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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68화 (168/183)

168화

처음 수면 거울 속에 비친 건 라우넬리안이 었다.

반가운 얼굴에 아리스티네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던 것도 찰 나였다.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시커 먼 칼날이 라우넬리안의 몸을 꿰뚫었으니까.

후드득一.

새하얀 대리석 바닥을 물들인 새빨간 피가 마치 아이리스의 잎처럼 유려했다.

허물어지는 라우넬리안의 몸에 아리스티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림자 저주!’

그 금지된 끔찍한 사술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쓰러진 라우넬리안의 몸에 새까만 잉크로 새긴 것 같은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몸을 조이는 끈처럼,그 글자들은 라우넬리안의 몸을 옥 죄었다.

‘오라버니……!,

심장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요한 상태로도 아리 스티네의 눈동자는 바쁘게 수면 구석구석을 살폈다.

당황해서 넋 놓을 때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단서를 건져야 했다.

막으려면.

아리스티네의 절박한 눈동자가 채 전경을 훑기도 전에 수면이 요동쳤다.

수면에 비친 모습이 흐려지는 것과 동시에 물이 잠잠해지려고 했다.

제왕안의 발현이 끝나 가고 있 었다.

‘안 돼!’

아직 제대로 된 단서를 얻지 못했다.

아리스티네는 본능적으로 타르 칸의 손을 꽉 잡았다.

“리네?”

네프테르와 아웅다응하고 있던 타르칸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리스티네의 시선은 잠잠해져 가는 수면 위에 머물러 있었다.

‘……뭐지?,

타르칸은 전신의 기혈을 따라 오러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황금빛 오러가 그의 몸에서 터 져 나오기 직전,그의 손을 꽉 붙잡고 있는 아리스티네에게로 옮겨 갔다.

키이이잉,아리스티네의 흥채가 조여들며 보랏빛 눈동자에 연둣빛 그림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은은한 제비꽃색이 감돌던 그녀의 은발에 꿀처럼 짙은 금발이 뒤섞였다.

‘허락하지 않아!’

그 강렬한 외침은 차라리 명령에 가까웠다.

깨어져 가던 수면 거울이 제왕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강제로 다시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면 위로 다시 사람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것,라우넬리안을 구할 수 있는 실마 리가 될 것이 비치길.

아리스티네의 염원을 따른 수 면 거울이 저주의 배후를 비추 었다.

그곳에 비친 것은…….

‘알피어스!’

다름 아닌 자신의 아비였다.

[내가 아무런 대비도 안 하고 그 성난 늑대 같은 놈을 북부에 풀어 두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알피어스가 말라붙은 입술로 히죽 웃었다.

[그럼 라우넬리안 오라버니께서 제도를 떠나기 전에 그림자 저주를 걸어 놓으셨던 거예요?]

레타나시아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아비에게 물었다.

그녀로서도 충격이었다.

그때 라우넬리안은 아직 어린 아이였다.

황자이자 적장자라고 하나,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

발현된 능력도 염동력이라 차 따를 때나 도움될 거라는 말을 듣지 않았나.

현재 라우넬리안의 염동력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가 생사를 넘나 들며 극도로 연마했기에 얻게된 힘이었다.

역사상 염동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라우넬리안처럼 쓰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황께서는 분명 라우넬리안 오라버니를 하찮게 여겼어. 그런 데도 그림자 저주를 걸어 놓았다면 혹시 내게도……’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파훼해야 하지?

아직까지 라우넬리안에게 저주 가 발동하지 않은 건 발동 조건 이 까다로워서였다.

발동 조건에 관한 이야기는 조 금 전 알피어스에게서 들었다. 그녀가 관여할 일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림자 저주를 파훼하 는 법은 알려 주지 않았다.

여태껏 보아 왔던 모든 것을 떠올려도 생각나는 건 없었다.

금지된 사술이라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래, 제 앞에서 동생 좀 혼냈다고 날 노려보던 그놈의 눈빛 이 워낙 괘씸했어야지. 그림자 저주는 말이다. 저주에 걸릴 때 가 가장 고통스럽다더구나. 온몸 에 날카로운 바늘로 글자를 새기는 것 같다고. 피가 철철 흘러 도 몇 번이나 헤집고,헤집고, 또 헤집어 살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새기는 고통이라고.]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알피어스가 킬킬 웃었다.

[뭐, 실제로 글자를 새기는 건 아니니 진짜로 상처가 나진 않 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깔끔하 지. 고통 탓에 그놈이 입에 거품을 물었을 때를 너도 봤어야 했 는데.]

