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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74화 (174/183)

174화

허공에 둥둥 뜬 상태에서 아리스티네의 눈빛이 흐려졌다.

저 가마를 여기까지 가지고 온 네프테르나 염동력으로 자신을 띄우는 라우넬리안이나 참 할 말이 없었다.

‘둘이 신경전을 벌이는 건 좋아.’

각 국가의 원수니 당연히 신경 전을 벌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중간에 나를 끼는 걸까……’

자신을 올려다보는 실바누스 시녀들과 아이루고 궁인들의 눈 빛이 느껴졌다.

아리스티네는 부끄러워서 차마 그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다 타르칸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좀 말려 보라는 눈으 로 바라보는데 그가 아리스티네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단단한 팔이 조심스레 허리를 받치고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아리스티네는 타르칸의 품에 안긴 자세가 되었다.

배가 압박되지 않는지 확인한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머리를 제 빵빵한 가슴에 기대게끔 했다.

그는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는 두 남자를 당당하게 바라보았다.

“리네는 내 품을 가장 편하게 느끼고 좋아합니다.”

자신의 품 중에서도 특정 부위 (?)를 유독 좋아하긴 했지만.

“어휴,됐다.”

“그래,네가 다 해라.”

라우넬리안과 네프테르는 고개 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품에 안은 건 타르칸 인데 왜 내가 부끄러워지는 걸까.’

아리스티네는 한숨을 푹 내쉬 었다.

‘……설마 이 상태로 황궁을 가로질러 다니는 건 아니겠지.’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손은 타르칸의 가슴에 착 얹어져 있었다.

아리스티네의 예상과 달리 라우넬리안은 대관식이 열리는 세 루비에체 홀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황제가 기거하는 황제의 침궁 앞에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에서 내린 후 약간의 실랑이 끝에 아리스티네는 본인 발로 걸을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을 보여 주시겠다는 거지?’

그 의문은 화려한 방의 문을 여는 순간 사라졌다.

“짠!”

포근포근한 색채의 비단 벽지, 구름같이 폭신폭신해 보이는 인형들.

해와 달의 빛을 모아 만든 것 처럼 사랑스럽게 반짝이는 모빌.

바닥은 도톰한 카펫을 깔아 쿠션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새하얀 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요람은 은백나무로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방이지만,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금과 보석이 잔뜩 박혀 있었다.

‘인형의 눈이 블랙 다이아몬드 인 것 같은데……’

그야말로 호화로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다.

“자,어떠니? 아가 방이란다.”

라우넬리안이 눈을 빛내며 물 었다.

“우리 조카가 지낼 방이야. 여기 이런 것도 있어. 이걸 조작하면 이렇게一.”

라우넬리안이 신나서 방 안의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아리스티네는 홀린 듯이 그걸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기 엄마가 되었으 니 아기 용품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했다.

배 속의 아이가 밖에 나와서 꼬물꼬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눈에 절로 그려졌다.

“우리 리네랑 내 조카가 커플로 입을 옷도 맞춰 놨어.”

라우넬리안이 상상만으로도 배 부르다는 듯 행복하게 웃었다.

시녀들이 눈치 빠르게 드레스 룸의 문을 열었다.

드레스 룸이라고 불리기엔 너 무나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남자아이일지 여자아이일지 모 를 때는 그냥 다 준비하면 되잖아?”

요정의 옷처럼 자그마한 옷들 이 그 커다란 방을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귀엽다……”

아리스티네가 옷을 쓸며 중얼 거렸다.

그 반응에 라우넬리안과 시녀 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해냈다!’

그와 반대로 타르칸과 네프테르 그리고 궁인들의 안색에는 초조함이 어리기 시작했다.

아이루고에서 워낙 커다란 사건이 많이 일어났던지라 아가 방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어쩌지……’

‘우리도 시간만 있었으면 이것 보다 더 좋게,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는데!’

궁인들이 발을 동동 굴렸다.

“자,여기 이쪽 문은 우리 리네 방이랑 연결돼.”

라우넬리안이 문을 열자 아리스티네를 위한 방이 나타났다.

세상의 온갖 귀한 것들은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방이었다.

대륙을 아우르는 제국에서 작 정하고 꾸민 방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냥 단순히 호화로운 게 아니 라 몸이 무거운 아리스티네가 제대로 쉴 수 있도록 설계된 공 간이었다.

“저기는 욕실,그 옆엔 드레스룸,발코니를 나가면 공중 정원이야. 그 왼편은 침실. 일부러 집무실은 뺐어. 방에서는 쉬어야지.”

