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5화 (5/91)

제5화

[‘명계의 지배자’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흑화한 염룡’이 알트페리아로부터 수상한 기운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알트페리아와 한 번 더 만나보자고 합니다.]

전생에서 루크에게 도움을 준 성좌들은 그의 새로운 삶까지 쫓아왔다.

전 차원을 뒤져도 그만 한 미모를 가진 자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빙의자들은 모두 전생의 능력을 잃는다. 루크 또한 능력을 잃었지만, 이왕 따라온 성좌를 이용해 몇 가지 능력을 얻었다.

인벤토리 같은 기본 능력뿐이지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비록 전생에 익힌 능력은 대부분 사용할 수 없지만, 오라를 깨우치고 거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

남들은 부러워할 능력을 지녔지만, 아직 부족했다.

‘뭐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어.’

루크는 삶의 목표가 있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런 막연한 목표를 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희생해 무너져가던 세계를 구했고, 루크의 눈앞에서 고통스레 죽은 사람이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선택한 일이야.”

“…….”

“마지막 부탁을 하나만 들어줄래?”

“제게……. 무엇을 원합니까…….”

“이제 세계가 평화로워질 테니 인생을 실컷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 네가 행복하게 살면 기분 좋을 거 같거든.”

짧은 유언과 함께 숨이 끊어진 사람을 떠올리던 루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불행히도 그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다. 세상을 구하느라 힘이 다한 자신이 배신자의 공격에 눈을 감았기 때문이었다.

죽었던 자신은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떴다. 혹시 그 사람 또한 이곳에 있을지도 몰라 성좌의 도움을 받아 찾아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자의 서기관’이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그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합니다.]

[‘흑화한 염룡’이 당신을 위로합니다.]

그 사람이 없는 세계지만 루크는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행복하게 살라는 그 사람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행복하게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거지?’

루크는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행복이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검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검을 휘둘러 마물과 적을 죽였다.

그렇게 전장에서 몇 년을 굴렀더니 작위와 포상금을 준다 한다.

부를 쌓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포상을 기다리던 차에 예정에 없던 알트페리아가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그 사람과 똑같이 미래 예지 능력을 갖췄다는.

‘뭐, 상관없어.’

만약, 그녀의 말이 허풍이라면 다시 만나지 않으면 되니까.

날이 밝기가 무섭게 2황자의 심복이 루크를 찾아왔다. 그는 2황자가 이스턴 왕국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발트레 공녀가 말해 준 대로였다.

‘진짜로 미래를 맞혔잖아?’

하나 확실한 건, 그녀에게 미래를 아는 예지 능력이 있단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영웅께선 불행해질 거랍니다.”

그건 곤란했다. 자신은 행복해져야 하니까.

발트레 공녀가 한 말이 신경이 쓰이니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시간이 급하다고, 자신의 말이 맞음을 확인하는 즉시 찾아와 달라고 했었다.

루크는 옷을 갈아입고 알트페리아가 건넨 머리 장식을 챙겼다.

[‘흑화한 염룡’이 알트페리아를 만나러 갈 거냐고 묻습니다.]

“약속을 했으니 한 번은 만나볼 겁니다. 그녀가 진짜 예언자라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겠죠.”

[‘명계의 지배자’가 청혼하러 가냐며 묻습니다.]

그녀는 미래의 정보를 알려줄 테니, 자신에게 홀딱 반했다며 청혼해 달라고 했다.

“……당장은 아닙니다. 일단 상황을 봐야겠지요.”

그녀의 예언이 진짜가 되었으니까, 황제가 약혼을 밀어붙인다는 것 또한 진짜로 일어날 미래일 확률이 높다.

알트페리아의 거래를 받아들이면 원치 않는 약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쉬운 방법이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영웅께선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평생 반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깔깔깔!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그녀를 떠올리면 왠지 울컥한다.

[‘명계의 지배자’가 루크를 찬 알트페리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차인 거 아닙니다.”

취향이 아니라고 했을 뿐이지.

명계의 지배자가 보낸 메시지에 루크는 왠지 모를 불쾌감까지 느꼈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내가 왜…… 그 여자의 말을 신경 쓰고 있지?’

[‘죽음은 신’이 알트페리아가 루크를 비웃은 거 같다고 합니다.]

……아마도 성좌의 말대로 비웃음을 당해 기분이 나쁜 것도 같았다.

[‘명계의 지배자’가 알트페리아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합니다.]

그리고 루크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명계의 지배자가 일을 저질렀다.

명계의 지배자는 다른 성좌들과 달리 루크를 대놓고 편애했다.

[‘명계의 지배자’가 권능을 사용하여 특별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흑화한 염룡’이 여기는 활성화된 채널이 아니라 신력 소모가 크다고 말립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루친놈아 정신 차려라고 합니다.]

성좌명대로 ‘명계의 지배자’는 명계를 지배하는 신이었다.

그런 그가 주는 퀘스트는 흉흉하기 짝이 없을 터였다.

‘거절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했는데.

[‘명계의 지배자’가 생성한 특별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메인 목표: 알트페리아를 혼쭐내 주자.]

당신의 미인계를 이용하여 알트페리아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고 그녀의 심박수를 높이십시오.

성공 보상: SSQ 간장치킨

수락하겠습니까?

YES / NO

주의: 활성화되지 않은 채널에서 생성된 특별 퀘스트입니다. 한 번 퀘스트를 수락하면 취소할 수 없습니다.

살벌하리라 예상한 것과 달리, 왠지 의욕을 자극하는 퀘스트였다.

거절하기에는 성공 보상이 너무 끌려서 루크는 수락하고 말았다.

