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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63화 (163/183)

163화

기회.

마르텐은 끈적거리는 침을 삼 켰다.

목울대가 움직일 때 뜨끔한 감 각이 드는 게 긴장으로 목이 부은 모양이었다.

마르텐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 했다.

“어떻게 할까요?”

극도로 긴장한 그와 달리 아리스티네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여 유롭기만 했다.

마르텐은 힐끔 주변을 살폈다.

듀란테와 자칼렌의 손에 잡혀 있는 카메라맨과 사내. 그리고 시종들이 보였다.

카메라맨과 사내는 몰라도 시종들은 마르텐과 같이 왕후의 사람들이었다.

‘내 편을 들어 줄까?’

“흐음.”

마르텐을 바라보던 아리스티네가 묘한 비음을 흘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몸짓을 따라 마르텐의 눈알이 움 직였다.

그가 아리스티네의 반응을 극 도로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또각또각.

아리스티네는 빠르지도,느리지 도 않게 마르텐에게 다가왔다.

마르텐은 긴장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여전히 전사들의 검은 그를 겨 누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하지만,

‘뭐지?’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는 마르텐의 근처에 와서도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을 협박할 거라고 생각했던 마르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르텐을 스쳐 지나간 아리스티네는 문을 향해 걸었다.

또각또각.

여전히 그녀의 발걸음은 일정했다.

마르텐의 답을 기다릴 것도 없 다는 듯 미련 하나 없이.

이건 협박이 아니라 진짜였다.

“나가자.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 가서 一.”

“내,내가 아냐!”

아리스티네가 타르칸을 향해 입을 열었을 때,마르텐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씨익,아리스티네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멈춰 선 아리스티네가 몸을 돌 려 마르텐을 바라보았다.

언제 웃었냐는 듯 그녀의 입가 에서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왕자님이 아니라고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 게 말하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을 보는 순간,마르텐은 깨달았다.

늦었다.

돌이킬 수 없다.

자신은 왕후의 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야,차라리 잘됐어.’

지금 연회장에는 네프테르는 물론이고 고위 귀족들을 포함해 대다수의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연회장 앞에 포진해 있던 기자들은 모든 언론에서 다 나왔다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숫자였다.

‘분명 보도 자격을 가지고 연 회장 내부에 들어온 기자들도 몇 명 있겠지.’

아리스티네가 연회장에 나가서 이 일을 말하면 분명 왕후는 꼬리를 자를 것이다.

마르텐이라는 꼬리를.

그리고 잘라 낸 꼬리가 입을 열 수 없도록 아예 배제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왕후의 편인 시종들은 내가 아니라 왕후를 보호하기 위해 입을 맞출 테지.’

모든 죄와 불명예를 자신이 뒤 집어쓰고 버려질 것이다.

그럴 바에야 이쪽에서 버리는 게 낫지 않겠는가.

마르텐은 주먹을 꽉 쥐고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니라 이 일은 왕후 폐 하께서……”

* * *

연회장의 분위기는 아까보다도 더 무르익어 있었다.

술기운이 돌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왕의 기분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티네가 실바누스에 가 있을 때는 왕궁 바닥이 살얼음 판 같았던지라 모두 왕의 곁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잘못 걸리면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관대해진 왕의 곁에 사람들이 모여 하하 호호 웃음을 지었다.

왜 왕이 관대해졌는지 그 이유 는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리스티네가 연회장에 돌아왔으니 딱히 아무런 호명을 받지 않아도 주목받 는 것은 당연했다.

“오, 비전하.”

“돌아오셨군요.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언제 비전하가 돌아오시나 다들 목을 빼고 기다렸습니다.”

반갑게 아리스티네를 맞은 귀족들은 멈칫했다.

어 쩐지.

“쉬고 오셨는데 안색이 이전보다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몸은 괜찮으신지요.”

귀족들의 질문에 아리스티네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말끝을 흐리고 눈을 내리까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철렁할 정도로 처연한 모습이 되었다.

긴 속눈썹이 그녀의 얼굴에 수심을 드리웠다.

“리네,괜찮아.”

타르칸이 아리스티네를 보호하둣 감싸며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휴게실에 침입자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예?!”

“치,침입자라니요. 감히 왕자 비의 휴게실에……”

“아니,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웅성거리는 소란이 사람들 사 이로 퍼져 나갔다.

웅성거림은 빠르게 몸피를 부풀려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뭐라고 했지.”

