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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73화 (173/183)

173 화

한 달 동안 장례식을 치르고 그 후에 거행된 판결에 따라 연 루된 자를 모두 처벌하고 나니 겨우 왔다고 생각한 봄이 어느 새 끝물이었다.

꽤 강해진 햇빛이 종이 위에 고였다.

눈이 부셔 와 서류를 살피던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들었다.

저 절로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든 것이 새로 피어나고 깨어 나는 봄 동안 왕궁 안에는 삭풍 보다도 더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전략용 통신석 조작부터 시작 해 왕후와 스키엘라 공작의 사 주를 받은 자들이 대거로 숙청 당했기 때문이다.

“비전하.”

‘‘응?”

“너무 심려치 마세요. 사람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있으니까요.”

“리트렌의 말이 맞습니다. 본디 겨울에는 모든 낡은 것이 스러지고 봄에는 새로운 것들이 피 어나지 않습니까.”

리트텐과 아세나의 말에 아리스티네가 눈을 깜빡거렸다.

‘갑자기 왜 이래?’

그냥 햇빛이 강해졌길래 창밖을 본 것뿐인데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자연은 쇄신의 과정을 거쳐 더 오래 맥을 유지하지요. 지금 저희도 같습니다.”

그 말까지 듣자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궁에서 일하던 자들이 처벌을 받아 대거 물갈이되는 모습을 보고 아리스티네가 심란할 거라 고 생각했나 보다.

‘난 그렇게까지 감상적이지 않은데.’

죄 지은 자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받는 게 맞다.

권력이나 재산이 많다고 해서, 왕실의 지근거리에서 일하던 자들이라고 해서 예외를 주어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처벌은 매 우 고무적이었다.

‘리트렌과 아세나의 말대로 궁 밖은 오히려 활기를 띠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백성의 삶 까지 위협하던 자들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이 깨끗이 정리당하니 정의가 실현되 는 것을 눈앞에서 본 기분이었다.

당연히 왕가에 대한 신뢰는 갈 수록 높아졌다.

“자,호흡하세요. 심기를 가라 앉히시고.”

“좋은 생각,좋은 생각!”

옆에서 궁인들까지 난리를 치며 아리스티네를 북돋웠다.

쓰읍하아,쓰읍하아,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 황당함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습격 사건이 있고 나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보호 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야 습격 사건 같은 건 잘못 하면 유산이 될 수 있었으니까’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검진 결과 아무런 이상도 없었는데도 이런다.

아리스티네는 방 안에 있는 모두가 전생으로 따지자면 라마즈 호흡을 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란 피우지 마. 그냥 볕이 강해진 걸 보고 시간이 빠르다고 생각했던 것뿐이니까.”

빨리 실바누스로 이동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을 정리하는 데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방책 건은 드디어 최종 마무 리를 했네. 잡을 수 있는 오류는 다 잡았으니 이제 착공에 들어 가. 고생했어.”

아리스티네가 서류에 쾅, 하고 결재 도장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본 아세나와 리트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가.

비전하께서 시해당할 뻔했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한달음에 달려왔더니…….

〈아,마침 잘 왔어. 방책을 이용해서 평원에 가도를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주 멀쩡한 얼굴의 아리스티네가 인사도 하지않고 일거리를 안겨 주었다.

당황한 사이 아리스티네는 속 사포처럼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쏟아 내었다.

혀를 내두를 만한 아이디어와 추진력이었다.

습격까지 당하고 주변 상황이 복잡한데 또 어떻게 그새 그런 생각을 한 건지.

물론 존경할 만했다.

존경할 만했지만…….

〈뭐 해? 가서 일 시작 안 하고.〉

말끔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그랬다.

하지만 별수 있겠는가.

돈 주는 사람이 까라면 까야지.

그리고 다들 재판이니 처벌이 니 뭐니 하며 어지러울 동안 그들은 연구실에 갇히다시피 하며 안전한 가도를 만드는 데에만 몰두했다.

아리스티네가 새로이 제기한 문제점으로 인해 찢긴 계획서가 몇이 던가.

그런데 드디어 최종 승인이 난 것이다!

‘이제 연구실에서 벗어나 잘 수 있어……’

‘집에 가면 목욕하고 3일은 죽 은 듯이 자야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아리스티 네가 생긋 웃었다.

“착공에 들어가면 또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나 잘 살펴 줘. 기술자니까 더 잘 보겠지.”

웃는 아리스티네의 머리 위에 는 뾰족한 뿔이, 등 뒤에는 새까만 날개가 파닥파닥하는 것처럼 보였다.

‘악마다,악마가 나타났다!’

