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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됐고, 돈이나벌렵니다-182화 (182/183)

182화

진탕이 된 속보다 지금 아리스 티네가 하는 말이 더 강렬하게 뇌리를 울렸다.

“그게,무,쿨릭!”

왈칵 쏟아져 나오는 피로 인해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아리스티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께 받은 것을 아버지께 다시 돌려 드리는 것뿐이에요.”

탁,작은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유리병이 놓였다.

그 유리병을 확인한 알피어스 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아주 효과가 좋은 극독이라더니 정말인가 봐요. 복용하자마자 이렇게 효과가 나타나다니.”

아름답게 조각된 유리병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알피어스 자신 이 혼삿길에 오른 아리스티네의 손에 쥐여 준 것이었으니까.

“아버지께서 그러셨나요?”

아리스티네가 입도 안 댄 와인 잔을 한 바퀴 돌렸다.

“고통스럽게,처절하게,배신감

에 몸부림치며 타르칸이 죽어 갔으면 한다고.”

생긋,아리스티네가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분노 와 슬픔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왜 당신 같은 사람을 그냥 가 둬 두었을까.”

그저 유폐시키는 것에 만족했 던 지난날의 자신이 너무나 순진했다.

그때 끝을 보았다면 폐후 로아 스텔과 알피어스가 손을 잡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라우넬리안이나 자신이 위험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미르도.’

하미르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그로서 살았던 모든 것을 내려 놓는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일도 없었을 터.

“나도 참 유해졌나 봐요.”

토혈하는 자를 마주하며 할 말 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리스티네는 진심으로 지난날의 자신에 대해 그렇게

느꼈다.

“한때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사 라졌으면 좋겠다고, 숨 쉬는 공기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실바누스를 떠나오며 분명 그 렇게 말했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행복했거든.”

처음으로 바깥의 삶을 경험해 보며 어려운 것들도 있었지만, 행복했다.

행복은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고 했던가.

“그런데 이렇게 다시 나를 일 깨워 주네요.”

폐주를 유폐할 때, 아리스티네는 그가 더 이상 아무것도 못 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피어스는 라우넬리안을 죽일 뻔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야말로 아무것도 못 하겠지 싶어서 목숨을 살려 놓는다면 또 누구를 노릴까.

‘시온.’

아리스티네의 눈앞에 어린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기는 참 죽이기 쉽다.

아리스티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지난날의 과오를 반복 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도, 남편도, 오라버니 도…… 그녀의 곁에 있는 사람 들을 지킬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두 나라를 통합

하는 황제가 되기 전, 마지막으 로 할 일이었다.

“네,끅, 네년,으,아,흐,아리 스,헉,티네……”

시뻘게진 알피어스의 눈이 아리스티네를 태워 죽일 듯 노려 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아리스 티네에게 뻗어졌다. 하지만 닿지 못했다.

“걱정 말아요. 금방 끝나진 않을 거예요.”

아리스티네는 테이블을 긁는

손가락을 보며 무감하게 말했다.

“천천히, 서서히, 고통스럽게. 오장육부가 다 갈기갈기 찢기고 녹아내려 숨 하나 내쉬는 것조 차 괴롭게. 그렇게 죽는 독이라 고 하더군요.”

“네,허억,네가……!”

“참,그건 아버지께서 가장 잘 아시겠죠?”

날카롭게 날 선 보랏빛 눈동자 가 알피어스를 향했다.

〈그놈이 편히 죽는 꼴은 못 보 지. 천천히,서서히,고통스럽게 죽여라. 내가 준 선물이 그걸 도 와줄 거야. 그놈의 오장육부가 다 갈기갈기 찢기고 녹아내려 숨 하나 내쉬는 것조차 괴로워 하다 명줄이 끊기겠지.〉

아리스티네가 실바누스를 떠나 기 전 알피어스가 했던 말이었다.

“내 남편을 죽이라고 내게 이독약을 쥐여 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니까.”

“가,끄흑,으,주,죽…… 러!”

알피어스의 말은 이제 알아들 을 수 없을 정도였다.

과연 그의 말대로 숨 쉬는 것 조차 괴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알피어스 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돋았다. 실핏줄이 다 터진 눈을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아리스티네를 노려보았다.

그 눈은 분노보다는 광기에 물 들어 있었다.

먼지보다도 더 하찮게 여겼던, 그가 버렸던 버러지가 이렇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가 주었던 것을 그대로 이용하고,그가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면서!

“으,끅,아아아악! 흐어,너, 커헉!’’

알피어스는 재차 아리스티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목이라도 조르고 싶은 것처럼.

하지만 알피어스의 몸은 이미 그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아리스티네는 아무 반응 없이 물 한 모금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시간이 다 되었네요.”

아리스티네는 앉아 있는 것인 지 무너져 내려 있는 것인지 모 를 알피어스를 내려다보았다.

