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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9화 (9/91)

제9화

루크는 사람을 한 명 불렀다.

오래 지나지 않아 루크의 호출을 받은 사람이 호텔 방에 도착했다.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에 서글서글한 눈매.

순한 인상을 주는 남자는 전장에서 만난 동료인 유진이었다. 그 역시, 2황자와도 우애를 쌓았고.

“대장, 부르셨나요?”

“오랜만입니다, 유진.”

유진은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남작가의 영식이라, 그랑힐데 공자인 루크가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루크는 상대가 누구든 존대했다.

그런 루크의 태도가 익숙한 유진이 넉살 좋게 웃었다.

“대장은 여전하군요. 일단 선물부터 받으십시오.”

유진은 루크가 좋아하는, 끔찍한 맛이 나는 몬스테라의 술을 한 병 사 들고 찾아왔다.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 루크의 입매가 살짝 휘었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루크의 말에 유진은 진절머리를 쳤다.

“그 맛없는 술을 계속 찾는 건 대장밖에 없을 겁니다. 제게는 줄 생각도 하지 마시고 혼자 많이 드십시오.”

유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대장은 왜 이런 호텔에서 지내시는 겁니까?”

“아직 포상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멀쩡한 저택은 어디에다 두고요?”

“아시잖습니까.”

루크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그랑힐데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공작 부인 때문이었다.

그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랑힐데 공작 부인이 루크를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하는지 잘 알았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싸우는 루크에게 살수를 보낼 정도의 정성을 보였으니까.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든 것만 몇 번이었는지.

싱글거리던 미소를 싹 지운 유진이 중얼거렸다.

“그러지 말고, 평소 거슬렸던 시종 하나둘을 베어버리십시오. 겁을 먹고 대장께 아무 말도 못 할 겁니다.”

“조언은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에효, 하여간 우리 대장은 너무 무르다니까요. 그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유진은 부상을 입어 루크보다 몇 달 앞서 제도에 돌아와 있었다.

그사이에 많은 정보를 모았을 터였다.

“발트레 공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발트레 공녀 말입니까. 약혼자인 소백작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 말이 많이 나옵니다. 꽤 유명한 이야기죠.”

루크는 그녀가 자신의 여자라고 우기던 앨런을 떠올렸다.

“아직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니, 약혼자가 아닙니다.”

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말대로 둘은 약혼하겠다고 밝혔을 뿐, 아직 그 어떠한 정식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진이 놀라는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대장이 다른 사람의 약혼 여부를 알고 있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루크가 타인의 세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이상했다.

누가 누구와 결혼을 하든 말든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으니까.

“대장의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약혼은 진행될 겁니다.”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으응? 우리 대장, 화난 것 같은데?

목소리에 날이 잔뜩 섰는데?

촉이 빠른 유진은 눈동자를 굴렀다.

하지만 괜히 듣기 좋은 말로 포장했다간 나중에 뒷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공녀가 소백작을 좋아한다 소문났으니까요.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와 약혼하기 위해서 작위를 양도한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습니다.”

루크의 표정이 더 좋지 않아졌다.

“소백작에 대해 더 말해 보십시오.”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유진이 다른 정보를 풀었다.

“……소백작은 발트레 공녀를 트로피처럼 끼고 다니며 떠벌리기 좋아했습니다. 그가 공녀를 마음대로 대하며 으쓱댄다는 건 제도 귀족들이라면 다 알 정도입니다.”

루크는 알트페리아의 팔을 우악스럽게 붙잡던 앨런을 떠올렸다.

주먹으로 얼굴을 한 대 후려쳤지만, 그 정도로 그치면 안 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을 부러뜨렸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유진은 알 수 없는 살기에 눈치를 보며 앨런에 대한 정보를 더 털어놓았다.

앨런은 바람둥이로 굉장히 유명한 자인데, 심지어 여자들을 향한 손버릇도 나빠 폭력적인 성향도 있다고.

루크는 유진의 말이 이어질수록, 알트페리아가 왜 앨런과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음날.

루크는 약속 시간에 맞춰 발트레 저택에 찾아갔다.

시녀인 듯한 사람이 루크를 맞이했다.

“누구세요?”

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 보면 어제 같은 자리에 있었던 시녀가 아닌 모양이었다.

“공녀님을 뵙기로 약속한 루크 폰 그랑힐데입니다.”

