 고개를 숙였다.

‘치킨 무라도 맛보고 가지..........’

* * *

‘오랜만이네.’

아리스티네는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허름하니 황궁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간이 창고 같은 건물이 서 있었다.

‘다시 이곳에 돌아올 줄이야.’

아리스티네는 아주 익숙하게 걸음을 옮겼다.

마치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처럼,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걸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그녀가 10년도 더 넘게 갇혀 산 곳이었으니 당연했다.

아비의 명에 의해 아리스티네가 유폐당한 곳.

바로 이곳에 폐위당한 그녀의 아비가 갇혀 있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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