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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3화 (3/91)

제3화

제도에는 비슷한 가게끼리 뭉쳐서 형성된 거리가 있었다.

그중 알트페리아가 찾는 곳은 음식점이 잔뜩 몰린 곳이었다.

‘여기도 많이 발전했네.’

전에 왔을 땐 음식점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부터, 요식업이 성행했다.

지금은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귀족 가문들까지 뛰어들었다.

거리에는 가게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것은 물론 노점까지 세워졌다.

‘그러고 보니 앨런의 가문도 요식업으로 대박 났지.’

알트페리아가 대준 돈으로 가게를 열어 크게 성공한 것이다.

불륜남의 배를 채워준 것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근처 노점에서 굽는 닭꼬치의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그 매콤달콤짭짜름한 냄새에 이끌린 세이룬이 말했다.

“으음, 냄새가 너무 좋아요!”

“그러게, 하나 먹어볼까?”

“네! 제가 사 올게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세이룬은 신이 난 듯 노점으로 향해 꼬치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알트페리아는 그런 세이룬의 뒷모습을 흘끗 보았다.

루크와 만나려면 세이룬을 따돌려야 했다.

하지만 발트레의 시녀들은 후계자를 보좌하기 위해 특별한 훈련을 받았다. 어지간한 기사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지녔기에 쉽게 따돌릴 수 없었다.

그녀가 닭꼬치에 넋을 놓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미안해, 세이룬. 금방 돌아올게.’

알트페리아는 세이룬이 한눈팔고 있을 때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렇게 혼자가 된 것까진 좋았지만.

‘루크가 좋아하던 가게가 어디지? 생각이 전혀 안 나!’

원작의 내용은 온전히 다 기억한 줄 알았는데!

너무 오랫동안 전생을 잊고 지낸 까닭일까.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해서 루크의 단골 술집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식물의 이름이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 생각 난 게 있었다.

마침 주변에는 저녁을 먹거나 술 한잔 하러 나온 사람이 많았다.

시간을 계속 허비할 수 없어 알트페리아는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았다.

“뭐요?”

하필 뽑아도 꽝을 뽑은 것 같았다.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남자의 모습에 내심 놀랐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물었다.

“여쭤볼 게 있어요. 이 거리에서 술맛이 가장 최악인 가게가 어딘지 아세요?”

“아, 거기? 소시지는 기가 막히는데 같이 나오는 술이 별로인 곳?”

동행인 듯한 사람도 거들었다.

“돈 주고 먹기 화가 날 정도로 맛이 없는데. 거기에 갈 거야? 내가 맛있는 가게를 소개해 줄게.”

“성의는 감사하지만, 소시지가 맛있다고 해서 궁금해서요.”

“그렇다면 별수 없지. 소시지가 맛있는 건 사실이거든. 아가씨가 찾는 가게는 저기 저 골목 끝에 있어.”

“…….”

“그리고 이건 꼭 알아둬. 소시지만 먹을 거면 그냥 포장하는 게 나아.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맛없는 술을 시키라고 강요하거든.”

무섭게 생겼지만, 속은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명심할게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알트페리아는 행인이 알려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몰래 뒤따르는 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골목 안쪽까진 가로등이 없었다.

그래서 어둡긴 했지만, 가게마다 램프를 걸어둬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천천히 길을 걷던 그녀는 여러 갈래로 찢어져 있는 거대한 푸른 잎이 그려진 간판을 발견했다.

그러자 가게의 이름도 덩달아 떠올랐다.

‘맞아, 몬스테라였지!’

여기 술은 소주 맛이 난다며 루크가 자주 찾는다.

그런데 제국 사람들 입에는 소주 맛이 별로인 모양이었다.

원작에서 루크를 따라 몬스테라에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게 뭐야, 소독용 알코올을 먹는 것 같아!”

“사람 먹으라고 만든 술이야?”

술맛이 최악이라며 불평을 늘어놨다.

알트페리아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이 많지 않은 조용한 가게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어렵지 않게 루크를 발견했다.

손님들이 연신 흘끗대는 시선의 끝, 다소 어두운 술집에서도 눈에 확 띄는 외모의 미남자가 있었다.

축 처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

눈에 띌 정도로 큰 키에 보기 좋게 쭉 뻗은 팔다리.

술잔을 천천히 기울이며 나른하게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은 퇴폐적이기까지 했다.

원작에선 검은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서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확실히 얼굴을 공개했으면 다른 의미로 소문났을지도.’

이 세계에서 가장 잘생겼다고 했으니까.

실제로 본 그는 예술품이라 느껴질 정도로 근사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작중에서는 루크의 미모가 최고라고 몇 번이나 찬양했지만 알트페리아는 최애인 2황자가 더 좋았다.

저 혼자 고개를 끄덕이던 알트페리아가 그에게 다가갔다.

“혼자 마시나요? 합석해도 될까요?”

무심한 시선으로 알트페리아를 올려다본 루크가 툭 내뱉듯 말했다.

“혼자 마시고 싶습니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존대는 하지만 경고의 의미가 담긴 목소리였다.

‘한창 심란할 때지.’

