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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55화 (155/183)

155 화

아리스티네가 눈짓하자 그 앞 을 지키고 있던 병사가 문을 열었다.

아무리 두드리고 소리치고 애걸해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지 금은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단 한 번도 제 의지로 들어간 적 없는 곳에 처음으로 원해서 발을 들였다.

* * *

끼이이 이익.

뼈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듣 기 싫은 소리가 울렸다.

이곳에 갇히기 전에 알피어스는 이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문은 항상 부드럽고 조 용히 열리는 것이었다.

한순간에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진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라는 것 같아서,저 소리가 날 때마다 치가 떨렸다.

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라며 성을 부리며 패악을 떨었던 것도 처음 일주일까지만이었다.

문이 열리는 틈을 타고 어둠에 잠긴 방 안에 빛이 기어들어 왔다.

차디찬 바닥에 웅크려 있던 알피어스는 허겁지겁 그쪽으로 기어갔다.

빛을 등지고 선 사람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역광인 데다가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 빛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렸다.

그는 무작정 말을 시작했다.

빵 한 조각 던져 주고서 곧바로 문이 닫히기 때문에 말을 붙여 보려면 서둘러야 했다.

“나,나를 이곳에서 내보내거 라! 어서!”

말을 하면서도 무시가 되돌아 올 거라고 생각했다.

대답 대신 위협처럼 빵을 던지 고 쾅, 문이 닫힐 거라고.

여태까지 배급하러 온 시녀들은 모두 그랬다.

그런데 문이 닫히지 않았다.

멍하니 문을 바라보던 알피어 스의 입가에 웃음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이 드넓은 황궁에 생각 이 제대로 박힌 사람 한 명 없겠는가.

자신이 바로 황제였다.

“무엇을 망설이느냐! 황명이다! 당장 따르지 못할까!”

알피어스가 근엄한 척 호통쳤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바닥을 물들였던 햇빛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한다.

문이 닫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급해진 알피어스는 시녀의 치맛자락에 매달렸다.

“내,내가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네게 무엇이든 해 주겠다. 금은보화,제국의 보물,공신의 지위까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다시 문이 닫히면 또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제발,제발 도와 다오. 제 발……”

알피어스는 체면도 잊고 빌며 애원했다.

지난 일주일간 그의 정신은 한 없이 피폐해졌다.

평생 안락하고 호화롭게 살아 온 그에게 유폐당한 삶은 견딜 수 없는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아무 반응도 하지 않던 상대가 입술을 열었다.

“어머나.”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음성이 익숙했다.

알피어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 었다.

역광에 가려 여전히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뒤를 비 추는 햇빛이 마치 후광처럼 눈 부셨다.

“안타까워라.”

하지만 알피어스는 그녀가 누 군지 깨달았다.

끼이이이익,다시 그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방 안에 불이 들어왔다. 알피어스가 아무리 애원 해도 켜지지 않았던 마법등이었다.

어느 정도 빛에 적응하자,자신을 차근히 내려다보는 아리스 티네의 얼굴이 보였다.

알피어스는 그제야 제가 그녀의 앞에 무릎 꿇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황께서 이러실 줄 몰랐어요”

뒤늦게 수치심이 몰려왔다.

하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리스티네의 얼굴은 한없이 자애로웠다.

안쓰러운 연민이 깃들어 있기까지 했다.

그래,부모와 자식 간의 연은 천륜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비가 이렇게 무릎 꿇고 비는 걸 보기 좋아할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아리스티네가 알피어스를 향해 몸을 숙였다.

보랏빛 눈동자와 정면에서 마주쳤다.

순간,알피어스는 무언가가 발목을 잡아채는 듯한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무릎 꿇고 눈물로 비 는 건 땅바닥을 기는 벌레나 다름없는 짓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조곤조곤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분이.”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알피어스를 훑었다.

“아,스스로 벌레가 되길 택하신 건가요?”

킥,웃음소리가 좁고 낡은 방 안에 울렸다.

명백한 조롱이었다.

순간 멍하니 아리스티네를 바 라보던 알피어스의 얼굴이 야차 처럼 일그러졌다.

“감히! 네년이 이 나에게!”

우악스러운 손이 당장이라도 아리스티네의 여린 몸을 움켜쥘 듯했다.

그러나.

우두둑!

“아아악!”

알피어스가 비명을 지르며 몸 을 웅크렸다.

“내,내 손……”

그가 덜덜 떨며 오른손을 붙잡 았다.

오른쪽 손가락이 보기 흉 하게 뒤틀려 있었다.

아리스티네의 주변으로 황금빛 기운이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분별력이 이렇게 없다니.”

아리스티네가 혀를 찼다.

