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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을 죽여주세요-55화 (55/92)

55화

낮잠에서 깨어난 케일린과 데이지는 완성된 쿠키에 아주 만족했다. 미리 준비해 둔 봉투에 쿠키를 담고 리본을 묶어 주니 그럴듯하게 완성되었다. 케일린은 완성된 쿠키를 가지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데이지가 우물거리며 쿠키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스타티스와 아이반 몫의 쿠키 봉투를 손에 꼭 쥔 채였다. 집무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나와 로시에, 엔시가 지켜보는 중이었다.

데이지가 나를 돌아보았다.

“미엘린…….”

“괜찮아.”

“그으치만…….”

데이지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렇게 아이반의 집무실에 찾아가는 일은 처음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부끄러운 것 같았다.

“좋아할 거야.”

“정말로요?”

“그럼.”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용기를 낸 얼굴로 문을 똑똑 두드렸다.

“데이지예요.”

그 말에 문이 활짝 열렸다. 아이반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나와 아이반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반이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데이지?”

“줄 게 있어서 왔는데…….”

데이지가 우물쭈물했다. 아이반이 허리를 숙여 데이지를 안아 올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데이지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럼 들어오면 되지 왜 그러고 있어?”

“숙부님 바쁜데…… 바쁜데 데이지가…….”

“아니야, 괜찮아.”

그제야 데이지가 배시시 웃었다. 아이반은 바쁘다고 사람들이 하도 그러니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데이지가 아이반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아이반은 나를 위해서인지 문을 닫지 않았다. 안쪽으로 스타티스가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니, 데이지?”

“데이지가…… 쿠키를 만들었는데 선물로 주려고 왔어요.”

“쿠키?”

데이지가 꼬물거리며 품 안에서 쿠키 봉투를 꺼냈다.

“이건 숙부님 거. 이거는 스타티스 거.”

“제 것도 있습니까?”

“네.”

“이야. 데이지 아가씨, 이렇게 귀한 선물을…….”

스타티스가 감명받은 얼굴로 중얼거리더니 쿠키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 든 걸 과장되게 베어 문 스타티스가 외쳤다.

“이렇게 맛있는 쿠키는 처음 먹어 봅니다!”

“정말?”

“네! 정말이지요.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와!”

데이지의 볼이 붉어졌다. 아이반의 쿠키 봉투는 데이지가 풀었다. 그 안에 든 쿠키를 아이반에게 먹여 준 데이지가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아이반을 보았다.

아이반이 설핏 웃고는 데이지의 뺨에 키스했다.

“데이지, 너무 맛있어서 기절할 것 같은걸?”

“정말요?”

“그럼! 우리 데이지가 쿠키를 이렇게 잘 구울 줄은 몰랐는데?”

“우와!”

데이지가 환하게 웃으며 아이반의 뺨에 키스했다. 참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반은 한참이나 데이지를 내려놓지 않았고 데이지는 그 품에 안긴 채로 아이반에게 쿠키를 전부 먹여 주었다.

“……정말 예쁜 분들이시네요.”

“그러게.”

로시에의 말에 맞장구쳤다. 데이지가 도도도도 소리를 내며 열심히 저택 안을 돌아다니는 것을 사용인들이 유심히 지켜보았다. 데이지는 자신이 만든 선물을 예상했던 사람들에게 전달했고 저택은 아쉬움과 기쁨으로 물들었다.

데이지는 저녁 시간에도 내내 쿠키를 만든 일을 재잘거렸고 아이반은 친절하게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리고 늦은 밤이 되어 데이지는 잠자리에 들었다.

“데이지, 오늘도 즐거웠니?”

데이지가 고른 책을 들고 아이의 곁에 앉았다. 아이반과 내가 번갈아 가면서 데이지를 재우는 일을 맡고 있었다.

“네.”

데이지가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재밌었어요.”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데이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엘린.”

“음?”

“미엘린이 와서 정말 좋아요…….”

“그래.”

데이지의 이마에 키스했다.

“나도 데이지를 아주 많이 좋아한단다.”

하루에 한 번씩 데이지가 꼬박꼬박 내게 해 주는 말이었다. 그게 얼마나 힐링이 되는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이 저택에 완벽하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데이지가 눈을 살짝 감았다. 도롱거리며 잠에 빠져드는 데이지 옆에서 아이가 완전히 곯아떨어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나도 이 평화가 정말로 좋았다.

그토록 바랐던 것을 가지게 되어서였다.