* * *

다음날, 알트페리아는 아침 일찍 세이룬을 불렀다.

루크는 자신의 예언이 정확하단 걸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자신을 찾아올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 두고 싶었다.

“지난번에 새로 만든 드레스를 꺼내줘.”

“어디 가시려고요?”

“기껏 맞춰놓고 입어보지 못했잖아. 한번 입어보고 싶어.”

사실 못 입은 이유가 있다.

전생을 깨닫기 전의 알트페리아는, 앨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 몰래 푸른색 드레스를 한 벌 맞췄었다.

자신의 은발과 특히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신경을 써서 준비한 드레스였다.

그런데 앨런이 지나가는 여자를 보며 툴툴거렸다.

“저렇게 눈에 띄는 원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원색이 왜요?”

“너무 화려해서 눈에 확 띄잖아. 남자를 꼬시려고 환장한 것 같아.”

하필 알트페리아가 맞춘 드레스도 앨런이 싫다고 말한 새파란 색이었다.

그래서 기껏 맞춘 드레스를 입어보지도 못하고 옷장에 넣어뒀었다.

“하긴, 공녀님과 잘 어울릴 드레스인데 개시도 못 했네요. 새 옷을 꺼낸 김에 정원으로 꽃구경을 가실래요? 봄꽃이 활짝 폈거든요.”

알트페리아는 화장대에 올려둔 장신구함에서 목걸이와 귀걸이도 꺼냈다.

“좋아. 이왕 꾸밀 거, 제대로 하고 싶어. 앞머리를 자르고 머리도 평소와 달리 늘어뜨려 줄래?”

앨런은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를 싫어했다. 단정하지 못해 보인다나?

그의 취향에 맞추느라 늘 단정하게 땋고 다녔는데 사실 알트페리아에게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쪽이 더 잘 어울렸다.

세이룬이 입꼬리를 실룩샐룩 움직이며 말했다.

“화장도 공녀님과 어울리게 말이죠?”

“맞아.”

“실력을 발휘해서 공녀님을 최고로 만들어드릴 테니 맡겨주세요! 우리 공녀님은 안 그래도 최고셨지만요!”

세이룬은 의욕을 뿜어대며 새 드레스를 꺼내왔다. 그리고 알트페리아의 머리를 꼼꼼하게 매만지기 시작했다.

알트페리아가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성좌들에게, 잘 보여야 해.’

루크보다도 성좌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사실 루크는 원작 내내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반면 성좌들은 아름다운 걸 좋아하니까, 잘 꾸미면 아군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앞머리를 잘라 푸른색과 보라색으로 빛나는 눈을 드러내고 머리는 살짝 말아 늘어뜨렸다. 마지막으로 장신구 착용까지 끝났다.

세이룬이 땀을 훔치며 뿌듯해 했다.

“어떠세요, 공녀님?”

알트페리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어.”

이 정도면 성좌들의 마음에도 들 거다.

준비를 끝낸 알트페리아는 세이룬과 함께 화원에 핀 봄꽃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그녀와 함께 야외 테이블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알트페리아는 한숨을 돌리며, 제국에서 발행되는 신문 모두를 살펴보았다.

‘어디 보자.’

신문에는 여전히 악담과도 같은 루크의 헛소문이 가득했다. 마물의 피를 잔뜩 뒤집어써 외모마저 괴물같이 흉측해졌다는 긴 기사를 읽고 나서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은 정오가 막 지난 참이었다.

‘지금쯤이면 루크도 슬슬 2황자에게 이야기를 들었겠지?’

루크가 제도로 귀환한 바로 다음날, 아침이 밝기가 무섭게 2황자는 이스턴 왕국으로 떠나게 된다.

친우인 2황자가 왕국으로 떠났단 소식을 들은 루크는 꽤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미래를 예언한 걸 확인했을 테고.’

자신을 찾아올지 말지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이르면 오늘 당장 움직일 거고, 늦어도 며칠 이내로 발트레 저택으로 오지 않을까 싶었다.

개선식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준비는 했으니 됐어.’

만약에 오늘 오지 않는다면 내일도 차려입고 기다리면 되니까.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공녀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오늘 일정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약속을 잡지 않고 찾아올 사람은 루크뿐이었다.

알트페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모셔 와.”

루크와 약혼하고 앨런과 파혼할 생각에 신났던 알트페리아의 입술이 점점 일자로 굳었다.

검은 머리 대신 금발이 보였다.

조금 봐줄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루크를 보고 난 뒤라 오징어처럼 보이는 앨런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윽, 저게 왜 여길 와?’

그것도 약속도 잡지 않고!

앨런이 자신을 먼저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다른 여자와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가 먼저 찾아왔다는 것은 좋지 않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른 여자를 꾀기 위한 선물을 살 돈을 자신에게서 뜯어내려 한다든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투자할 곳이 있어. 나를 믿고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앨런의 뻔뻔한 거짓말에 넘어가 돈이 될 만한 장신구를 넘긴 적이 몇 번이고 있었다.

만약에 돈을 빌리려는 게 아니라면, 바람난 상대와 싸우고 나서 자신에게 화풀이하러 온 것이리라.

앨런이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은 좋다고 헤실거렸으니까.

“리아! 너 옷 꼴이 왜 그래?”

머리도 확 바뀌었는데 저놈은 옷부터 눈에 들어오나 보다.

그래도 명색이 약혼녀인데 달라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어휴 한심해.

“아니, 됐어. 그보다 아프다면서 멀쩡하잖아?”

씩씩거리던 그는 인사를 하기는커녕, 그녀에게서 허락도 받지 않고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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