“임종을 지켜 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시녀가 조용히 다가와 망토 자락을 정리해 주었다.

“당신 때문에 한 번뿐인 대관식을 놓칠 수 없잖아요?”

알피어스의 눈이 아리스티네가 입고 있는 대관식 예복을 향했다.

아리스티네는 그의 눈동자에 치솟는 격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 참, 떠나기 전에 오해를 바로잡아 드리도록 할게요.”

스르륵,무거운 드레스 자락이 잘 정돈된 잔디 위를 지났다.

아리스티네는 이제 알피어스의 곁에 서 있었다.

테이블 건너가 아니라,조금만 움직이면 닿을 수 있는 위치.

알피어스가 경련하는 팔을 애써 움직이는 순간,

“실바누스가 아이루고를 복속 시키는 게 아니에요.”

아리스티네의 부드러운 음성이 그의 귓전에 닿았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알피어스의 움직임이 및었다.

아니,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 이라는 게 옳았다.

“타르칸과 내가 두 나라를 공동 통치를 하게 되는 것이지.”

아리스티네는 친절하게도 그를 위해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증오해 마지 않는,죽이고 싶어서 안달하던 아이루고의 왕자 타르칸이 실바누스와 아이루고 양국의 황제가 되거든요.”

허옇게 질린 알피어스의 입술에서 시익,기도를 날카롭게 긁 는 숨이 새어 나왔다.

그 말은,오늘 대관식에서 아리스티네뿐만 아니라一.

‘그 쳐 죽일 놈이 황제가 된다고?!’

“숙원을 이루신 걸 경하드려 요. 다음 대인 나와 타르칸의 아이가 두 나라의 유일무이한 황제가 될 테니 실바누스와 아이루고는 항구적이고 완전한 통합 을 이룩할 것이에요.”

알피어스의 몸이 발작하듯 경련했다. 의자가 요란하게 덜컹거 렸다.

결국엔 그 더러운 야만인의 핏 줄이 이 대륙을 통치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핏줄이기도 하다는 생 각은 알피어스의 안중에 없었다.

더러운 피가 섞인 손주는 자신의 손주가 아니었다.

‘감히,감히……!’

알피어스의 눈에서 핏물이 흘렸다.

배 속이 녹아내리는 고통이 독 으로 인한 것인지,증오로 인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가슴속에 가시로 만든 불구덩 이가 타올랐다.

도저히 이 울분 을 토해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럼.”

아리스티네가 몸을 돌렸다.

알피어스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은발, 새하얀 대관식 예복 위의 황제의 문장.

아리스티네를 위해 시종이 휘 장을 걷었다.

이대로 아무 말도 못 한 채, 추하디추한 신음만 흘리며 보낼 순 없다.

알피어스는 스스로의 혀를 짓 씹으며 한 마디를 만들어 냈다.

“아리스티네!”

저 지옥의 밑바닥에서 악귀가 절규하는 듯한 외침이었다.

휘장 아래 서서 아리스티네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엄정한 제왕의 얼굴.

그뿐이었다.

아리스티네는 더 상관하지 않 고 그대로 차양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낸 절규조 차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는 듯 이.

알피어스를 상대하는 자들은 다른 자들이었다.

“폐주는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라!”

“죄인의 신분으로 감히 황제 폐하의 존함을 입에 담는 것은 불경 중의 불경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휘장 너머로 아리스티네에게 무릎 꿇은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완전히 뒤바뀐 처지.

자신이 어린 아리스티네를 학 대한 뒤 등졌을 때와 지금 아리 스티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점점 시야가 흐려졌다.

멀리서 환호 소리가 들렸다. 대관식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새 황제의 즉위에 기뻐하는 외침이었다.

아리스티네는 흔들림 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후회는 없었다.

알피어스는 친자식인 아리스티네를 죽이려고 했다.

전쟁의 불씨로 만들기 위해서.

만약 그의 계획이 성공했으면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억 울하게 죽었을 터.

그뿐만이 아니다.

타르칸을 죽이려 했으며 유폐 당한 상태에서 다시 제 친자식인 라우넬리안과 아리스티네를 죽이려 했다.

‘내가 제왕안으로 보지 못했다면 라우넬 오라버니는 이미.....’

이건 복수가 맞았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위한 일 이기도 했다.

확실히 매듭을 짓고 비로소 미 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 * *

햇살이 그녀의 앞길을 비추었다.

티 없이 새하얀 대관식 예복에 황금빛으로 새겨진 황제의 문장 이 눈부시게 빛났다.

타르칸이 손을 내밀어 아리스티네는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커다란 손이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는다.

가시밭길도,꽃길도 함께할 거라는 둣.

아리스티네는 잠시 제 곁에 선 남편을 바라보았다.

