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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66화 (166/183)

166화

단단한 땅이 받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다가 발을 헛디뎠을 때처럼,오싹거리는 불안감 이 배꼽 위를 내달렸다.

왕후는 파엘라미엔을 멈추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왕자비 불륜 스캔들을 일으키시겠다고요?]

떠오른 영상 속에서 누군가를 향해 파엘라미엔이 물었다.

[그래.]

이윽고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그 목소리의 주인이 영상에 떠 올랐다.

왕후였다.

“와,이건……”

“정말 말 그대로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네.”

영상을 보던 귀족들이 침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하지만 가능할까요? 왕자비는.......]

[진실은 상관없어.]

영상 속의 왕후가 짙은 미소를 그리며 파엘라미엔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를 장식한 꽃을 살살 쓰다듬었다. 연한 꽃잎 을 시작해서 꽃대까지.

[그럴싸한 사진 몇 장과 그걸 뒷받침할 증언으로 충분하지.]

콱,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왕후의 손에서 꽃대가 부러졌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버티지 못 한 꽃잎이 힘없이 떨어져 내린다. 붉은 핏방울처럼.

왕후는 천천히 손을 폈다.

엉망으로 짓눌린 꽃이 툭,테이블 위로 시체처럼 떨어져 내 렸다.

왕후는 일그러지고 뜯긴 채 널브러진 꽃을 보고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왕후 폐하의 영민하심에 항상 감탄합니다.]

파엘라미엔이 왕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걱 정되는 게 있습니다. 혹시라도 실패하거나 들켰을 시에는…….]

[어머,파엘라.]

꽃에서 시선을 들어 올린 왕후 가 꽃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무슨 걱정을 하는 거니. 언제 나 내 일을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파엘라미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도움’이란 게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강압에 의한 것이거나 외부적 상황 때문일 것이 뻔했 기에.

파엘라미엔 역시 안전한 삶을 위해 왕후를 ‘도와줘야만’ 하지 않았던가.

[마르텐이 도와줄 거란다.]

우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왕후가 소서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파엘라미엔의 손끝이 움찔했다.

[마르텐은…….]

아무리 그래도 왕자였다.

들키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일을 맡을 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마르텐에게 그 일을 맡긴다는 건.

‘곧 언제든 나도 버릴 수 있다는 뜻이지.’

공주라는 신분도,여태까지 왕후에게 헌신했던 시간도 아무것도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 않는다.

왕후는 여유를 잃었으니까.

‘하긴,나한테 가문도 한미하고 재산도 없고 능력도 없는 이상한 남자를 붙여 주는 속셈이 뻔 했지.’

[그 애는 이런 일에 딱 적합하지 않니.]

왕후가 파엘라미엔을 향해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단다.]

그 목소리는 두려워하는 아이를 달래듯 한껏 다정했다.

[파엘라,네가 잘하는 일은 또 따로 있었지.]

이건 경고였다.

너 역시 언제든지 마르텐처럼 버리는 패로 쓸 수 있으니 행실을 똑바로 하라는.

그런데 왕후는 알았을까.

자신의 경고가 오히려 배반을 결심한 파엘라미엔의 등을 완전히 떠밀어 주었다는 것을.

영상은 거기서 멈췄다.

“왕후 폐하를 존경하며 따르고 있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말렸고 폐하께서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파엘라미엔이 참담한 얼굴로 애써 담담히 말했다.

물론 진실은 아니었다.

파엘라미엔이 왕후를 말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결과 는 다르군요. 제가 친어머니처럼 따르던 분이라 고민이 많았지만, 정의를 위해 공개합니다.”

다만 이 말은 하는 그녀의 표정은 진실 그 자체처럼 엄정했다.

멈춘 화면 속의 왕후는 고개 숙인 파엘라미엔을 보며 기세등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에 반해 현실에 있는 왕후는 백지보다도 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잘게 젓고 있었다.

“마,말도,이,이건……. 파엘라,파엘라! 네가!!”

허물어질듯 흔들리던 목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폭발하는 화산처럼 터졌다.

파엘라미엔을 부르짖는 왕후의 목에 혈관이 돋아 나왔다.

목에 서 피가 나올 듯한 절규였다.

“근위병은 죄인을 포박하라.”

왕후의 발악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은 네프테르가 명했다.

지엄한 명이 떨어지자마자 왕실 근위병들이 왕후에게 다가가 양팔을 잡았다.

“이,이거 놔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왕후를 얼음그림자 탑에 유폐 한다.”

그 말에 악쓰던 왕후의 외침이 뚝 및었다.

그럴 만했다.

얼음그림자 탑이 어떤 곳인가.

그건 반역을 저지른 왕족이나 갇히는 곳이었다.

“폐,폐하……! 아직 공판도 치르지 않았는데 그건 너무하신 처사 아닙니까.”

그간 잠자코 있던 스키엘라 공작이 앞으로 나서며 네프테르에 게 말했다.

