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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을 죽여주세요-7화 (7/92)

7화

다음 날.

나는 세리나를 초대했다. 그 애는 마치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목마른 자의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세리나, 갑작스럽게 초대해서 놀라진 않았을까 모르겠네.”

“그럴 리가 있어. 우리 사이에. 전에 연회에서 안 좋아 보여서 놀랐어.”

“아아. 그날따라 어지럼증이 돋더라고. 지금은 괜찮아졌어. 너하고 에르긴, 그리고 공작님 덕분이지, 뭐.”

“다행이야. 한동안 연락이 안 되길래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어.”

말없이 차를 마셨다.

세리나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항상 두 사람의 사이는 이랬던 것일까? 세리나는 제가 잡은 줄을 놓치기 싫어 미엘린의 눈치를 살피고 미엘린은 그런 세리나에게 베풀어 주고.

세리나는 그것에 더 불만을 품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만약 그것이 싫었다면 세리나는 미엘린을 떠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세리나는 미엘린의 곁에 머물렀고 그녀를 욕보였다.

“미엘린.”

“그럴 리가 없잖아. 이렇게 멀쩡해.”

세리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못 보던 드레스네.”

“아…….”

세리나의 입술이 떨렸다. 저 값비싼 드레스의 출처를 모를 리가 있나.

“거기에 못 보던 목걸이고. 새로 샀어?”

“아, 응…….”

아마도 에르긴의 주머니에서 흘러 나간 물건들일 것이다. 그리고 저 물건들에 대한 대금은 내 돈으로 치렀겠지. 뻔뻔한 그 작자는 미엘린의 자산을 제 것처럼 쓰곤 했으니 말이다. 세리나가 창백한 얼굴로 드레스를 만지작거렸다. 그 손끝에 힘이 들어간 것이 금방이라도 드레스를 찢어 버릴 것 같았다.

“그, 그냥…… 어머니가 사 주셨어.”

“그래?”

제 발 저린 얼굴로 거짓말을 한 세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에르긴의 침대에 오르는 대가로 제가 받아 챙기는 것들이 내 주머니에서 나간다는 사실을 세리나가 모를 리가 없다.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제 이익을 위해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겠지. 참, 너 몹쓸 년이네.

가슴속에 휘몰아치는 여러 감정을 애써 꾹 눌렀다.

여기서 세리나의 머리를 쥐어뜯고 내쫓아 봤자 반쪽짜리 복수밖에 되질 않는다.

“세리나. 곧 네 생일이잖아.”

“응.”

“그래서 내가 연회를 열어 줄까 해.”

“미엘린…….”

세리나가 감동한 얼굴을 했다. 항상 미엘린은 세리나의 생일 연회를 열어 주었다. 드레스 한 장 살 돈도 없는 세리나의 가문은 세리나의 생일을 챙겨 줄 여력이 없어서였다.

“그걸 논의하려고 오늘 널 불렀어. 가장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 주고 싶거든.”

그 완벽한 하루 끝에 맛보는 절망과 비참함은 무엇보다 쓰고 아프리라.

생긋 미소 짓는 날 따라 세리나도 웃었다.

“네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미엘린, 정말 고마워. 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야. 미엘린, 나는 널 위해서 무엇이든 할 거야.”

세리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 무엇이든 하기 위해서 에르긴의 침대 위에 올랐나 보다. 미엘린 대신에 에르긴에게 봉사하고 침대에 올라 바라는 대로 해 줬나 보지? 대체 무엇이 미엘린을 위한다는 건지 조금도 모를 일이다.

혹시 내가 아는 ‘위한다’라는 단어의 뜻이 변하기라도 한 건지.

세리나의 뻔뻔한 낯짝은 오지연의 것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이나야. 너는 정말 좋은 친구야. 그거 알아? 너를 만나서 나는 완전해졌어.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요즘에 바람피우는 것들은 뻔뻔해지는 연습이라도 하나.

“그래, 세리나. 그러면 네 생일 연회는 내게 맡겨.”

세리나의 생일까지는 고작 일주일. 다음 주 주말이었다. 그날이 내가 준비한 연극의 막이 오르는 날이기도 했다. 이미 주연 배우들은 준비되었다. 아이반은 내가 초대했으니 참석할 것이고 에르긴은 세리나를 욕보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이니 절대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온갖 판타지를 세리나를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개자식이니, 뭐.

그날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 같다.

“드레스 고르러 가자, 세리나. 그날 입을 새 드레스가 있어야지. 구두도 새로 맞추고, 장신구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미엘린.”

세리나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강렬한 질투를 나는 본 것 같았다. 세리나는 고맙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미엘린을 향한 질투가 있었다. 아, 그거였구나? 꼴같잖은 질투.

“아니, 세리나. 정말로…… 완벽하게 준비해 주고 싶어.”

그래야 추락이 더 아프지.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갈망하고 그리워해 봐. 미엘린이 사 준 것들을 팔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좋겠지. 그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어?

세리나가 에르긴의 부인이 되더라도 이 가문엔 남은 것이 거의 없으리라. 유책 배우자로 지목되면 에르긴은 내 자산의 한 푼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보유한 자산에서 내게 위자료까지 내야 했다.

그날을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행복해졌다.