‘우릴 죽일 셈인가……’

새하얗게 질려 대답도 못 하는 리트렌과 아세나를 보고 아리스 티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감독할 순 없으니까 ……. 리트렌과 아세나는 전권을 맡길 정도로 내가 믿는 사람들 이야. 일적으로도,일 외적으로도.”

그 말에 리트텐의 눈매가 일렁였다.

그래, 비전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을 때부터 평생 이분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반드시,반드시 비전하의 믿음 에 보답하겠습니다!”

감격한 얼굴로 말하는 리트렌 을 보고 아세나가 쯧,하고 혀를 찼다.

‘홀랑 넘어가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저 역시 가슴속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역시 비전하께선 사람 보시는 눈이 뛰어나세요.”

결국 아세나 역시 자발적인 노예의 길로 뛰어들었다.

사실 아리스티네가 저 혼자 놀면서 남을 굴리면 짜증 날 텐데, 본인이 스스로 본인을 굴리고 있으니 왠지 나도 같이 갈려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렇다.

여러 사건이 있었으니 그냥 쉬 고 있으면 될 걸 또 일을 벌이지 않았는가.

“비전하께서는 정말 일을 좋아 하시는군요.”

아세나의 말에 리트렌이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타르칸 전하와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사업 구상부터 하셨지요.”

“응,내가 그렇더라고.”

아리스티네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냥 돈이나 좀 번 다음에 이혼해서 자유롭게 살아야지,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또 달랐다.

〈리네, 네가 원하는 게 뭐니?〉

실바누스를 떠나오며 들었던 라우넬리안의 물음이 계속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리네,사람은 많은 것을 겪으 면 또 변하기 마련이야. 생각지 도 못한 것을 좋아하게 되고,또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걸 싫어하 게 되기도 하지.〉

〈그렇게 너 자신도 몰랐던 너 를 발견하게 되는 거야.〉

〈네 목표가 과거의 상황을 벗 어나기 위해 정한 것인지, 아니 면 정말로 네가 좋아하고 원하 는 것인지 생각해 보렴.〉

결혼을 하고,수많은 것들을 새로 접하면서 아리스티네는 정 작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 었다.

그걸 라우넬리안의 말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자기 자신 을 뒤돌아 본 결과.

“난 사업이 적성에 맞나 봐.”

아리스티네가 빙긋 웃었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사업체 하나 정도는 굴려 봐야 하지 않겠 는가.

그것도 제왕안의 소유자답게 가장 큰 스케일로.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업 하나 맡으려고.”

씩 웃는 아리스티네의 모습에 리트렌과 아세나의 눈동자가 떨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리스티네 가 저렇게 두근거리고 설레어 했다.

과연 또 어떤 생각지도 못 한 일을 보여 줄까.

그리고.

‘왠지 내가 갈릴 것 같은 예감이……’

‘그것도 가루가 되도록 갈릴 것 같은데……’

예지나 다름없는 예감이었다.

“자, 착공에 들어가려면 준비할 게 많지 않아?”

어서 가서 일해.

그 말에 리트렌과 아세나는 속 으로 눈물을 흘리며 방을 나왔다.

아리스티네는 악마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처량한 두 사람의 뒷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 보았다.

‘좋아,가도는 이걸로 됐고. 내정 상황은 파엘라미엔에게 맡기면 잘하겠지.’

네프테르와 타르칸 그리고 아리스티네 본인까지.

국가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전부 자리를 비우는지라 커버할 사람이 필요했다.

‘스키엘라 공작가가 무너지면서 정치계와 상계 둘 다 구멍이 생겼어.’

안정된 민생을 위해선 최대한 위화감 없이 메꿔야 한다.

‘파엘라미엔은 머리가 좋으니까 잘하겠지. 본인 입으로 야망을 가진 적도 있다고 했고. 솔직히 아이루고 내부 상황은 나보다도 더 잘 알 테니까 다 맡겨 버리자.’

그렇게 엄청난 일거리가 순식 간에 파엘라미엔에게 떨어져 내렸다.

그 시각,파엘라미엔은 몰수된 스키엘라 공작가의 재산을 놓고 어떻게 굴릴지 머리 빠지도록 고민 중이었다.

특히 공작가가 소유하고 있던 철광산은 이 문제로 채굴이 이 루어지지 않고 있어 최대한 빠 르게 결론을 내려야 했다.

며칠째 세 시간밖에 잠을 자지못한 성과가 드디어 드러났다.

일에 마침표를 찍은 파엘라미 엔이 길게 기지개를 폈다.

‘부왕 폐하께 보고만 드리고 일단 자자.’

아직 남은 일이 산적해 있지만 막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때,통신석이 울렸다. 발신자는 아리스티네였다.

파엘라미엔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통신이 끊어지고, 파엘라미엔은 생각했다.

