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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65화 (165/183)

165화

“세상에, 그러니까 마르텐 왕자 님이 왕후 폐하를 모함하려고 이 사람들을 매수했다는 거네요.”

아리스티네가 충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얼굴은 파리하니 가련했다.

왕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리스티네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석연찮았다.

‘내 편을 들고 마르텐을 비난 하며 타르칸을 보호하려는 건가?’

흥,그렇다면 단단히 잘못 생각했다.

“그래, 통탄할 일이지. 내 배로 낳은 자식은 아니나 마르텐과 타르칸은 모두 본 왕후의 아들이다.”

왕후는 시름에 잠긴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오늘 두 아들에게 이리 모함을 당하니 지금까지의 삶에 회의가 생기는구나.”

“칸이 왕후 폐하를 모함했나요?”

“정확한 확인 없이 마르텐의 말을 그대로 믿고 나를 죄인으로 몰았으니 그게 모함이 아니 라면 무엇이겠느냐.”

왕후가 입매를 틀어 올리며 아 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수작 부려 봤자 타르 칸은 못 빠져나가. 여기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죄인으로 지목했으니까.’

왕후는 자신 있었다.

그녀가 손에 잡고 있는 승기를 절대 놓치지 않을 자신이.

‘네년이 꽤 정치 수완이 있는 건 인정해 주지. 하지만 나한텐 안 돼.’

그런데 아리스티네의 반응이 이상했다.

“어머나, 그럼 칸이 이곳에 오 기 전에 마르텐 왕자님을 상대로 고문이라도 했어야 한단 건가요?”

아리스티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제 남편이 워낙 출중해서 왕위 계승 서열 1위이긴 하지만, 아직 왕태자로 책봉되지 않았어 요.”

왕위 계승 서열 1위라는 말에 왕후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지금 이 상황에서 승기 를 잡았다며 도취되어 있어도, 사실은 패배했다는 것을 되짚어 주는 거였으니까.

“항렬이 같은 형제의 죄에 대해 추궁하는 건 법도에 맞지 않아요. 그건 제 남편의 몫이 아니라,두 분 폐하나 수사관 혹은 재판관의 몫입니다.”

아리스티네는 최종 승자답게 여유로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가르쳐 주듯 말했다.

‘저게 나를 무시해?!’

그 말투가 왕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두말할 필요 없었다.

“저번에는 허술한 증언만 듣고 너를 죄인으로 몰았다며 나를 몰아세우더니,지금 네 남편도 나와 똑같은 일을 저지른 것 아 니냐!”

흥분에 차 버럭 소리 지르는 왕후를 보고 아리스티네가 내심 미소 지었다.

그 일로 네프테르의 신임을 잃 고 왕후의 입지가 확연히 줄어 들었으니 자극하면 꼭 말할 줄 알았다.

“왕후 폐하께서 제대로 된 확인 없이 저를 독살범으로 몰았던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 같은데요.”

아리스티네가 왕후를 똑바로 쳐다보며 생긋 웃었다.

“그때 왕후 폐하께서는 왕후의 위치뿐만 아니라,수사권까지 가지셨는데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으신 거니까요.”

정확한 지적에 왕후는 아차 했다.

짜증 나게 구는 아리스티네 때 문에 흥분해서 생각 없이 말했다.

결코 그렇게 만만히 대해서 될 상대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칸이 제대로 된 권한 없이 마음대로 신문하면 오히려 그게 월권이며 문제 아닐까요.”

순식간이었다.

왕후가 단단히 붙잡고있던 승기는 마치 모래알처럼 한순간에 빠져나갔다.

아리스티네의 말 몇 마디만으 로.

‘이년이……!’

저 매끄러운 세 치 혀를 싹둑 잘라 버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웅성거리 는 소리가 뿌연 안개처럼 왕후 의 팔다리를 잡아챘다.

기분 나쁜 축축함이 전신을 타 고 도는 기분.

그 와중에 다시 충격받은 척 타르칸의 가슴에 찰싹 기대 있 는 아리스티네를 보니 속에서 천불이 솟았다.

‘안 돼.’

여기서 이렇게 꼬리를 말 수는 없다.

‘그래,인정하지. 타르칸을 끌 어들이는 것은 실패다.’

타르칸이 마르텐을 사주한 것 이든,경솔하게 왕후인 자신을 모함한 것이든 둘 다 실패였다.

순간, 아까 네가 꾸민 짓이 아 니냐고 물었을 때 타르칸의 눈빛이 생각났다.

〈내가,당신 따위를 없애겠다고 내 아내에게 이딴 일을 겪게 했다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응? 대답해.〉

그 오싹하다는 말로도 부족한,차라리 끔찍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시선.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 끝과 입술이 차가워졌다.

‘그래,과유불급이지. 어쨌거나 이 일에 연루되지 않는 게 중요하니 더 이상 타르칸은 건드리지 않는 게 낫겠어.’