결코 가라앉지 않을 것 같던 소란을 단 한 마디로 잠재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내 며늘아기에게…… 그것도 내 손주를 품느라 힘들어서 쉬고 있는 며늘아기에게 무슨 일 이 생겼다고?”

제왕의 분노에 사람들은 그대 로 얼어붙었다.

왕궁에 이제 겨우 봄이 찾아왔나 했더니 이전보다 더 매섭고 날카로운 삭풍이 몰아치기 시작 했다.

내 째끼 누가 괴롭혔어!

까고 보면 네프테르의 분노는 그것과 다를 바 없었지만,엄청난 위압이 그의 위엄을 지켜 주었다.

네프테르가 한 걸음 옮기자 사 람들이 추풍낙엽처럼 몸을 물리

며 길을 터 주었다.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가슴에 기댄 채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커다란 타르칸의 모습과 대비 되어 그녀는 더 여리고 처연해 보였다.

그게 네프테르의 마음을 더 안 절부절못하게 하였다.

“리네,괜찮으냐?”

“부왕 폐하……”

아리스티네가 고개를 들어 네프테르를 바라보았다.

호소하는 듯한 깊은 보랏빛 눈동자에 네프테르는 아리스티네 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래,네 부왕이 여기 있다.”

무엇이든 말하라고,나는 무조건적이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아 리스티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담담한 얼 굴로 고개를 저었다.

“조금 놀랐지만 괜찮습니다.”

살포시 미소 짓는 모습이 더 안쓰러웠다.

“무슨 일이 있었지?”

네프테르는 고개를 돌려 타르 칸에게 물었다.

“그건 왕후 폐하께 여쭤 보시면 될 듯합니다.”

타르칸의 목소리에는 적대심이 담겨 있었다.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왕후 폐하?’

‘왕후라고?’

이 상황에서 그녀의 이름이 나 온 이유야 명백했다.

아리스티네의 휴게실에 침입한 작자의 배후에 왕후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설마 왕후가 선택하지 말아야 할 방법을 선택한 건가!’

‘차라리 깨끗하게 승복하는 게 나았을 것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왕후에게 집중되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 겠군.”

왕후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계속 연회장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는데,타르칸 왕자의 말은 내가 침입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내 몸이 두 개였나 보지?”

“몸을 직접 움직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요. 특히 왕후 폐하나 되시는 분이라면.”

“건방지구나,타르칸!”

왕후가 부채를 휘저으며 타르 칸을 향해 노성을 질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 타르칸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 하나 깜짝하다 못해 비틀거리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아아……

“리네?”

“리네!”

아리스티네의 곁에 있던 타르칸과 네프테르가 당황해서 그녀를 부축했다.

“아,저는 괜찮아요.”

아리스티네가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네프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냥 커다란 소리를 들으니 두통이 나서,아아……”

그녀가 이마를 짚으며 다시 비틀거렸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커다란 소파에 앉혔다.

소파에는 푹신함을 자랑하는 등받이가 달려 있었지만,아리스티네는 아주 자연스럽게 제 옆 에 앉은 타르칸의 가슴에 몸을 기댔다.

아리스티네가 바닥에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앉은 것을 확인한 네프테르가 왕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왕후,지금 리네는 왕손을 잉태한 상태요. 리네 앞에서 고함치며 역정을 내다니!”

튀르쿠아즈빛 눈동자에는 형형한 노기가 어려 있었다.

“어찌 아이루고의 왕후라는 자 가 이토록 경솔한 거요!”

“폐,폐하……”

왕후는 사색이 된 채 바르르 떨며 네프테르를 불렀다.

네프테르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책망하는 게 믿기지 않았다.

‘고작 왕자비 하나 때문에..............’

그때,높은 목소리 하나가 굳은 분위기 사이로 끼어들었다.

“하긴,왕후께서는 워낙 용맹한 성정이시라 평소 말씀하실 때 역시 그 기상이 담겨서…… 으음,우렁차시지요.”

칭찬인 듯하지만 ‘너 성질머리 더러워서 그냥 말할 때도 목소리 겁나 시끄러워’라는 소리였다.

왕후는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미소 짓는 여인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녀는 왕비 중 한 명인 카에나 왕비였다.

평소 자신의 눈치를 보며 고개 숙인 채 살던 왕비가 이렇게 대놓고 어깃장을 놓다니.

‘줄을 서기 시작했어……!’

이건 명백한 의사의 표시였다.

왕후라는 끈을 버리고 아리스 티네의 편에 서겠다는 표시.

