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7화 (7/91)

제7화

[‘명계의 지배자’가 솔직히 알트페리아는 예쁘다고 합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너는 알트페리아를 싫어하지 않았냐고 대꾸합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실언이었다고 빨리 본때나 보여달라고 합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실실 웃는 입꼬리나 내리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명계의 지배자의 특별 퀘스트가 있었지.

미인계를 사용하여 알트페리아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라던.

치킨에 낚여서 받아들였는데 제정신이 든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알트페리아와 함께 정자에 도착했다.

루크는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화원을 바라봤다.

알트페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공자님께서 직접 찾아오신 걸 보니, 제 예언을 확인하신 모양이에요. 어때요, 제 이야기대로 되었죠?”

알트페리아의 말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제가 강제로 약혼하게 되고, 파혼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황제가 자신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미래까지 믿겠다는 뜻이었다.

알트페리아는 거래 상대인 루크에게 말했다.

“그래서, 제 정보를 사실 건가요?”

루크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녀와 손을 잡으면 불행해지는 미래를 미리 알아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특히 몰상식한 로저필드 소백작 같은 놈에게 시달리고 있는 걸 두 눈으로 보니 그녀에게 약혼 파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과 약혼하면 알트페리아는 앨런과 멀어질 수 있었다.

자신 또한 친우가 아끼는 동생과의 혼인을 피해 하나 뿐인 우정을 지킬 수 있었다. 서로가 이득을 보는 약혼이었다.

그에게서 대답이 없자 알트페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생각하셔도 돼요. 어차피 계약서도 작성해야 하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나누죠.”

“계약서?”

“깔끔하게 이혼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잖아요.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계약서를 써야죠.”

알트페리아는 아직 약혼도 하기 전인데 벌써 이혼 생각부터 하는 것 같았다.

루크는 왠지 어이가 없어졌다.

“만약에 거래를 진행한다면, 저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 됩니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개선식 자리에서 제게 청혼하겠다고 밝혀주세요. 청혼으로 끝이 아니라 이후에도 제게 반했다고 온몸으로 표현해 주셔야 해요. 모든 제국 사람이 속을 정도로요.”

앨런을 떼어놓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황제는 루크가 코뿔소처럼 직진하며 사랑을 노래해야 떨어져 나갈 것이다.

“공녀님께 반한 연기만 하면 된다는 겁니까? ……만약 계약을 하게 되면 말입니다.”

“맞아요. 정답이에요!”

루크는 눈앞에 뜬 성좌들의 메시지를 읽었다.

[‘사자의 서기관’이 루크는 모쏠이라 그런 건 흉내도 못 낸다고 낄낄거립니다.]

성좌의 메시지를 확인한 루크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알트페리아에게는 루크의 대답이 시원찮게 들렸다.

“제대로 하셔야 해요. 앨런은 그렇다 치더라도 황제 폐하를 속여야 하니까요.”

“…….”

“개선식이 끝나면 무도회가 있어요. 폐하께서도 참석하시니, 계약을 한다면 미리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알트페리아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우선 공자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봐야겠어요.”

그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녀의 손을 빤히 바라봤다.

루크는 그랑힐데 공작 저택에서 제대로 된 예법 교육이나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 상태로 전쟁터로 보내졌으니, 귀족들의 예의범절엔 익숙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손등에 입을 맞추시는 거예요.”

“입을 맞춘다고요?”

“으음, 다시 한번 묻는데, 제가 없으면 죽겠다는 연기를 하실 수 있겠어요?”

“…….”

“자신이 없다면 지금 관두세요. 저는 다른 사람을 찾아볼게요.”

루크는 아직 알트페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답을 하지 않았지만, 왠지 그녀라면 혼약자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싫은 기분이 든다.

생각이 끝나자마자 그는 그녀의 손등을 붙잡고 입술을 살짝 대었다가 떼어냈다.

아주 짧게 입을 대었을 뿐인데 괜스레 입술이 뜨거워진 느낌이었다.

그의 귀 끝이 새빨개졌다.

알트페리아는 마치 제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루크의 행동을 꼼꼼히 살펴봤다.

‘겨우 이 정도로도 부끄러워하네.’

좀 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 황제가 루크를 사위로 들이려는 계획을 포기할 텐데, 연습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내가 도와줘야지!’

“한 번 손을 내밀어보세요. 제가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그가 손을 순순히 내밀었다.

‘손가락이 참 기네.’

길고 곧은 손가락은 얼굴만큼이나 섬세한 예술품 같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전장에서 구른 그의 긴 손가락엔 굳은살과 함께 자잘한 흉터가 보였다.