알피어스는 아주 즐거운 추억 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했다.

레타나시아의 눈매가 가라앉았다.

‘그냥 짜증 나서 보복성으로 그림자 저주를 걸었던거군.’

하긴,알피어스는 딱히 대비를 잘하는 자가 아니었다.

거슬리는 자식에게 겉으로 티 가 안 나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그림자 저주를 택했을 뿐.

거기다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우월감도 그를 만족시켰을 것이다.

‘정말 딱 부황다운 이유야.’

레타나시아는 냉정하게 평했다.

[그렇게 혼풀이 났으니 좀 꺾 일 줄 알았는데 그러고서도 내게 대들더구나. 다 제 동생 잘되라고 했던 거였는데. 결과적으로 아리스티네가 제왕안을 얻게 된 것도 내 덕이 아니냐?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것들이 말이 야!]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던 알피어스가 쿨럭쿨럭, 기침을 토해 냈다.

레타나시아는 다정하게 그의 몸을 잡았다.

[심기를 가라앉히세요, 부황. 여기서 나가셔서 다시 황위를 되찾으셔 야죠.]

‘물론 그 황위는 부황이 아니라 내게 돌아올 테지만요.’

[정말 오라버니도 언니도 참 너무하세요. 이건 천륜을 어기는 짓 아닌가요. 이렇게 건강이 상 한 부황의 모습을 뵈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역시 레아,내겐 너뿐이다.]

알피어스가 사랑하는 딸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어쨌거나 그때 걸어 놨던 저주가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발동 조건이 까다로워서 쓸 수 없 을 거라고 생각했거늘.]

[아이루고의 왕후가 협력해 주 어서 다행이지요.]

[레아,네가 좋은 소식을 들고 왔구나. 넌 항상 내 기쁨이자 자랑이 었지.]

[부황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게 제 기쁨입니다.]

흡족하게 웃던 알피어스의 얼굴에 또다시 분기가 차올랐다.

[……라우넬리안 놈이 죽는 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거늘.]

[지금은 때를 기다려 몸을 낮 출 때입니다. 하지만 일이 성공하면 제가 오라버니의 시신을 반드시 부황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나가서 보여 주는 것이 아니 라,이곳에서.

레타나시아가 속생각을 숨긴 채 달콤하게 웃었다.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건넨 뒤 그녀는 허름한 망토를 뒤집어쓰 고 알피어스가 유폐된 곳을 나왔다.

물론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병 사에게 주먹만한 황금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람에 휘날리듯 허공에 물결 치던 아리스티네의 머리카락이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뒤섞였던 금빛 머 리카락 역시 물이 빠지는 것처 럼 은발로 돌아왔다.

연둣빛이 일렁거렸던 눈동자도 원래대로 보랏빛만을 반사했다.

타르칸은 아리스티네와 이어져 있던 오러가 다시 잠잠해지는 것을 느꼈다.

“리네.”

아리스티네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설마 왕후와 손을 잡고 라우넬 오라버니를 노릴 줄이야.’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경련했다.

그림자 저주라니,그런 것을 어린 라우넬리안에게 걸어 놓았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아팠을까,얼마나 고통 스러 웠을까.

그러나 라우넬리안은 자신에게 그런 내색 따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아리스티네를 지켜 주 려고 했다.

그 때문에 그런 저주 에 걸렸으면서도.

‘이번엔 내가 오라버니를 지켜 드릴 차례야.’

알피어스와 레타나시아의 계획 은 분명했다.

‘라우넬 오라버니가 돌아가시면 당장 혼란이 올 수밖에 없어.’

바로 그때를 노려 상황을 전복 시키는 것이다.

‘아이루고에 있는 내게 그 소 식이 닿고,내가 상황을 수습하러 실바누스에 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니까.’

예상치 못한 사고에는 대응 매뉴얼이 있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 정도 시간을 버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거겠지.’

그걸 가능하게 한 게 왕후의 협력일 터.

‘어쩐지 스키엘라 공작가가 너 무 조용하다 싶었지. 여론이 너무 안 좋으니 몸을 웅크리고 있 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뒤로 레타나시아와 접촉해 알피어스를 끌어들였을 줄 이야.

‘왕후 쪽도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니 승부수를 띄운 거야.’

스캔들을 일으키다가 걸렸을 때와는 다르다.

이번에 실패하면 그야말로 전 부를 잃는다.

스키엘라 공작가도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다.