“주신이 황제로 인정한,〈개화〉 한 자가 이 황궁에서 어떤 존재 인지 잊으신 건가요.”

아리스티네는 성지인 황궁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했다.

그렇기에 포박당하지 않은 황제의 앞에 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니면 〈개화〉에 이런 힘이 있다는 것도 유실된 건가.”

알피어스는 여전히 웅크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리스티네를 올려다보았다.

아리스티네에게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뒤로 꺾였다.

진정한 황제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는 건가.

“그런데 황명이라고 하셨나요.”

알피어스는 이를 악물었다.

진정한 황제라니,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황제였다.

대관식을 치르고,왕홀을 손에쥐고,머리에 관을 쓰고,서약을 하.....

그 적법한 절차를 거친 자는 살아 있는 황족 중 오직 자신뿐 이었다.

“폐주가 황제를 사칭하기까지 하다니.”

폐주.

그 말에 알피어스가 번들거리 는 눈으로 아리스티네를 노려보 았다.

치욕적이었다.

“네,네년이 감히……!”

“네 년?”

아리스티네가 조용히 되물었다.

그리 부른 게 무어 문제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딱 붙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겁을 집어먹은 것을 안정할 순 없었다.

알피어스는 애써 큰소리를 내 었다.

“힘을 얻고 나니 눈에 뵈는 것이 없어 천륜까지 거스르는 것이냐! 이 비루한 곳에 아비를 가두고 먹을 것조차 제대로 주지 않다니,이 무슨 불효막심한 짓 이더냐!”

아리스티네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사실에 알피어스는 고무 되었다.

그는 멀쩡한 손으로 삿대질하 며 아리스티네를 닦달했다.

“얼어 죽거나 굶어 죽으라는 게 네 뜻이냐! 나는 굶어 죽는 게 아니다. 네년이 날 죽이는 게 야! 아비를 죽이는 극죄를 지은 자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 하느냐!”

씩씩거리는 황제를 묵묵히 바라본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본다.

사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환기시키지 못해 매캐 한 공기,치우지 못해 바닥에 덩어리져 굴러다니는 먼지.

아리스티네는 그 바닥 위에서 웅크리고 자야 했다.

누더기 같은 모포 한 장은 끔 끌한 냄새가 나지만 살아남기위해 덮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구멍이 숭숭 난 얄팍 한 모포는 추위를 막아 주지 못 했다.

하루에 한 번 배급되는,텁텁한 먼지가 가득 묻어 있는 빵은 잘못 깨물면 이가 상할 정도로 딱딱했다.

빵과 함께 주어지는 물 한 컵은 너무 적어서 철창 밖으로 손을 뻗어 빗물을 받아 마셔야 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계속되면 아리스티네는 극심한 탈수 증상에 시달렸다.

그래서 컵을 깬 척 돌려주지 않았다.

설마 도망칠 거라곤 생각도 안 했는지 빵을 던져 주는 시녀는 별 반응이 없었다.

덕분에 아리스티네는 물컵을 여러 개 모아 빗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

작은 컵 안에 비치는 바깥세상 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먼지가 앉은 물을 마셨다.

아리스티네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아니,자랐다기보단 살아남았다는 말이 더 옳으리라.

“참 이상한 일이네요.”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기울였다.

“전 제가 생활했던 그대로 대접해 드리라고 말했는데요.”

“뭐?”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아비가 내리는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아리스티네가 생긋 웃으며 알 피어스의 어깨를 보듬었다.

“저도 사랑해 마지않는 아버지를 위해서 똑같이 준비했어요. 그게 아버지께서 말한 사랑이니 까요.”

아리스티네를 바라본 알피어스 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아,아직 사랑이 부족한가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루 종일 채찍질을 할까요,물에 얼굴을 처넣고 혼절할 때까지 누를까요.”

모두 다 아리스티네를 각성시키겠다는 이유로 알피어스가 저지른 일이었다.

“아니면 자고 있을 때 사방에 불을 지를까요?”

생긋 웃는 아리스티네의 얼굴은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알피어스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악 사라졌다.

“내,내가 잘못했다.”

알피어스가 아리스티네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너도 알지 않느냐. 이게 다 레타나시아 그년이 우리 사이를 이간했기 때문이야.”

그게 확고한 진실이라는 듯 알피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그 여우 같은 년이 네가 제왕안을 각성했다는 것을 내게 감추지만 않았어도……”

중얼거린 그가 아리스티네를 올려다보았다.

“그렇지 않느냐. 이곳에 널 가둔 것도 마찬가지야. 그 발칙한 년이 널 모함해서,그래서 가둔 것 아니냐.”