전생의 경험 때문에 누구보다 뛰어난 검술을 가졌지만, 피가 난무하는 전장은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타까워.’

온갖 고생을 하며 전장에서 굴러 제국을 구해놨는데 욕이나 먹다니.

그런 그의 앞길이 가시밭길뿐이라니.

알트페리아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루크의 손등에 입술을 진하게 파묻었다.

그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도망치려는 듯 살짝 비트는 것까지 느껴졌다.

‘어딜 도망가!’

그녀는 그의 손을 꽉 붙들었다.

그제야 포기했는지 루크가 잠잠해졌다.

천천히 입술을 떼어낸 알트페리아가 말했다.

“이렇게 제 손을 잡아먹을 것처럼 입 맞추시면 돼요. 알았죠?”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알트페리아는 뭐라 한마디 더 하려다가 말았다.

루크의 얼굴이 익을까 걱정될 정도로 새빨개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눈앞에는 성좌의 메시지가 동동 떠 있었다.

[‘명계의 지배자’가 미인계를 써야 하는 건 넌데 왜 당하고 있냐고 합니다.]

루크는 정수리까지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정도는 해야 상대방의 심박수가 증가한다면 미션 보상인 치킨은 영영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 *

루크가 돌아가고, 알트페리아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홀로 정원을 거닐었다.

‘나쁘진 않았어.’

몬스테라 술집에서 만난 루크는 흉흉한 기운을 내뿜었다.

살벌함으로 무장한 남자와 사이좋은 부부를 연기하는 건 불가능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계획을 실천에 옮기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루크는 잔뜩 쑥스러워하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의지도 보였다.

아직 자신과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닌 듯했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흥얼거리며 꽃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리아!”

외침과 함께 똥차, 아니, 약혼자가 등장했다.

루크가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자신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길래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앨런은 루크가 무서워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보일까 봐 숨어 있었다.

그렇기에 서로 손등에 입 맞추는 것까진 보지 못했다.

“공자께서 설명하셨잖아요? 제가 잃어버린 물건을 돌려주러 찾아오셨다고요.”

“거짓말! 네가 먼저 꼬리를 쳤겠지!”

그는 알트페리아의 말을 믿지 않고 화만 냈다.

앨런은 뭐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아하.’

아까 대놓고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제대로 끝맺음하지 못했는데 루크가 나타났지.

오만하며 제가 최고인 줄 아는 앨런도 루크를 보면 고개를 절로 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미모가 뛰어난 건 루크 쪽이니까.

약혼녀를 빼앗길까 봐 걱정하는 모양인데.

그러게 있을 때 잘했어야지.

“제가 누구를 만나든 앨런이 상관할 바 있나요?”

“뭐?”

“이제 우리는 남남이 될 텐데. 서로의 사생활은 신경 쓰지 말죠.”

“지금,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는 거야?”

“잘 알고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제 미래엔 앨런이 없었으면 해요.”

앨런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의 성정을 보면, 자신에게 대드는 여자에게는 벌써 손찌검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공녀라고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쥐고 참는 모양이었다.

애써 분을 삭인 그가 으르렁거렸다.

“내가 좋다고 했잖아.”

“제가 잠깐 눈이 멀어서 실수했어요. 앨런도 자주 눈이 멀어서 실수하잖아요.”

바람피우고 돌아온 앨런이 하는 변명은 늘 한결같았다.

“내가 잠깐 눈이 멀었어. 리아, 당연히 네가 최고야!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저 말에 몇 번이나 속아 넘어갔는지 원.

“당장 며칠 전만 해도 내가 좋다고 하던 마음이 이렇게 쉽게 변한다고? 사실대로 말해 봐! 너 저놈이랑 무슨 관계야!”

앨런이 알트페리아의 팔목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녀의 힘으론 그의 완력을 이길 수 없었다.

‘아, 진짜 이 무식한 놈이.’

알트페리아는 모든 기운을 발끝에 모았다.

평소 잘 신지 않은 뾰족구두는 상당히 괜찮은 살상력을 가졌다.

‘넌 죽었어!’

그렇게 급소를 가격하려고 했지만.

“뭐 하는 짓입니까!”

외침과 동시에 퍽! 루크가 앨런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아악!”

앨런은 그대로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며 흙투성이가 되었다.

한참을 데굴데굴 뒹굴다가 몸을 일으킨 앨런은 뺨이 시뻘겋게 부어 있었다.

‘아까워, 내가 해치우려고 했는데.’

감히 소백작 따위가 공녀에게 폭력을 행사했냐며 잘근잘근 밟아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루크의 주먹이 더 아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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