햇빛을 받고 있는 그의 얼굴이 눈부셨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

가장 고귀한 존재로 태어났으 나 어릴 때부터 학대받았고, 아비에게 버림받아 유폐당했으며, 커서는 전쟁의 씨앗으로서 적국 에 보내졌다.

누군가는 그녀의 삶을 안타깝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티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타르칸을 만났기에.

그리고 앞으로 그와 함께 걸어 갈 것이기에.

“운이 아니야.”

타르칸이 아내를 마주 보며 말 했다.

“모든 것은 네가 네 손으로 선택하고 만들어 낸 결과지.”

“칸.”

“네가 날 사랑한다는 게 꿈만 같아.”

“꿈이 아니야.”

두 사람의 이마가 맞닿았다.

시선이 내리깔리고,숨결이 서로 를 간지럽혔다.

막 입술이 맞닿으려는 순간,

“크흠,저, 분위기 좋은데 죄송하지만 입장하실 때입니다. 문…… 이미 열렸습니다.”

헛기침한 시종장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오죽 두 사람의 세계에 빠져 있으면 어떻게 호명까지 했는데 못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무릎을 굽힌 채 새 황제가 붉은 길 위를 걸어 들어오길 기다리던 귀족들이 이변을 느끼고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활짝 열린 문 앞에 곧 뜨겁게 키스할 자세로 서 있는 황제 부부를 발견하고 눈을 깜 빡였다.

아리스티네는 시종장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귀족들과 눈이 마주쳐 어 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신성하고 장엄한 대관식에서 무슨 추태를 보인 건지.

그것도 보통 대관식이 아니었다.

수백 년간 적대하던 두 국가가 하나가 되어,공동 황제로 즉위 하는 대관식이었다.

다음 대관식부터는 한 명의 황제가 두 나라를 이어받을 테니 이번 대관식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유일무이한 대관식이다.

‘……어쩌지.’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 좋을 지 고민하느라 아리스티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런데 그 순간.

타르칸의 손이 망토 자락 사이로 들어와 아리스티네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순식간에 아리스티네가 그에게 로 끌려간다. 두 사람의 몸이 단 단히 밀착되었다.

“꺄아아아아!”

“우와아아아!”

귀족들이 환호했다.

‘아니,환호해? 진짜?’

얼떨떨한 사이로,타르칸의 입술이 입술에 닿았다.

짧게 그녀를 맛본 입술이 아쉬움을 남기고 떨어져 나간다.

아리스티네는 정신이 없어 눈을 깜빡였다.

타르칸이 씩 웃었다.

이윽고 아리스티네의 얼굴 위에도 미소가 번졌다.

새 황제 부부가 붉게 내리깔린 길 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환호하던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신혈로부터 계승된 황제에게 황제의 관을 내려 줄 자는 없었다.

두 황제는 서로에게 왕홀을 건 네주고 황제의 관을 씌워 주었다.

아리스티네의 머리 위에 관을 씌워 준 타르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뺨에 닿았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웠다.

“아까 아쉽게 끝난 거 마저 해 야지.”

그가 속삭였다.

“여기서?”

“여기니까.”

두 사람의 얼굴이 다시 가까워졌다.

귀족들은 어머머머,하며 두 손을 꽉 맞잡았다.

라우넬리안은 골치 아프다는 듯 눈을 가렸으며,네프테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의 입술에 서로의 뜨거운 숨결이 닿는 찰나.

“까!”

우렁찬 외침이 조용해진 홀에 울려 퍼졌다.

아들의 목소리에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이 고개를 돌렸다.

비장한 표정의 악트시온이 오동통한 팔다리로 기어 오고 있었다.

“시온?”

“어머머,황자님 너무 귀여우셔!”

“세상에!”

귀족들이 숨을 들이삼켰다.

뽀작뽀작 엄마,아빠의 곁까지 기어 온 악트시온이 “후응!” 하 며 콧김을 내뿜고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과악,짜리몽땅한 손이 아리스티네의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어어?”

사람들이 탄성을 흘렸다.

끄응,하고 힘을 준 악트시온이 두 다리로 섰기 때문이다.

“와아!”

“황자님 최고!”

악트시온이 우쭐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와르르 웃음을 흘렸다.

아리스티네는 악트시온을 안아 들었다.

“두 다리로 서고,우리 시온 대단해.”

“그래,이 좋은 날 두 다리로 서다니 역시 우리 아들이야.”

타르칸이 아리스티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5분만 이따가 하지 그랬니……’

아들의 기가 막힌 타이밍에는 항상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기 좋은 황제 가족의 모습에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대관식이란 본디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지만,이번 대관식은 특별한 만큼 따스함이 감 돌았다.

아들의 통통한 뺨에 한 번씩 키스한 아리스티네와 타르칸은 귀족들이 표하는 경애를 뒤로한 채 천천히 홀을 나섰다.

남편은 됐고,돈이나 벌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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