아리스티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우선 라우넬 오라버니께 알려 야…….’

알려서, 그다음은?

실바누스는 현재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였다.

심지어 정당한 황위 계승자인 아리스티네가 실바누스에 없는 상태.

황좌가 비었다.

하물며 적법한 계승자인 아리스티네가 황위를 이을지도 불투명했다.

본인 입으로 황제가 될 생각은 없다고 말했으니까.

이 상황에서 그 빈자리를 욕심 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권력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탐이 날 것이다.

‘암살이 있을 거라는 건 나보다 라우넬 오라버니께서 더 잘 예상하셨을 거야.’

실바누스의 권력 구도에 대해 서는 그가 더 잘 알았다.

당연히 만반의 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지 못했다.

‘그림자 저주의 파훼법은 없어.’

그래서 더 끔찍하고 무서운 저주였다.

해제하지 못하는,대상자에게 죽음의 칼날을 꽂아 넣는 저주.

대상자의 피를 머금은 칼날에 서 저주의 글자가 흘러나와 몸 을 옥죈다.

죽음과 피가 뒤엉킨 저주의 글 자는 신관의 치유를 막는다.

즉,그림자 저주의 상처는 치유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라우넬리안의 죽음은 막을 수 없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방법이 있어.’

아리스티네의 눈동자가 결의로 빛났다.

‘저주가 발동한 순간, 오라버니를 그림자 칼날에서 보호하면 돼.’

대상자가 피를 흘리지 않기에 자연스레 저주의 글자 역시 흘러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림자에서 확 튀어나오는 칼날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심지어 라우넬리안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니 거리도 가깝다.

반사적으로 대응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리.

그럼에도 아리스티네의 눈동자 는 빛을 잃지 않았다.

‘칸이라면 가능해.’

아리스티네는 남편을 믿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타르칸을 바라보았다.

아리스티네의 입술이 달싹였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고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리네.”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손을 고쳐 잡았다.

괜찮다는 듯이,천천히 손을 쓸어 준다.

아리스티네는 그제야 그가 걱 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르칸뿐만 아니라 네프테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아리스티 네를 재촉하지 않고,그저 기다려 주고 있었다.

꾸욱, 아리스티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가슴이 울컥거렸다.

타르칸에겐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네프테르에게는 말할 수 없다.

평소라면 분명 그렇게 판단했 을 것이다.

아이루고 왕에게 오라버니가 대리청정하고 있는 실바누스의 위기를 알릴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비단 상자를 움켜쥔 채 뭐든 말해 보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네프테르를 바라 보았다.

몸을 감싸고 있는 망토가 포근 했다.

그렇게 주고서도 또 주고 싶어 서 손에 또 뭔가를 쥐고 있다.

‘부왕 폐하는…… 아버님은 괜찮아.’

타르칸이 아이루고의 왕자가 아니라 자신의 남편이라서 괜찮은 것처럼.

네프테르 역시 아이루고의 왕이지만,자신의 가족이었다.

그녀의 생물학적 부친인 알피어스보다도 더 아버지 같은.

“칸……”

“응,리네.”

가날픈 부름에 타르칸이 그녀 의 손을 꼬옥 쥐었다. 마치 ‘내 가 네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처럼.

“가서 우리 오빠 좀 구해 줘.”

* * *

그 말에 타르칸의 얼굴이 굳었다.

아리스티네가 울 것 같은 얼굴 로 수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하고 예감했다.

그런데 라우넬리안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

“알았어. 내가 무슨 일이 있어 도 구해 줄게.”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황금빛 눈동자가 아리스티네를 가득 담았다.

아리스티네는 햇살과도 같은 그의 눈동자에 겨우 미소 지었다.

타르칸이 구해 준다고 말하자 그제야 안심이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알피어스가 왕후의 협력을 받는다는 것은 군사 이동이 있을 거라는 예고였으니까.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돌려 네프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쩐지 시무룩하게 있었다. 하지만 아리스티네가 그를 바라보는 순간 생기를 얻었다.

“그래,뭐든 말해 보렴. 다 들어주마.”

아리스티네가 입을 열기도 전 에네프테르가 말했다.

설마,자기를 놔두고 타르칸에게 먼저 부탁해서 시무룩했던 걸까.

아리스티네는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대신 심호흡과 함께 결심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우리 오빠 좀 도와주세요.”

‘믿어.’

“아버님.”

당신은 아이루고의 왕이 아니라 내 아버지나 마찬가지니까.

아버님.

네프테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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