하나하나 안내하던 라우넬리안이 침실 문을 열었다.

침실 정중앙에는 아주 화려하 면서도 편해 보이는 침대가 있었다.

“아까 보니까 굳이 아이루고에서 침대를 가져왔던데.”

라우넬리안의 시선이 아이루고 궁인들을 훑었다.

움찔,궁인들이 움츠러들면서도 목을 빼 침대를 살폈다.

숙련된 그들은 만져 보지 않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푹신함, 경도, 베개와 이불의 상태까지 다 괜찮아. 비전하께서 좋아하시는 대로야.’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작잖아!’

아리스티네가 눕는다면 뒹굴거려도 상관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곁에 아이를 데리고 재워도 될 정도.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리스티네 혼자 누울 때의 말이었다.

커다란 타르칸이 함께 눕기엔 침대가 너무 비좁았다.

‘우리 비전하는 우리 타르칸 전하와 함께 자야 하는데……!’

라우넬리안이 피식,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 흉물스러운 침대는 버리면 될 것 같아.”

오만하리만치 깔끔한 얼굴이 궁인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휴,흉물스럽다니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데요!”

“비전하께서 회임하신 바람에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것도 서러운데!”

궁인들이 억울함을 표했다.

라우넬리안은 싱그러운 미소 한 번으로 그들의 말을 묵살했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네프테르가 입을 열었다.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네,사돈총각.”

사돈총각이라는 사가에서나 쓸 법한 호칭에 라우넬리안이 움찔했다.

네프테르의 두꺼운 손이 라우 넬리안의 어깨를 꾸욱 붙잡았다.

“사돈댁에서 이렇게 준비를 해 주니 고맙구먼. 이걸 아이루고로 가져가는 것도 일이겠어.”

“……아이루고로 가져간다니,무 슨 말씀을.”

“내 손주를 위해서 저렇게 다 준비해 주고. 정말 고맙게 받겠네”

“내 조카를 위해서 준비한 것 입니다만?”

“허허, 아주 뜻 깊은 선물이야!”

“내 조카에게 주는 선물이지요.”

두 사람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등 뒤로는 천둥 벼락이 치는 중 이었다.

‘네놈 속셈을 모를 줄 알아? 이렇게 해서 자연스레 우리 며늘아기를 실바누스에 머무르게 하려고?’

‘적법한 실바누스의 황위 계승 자인 내 동생이 실바누스에서 사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리네와 손주를 보는 것은 내 말년의 행복이야! 절대 양보 못 해!’

‘흥,양보 따위 받지 않아도 내 동생은 실바누스에서 지낼 건데.’

파지지직,두 사람 사이에 전 기가 튀는 와중이었다.

콰앙!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파스스스스,먼지가 흩날리고 그 사이로 타르칸의 느긋한 음성이 들렸다.

“이런,어쩌지.”

전혀 난감하지 않은 표정으로 타르칸이 말했다.

“실수로 침대를 부수어 버렸네.”

그가 두 동강이 난 침대에 손을 얹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아까까 지만 해도 멀쩡했던 새 침대가 폐기 처분 할 꼴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한지 타르칸 의 손에 황금빛 오러가 다시 맺 혔다.

콰아앙!

“어이쿠,또 부쉈네. 침대가 약 해.”

그야 오러로 부수는데 어떻게 버티겠는가.

하지만 타르칸은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야 고칠 수도 없겠군. 고쳐도 문제야. 이런 약한 침대에서 내 아내가 자게 할 순 없으니.”

타르칸이 라우넬리안을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

“마침 아이루고에서 침대를 가져와서 참으로 다행이야.”

나는 내 아내랑 각방 못 쓴다!

그 의지가 금빛 눈동자에 선명하게 비쳤다.

아리스티네는 아연한 눈으로 가루가 된 침대를 바라보았다.

‘대체 내 주변은 왜 이런 걸 까……’

오랫동안 갇혀 살아서 상식이 결여된 사람은 분명 자신일 텐데.

어째서인지 자신이 가장 상식 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후로 그 침대만은 안 된다느니, 다른 침대를 가져올 거라느니,다 됐고 며칠 후 아이루고로 돌아갈 테니 아가방 짐을 싸라느니, 하는 말이 오갔다.

버틸 수 없었던 상식인 아리스 티네는 세 남자를 내버려 두고 조심스레 방을 나왔다.

궁인들과 시녀들이 그림자처럼 아리스티네의 뒤를 따랐다.