카에나 왕비의 말은 그 자체로 도 모욕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왕후의 머리를 더 뜨겁게 달구는 것은 눈앞에서 권력이 옮겨 간 게 선명하 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카에나 왕비께서도 느끼셨군요. 저는 찻잔이 깨질까 걱정한 적도 있답니다.”

“루아르웬 왕비!”

카에나 왕비의 말을 거드는 루아르웬 왕비에게 왕후가 소리를 질렀다.

루아르웬 왕비는 부채 끝을 입 술에 톡 댄 채 몸을 옴츠렸다.

“어머,무서워라. 하지만 왕후 폐하,목소리는 조금 낮추심이 어떤지요.”

본래 성정 같았으면 어디다 대고 훈계질이냐며 역정을 내었겠 지만,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수많은 귀족들이 지켜보고 있는 데다가,무엇보다 네프테르가 언성이 높다고 꾸짖은 차였다.

‘내가 이것들에게 밀리다니....’

분노로 뺨이 푸르르 떨렸지만, 지금은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잠잠해지자 네프테르가 물었다.

“그래서 왕후,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침입자의 배후에 왕후가 있다 는 것을 이미 전제하고 자백하 라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왕후는 항변했다.

“폐하! 제게 여쭈시는 건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신 다는 뜻입니까!”

“왕후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들 어서 물어봤을 뿐이야. 꼭 무슨 짓을 저질러야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건 아닐 텐데?”

그게 절대 아니었으면서.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법,왕후는 드레스 자락을 꽉 움 켜쥐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마르텐에게 뒤집어씌우면 돼.’

일이 틀어질 때를 대비해서 제 손을 쓰지 않고 마르텐을 움직인 것이다.

‘이 쉬운 일 하나 제대로 못 하다니 멍청한 것!’

왕후는 전사들과 함께 있는 마 르텐을 노려본 뒤,흥분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저는 그냥 왕자비의 귀환과 회임을 축하해 주러 왔을 뿐입 니다. 내내 연회장에서 벗어난 적도 없고요. 왕자비가 쉬는 동안 무얼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왕후는 전혀 모른다는 군.”

네프테르의 시선이 타르칸을 향했다.

왕후가 발렘하길 바랐던 타르 칸으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끼어

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일단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부터 듣고 싶은데.”

하미르였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걱정 어린 기색으로 연신 아리스티네를 살폈다.

“침입자라니,암살 시도라도 있었던 거냐?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듯한데.”

그의 목소리에는 안도감과 염려가 가득했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들어 하미르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청명한 튀르쿠아즈빛 눈동자와 하미르가 짓고 있는 표정.

그 모든 것이 아리스티네의 눈에 들어왔다.

‘이게 정말 연기일까?’

만약 이것이 진짜 연기라면 박수를 받을 만했다.

“암살 시도는 아니었어.”

타르칸이 하미르와 아리스티네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그럼 무슨 일이었지?”

이 물음은 하미르가 아니라 네프테르의 입에서 나왔다.

듀란테가 조용히 네프테르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사진 몇 장을 정중하게 넘겼다.

의문을 가지고 사진을 바라본 네프테르의 얼굴이 일순 확 굳었다.

팔랑팔랑,사진을 넘겨 보는 그의 손길이 빨랐다.

네프테르의 옆에서 사진을 본 하미르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로 차갑게 굳었다.

하미르가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만 봐 왔던 사람들은 놀라서 수군거렸다.

“하미르 전하께서 저런 얼굴 하시는 거 처음 보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지?”

“침입자라고 해서 당연히 암살 시도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암살이 아니라면 딱 한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했다.

“암살 시도가 아니라면 설 마……

귀부인의 휴게실에 숨어드는 불한당.

그 불한당의 목적은 보통 귀부인을 욕보이려는 것이었다.

“마르텐.”

네프테르가 딱딱한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부,부왕 폐하……”

자라처럼 목을 움즈린 채 눈치를 보고 있던 마르텐이 바로 땅 바닥 위에 무릎을 꿇었다.

“마르텐 왕자가 비전하를?”

“설마, 그런 비상식적인 일 이……”

“하지만 마르텐 왕자라면 그럴 만해. 워낙 여색을 밝혔어야지.”

“하긴 공녀께도 집적거리다 퇴 짜 맞은 적이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들이 여색에 눈이 먼 마르텐이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 했다.

평소 그의 행실이 그렇게 만들었다.

왕후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미소 지었다.

그 분위기에 마르텐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는,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와, 왕후 폐하께서 시켜서……”

다시 나온 왕후의 이름에 사람들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마르텐이 아니라 왕후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는 하나였다.

남편은 됐고, 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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