루크는 제도에 도착하자마자 2황자의 입을 통해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아직 확실히 결정하신 건 아니지만…… 폐하께선 막내를 루크, 너와 혼인시키려고 하시는 것 같아.”

바로 황제가 자신을 황녀와 혼인시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현재로선 확실히 정해진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로 추진된다면 사생아라 혈통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루크로서는 쉽게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골치가 아파진 그는 홀로 소주랑 비슷한 맛이 나는 술을 홀짝이고는 했다.

“그 말씀은 동행인이 없으시단 거네요. 빈자리니까 앉을게요.”

그녀는 루크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루크는 제 말을 무시하는 알트페리아를 빤히 바라봤다.

‘볼이 뚫리겠다.’

알트페리아는 루크의 시선에 볼이 살짝 따가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러다 오라 같은 거 뿜어내는 거 아니지?’

루크는 제국에 몇 없는 소드마스터 중 하나였다.

검의 일정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기운을 조절할 수 있다던데.

일반인인 자신은 살의가 잔뜩 담긴 소드마스터의 오라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쓰러질지도 몰랐다.

걱정을 뒤로한 알트페리아가 싱긋 웃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재미없지 않나요. 영웅님.”

탁―

그가 손에 쥔 술잔을 내려놓았다.

손님이 없는 술집에 테이블과 나무로 만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 정체를 알고 있는 걸 보니 제게 용건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본론만 말씀하십시오.”

“저는…….”

“자기소개는 되었습니다. 당신이 발트레 공녀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사교계에 정식으로 나서지 않았는데요.”

어떻게 아냐고!

“로브 아래로 보이는 머리 장식은 하얀 매군요. 하얀 매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가문이라면 뻔하죠.”

“…….”

“게다가 발트레의 성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이지 않습니까.”

북부의 대영주였던 발트레 공작 부부는 오래전 죽었다.

아직 발트레 공작위를 이은 사람이 없기에 루크는 자연스레 발트레의 후계자인 알트페리아가 제도에 왔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설마, ×난이세요?’

어떻게 머리 색이랑 상황만 보고 추리하냐고.

생각보다 눈썰미가 좋고 영리한 듯해, 어지간한 논리로는 그를 설득하기 힘들 것 같았다.

알트페리아를 흘끗 살핀 그가 내려놓은 술잔을 채우며 중얼거렸다.

“이런 곳을 귀족 영애 혼자 찾아오다니.”

“…….”

“공녀께서도 제 소문은 들으셨을 겁니다.”

“사람을 수백 명 잡아먹어서 괴물이 되셨다는 거요? 실제로 보니 뿔은커녕 눈, 코, 입, 제대로 붙어 있으니 거짓이었네요.”

“…….”

“예상외로 잘생겼기도 하고요!”

당돌한 알트페리아의 말에 루크가 픽 웃었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휘었다. 미인계로 공격하는지 심장에 살짝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취향은 아니지만 잘생긴 건 인정이다.

“소문이 완전히 거짓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수백 명 죽인 건 맞다는 뜻일까.

가벼운 어투였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정중하게 말하고 있지만, 당장 꺼지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무섭지 않아요. 저는 살아남기 위해선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거든요.”

그의 붉은 눈동자가 알트페리아에게 꽂혔다.

그가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날카로운 오라가 느껴졌다.

알트페리아는 목이 졸리는 기분을 느꼈다.

말로 해서 물러나지 않으니까 조금 겁을 주겠다는 것 같았다.

‘아, 안 무서워.’

사실 무섭다.

루크는 알트페리아가 다칠까 봐 적당히 힘을 조절했다.

그럼에도 기운이 너무나 날카로워서 알트페리아는 당장이라도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우, 우리 가문 시녀들이 더 무섭거든!’

알트페리아는 덜덜 떨리는 손끝을 꽉 붙잡으며 그의 살기를 버텨냈다.

소설의 주인공인 루크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겁은 주지만.’

악인이 아니라면 협박만으로 끝내기에 참으면 그만이었다.

“후.”

그가 낮은 한숨을 내뱉자 다소 무겁게 느껴졌던 공기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숨을 조이는 듯하던 살기도 사라졌다.

“제국의 공녀는 악마에게 어떤 소원을 빌 생각이었습니까.”

살벌한 눈빛을 버틴 것에 대한 보상인지 조금 어울려줄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알트페리아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부탁하러 온 게 아니에요. 거래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죠.”

“……내용은?”

“약혼자를 떼어내고 싶어요.”

“제게 암살이라도 부탁할 예정입니까.”

생각해 보니까 그 방법도 좋은 것 같다.

약혼자인 앨런은 2황자의 손에 죽을 예정이었지만, 수많은 여자를 울릴 쓰레기니까 이왕 사라질 거, 빠르면 좋지 않은가.

‘루크의 실력은 확실하고.’

생각에 빠져 조용해진 알트페리아 대신 루크가 입을 열었다.

“암살 의뢰는 받을 생각 없습니다.”

쳇, 그 방법도 끌렸는데.

“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방법입니까.”

“영웅께서 제게 한눈에 홀딱 반했다며 청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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