그의 이름을 들은 시녀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이건 또 새로운 반응인데.’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람은 대체적으로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발트레의 시녀들은 겁을 먹긴커녕,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살기까지 내뿜는 걸 보니 훈련받은 이들인 모양이었다.

“……공녀님께 말씀은 전해 들었어요. 안내해 드릴게요.”

시녀는 그를 잔뜩 경계하면서도, 알트페리아가 미리 말해 뒀는지 순순히 안으로 안내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발트레의 고용인들과 눈이 마주쳤다.

어제 자신을 본 자들은 저를 경계했다.

몇몇은 마치 싸우고 싶다는 듯 살기를 쏘아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투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루크는 적대적인 시선을 무시하고 저택 안쪽으로 향했다.

“공녀님께선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다른 시녀가 문을 열었다. 알트페리아는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루크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스템> 알트페리아의 심박수가 증가하였습니다!]

[<시스템> 알트페리아의 얼굴 색이 변하지 않아 특별 퀘스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루크는 미인계를 이용해 알트페리아의 심박수를 높이고 얼굴을 빨갛게 만들라던 퀘스트를 수락했었다.

덕분에 알트페리아의 심박수에 반응한 시스템이 알람을 보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놀라는 거지?’

느닷없이 퀘스트 달성 조건의 절반이 해결되었다.

루크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미리 약속까지 한 상대가 제시간에 나타났는데 놀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혹시, 저와의 약속을 잊고 계셨던 겁니까?”

자신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면 갑자기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손에 쥔 잔을 내려놓은 알트페리아가 답했다.

“약속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일찍 오실 줄 몰랐어요.”

약속은 시간을 딱 맞추라고 정하는 것이 아닌가.

10여 분 정도 일찍 오는 것이 왜 이상한가 싶었던 참에 어젯밤 유진이 한 말이 떠올랐다.

“소백작은 상당히 질이 나쁜 자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지, 공녀 혼자 찻집에 앉아 있는 걸 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랍니다.”

“…….”

“심할 때는 몇 시간 홀로 앉아 계시는 것도 보았답니다.”

앨런 그놈은 알트페리아와 약속할 때마다 늘 지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제시간에 맞춰 온 자신이 신기한 듯하고.

이 세상은 서로 연락할 수 있는 휴대기기가 없으니,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힘들다. 만약에 만날 약속을 한다면 상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연락도 되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앞으로는 마음을 다쳤을 그녀가 기다리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앞으론 좀 더 일찍 와야겠군.’

그런 생각을 한 루크는 알트페리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계약서는 미리 준비해 뒀어요.”

그녀는 시녀인 세이룬을 불러 새로운 차와 함께 계약서를 하나 꺼내 오도록 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알트페리아의 요청대로 갓 끓여낸 차와 함께 계약서가 준비되었다.

“공자님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어. 자리를 비워줄래?”

차를 내온 시녀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루크에게 닿았다.

“예, 공녀님.”

그러나 명령에 따르며 자리를 비웠다.

알트페리아는 루크 쪽으로 준비된 계약서를 쭉 밀었다.

“한 번 살펴보세요.”

루크는 계약서를 읽어 내렸다.

혼인은 1년 동안 유지한다.

그 후 깔끔하게 이혼한다.

알트페리아는 루크가 위험해지지 않도록 미리 대비한다.

마지막으로 루크는 발트레 영지에 나타나는 마물을 적극적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지에 마물이 나옵니까?”

“요즘은 잠잠해졌지만 미래에는 잔뜩 나타날 거예요. 그때 마물 퇴치를 부탁드릴게요. 대신에 저는 공자님을 지켜드릴 거고요.”

루크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가 저를 지켜주겠단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전쟁터에서도, 루크는 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비단 현재뿐만 아니라 전생에서도 헌터 랭킹 1위였으니까, 누군가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솔직히 궁금합니다. 대체 제 앞길에 뭐가 있는 겁니까.”

“목숨은 두 번 정도 위협받고, 사기는 한 번 당하세요.”

목숨의 위협은 둘째치고 사기는 또 뭔지.

“저를 위협하는 자가 누굽니까.”

그는 딱히 겁을 먹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건 지금 알려드릴 수 없어요. 때가 되면 하나씩 알려드릴게요.”

“미리 알려주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공자님께 드릴 유일한 패니까요. 거래 수단을 전부 다 내보일 순 없죠.”

“이거 참, 미래를 인질로 잡힌 기분이군요.”

“공자님께 해가 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영지에 마물이 나온다고 했죠? 공자님이 안전하셔야 저도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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