아리스티네는 이들 대부분을 물리고,라우넬리안의 심복이라 고 할 수 있는 시녀 한 명만 남

배신당한 표정을 짓던 궁인들 의 모습이 눈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

‘그’를 만나려면.

아리스티네는 조용해진 회랑에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어디 있지? 안전한 곳에 있나?”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 았음에도 시녀는 바로 알아들었다.

“황궁에 계십니다. 타렌타스 궁에 계세요.”

“상태는?”

“많이 호전되셨습니다.”

고개 숙인 채 정중히 대답하던 시녀가 눈을들어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아리스티네는 잠시 침묵했다.

“내가 만나도 될까? 그를 잃어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진실을 말해 주지 않았어.”

아리스티네의 시선이 네프테르 가 있는 자신의 방을 향했다.

네프테르는 슬픔을 말끔히 지 워 버린 듯이 행동했지만,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건 황녀님의 선택이 아니라 그분의 선택이지요.”

시녀가 아리스티네를 위로했다.

아리스티네는 피식 웃었다.

라우넬리안이 왜 그녀를 자신의 심복으로 두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 에서 앓기까지 하지 않으셨습니까. 황녀님이 가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족에게도 여러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리스티네의 안색을 살핀 시 녀가 조심스레 제안했다.

아리스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가족 일은…… 그가 스 스로 내린 결정이지만,그렇다고 가슴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겠지.”

아리스티네가 몸을 돌렸다.

“안내하렴.”

“예,전하.”

* * *

마차는 한참을 가서야 멈췄다.

황제의 침궁 위치를 생각해 보 았을 때,타렌타스 궁은 꽤 구석 진 곳에 자리해 있는 듯했다.

‘하긴,그편이 좋겠지.’

출입을 제한해 두었는지 타렌 타스 궁 주변은 인적이 드물었다.

궁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 둘이 전부였다.

마차에서 내린 아리스티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이 술렁거렸다.

많이 호전되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그때 아리스티네가 보았던 그는 죽어 가고 있었다.

거기서 호전되어 봤자 얼마나 될 수 있을까.

입술에 힘을 준 아리스티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시녀는 커다란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이 문이 열리면 그가 있다.

아리스티네가 마음의 준비를 채 마치기도 전에 시녀가 문을 열었다.

활짝 열린 창으로 제법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하늘한 시폰 커튼이 바람 에 나부끼고,오후의 햇빛이 황 금빛으로 커튼을 물들였다.

그리고 그 커튼 사이로, 한 남자가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아……’

채도가 열은 백금발이 바람에 감겨 물결친다.

하지만 길었던 머리카락은 확연히 짧아져 있었다.

우아한 콧대와 단단히 여문 턱 선.

감은 눈 아래로 깔린 속눈썹은 길었고 담홍빛 입술은 생기가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멈췄던 숨을 토 해 내었다.

살아 있다.

그것도 아주 괜찮은 모습으로.

치료가 성공해 살아 있다는 말은 타르칸에게 들었지만,도저히 멀쩡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었다.

자꾸만 흥건히 바닥을 물들이 던 새빨간 피만 생각났다.

꺼져 가던 숨과 흔들리던 눈동 자, 힘이 완전히 빠진 몸.

하지만 그는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초여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기척을 느낀 걸까.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경련하더니 튀르쿠아즈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천천히 그가 고개를 돌린다.

선명한 시선이 아리스티네를 향했다.

“.............루”

아리스티네는 그의 이름을,모든 것을 버린 그가 앞으로 평생토록 불리길 원하는 이름을 불렀다.

루가 눈매를 휘며 사르르 웃었다.

“그 이름을 당신 입으로 들으 니까 좋네요.”

울컥.

아리스티네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요? 난 진짜 그때 죽는 줄 알았다고요.”

“음,농담이 아니라 진심인데.”

장난스레 웃은 하미르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때 원래대로라면 나는 죽었겠죠”

새파란 시선이 똑바로 아리스티네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아리스티네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미르가 난처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울지 말아요. 나는 당신 눈물을 닦아 줄 수도 없는데. 자꾸 닦아 주고 싶어지잖아.”

아리스티네는 거칠게 눈물을 털어 냈다.

“끌어안고 해후의 정을 나누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당신이 싫어 하겠죠?”

루가 웃었다.

“‘루’는 당신의 친구일 뿐이니 까.”

“나도 선을 지킬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리스티네는 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당신이 살아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 말에 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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