‘나,악마와 손을 잡은 게 아닐 까…….’

아리스티네는 그녀를 위해 치킨을 넣어 주었다.

Chapter 40. 루

라우넬리안은 전전긍긍하며 포털 앞에 서 있었다.

“왜 포털이 반응이 없지? 오는데 설마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괜찮을 겁니다.”

포털 관리자가 기계적으로 답했다.

라우넬리안이 10초 간격으로 저 소리를 하고 있는지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온다고 한 지가 언젠데! 왜 반응이 없는 거야!”

“출발하겠다는 통신 연락을 받 은 지 이제 겨우 10분 지났을 뿐입니다.”

“10분은 무슨! 10년이一.”

라우넬리안의 말이 뚝 끊겼다.

그의 닦달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포털 진에 빛이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공간이 열리는 증거였다.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빛이 잦아들었을 땐…….

“리네……”

라우넬리안이 반색하며 하나뿐 인 동생에게로 뛰어갔다.

답삭 끌어안으려다가 확연히 부푼 배를 보고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여기까지 마중 나오실 필요는 없는데……”

아리스티네의 말에 라우넬리안 이 대번에 섭섭한 얼굴을 했다.

“내가 마중 나온 게 반갑지 않으니?”

오만할 정도로 귀족적인 얼굴 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아니,당연히 반갑죠. 그런데 바쁘신데 부담될까 봐 그랬죠.”

“리네, 널 만나는 일에 부담을 느낄 리가. 내 동생은 이렇게 착 해서 탈이야.”

라우넬리안이 동생의 뺨에 뺨 을 마구마구 비볐다.

타르칸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내 아내에게서 그만 떨어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형님.”

“가족끼리의 해후를 방해하는 건 어디서 또 배웠지?”

만나자마자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이었다.

라우넬 리 안이 아리스티네에게 찰싹 붙으며 가족애를 과시했다.

이번에는 네프테르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동맹국의 왕을 본 척도 안 하 는 것이 실바누스의 예법인가? 그렇게나 예법을 자랑하더니 별 거 없군.”

그제서야 라우넬리안의 시선이 네프테르를 향했다.

아이루고의 왕이 실바누스의 땅을 밟은 것.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역사적으로도 길이 남을 엄청난 순간이었다.

역대 수 세기 동안 이루지 못 한 일.

그게 단순히 며늘아기를 쫓아 온 것으로 이뤄졌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엄청나게 부끄러운데.’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아리스티네는 고민했다.

“이런 실례를.”

라우넬리안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한마디 보탰다.

“하지만 리네가 왔는걸요.”

내 동생이 왔으니 내 동생을 맞는 게 먼저지!

그 말에 네프테르가 움찔했다.

‘……묘하게 납득 가는 말인데?’

자신 역시 타국의 국가 원수와 아리스티네가 함께 왔다면 당연히 아리스티네를 맞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

“예외적인 상황임을 인정하지.”

네프테르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아리스티네는 더더욱 아연해졌다.

‘아니,거기서 왜 납득하고 인정하세요.’

당혹스러웠지만, 어쨌든 간에 잘 마무리된 건 다행이었다.

“리네,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단다. 네가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다 준비해 놨어.”

“네? 무슨 준비요?”

아리스티네는 속으로 뜨끔했다.

아직 황위에 대한 이야기를 라우넬리안과 나누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고 정확하게 자 신의 생각을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이미 다 준비해 놓은 것인가?

“내가 준비했지만 이보다 화려하고 정교하고 그러면서도 편안할 수가 없다. 기대하거라.”

‘설마 대관식인가?’

아리스티네는 침을 꿀끽 삼킨 채 라우넬리안의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잠깐.”

네프테르가 두 사람을 막았다.

“내 째…… 크흠,리네는 땅을 밟지 않게 하겠다는 게 내 신조라서.”

그의 눈길에 궁인들이 가마를 대령했다.

아이루고 왕궁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타고 다니던 바로 그 가마였다.

‘아니 저걸 여기까지 가져왔지?’

아리스티네는 기함했다.

저걸 다 태워 버리든지 말든지 해야겠다.

놀란 눈으로 가마를 바라보는 실바누스 시종과 시녀들을 보고 있자니 창피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라우넬리안이 피식,웃었다.

“필요 없습니다.”

“뭐?”

라우넬리안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와 동시에 아리스티네의 몸이 허공에 살짝 떠올랐다.

염동력이었다.

“내 동생이 꽃길 외에는 아무 것도 밟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 내 평생의 신조라.”

라우넬리안이 타르칸과 네프테르를 보며 입 끝을 끌어 올렸다.

“가마 따위나 다른 사람의 힘은 쓸 필요도 없죠.”

명백한 도발이었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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