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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6화 (6/91)

제6화

화부터 버럭 내는 걸 보니까 바람 상대와 싸운 모양이었다.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에요.”

“차를 마실 시간에 연락부터 했어야지. 너 때문에 괜히 아버지께 한소리 들었잖아!”

“로저필드 백작님께요?”

“그래, 당장 신전에 가서 약혼장에 서명하라고 잔소리하셨단 말이야. 나는, 나는 당장 하려고 했는데 네가 드러누워서 가지 못했던 거잖아!”

어이가 없어서 원.

작위가 먼저라며 반년 동안 서명하지 않은 게 누구였는데.

알트페리아는 개소리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신문을 마저 읽었다.

“너, 내 말에 집중하지 않고 뭘 보는 거야?”

“신문이요.”

“하, 네가 그런 걸 읽는다고 해서 뭘 알기나 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내 기분이나 풀어줘.”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저런 앨런을 보며 쩔쩔맸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알트페리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런 놈한테 휘둘렸다니.’

앨런에게 휘둘린 기억은 고스란히 흑역사가 되었다.

알트페리아는 읽던 신문을 내려놨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앨런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단 한 번도 알트페리아가 제게 반항한 적 없기 때문이었다.

“뭐? 나한테 버림받고 싶어?”

기억이 떠오르기 전, 앨런에게 홀딱 빠진 상태였던 알트페리아도 종종 이상함을 느끼며 그의 말에 따르기를 주저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앨런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쉽게 꺼냈다.

사랑하는 남자와 이별하기 싫었던 알트페리아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굽히고 앨런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잘되었네요. 우리 헤어져요.”

“그러게 진작에 내 말을 들었어야지……. 뭐?”

“헤어지자고요, 앨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네.”

멍청한 얼굴로 그녀를 보던 앨런이, 이윽고 화가 났는지 얼굴을 잔뜩 구겼다.

그에게서 그나마 봐줄 만한 건 얼굴뿐이었는데 저렇게 추한 속마음을 드러내니까 건질 부분이 하나도 없어졌다.

“네가 나에게 그런 건방진 소릴 쉽게 꺼낼 리가 없을 텐데……. 너 혹시 다른 남자 생긴 거야?”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기가 바람을 피우니까 상대도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알트페리아는 대답 대신 픽 웃었다.

“웃어?”

“아, 제 자신이 너무 웃겨서요. 왜 이런 걸 계속 옆에 끼고 있었을까?”

다시 한번 멍청한 표정을 지은 앨런이 따져 물었다.

“무슨 의미야?!”

“예의도 없고.”

알트페리아는 턱을 치켜들며 앨런을 위아래로 살펴봤다.

“볼품도 없는 사람을 곁에 둬서 제 품위가 떨어진다는 의미예요.”

그녀의 말에 주변에 있던 시녀들이 키득거렸다.

앨런은 생전 처음 받아보는 천대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그 때 시녀인 세이룬이 다가왔다.

“공녀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길에 떨어진 공녀님의 물건을 주워서 가져오셨다고 해요.”

이번에야말로 진짜 루크였다.

“모셔 와.”

오래 지나지 않아 다른 시녀의 안내를 받으며 루크가 나타났다.

낯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앨런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자기만큼 잘생긴 것 같아 아니꼬웠다.

잘 차려입은 옷에 절도 있는 걸음걸이.

한눈에 봐도 자신보다 훨씬 큰 키를 가진 남자는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도 사나운 기운을 풍겼다.

루크의 분위기에 괜히 압도당한 앨런은 기선 제압을 위해 양손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오늘은 따로 약속이 없는 걸로 아는데, 대체 누구길래 기별도 없이 발트레 공작가에 찾아왔지?”

알트페리아는 황당했다.

앨런은 자신이 공작가의 주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굴고 있었다.

대놓고 으르렁대는 앨런을 무덤덤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루크가 입을 열었다.

“하얀 매의 상징이 있는 물건을 주웠습니다. 발트레 공녀의 물건인가 싶어서 돌려주러 찾아왔습니다.”

“그전에, 네놈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나!”

상대의 공손한 태도에 기고만장해진 앨런이 손가락으로 루크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 간수 잘해야 할 텐데, 쯔쯔.’

삿대질에도 제 흐름을 잃지 않던 루크가 답했다.

“루크 폰 그랑힐데입니다. 아마도 전장의 괴물이라는 별칭이 익숙하실 겁니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마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루크의 곁에 서 있던 시녀들도 잔뜩 긴장한 것이 보였다. 실력이 뛰어난 그녀들조차 루크의 정체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중 가장 겁을 먹은 앨런은 살짝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루크를 막아설 사람은 없었다.

앨런은 당당하게 루크를 가리켰던 손가락 끝을 슬그머니 접더니 주춤거리며 내렸다.