왕후는 타르칸의 위압감에 밀 렸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핑계를 만들어서 댔다.

“……딱히 지금 마르텐을 고문 하지도 않았고, 저들에게 한번 물어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 만으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 냐.”

그래도 바로 물러나는 건 너무 모양이 빠지니 한마디 보탰다.

“칸도 이들에게 물어서 확인해 보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다른 답을 내놓더군요.”

그런데 그 한마디를 지질 않는다.

왕후의 이마에 혈관이 불거져 튀어나왔다.

하지만 꼬투리를 잡아 봤자 불리한 건 그녀였다.

왕후는 부채를 쫙 펼치며 시선 을 돌렸다.

“어쨌거나 탄식이 절로 나오는 일이다. 아들에게 다른 아들의 부인을 겁간하라 명했다는 모함 을 받다니……. 분노할 힘조차 없구나.”

지금은 다시 피해자임을 강조 할 때였다.

“왕후 폐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런 모함을 받으면 그렇겠지요.”

아리스티네가 눈썹을 늘어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왕후는 불안해졌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마치 그 생각에 답이라도 해 주듯 아리스티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것도 아주 불안한 시작으로.

“그럼 마르텐 왕자님이 일부러 범죄 장면을 들켰다는 거네요?”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며 왕후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렇잖아요. 왕후 폐하께 누명을 씌우려면 우선 죄가 드러나야 하잖아요?”

아무 죄도 없는데 죄를 뒤집어 씌울 순 없다.

범죄를 들켜야 왕 후가 시켰다면서 모함할 수 있 지 않겠는가.

합당한 지적이자,휘몰아치듯 진행되는 상황에 모두가 간과하 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임신한 형수를 겁간하려 했다.”

또박또박,아리스티네의 목소리 가 분명하게 연회장에 울렸다.

“아무리 사주받았다고 해도 쉬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죠.”

그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 였다.

“옳은 말씀이지. 평생…… 아 니, 죽어서도 따라다닐 불명예니까.”

“거기에 실질적인 죗값도 치러 야지요. 왕족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범죄 아닙니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왕후 폐하를 모함하려고 했다……?”

“흠,의문이 드는군요.”

아리스티네가 던진 불씨가 사람들의 의문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에요.”

아리스티네가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처연하게 중얼거렸다.

타르칸은 열심히 아내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위로가 되도 록 가슴에 불끈 힘을 주며.

“저는 왕후 폐하와 마르텐 왕자님의 사이가 화목하며 정다운 줄로만 알고 있어서……”

아리스티네가 지펴지기 시작한 불에 장작을 넣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마르텐 왕자는 완벽한 왕후파 잖습니까.”

물론 계파에 속해 있다고 해도 평생토록 왕후를 따르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왕후는 구멍이 뚫려 가라 앉는 배였다.

난파하기 전에 그 배를 탈출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하는 사람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마르텐이 저지른 일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었다.

‘왕후의 등에 칼을 꽂는 행동 이었지.’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 법 이다.

왕후의 등에 칼을 꽂는다면 당연히 그 공로를 들고 타르칸에게 가는 게 목적일 터다.

타르칸이라는 배에 탑승하기 위해서.

하지만 마르텐은 타르칸에게도 입보이는 짓을 했다.

왕후를 모함하기 위해 타르칸 이 사랑하는 아내를 모욕한 것이니까.

“대체 이런 일을 저질러서 마르텐 왕자가 얻는 게 뭐지?”

“아무것도 없소.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왕후의 분노와 타르칸 왕자의 분노를 샀을 테니까. 거기다 귀족과 국민의 경멸은 덤 이고.”

“목적대로 왕후를 모함하는 것 에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사주를 받아 형수를 겁간하려 했다는 건 어찌할 건지.”

“아니,그리고 비전하께서 어디 보통 분입니까? 평화의 상징이신분인데.”

“성공해도,실패해도 결국 본인이 망하는 길이지.”

마르텐 왕자의 행동은 스스로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다름없었다.

사람들의 의문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왜 굳이 저런 사람을 매수해서 위증을 서게 한 건지……”

“차라리 발언에 신뢰가 높은 사람을 증인으로 섭외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귀족이 불가능하 다면 하다못해 시종이라도.”

“카메라맨은 그렇다 치고 누가 저런 주정뱅이의 말을 믿는다고.”

“차라리 저 주정뱅이가 휴게실에 숨어들었으면 몰라요. 모든 죄를 덮어씌울 생각으로 그랬을 테니.”

“그게 훨씬 그럴싸한데?”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증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했을때,석연찮은 점이 너무나 많으니까.

앞뒤의 아귀가 맞지 않으면 의혹이 싹틀 수밖에 없다.

아리스티네는 그 의혹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입을 열었다.

“저들의 증언에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술에 취한 자의 기억이란 부정확한 면이 있 지 않겠습니까.”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들어 왕 후를 바라보았다.

