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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을 죽여주세요-71화 (71/92)

71화

나는 오늘은 반드시 데이지 없이 둘이 외출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아이반의 뜻을 알아차렸다.

프러포즈구나.

정말로 해 주려고?

이걸 못 알아채기엔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오늘따라 나를 치장해 주는 하녀들이 매우 들떠 보였다. 모든 물건을 공들여 골랐다. 드레스도 3벌이나 갈아입어야 했고 구두도 2켤레나 바꿔 신어야 했다.

화장도 공들여서 했으며 머리는 오랜 시간을 공들여 말아야 했다. 아니, 그런데 모르는 게 비정상 아닌가. 다들 왜 쉬쉬하고 있는 거지? 귀엽게.

아이반이 데이지를 설득했는지 아이는 오늘 저녁은 왕성에서 먹고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데이지와 엔시는 먼저 저택을 떠났다. 아가 동생에게 책을 읽어 주고 올 거라고 새로 산 동화책도 잔뜩 들고 갔다.

다행히 왕비가 데이지를 순수하게 예뻐하니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왕성이 하도 넓고 수많은 사람이 지내고 있으니 엔시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꼭 잘 지켜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거지?

“아, 오늘 머리가 아픈 것 같네……. 외출하기 싫어져.”

내가 슬며시 말을 흘리자 분주하던 하녀들이 멈칫했다.

“어, 오늘요……?”

몸이 아픈 게 오늘내일 가리고 오는 것도 아닌데 로시에가 멍하니 질문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려고 해서 참았다.

“그러게. 외출 준비 다 해 가는데 그러네. 어떡하지?”

“정말요……?”

하녀들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하녀는 손에 들고 있던 빗을 툭 떨어뜨리기도 했다. 당신들 너무 티를 내는 거 아니냐고.

“흠. 이렇게 고개를 꺾으니 괜찮은 것도 같고.”

“그러면 계속 그렇게 계세요! 오늘은 아프시면 안 돼요!”

로시에가 간절하게 외쳤다. 그리고 의사를 불러오라고 외쳤다. 그런 로시에를 붙들었다.

“약은 됐어. 괜찮아진 것 같네. 잠시였나 봐.”

로시에가 진지하게 말했다.

“놀리신 거죠? 아시고 계시는 거죠?”

“뭘?”

고개를 갸웃하며 모르는 척했다. 로시에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는 반응이었다. 하녀들을 진두지휘해서 내 치장을 마무리 지은 로시에가 나를 일으켰다.

“자, 이제 다녀오세요. 제발…….”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냥 알아차렸다.

아이반은 진지하게 프러포즈하는데 거기서 장난치지 말라는 거였다. 그래도 함께 지내다 보니 내가 짓궂은 면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럼, 물론이지. 프러포즈는 중요한 거라고.”

내 말에 하녀들이 정리하고 있던 것들을 툭 떨어뜨렸다.

“아, 알고 계셨어……!”

티는 다 내 놓고 저렇게 귀신 본 얼굴이라니. 한창 웃고 있을 때 아이반이 찾아왔다. 하녀들은 얼굴이 붉어져서 여기서 있었던 일을 아이반에게 다 털어놓고 싶은 눈치였다.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조심하시라고.

그런데 하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반이 너무나 긴장한 얼굴로 찾아온 것이다. 저렇게 티가 나는데 어떻게 모르라는 건지.

“미엘린.”

“나가요, 아이반.”

굳어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반의 팔에 내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이반을 끌어당겼다.

아이반이 나를 쫓아가는 걸 하녀들이 멍하니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다녀올게.”

상큼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잔뜩 긴장한 아이반을 데리고 예약되어 있다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하기 힘들다고 소문난 곳이라는데 용케 했다 싶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했거나 했겠지.

아이반의 노력을 봐서라도 모르는 척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아이반과 자리에 앉으니 이미 메뉴도 선정되어 있었던 듯 서빙이 시작되었다.

“정말 맛있네요.”

“그러네요.”

“이건 송아지인가. 이건 연어 같긴 한데…… 맛이 독특하네요. 사과랑 연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몰랐어. 어머, 아이반! 이것도 정말 맛있는데요?”

“그러네요.”