“비록 죄가 있다고 하나 이 나라의 왕후이자,왕자와 공주의 어미입니다. 치죄하시더라도 순서는 지켜 주십시오.”

“아이루고의 왕후인 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왕후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거늘 오히려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다. 더 엄히 다스렸으면 다스렸지 특혜를 줄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하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다른 곳도 아니고 얼음그림자 탑의 문을 여시다니요! 얼음그림자 탑에 유폐하기 전에 우선 공판을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부왕 폐하, 제발 모후께 그러지 말아 주셔요.”

예니카리나가 눈물을 흘리며 읍소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네? 그,그럼……”

네프테르의 말에 예니카리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리 엄하신 부왕이더라도 자신의 말에는 귀를 기울여 주시는 거다.

그러나 예니카리나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기회가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심지어 자신의 진술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 받았을 때조차 왕후는 일관적으로 죄를 부정했다.”

네프테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심지어 합리적인 지적을 하는 피해자를 윽박지르고 왕후라는 지위를 이용해 꾸짖었지.”

“그,그건……”

“반성의 기미도,일말의 죄책감 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죄를 감추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어지는 말에 예니카리나의 입술이 닫혔다.

아까 있었던 공방을 지켜본 모 든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일이었기에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힘없이 근위병에게 붙들려 있던 왕후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이것 때문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스키엘라 공작 가라는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데다가 왕후인 자신을 곧바로 치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판 일자가 잡히고,그때까지 해 봐야 왕후궁에서 자숙하거나 연금하라는 말이 전부였겠지.

즉,시간을 벌게 된다.

그 시간 동안 스키엘라 공작가 가 움직일 것은 자명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아까부터 계속 나를 떠봤던 거야!’

처음부터 파엘라미엔과 손을 잡아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 고.

일부러 모르는 척,왕후에게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 주면서 위증을 계속해서 저지르게 만들었다.

“조금 전의 상황을 봤을 때, 그저 왕후궁에 연금하면 증거를 인멸할 위험이 있으니 당장 얼음그림자 탑에 유폐한다.”

네프테르의 말은 선언과 다름 없었다.

명분은 네프테르에게 있었다.

더 이상 반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눈빛에 스키엘라 공작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왕의 하교를 받은 근위병이 왕후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왕후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억울해! 이건 함정이었어!”

고개가 꺾일 듯한 기세로 얼굴을 돌린 왕후가 아리스티네를 노려보았다.

“저년이 이걸 노리고 일부러 그랬던 거야! 넌 다 알고 있었 지! 네년은 다 알고 있었던 거야!”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얼굴을 감싸 자신만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의 손바닥이 아리스티네의 귀를 막았다.

‘흉한 건 보지도,듣지도 마.”

그 말이 왕후의 이성을 뚝 끊기게 만들었다.

“네 이노옴!”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 지,왕후는 근위병의 손을 뿌리 쳤다.

왕후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기에 힘을 조금 뺀 상태에서 잡고있긴 했어도,보통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왕후가 아리스티네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르칸은 아리스티네를 제 몸으로 끌어안으며 보호했다.

동공이 칼날처럼 좁혀진 황금 빛 눈동자와 마주친 찰나, 순간적으로 왕후의 몸이 우뚝 멈췄다.

본능적으로 얼어붙은 것이다.

그 짧은 틈으로 충분했다.

“아악!”

왕후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렸다.

거칠게 팔이 잡아 채여 꺾이는 바람에 눈물이 나올 만큼 아팠다.

“감히 누……

왕후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자신의 팔을 잡아 비튼 사람이 다름 아닌 왕이었기 때문이다.

“왕후,미쳤소?”

네프테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왕자비를 해하려 하다니. 지금 설마 배 속의 왕손이 잘못되길 바라고 이러는 거요?”

네프테르와는 딱히 사이가 좋은 부부는 아니었다.

정략혼이었고,네프테르는 왕후의 세력과 탐욕을 항상 경계했다.

자신 역시 하미르를 후계로 내 정하지 않고,천하디천한 어미를 둔 타르칸을 귀애하는 네프테르를 원망했다.

하지만,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네프테르는 처음이었다.

튀르쿠아즈빛 눈동자가 마치 얼음으로 만든 송곳 같았다.

“폐,폐하,이건 저년의 함정입 니다! 일부러,일부러 내 손발을 자르려고!”

억울했다.

이렇게까지 될 일이 아니었는 데, 아리스티네가 일부러 모르는 척 말을 유도하고 이야기를 끌 어서.

“추하다,추해.”

귀족들 틈에서 새어 나온 목소 리에 왕후가 숨을 들이삼켰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비 전하께서 진짜로 왕후의 계획을 먼저 알았으면 아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피했겠지.”

“하다못해 연회를 시작할 때 영상을 공개하면 끝인걸.”

“연회장에서 터트리면 화제성 도 충분하고.”

아니다. 그게 아니다.

저 영악한 년은 고작 그런 걸 로 끝낼 사람이 아니다.