“그랑힐데 공자? 공자가 여기는 왜…….”

“같은 말을 또 해야 합니까?”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에 앨런은 꼬리를 말듯 시선을 떨궜다.

“그건 아니지만. 크흠, 애석하게도 리아는 오늘 나와 만나기로 해서 남는 시간이 없소만!”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한 앨런은 알트페리아 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를 잔뜩 노려봤다.

‘리아! 네가 해결해!’

자신이 직접 물러가라 하기에는 그가 무서우니까 네가 나서서 만남을 거절하란 뜻이었다.

‘내가 왜? 너와 달리 루크는 내 손님인데.’

자리에서 일어난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저는 오늘 남는 시간이 많아요.”

“리아, 너!”

앨런은 참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루크의 덤덤한 시선이 앨런에게 향했다.

보는 눈이 많은 장소에서 망설임 없이 윽박지르는 걸 보면 발트레 공녀를 한두 번 무시한 게 아니란 소리였다.

루크가 경고하듯 읊조렸다.

“공녀님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비켜주시겠습니까?”

목소리만으로 몇 번이나 목을 베인 것처럼 찔끔 놀란 앨런은 눈치를 보더니 결국 물러났다.

“칫, 사생아 주제에.”

뭐라고 찡얼대는 거 같았지만, 알트페리아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알트페리아는 원래 앉아 있던 곳에서 조금 걸어 정원 쪽으로 나왔다.

사람이 없단 걸 확인한 알트페리아가 먼저 입을 열려는데.

“조금 전 그 사람이 로저필드 소백작입니까?”

루크가 먼저 말을 걸었다.

“맞아요. 제 약혼자예요.”

“오만방자한 자더군요. 원래부터 저랬습니까?”

앨런이 저를 무시하는 것에는 면역이 되어서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외부인인 루크에게 보이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전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점점 심해졌어요. 처음에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제 잘못이에요.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공녀님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깔보는 소백작의 행동이 잘못된 거니까요. 그러니 제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의 말에 알트페리아는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앨런과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모두가 그녀의 탓을 했었다. 앨런도, 그의 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그래서 앨런을 향한 마음이 모두 식어버린 지금도 무의식중에 제 탓을 한 것 같았다.

루크의 말이 맞았다.

못된 놈은 앨런이었다.

“고마워요.”

하마터면 앨런 따위 때문에 기분이 나빠질 뻔했잖아.

알트페리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에 웃었다.

그가 한 호흡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앞머리를 자르신 겁니까?”

약혼자라는 이는 알아보지 못하는데 루크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왠지 기쁜걸.’

그녀의 눈꼬리가 살포시 휘었다.

보라색과 푸른색, 두 가지 색이 절묘하게 뒤섞인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날이 더워져서 정리해 봤어요.”

눈을 천천히 깜빡이던 루크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

“해가 밝으니 그늘 쪽으로 가시죠.”

그는 마치 무언가에 쫓겨 도망가는 사람처럼 빠른 걸음걸이로 화원 안쪽에 있는 정자 쪽으로 향했다.

알트페리아가 미소를 짓자, 순간 자신의 눈이 이상해진 것 같았다.

그녀의 주변에 반짝이는 가루 같은 게 날아다니는 것 같았으니.

‘예쁘다.’

미소를 짓는 알트페리아를 보며 떠오른 생각에 루크는 크게 당황했다.

누군가를 보며 예쁘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이상해진 걸 깨달은 루크는 앞을 보며 똑바로 걸어갔다.

그런 그의 눈앞에 성좌들이 보낸 메시지가 둥둥 떠 있었다.

[‘사자의 서기관’이 밝은 곳에 있으니까 알트페리아의 머리카락이 다이아몬드로 실을 뽑은 것 같이 빛난다며, 감탄합니다.]

[‘흑화한 염룡’이 알트페리아가 오늘 입은 푸른 드레스가 잘 어울린다고 눈을 반짝입니다.]

까탈스러운 성좌들까지 입을 모아서 알트페리아의 미모를 칭찬했다.

알람창에서 성좌들의 메시지를 확인한 루크는 내심 안심했다.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었군.’

모두가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의 눈이 이상해진 게 아니었다.

특히 저 성좌들은 지독한 얼빠들이지 않나.

루크는 전생에 헌터로 활동할 때, 사람들은 확신했다.

그가 성좌의 후원을 받는 이유는, 바로 뛰어난 검술 때문이라고.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다 틀렸다.

저 성좌 셋은 자신이 막 각성하여 마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부터 얼굴이 마음에 든다며 쫓아다녔으니까!

어떤 우연인지, 현재 루크의 얼굴은 전생과 똑같았다.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얼굴이라 성좌들도 떠나지 않고 그의 곁에 있는 거였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띠링, 성좌들의 알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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