“저들의 수백 마디 말보다 왕 후 폐하의 한 마디 말씀이 훨씬 더 무게감이 있지요.”

왕후는 퍼렇게 질린 낯으로 아리스티네의 자그마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왕후 폐하께서 말씀해 주세 요.”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나긋하게 움직였다.

“과연 진실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은 마치 죄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과 같았다.

왕후는 부채를 꽉 틀어쥐었다.

‘침착해.’

증거가 있다면 뭐 하러 이렇게 묻겠는가.

‘그래,확실한 증거는 없어.’

오로지 마르텐의 말뿐이다.

다른 증인들이 그의 말을 부정했 으니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아무리 앞뒤가 안 맞는다고 해도 우기면 그만.’

증거가 없으니 사건은 미궁 속 으로 빠지고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당당하고 목소 리가 커야 한다.

“본 왕후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왕후가 부채를 횡으로 휘두르 며 강하게 말했다.

“나는 이 일에 아무 관련도 없다. 가만히 있다가 마르텐에게 모함을 받았을 뿐이야. 안 그래 도 친아들같이 여기던 녀석에게 배신을 당해 심화가 쌓이는데, 이미 말한 것에 대해 또 묻는 저의가 대체 무어냐.”

탁,왕후가 권위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며 부채 끝을 자신의 턱에 대었다.

“왕자비,그 질문은 내가 이 모든 일의 배후라고 거짓 자백 이라도 하길 바라는 것 같구나.”

의도를 추궁당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리스티네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리스티네는 왕후에게 마지막으로 자백할 기 회를 준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입으로 당신이 빠져나 갈 구멍을 보다 확실히 틀어막은 것이지.’

하지만 그 마음을 감춘 채 아 리스티네는 순종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는 진실을 원했을 뿐입니다. 왕후 폐하께서 말씀하신 게 진실이라면,그것이 진실이겠지요.”

“주정뱅이의 증언이라 믿지 못 하겠다면 왕자비의 휴게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던 시종들은 어떤가. 정황은 자세히 모르나 근무에 태만해 자리를 비운 것 이 아니라면 그들도 이 일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었을 터. 시종들의 말을 들어 보면 될 것 아니냐.”

왕후는 고개를 돌려 좌중을 바 라보았다.

“왕자비의 휴게실을 지키고 있 던 시종들은 앞으로 나오거라!”

기세등등한 외침이었다.

아리스티네의 휴게실 앞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은 모두 왕후의 편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걸로 자신은 이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타르칸을 엮는 건 실패하고 아리스티네가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의혹은 짙게 남겼지만, 어쨌 거나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그때였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시종들의 발 걸음을 가로막았다.

익숙한 목소리에 왕후는 그쪽 을 돌아보기도 전에 누가 입을 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파엘라미엔?!”

설마,하는 생각으로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파엘라미엔이 차분한 얼굴로 서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명에 어깃장을 놓는 사람이 파엘라미엔이라서 당황했다.

하지만 주홍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왕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말에 무게를 실어 주려는 것인가?’

파엘라미엔은 왕후가 가장 잘 부리는 수족이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왕후의 편을 드는 건 당연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영민하고 눈치 빠른 아이이니 분명 이 상황의 타개책을 마련 한 것이다.

시종이 증언하는 것으로 우겨서 석연찮게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을 가져왔겠지.

‘그래,역시 쓸 만해.’

왕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시종의 증언은 들을 필요 없 습니다. 제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왕후는 얼씨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파엘라가 증거를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믿음직스럽구나. 어서 가져와 보렴.”

갑작스러운 파엘라미엔의 등장에 귀족들은 당황했다.

파엘라미엔은 모두가 다 아는 왕후의 최측근이었다.

‘뭐야,여기서 반전?’

‘증거만 부족할 뿐 정황상 왕 후가 배후라는 게 사실상 분명 한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라니, 뭔가 다른 게 있는 건가?’

‘이상한 증거를 가져온 거라면 끼어들지 않는 게 나을 텐데.’

‘왕후가 꾸민 짓이라는 건 알 사람은 다 알고 있고,파엘라미엔 공주까지 이 일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번질 게 분명한데……’

‘왕후는 운이 좋군. 의혹은 어 쨌거나 파엘라미엔 공주가 나섰 다면 확실하게 빠져나갈 수 있 다는 확신이 있어서겠지.’

흐르는 분위기에 왕후가 미소 지었다.

“자,파엘라. 어서 증거를 보여 주렴.”

그녀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파엘라미엔을 재촉했다.

파엘라미엔은 고개를 끄덕이고 는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통신석? 마르텐이 작당하는 것을 찍어놓은 것인가. 역시 영특한 아이야.’

왕후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석을 움켜쥔 파엘라미엔은 막 조작하기 직전, 어딘가 한 곳을 바라보았다.

무심코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왕자비?’

파엘라미엔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리스티네였다.

그리고 파엘라미엔과 눈을 마주친 아리스티네는一.

‘웃고 있어……?’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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