범죄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미수로 끝난다면 어찌 되겠는가.

‘당연히 내 죗값도 약해지겠지.’

사람들의 지지를 잃겠지만 어 쨌든 판결은 왕후궁에서 근신하 고 재산 중 굵직한 몇 가지를 환수하는 것으로 끝날 터였다.

“나를 현행범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모른 척한 거다! 그래서……!”

왕후의 외침에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범죄를 계획하지 않았으면 현행범이 될 일도 없지 않나? 왜 엄한 사람을 탓 해?”

“아까 네가 꾸민 짓 아니냐고 할 때 타르칸 전하의 눈빛을 생각하면 계획을 안 순간에 난리 를 쳤을 게 분명한데……”

“그래, 현행범으로 몰아가기 위 해 알면서 기다렸다고 칩시다. 그럼 마르텐 왕자님이 처음 진술했을 때, 곧바로 파엘라미엔 전하께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겠지.”

“맞아요. 뭐 하러 아까의 그 지지부진한 공방을 이어 나갔겠어요.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필요가 없어!

왕후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사람들의 태도가 그 공방 이 효과가 있었다는 증거였다.

왕후는 몇 번이나 자신의 권위 를 앞세워 위증했다.

그 결과 왕후의 말도,왕후의 행동도, 왕후의 권위도 모두 땅 바닥에 떨어졌다.

일국의 왕후에 대한 일말의 신 뢰조차 완벽하게 잃었다.

“왜,왜……”

모르는 건가.

분명 연회가 시작할 때 시류를 읽은 귀족들이 아리스티네에게 호감을 드러냈다.

왕후와 타르칸을 비교했을 때, 타르칸에게 줄을 대는 게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누구와 비교할 필요 없이,왕후 자체를 깔보았다.

“이건 다 저년이 만든 판이라고…….”

자신은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이들은 왜 아직도 모르는 걸까.

“망상증이 돋으셨나.”

쯧,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으면 불륜 스캔들을 꾸미라고 꿈에 왕자비께서 나타나셔서 말했다고 하시겠네요.”

“자기가 해 놓고 왜 남 탓인 지.”

“원래 실패는 인정하기 힘든 법이지. 그래서 다른 누군가 때문에 실패했다고 탓하고 싶고.”

“더 볼 것 없다. 끌고 가라.”

네프테르가 손을 내저었다. 그 리고 무릎 꿇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마르텐.”

마르텐이 억울한 얼굴로 네프 테르를 올려다보았다.

“부, 부왕 폐하, 제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왕후 폐 하의 명에 따라……”

“닥쳐라! 누가 네 부왕이라는 거냐!”

네프테르의 일갈이 채찍처럼 마르텐의 등을 후려쳤다.

“나는 네놈 같은 아들은 둔 적 없다!”

“부,부왕…….”

네프테르의 험악한 눈초리에 부왕이라고 부르려던 마르텐의 말이 쏙 들어갔다.

네프테르는 지쳤다는 듯 한숨 을 쉬며 말했다.

“마르텐에게서 왕자의 지위를 박탈한다.”

“부왕 폐하……! 모든 것은 왕후 폐하께서 시키신 일입니다!”

“이게 사주를 받았다고 해서 저지를 일이냐! 억울할 것도 없다. 네 죄를 생각해라!”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르텐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오늘 아리스티네의 휴게실에 숨어들 때만 해도 앞으로의 미 래에 들뜬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네 녀석이 살고 있는 궁은 환수한다. 왕자의 재산 역시도.”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그런 저는 어떻게……”

마르텐은 왕자로 태어난 덕분에 여태껏 호의호식했지,능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변경으로 보낸다. 그래,마수 평원 쪽에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지.”

“예?!”

“국방의 의무를 다하도록.”

“이,이건 제게 죽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 폐하의 아들인데……!”

“그럼 매번 평원에 나가는 타르칸은 항상 죽으러 가는 것이냐?”

그 말에 마르텐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타르칸과 자신은 실력부터가 다르지 않으냐는 항변은 통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저들을 가두어라. 신문 해. 이 일에 연루된 자들은 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니.”

네프테르가 카메라맨과 사내를 가리켰다.

“감히 왕자비를 능멸하려 한 대가를 치러야지.”

“폐, 폐하! 저,저,저희는 그 저…….”

“감히 어느 안전에서 입을 여느냐!”

근위병이 허락 없이 입을 여는 두 사람을 책했다.

시퍼런 칼날이 목 끝을 겨누자 그들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 었다.

“아,휴게실을 지키고 있던 시 종들도.”

관련자는 모두 감옥으로 끌려 갔다.

절대로 이 일을 쉬이 넘어가지 않겠다는 왕의 의지가 느껴졌다.

아리스티네를 모욕하는 일에 가담한 것은,그것이 벽 속의 쥐 새끼나 정원의 새라도 잡아들여 처형하겠다는 의지.

왕궁에 피바람이 불 징조였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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