아리스티네를 올려다보는 알피 어스는 진정으로 모든 것이 레타나시아 때문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아리스티네는 환멸을 느꼈다.

알피어스는 레타나시아를 아꼈다.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고 뺨에 입을 맞췄다.

그가 그렇게 대하는 자식은 오로지 하나,레타나시아뿐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귀여워했던 딸에게조차 한순간에 돌변한 것 이다.

“감히 황제의 눈을 가린 그 영 악한 년만 아니었으면 내 너를 가장 귀애하고 아꼈을 것이다. 내 진전을 이을 후계로 널 지목 하고 말이다.”

자신 대신 불구덩이로 집어넣기 위해.

“너도 내게 감사해야지. 제왕안을 각성하게 된 건 다 이 아비가 너 잘되라고 가르친 덕분이 아니더냐.”

알피어스는 애원하던 태도를 바꿔 아리스티네를 꾸짖기 시작 했다.

“어린 널 채찍질하며 나라고 괴롭지 않았을까. 세 살배기였던 넌 내 팔뚝보다도 작은 아이였다.”

그는 마치 어린 아리스티네를 품는 것처럼 손을 움직였다.

물론,알피어스가 아리스티네를 안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작은 몸에 붉은 상처가 남을 때마다 내 마음에는 핏물이 가득 홀렸어.”

개소리 였다.

지금 알피어스의 모습을 보면 방법은 잘못되었을지언정 진정으로 아리스티네를 아낀 것 같 았다.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그 역할 에 심취한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딸을 위해 체벌하며 스스로 고통을 느꼈다고 생각하는것.

그게 더 소름 끼쳤다.

“내가 그 고통을 참은 이유는 단 하나,네가 제왕안을 각성하 길 바라서,네가 잘되었으면 해 서였다.”

더 들어 줄 것도 없었다.

“그렇군요.”

아리스티네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피어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나도 잘되라고 똑같이 해 드릴게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의 희망을 무참히 깨트렸다.

어린 아리스티네에게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짓이 떠올렸다.

정말로,죽을지도 모른다.

공포가 알피어스의 눈을 꺼떻 게 물들였다.

“아,안 돼……. 안 돼,안 돼 애애애애애!”

커다란 괴성과 함께 알피어스가 아리스티네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뼈가 부러지고,살이 터지는 소리.

“커헉……!”

아리스티네는 침과 핏물을 질 질 흘리며 몸을 마는 알피어스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학습 능력이 없으니 통치를 그딴 식으로 했지요.”

그녀는 혀를 차고 문을 열었다.

동시에 방 안의 불이 흑,꺼졌다.

순식간에 검게 물드는 시야.

심연과도 같은 어둠이 자신의 미래 같아서,알피어스는 피를 토하면서도 바닥을 기었다.

아리스티네가 나가면서 열린 문 틈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찼다.

알피어스가 그 햇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따스한 빛은 알피어스에게 닿지 않았다.

쿵,하는 차가운 소리와 함께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알피어스는 오열 했다.

* * *

“세상에,들었어요?”

“레타나시아 황녀가 아리스티네 황녀님을 모함해 유폐시켰다면서요?”

“어찜,그렇게 착하고 친절하게 굴더니 그게 다 가짜였던 걸까요?”

“인생 자체가 거짓이었던 거죠”

“그런 사람을 사교계의 귀감이라면서 추켜세웠다니……”

혀를 차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 렸다.

레타나시아는 주먹을 콱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날카롭게 찌른다.

의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방 안에 숨지 않고 일부러 평소처럼 밖에 나왔다.

그러나 들으라는 듯이 수군거 리는 목소리와 비웃고 경멸하는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레타나시아는 황제가 편애하는 자식이었다.

당연히 이런 모욕을 겪는 게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염치로 기어 나온 건지.”

“저라면 아리스티네 황녀님께 찾아가 무릎 꿇고 죄를 청하겠어요.”

“아니,황녀님이 아니시고 황제 폐하시지요.”

“세상에,실바누스에 정말 그 전설과도 같은 분이 나오시다니.”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요.”

“낭만뿐만 아니라 실리적인 일 이기도 하지요. 이로 인해서 국제 역학 관계가 새로 짜일 거예요”

“사실 저번 패전과 폐주의 실정으로 실바누스의 위명이 약해졌던 건 사실이잖아요?”

“새 황제 폐하께서 이끌어 나가시면 그 분위기가 바뀌겠지요.”

레타나시아를 헐뜯던 말은 이 미 지나가고 아리스티네를 찬양하고 칭송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홍분한 사람들의 기쁜 얼굴.

레타나시아는 애써 표정 관리 하던 것도 잊고 입술을 콱 깨물엇다.

저를 욕하는 소리보다 아리스티네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더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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