미엘린은 선천적으로 아이를 가지지 못할지도 모르는 몸이었다. 생리가 불규칙하고 양도 적었다. 의사 또한 부정적이었다. 미엘린의 부모가 에르긴을 고른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에르긴이 아이는 상관없다고 말했기에.

후계는 방계에서 데리고 오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김태진 옆에서도 아이를 낳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노력을 기울였지만, 내게는 그런 기적이 찾아오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고 아이를 가지기 힘든 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느꼈던 슬픔과 절망이라니.

나는 내가 직접 낳은 아이 대신에 마음으로 낳은 아이를 얻게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데이지는 내게 기적이었다.

* * *

“데이지가 잠들었나요?”

“네.”

“고생했어요, 미엘린.”

아이반이 자연스럽게 내 이마에 키스했다. 내가 데이지에게 했던 것처럼 다정한 몸짓이었다.

“제가 뭘 했다고…….”

“당신이 한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미엘린. 그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했을 일들이에요. 데이지가 웃고 있잖아요. 나는 그 애가 웃을 줄 아는 아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는걸요.”

“아이반…….”

아이반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당신은 내게 기적과 같아요.”

내게 데이지가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반은 그것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기적이라.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무도 내게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없었다. 아이반이 내 등을 쓸어내렸다.

“어쩌다가 당신 같은 행운이 내게로 온 건지.”

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말 같았다. 아이반이 내 이마에 가만가만 입을 맞췄다. 그다음엔 콧잔등, 볼, 입술.

“당신과 함께하는 매일이 기대됩니다.”

“아이반…….”

“선물 같은 하루, 하루를 만들어 줘서 고맙습니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이반이 데이지를 안듯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짧게 비명을 터뜨렸다. 사실 내게도 오늘은 행복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 데이지와 아이반, 그리고 이 저택의 사람들로 인해서.

* * *

아이반이 잠든 미엘린을 품 안에 끌어들였다. 달빛에 희게 드러난 둥근 어깨에 입을 맞춘 아이반이 그녀의 잠든 얼굴을 응시했다.

그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만 있는데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미엘린의 눈꺼풀이 움찔거리거나 볼이 씰룩이는 것. 그 모든 움직임을 놓치기 싫다는 듯이 욕심껏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반이 미엘린의 뺨을 보드랍게 쓸어내렸다.

“미엘린.”

“우웅…….”

깨우고 싶기도 하고 이대로 미엘린의 잠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이율배반적으로 치솟았다. 미엘린이 눈을 떠서 자신을 쳐다봐 줬으면 좋겠다.

투명하고 맑은 녹안에 자신이 담기는 것을 보고 싶었다. 이렇게 단기간에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이반에게 있어서 미엘린의 의미가 이토록이나 커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본인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을.

어느새 아이반은 미엘린이 없는 인생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미엘린이 미소 짓고 있는 차분한 얼굴로 그의 곁에 있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많이, 좋아합니다.”

아이반이 작게 속삭였다. 미엘린의 잠을 깨우지 않을 목소리로.

* * *

가이스는 사업안 제출을 끝냈다. 이미 고아원으로 사용할 저택의 구입도 끝냈다. 좋은 일에 쓴다고 하니 가정복지부에서 국가에 귀속되어 있었던 것을 좋은 가격에 내놓은 것이다.

‘잘 흘러가고 있군.’

어딜 가나 돈 받아먹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리엔스터 백작 부인을 꼭대기에 앉혀 두면 무엇하나. 그 아랫사람들이 더러운 물을 마시면 그만인 것을.

그래서 자세한 조사 없이 부지를 내준 것이다. 리엔스터 백작 부인에게 올릴 서류를 꾸미는 것도 도와줬다. 듣기로는 꽤 큰 금액이 지원금으로 나올 거라고 했다.

‘귀족들이 이런 일 하면서 돈 빼돌리는 게 하루 이틀입니까. 어느 정도 선에서는 눈감아 줄 겁니다.’

그렇다는 건 이전과 다름없이 진행된다는 거였다. 리엔스터 백작 부인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그녀도 귀족이었다. 수익 올리는 데는 이골난 귀족!

에르긴이 술잔을 기울였다. 이대로만 된다면 가이스의 이미지 세탁에 성공하고 틸리언즈 원로 귀족들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거였다.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모든 것을 잃고 아이와 함께 길바닥에 나앉은 아이반과 그를 버리고 떠나는 미엘린의 모습이.

미엘린은 에르긴의 사람이었다.

이전에도,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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