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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을 죽여주세요-39화 (39/92)

39화

아이반 이야기에 따르면 사용인들 관리가 잘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것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외에도 하녀장에게 공작 부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넘겨받을 생각이었다.

“바빠지겠네.”

그렇다고 막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이반에게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상회할 정도로 잘해 내고 싶었다.

“하아아암.”

오늘 하루가 길었던 탓인지 하품도 길었다. 꾸물거리며 이불 속에 파고들 때였다.

똑똑.

뭐지?

아직 할 말이 남았나? 하녀인가?

그런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엘린.”

아이반?

“아, 네. 들어오세요.”

누우려던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누운 모습으로 맞이할 수는 없었다. 문이 열리고 나처럼 편한 차림의 아이반이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안 자고 있었군요. 할 말이 있어서 온 건가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이반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사를 꺼냈다.

“저는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이혼당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밤에 부인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하는 것은 합당한 이혼 사유에 속합니다.”

갑자기 그 말이 나온다고?

황당한 마음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건 정말로 예상도 못 했는데. 물론, 아이반과 언젠가는 잠자리를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오늘이라고?

아니, 잠깐만!

머리가 빙글 돌았다.

뭐가 다른 거지?

……신부가 바뀌었구나. 그리고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만난 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요……? 지금 정말로 제 침실에 들어오시겠다는 건가요?”

“그러면…… 안 됩니까?”

아이반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고 하면 침실에서 나갈 것 같은 눈치였다.

하지만, 정말로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태껏 아이반과 주고받았던 것은 짧은 접촉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사실상 한 달 뒤나, 지금이나.

아이반과 잠자리를 해야 하는 건 똑같았다. 그러니 굳이 밀어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괜찮아요. 들어와도.”

결국, 웅얼거리며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이건 절대로 사심이 섞인 일이…… 사실 맞았다. 사심이 조금 많이 섞여 있었다. 소설에서 아이반은 대단히 절륜하고 정력적이라고 묘사되어 있었다.

전 연령가에 맞춰서 서술되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가 이런 걸 기대하면 안 되는 이유도 없었다. 나와 아이반은 부부였고……. 그리고…… 그래, 둘 다 성인인데 뭐 어때.

침을 꼴깍 삼키며 내게 다가오는 아이반을 멍하니 응시했다. 아이반이 내 앞에 서서 셔츠를 벗어 던졌다. 내 드레스 단추 위에 손을 얹은 아이반이 생긋 미소 지었다.

“벗겨도 됩니까?”

나는 숙맥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단추 몇 개를 풀자 드레스가 툭 떨어졌다. 이거 이런 용도로 만들어진 옷이었구나…….

멍하게 내 발밑에 고인 드레스를 보고 있을 때 아이반이 내 턱을 들어 올렸다. 허리를 굽혀서 내 입술에 짧게 키스한 아이반이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키스해도 됩니까?”

“이제 그만 물어봐요.”

아이반이 내 등을 끌어안고는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맞닿은 살결을 통해서 전해지는 체온이 뜨겁다. 나를 감싸 안는 것 같은 다정한 키스 역시나 뜨거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입술을 벌린 채로 허덕이며 아이반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아이반이 입술을 떼어 내곤 속삭였다.

“당신이 싫어하는 건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 정말 착실하구나.

나는 이런 곳에서조차 아이반의 그런 성정이 발휘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결국, 나는 부끄러움을 이겨 내고 아이반이 묻는 것을 전부 조목조목 대답해 줘야 했다. 밤새도록.

* * *

내게 배정된 측근 하녀는 로시에였다. 로시에는 세리나를 교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 하녀이기도 했다. 우울증에 극심하게 시달리던 세리나를 돌봐 준 사람이었다.

세리나가 처음에 적응하지 못했던 일을 돕기도 했고. 여러모로 유능하단 말이지.

“로시에. 앞으로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드려요, 공작 부인.”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게 많을 거야. 그러니까…… 읏챠.”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키려는 나를 로시에가 두 손 저어 가며 만류했다.

“오늘은 꼼짝 말고 쉬셔야 한다고 공작님께서 당부하셨어요!”