* * *

미엘린과 만남 이후 아이반은 스타티스를 불러들였다.

“곧 공작 부인을 맞을 준비를 하게.”

“예? 공작 부인이라고 하셨습니까? 드디어 마음을 먹으신 건가요?”

놀란 얼굴로 묻는 스타티스에게 아이반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행운의 주인공은 누군가요?”

스타티스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미엘린 백작 부인.”

“……예?”

스타티스가 들고 있던 서류들을 와르르 떨어뜨렸다.

“왜, 문제 있나?”

“어……, 그분께서는 지금 결혼하신 상태 아니십니까? 혹, 세기의 사랑에 빠지셔서 불륜이라도 불사하시겠다는 그런…….”

스타티스의 얼굴이 희게 탈색되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런 불경한 소릴.”

아이반이 혀를 찼다. 스타티스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러면 혹 곧 백작이 죽는다던가요?”

미엘린은 그러길 바라는 눈치였긴 했다. 사회적인 죽음을 바란다고 말했지만, 미엘린의 증오심과 분노는 진실했다. 만약 에르긴 백작이 죽는다고 해도 미엘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에르긴 백작에게 일말의 미련조차 없는 듯했으니 말이다.

“아니네. 그러나 곧 그럴 일이 생기게 될 거야.”

물론, 여전히 의문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스타티스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 결혼에서 발생하게 될 잡음들과 스캔들보다 가이스에게 공작 위를 빼앗기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스타티스가 엄숙한 얼굴로 선언했다.

“저는 듣고 보는 것들에 대해서 입을 다물겠습니다.”

아이반이 실소를 흘렸다.

“걱정할 것 없어.”

오히려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추문에 휩싸일 이들은 따로 있었으니. 걱정되는 것은 단 하나. 미엘린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 여자는 괜찮은 걸까?’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아이반이 한숨을 삼켰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눈으로 제가 벌일 연극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미엘린의 얼굴이 가슴에 콕 박혀 사라지질 않는다.

괜한 걱정이 아이반의 목덜미를 붙들었다.

“두 분께서 알아서 하시겠지만…… 사랑에 빠지신 건 아닌 듯하고. 무슨 사연이 있겠지만…… 이 스타티스 목숨 걸고 한 말씀 드립니다.”

“무엇인데 거창해.”

“……결혼 이후 각자 다른 삶을 사시는 건 아니겠지요?”

“무슨 밀이야.”

아이반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왜. 따로 정인을 두신다던가. 그런 거 있잖습니까. 그건 분명 틸리언즈에 위해가 가게 될 겁니다. 저는 그런 결혼은 목숨 걸고 반대하겠습니다!”

“헛소리. 나는 내 부인이 모든 것을 희생해 주는 대신에 그녀에게 헌신하기로 맹세했네. 그 맹세는 지켜질 거야.”

“……약속하신 겁니다?”

“물론.”

“백작 부인께서는…….”

“글쎄.”

아이반이 인간 불신에 빠진 것 같았던 미엘린의 눈빛을 떠올렸다. 미엘린은 누군가를 쉽게 마음에 들일 사람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상처를 번복하지 않는 법이다. 왠지 그런 믿음이 갔다.

“미엘린도 그러지 않을 것 같군.”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데이지 아가씨께도 큰 상처가 되셨을 거예요.”

“그렇겠지.”

아이반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밝고 사랑스러웠던 데이지는 부모의 죽음 이후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아이반은 그런 데이지가 안쓰러웠고, 더는 그 아이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반은 아돌프가 부탁했던 대로 그 애를 지킬 생각이었다. 데이지가 누렸어야 했던 모든 것을 무난하게 누릴 수 있도록.

* * *

나는 얼마 안 남은 시간이라도 에르긴과 최대한 접점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 남자와 한 장소에 있다는 사실조차 치가 떨렸으니 말이다. 에르긴을 보면 김태진이 떠올랐고 그러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울화증이 치밀었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다.

세리나의 생일 연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외출을 일삼았다. 세리나와 에르긴의 온갖 짓거리가 묻어 있을 저택이 싫었다. 어디서 무슨 짓을 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안방 침대에서 발견했던 정체 모를 속옷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름 돋아.

대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그것들이 인간이 맞긴 한가?

게다가 에르긴만 세리나만 한편인 게 아니었다. 모두가 미엘린의 눈을 가리고 있지 않은가. 그들과 작당한 사용인들도 싫었다.

그러니 내가 그 저택에 정이 붙겠는가.

“후우.”

아이스크림에 스푼을 푹 찔러 넣었다. 하얗고 포슬포슬한 아이스크림이 부서졌다.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이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라니. 매일같이 커피 하우스에 와서 시간을 죽이는 게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연극 준비는 끝나 가고 있었다. 오늘 저녁 6시에 만나기로 한 남자와 체결할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그만이었다. 돈이 많다는 건 참 편한 거다. 나는 미엘린의 부를 이용해서 여러 사람을 고용했다. 그들은 그간 세리나의 행적을 추적하고 에르긴에게 달라붙어 과거를 캐내고 있었다.

이것도 두 번 했다고 안 어렵네.

김태진과 오지연을 쫓을 때는 그렇게 헤매고 다녔는데.

“풉.”

이것도 경험이라고 익숙해지다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어머나. 미엘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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