넋이 빠져서는 중얼거리기만 하는 아이반 덕분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렇게 긴장했으면서 말은 어떻게 하려고?

“아이반.”

“네?”

이름을 불리자 그나마 조금 정신 차린 것 같았다.

“지금 포크로 어디 찍고 있는지 봐요.”

아이반이 자신이 손을 보았다. 테이블을 쿡쿡 찍어 대는 포크를 본 아이반이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큼!”

나는 매너 있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때까지 장난치면 안 되는 거지.

우리가 식사를 이어 나가고 있을 즈음 서버가 트레이를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레퍼토리대로 케이크와 꽃다발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미엘린……. 이게 뭐냐고 안 물어봐요? 아. 이미 알고 있었군요.”

태연한 내게 아이반이 실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귀엽게……. 다들 그렇게 티가 나게 구는데 모를 리가 없잖아요.”

꽃다발을 끌어안았다. 노랗고 예쁜 해바라기로 만든 꽃다발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꽃이네. 다행히 미엘린과 내게는 취향이 통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크리스티나에게 물어본 건가요?”

흠칫.

“그걸 어떻게…….”

“지금 이런 걸 아는 사람은 크리스티나뿐이니까요. 레스토랑은 어떻게 예약했어요? 친구? 아니면 헨리 왕?”

“……친구에게 부탁했습니다.”

“고생이 많았어요, 아이반. 고마워요.”

아이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노력했는데 이미 다 들켜 버렸군요.”

“어머. 자책할 필요 없어요.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아이반이 억울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반지는 케이크 속에 들어 있나요?”

“당신은 혹시 내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겁니까? 후우……. 그럴까 했는데 반지가 더러워진다고 크리스티나 영애가 반대하더군요. 그래서 반지는 여기…….”

아이반이 녹색 벨벳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아이반이 머뭇거리다가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내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아이반이 속삭였다.

“……나와 평생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물론이죠.”

사람들이 말하는 종이 치는 것 같은 설렘이나 눈물, 감동. 그런 건 사실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반이 나를 위해서 이런 준비를 해 줬다는 게 너무 좋았다.

크리스티나를 찾아가고 누군가에게 부탁하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는 거 아닌가. 지금 크리스티나는 세리나와의 추문으로 인해서 아이반을 족치려고 벼르고 있었을 테니 분명 잔뜩 잔소리를 듣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 것을 모두 감수하고 준비해 준 마음이 너무 예뻐 보였다.

내 감정은 어느새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빵빵하게 부풀어서 터지기 직전으로. 더 이상 나의 불행 그림자는 내 발목을 붙들고 있지 않았다.

내게는 행복만이 남았다.

데이지와 아이반.

“고마워요, 아이반.”

나는 지금 해야 하는 말을 알고 있었다.

“……사랑해요, 아이반.”

두려움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아이반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아이반이 떨리는 입술로 속삭였다.

“나도, 나도 사랑합니다…….”

이거면 완벽한 프러포즈였다.

* * *

에르긴이 레스토랑 앞을 서성거렸다. 아이반 이름으로 예약한 게 아니라서 몰랐는데 미엘린이 저택 밖으로 나왔단다. 미엘린을 쫓아다니면서 계속 눈에 띄다 보면 마음도 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왕비의 출산으로 입궁했다더니 미엘린에게서는 더 귀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레스토랑 안에는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아서 들어가지도 못했다. 귀족 알기를 뭐로 아는 건지 건방지기 짝이 없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 내내 레스토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꽃다발을 품에 안은 미엘린과 그녀의 어깨를 안은 아이반이 나란히 나왔다.

에르긴이 입술을 비틀었다.

‘저렇게 저 혼자 호의호식하고……. 자기 남편은 이 꼴로 이러고 있는데!’

아무리 화가 나서 에르긴에게 벌을 주고 싶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에르긴이 이를 아득 갈았다. 반드시 훗날 갚아 주겠다고 생각하며.

에르긴이 미엘린의 뒤를 밟았다. 한순간이라도 미엘린에게 보이기 위해서 알짱거린 것이다. 그리고 분명 미엘린과 눈이 마주쳤다. 미엘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하여튼 새침하기는.

삐쳤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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