“아니야……. 나 걸을 수 있어.”

“아니신 것 같아요…….”

로시에가 울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젯밤 잊고 있던 남자주인공의 덕목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하. 새벽에 동이 터 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기절하다시피 잠들었었다.

그러다가 깨어나 보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침대 아래로 내려오는 것조차 힘들었고 사실 지금 의자에 앉아 있는 게 고작이었다. 첫날부터 게으른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하아.”

머리를 짚고는 침대에 도로 누웠다.

“……괜찮으세요?”

“혹시, 아이반이 따로 수련을 하거나, 그래?”

틸리언즈는 대대로 사업을 했던 가문이었는데. 혹은 정계에 몸을 담거나. 그런데 그 악착같은 체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힘든지 안 힘든지 물으면 당당하게 힘들다고 말해 줄 수 있었는데 아이반은 매번 싫은지 안 싫은지 물었다.

굳이 호오를 따지자면 호에 가까웠는데 어떻게 싫다고 하겠는가.

“그런 게 아니라…… 사실 기사로 재직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용병 기사로 일하셨던 터라 전 대륙을 떠돌아다니셨어요.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체력이 일반인들하고는 다르다고 보시는 게…… 어흠! 그리고 요새도 몸이 뻐근하다 싶으면 수련도 하고 계시고요.”

그런 건 몰랐는데.

소설에 그런 건 언급 안 되어 있었는데!

그냥 남자주인공 버프로 몸이 좋은 거 아니었어? 그 왜, 숨만 쉬어도 근육이 생겼어요. 그런 거 아니었느냐고! 머리가 띵한 기분이었다. 어쩐지. 지치는 법이 없더라. 하하. 이상한 종류의 배신감이 몰려들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질주하던 아이반을 생각하니 몸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한 사람은 없다고.

“그…… 보양식이라도 올릴까요?”

“그래.”

“영양제도…… 의사도 부르는 게 나을까요?”

“영양제면 될 것 같아.”

고작 이런 근육통은 자고 일어나면 낫기 마련이지.

그렇게 골골거리고 있을 때였다.

끼이익.

아주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것은.

“데이지……?”

“미엘린…… 이 아프다고 그래서 왔는데……. 어, 정말 아파요?”

눈을 깜빡거리는 깜찍한 어린아이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가 없어 몸을 일으켰다. 사실 정말로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괜찮아. 그냥 졸려서 그래.”

데이지가 쭈뼛거리며 걸어왔다. 그리고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것을 내게 내밀었다.

“꽃……?”

“엄마는 꽃을 좋아했어요.”

데이지가 그렇게 말하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아플 때 꽃을 주면 좋아해서 나한테도 주는 거라는 뜻이지?

“고마워, 데이지. 아프지도 않지만 싹 나은 것 같아.”

“정말요?”

데이지가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침대 옆을 서성거리는 데이지에게 침대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로 올라올래?”

“네!”

이걸 바랐던 거구나.

“로시에. 화병하고 다과 좀 준비해 주겠어? 데이지 좋아하는 거로 말이야.”

“네, 부인.”

아무래도 오늘 일정은 대거 변경해야겠다. 침대에서 데이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과자를 나눠 먹는 것으로 말이다. 데이지가 호기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나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미엘린. 그러면 미엘린도 이제 같이 사는 거예요?”

“그렇게 되었네. 앞으로 잘 부탁해, 데이지.”

“어, 어……. 하녀장 말이 미엘린이 머리도 묶어 줄 수 있다고 하던데, 진짜예요?”

데이지가 내게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니까 머리를 묶어 달라는 거지? 그게 뭐가 어렵다고.

“당연하지. 어떤 머리를 하고 싶은데?”

“음……. 이렇게, 이렇게요!”

데이지의 작은 손에는 머리끈이 달랑거리며 들려 있었다. 데이지가 바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머리 모양이 아니었다. 데이지의 머리가 그렇게 길지 않은 편이라 여러 가지 시도도 못 했겠지만.

데이지는 반 묶음을 하고 거기에 리본을 크게 묶고 싶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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