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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10화 (10/91)

제10화

모든 패를 보여주지는 않겠다.

루크는 그 말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루크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건네받은 알트페리아 또한 곧바로 서명했다.

계약을 위해 신전에서 특별히 발급받은 종이에서 빛이 나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마 신전의 보관소로 전송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땐, 신전에 찾아가 증명을 하면 될 것이다.

“결혼까지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연습을 합니까.”

“공자님은 개선식까지는 아무 일 없답니다. 그때까진 황제를 속일 수 있도록 다정한 연인 사이를 연습하도록 해요.”

“무도회가 있으니 춤 연습부터 해야겠군요.”

“맞아요.”

루크는 예법에 서툴렀다.

예상은 가지만 혹시 몰라서 알트페리아는 그의 실력을 물어봤다.

“춤은 어디까지 배우셨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단 한 번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루크는 사생아라는 이유로 그랑힐데 공작 가문에서 핍박받았다.

사교계 생활에서 필수인 예법 같은 걸 배우지 않은 상태로 전쟁터에 갔으니 춤은 구경도 못 한 듯했다.

그래도 똑바른 걸음걸이나, 화법을 보면 아예 엉망인 건 아니었다.

‘하긴, 2황자의 친우였지.’

친구가 황족이었으니 곁눈으로 몸가짐 같은 걸 배운 모양이었다.

그에게 부족한 사교계의 기술은 가르치면 그만이었다.

좋은 스승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잘하니까 하나하나 알려드릴게요. 따라올 자신 있으시죠?”

앨런은 공녀인 자신을 트로피 삼아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그 탓에 많은 파티에 초대되어 자주 춤을 췄기에 익숙했다.

“저는 몸으로 하는 일은 금방 익힙니다.”

“자신만만하니 좋네요. 기대할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알트페리아가 설렁줄을 잡아당기자 세이룬이 나타났다.

공손한 태도로 다가오던 세이룬이 고개를 숙였다.

“예, 공녀님. 찾으셨나요.”

“홀은 정리했지? 공자님을 홀로 모셔.”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알트페리아는 루크와 무도회 연습을 위한 홀로 향했다.

* * *

알트페리아는 루크가 방문하기 전, 미리 홀을 준비하라고 했었다.

덕분에 무도회 홀은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춤 연습에 필요한 물건도 놓여 있었다.

춤은 음악에 맞춰 춘다.

하지만 따로 연주자를 구하지 않았기에 피아노를 칠 때 사용하는 박자기를 꺼내왔다.

세모난 모양의 박자기는 추가 박자에 맞춰 좌우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소리를 내는 기계였다.

“무도회에서 추는 춤은 종류가 많은데 다 배울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저희는 오래 추지도 않을 거거든요.”

“질문해도 됩니까?”

“배우려는 의욕이 보여서 좋아요. 어떤 질문인가요?”

“오래 추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희는 사이좋은 연인이 될 거잖아요. 긴밀한 사이의 남녀는 춤 같은 건 후딱 해치워버리고,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거든요.”

“둘만의 시간이라고 하심은.”

“남들의 눈을 피해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 키스나…….”

“일단 춤부터 배우겠습니다.”

그는 냉큼 말을 끊었다.

지난번에는 사소한 접촉에도 부끄러워하더니, 아무래도 남녀 간의 관계에는 면역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원작에서도 루크는 모쏠이었다.

알트페리아는 싱긋 웃었다.

“저희는 왈츠를 중심으로 익히도록 해요. 세이룬, 시작해.”

그녀의 지시에 맞춰 세이룬이 박자기를 작동시켰다.

똑, 딱, 똑, 딱.

왈츠에 주로 사용되는 박자에 맞춰 일정한 소리가 났다.

준비를 끝낸 알트페리아가 루크 쪽으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준비되셨나요?”

“예.”

그녀를 내려다보던 루크가 알트페리아의 손을 낚아채더니,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잠깐 머뭇거리던 그의 입술이 도장을 찍듯이 손등에 진하게 파묻혔다.

알트페리아의 손등에는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그리고 손끝에는 힘을 줘 살짝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으응?’

당황한 알트페리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의 심장도 덩달아 콩닥콩닥 뛰었다.

‘아,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차분하게 내렸던 눈을 치켜뜬 그가 알트페리아를 빤히 바라봤다. 불을 연상시키는 붉은 눈동자가 유독 뜨거워 보였다.

손등에 닿았던 루크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꾹 누르는 입술의 감촉이 사라졌다.

그러나 뜨거운 기운은 여전히 손등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알트페리아는 할 말을 잊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배운 대로 했습니다만, 이상합니까?”

그녀는 그제야 루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했다.

어제 루크에게 한 손을 들어 올렸을 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바라만 봤었다.

“이럴 때는 손등에 입을 맞추시는 거예요.”

제대로 하지 못하길래 시범까지 보여서 가르쳐줬었다.

그런 제 말을 잊지 않은 그가, 제 손등을 낚아채 입술을 파묻은 거였다.

입술이 떨어졌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알트페리아의 손끝을 붙잡고 있었다.

왠지 모를 더위를 느낀 알트페리아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당황하지 마, 나는 루크의 예절 스승이야.’

모르면 실수할 수도 있지!

그녀는 실수한 루크가 민망해 하지 않도록 그의 양손을 붙잡으며 설명했다.

“어제는 헤어질 때의 이야기였고, 춤을 추기 전에는 손만 잡으면 돼요. 힘을 주진 말고 살살요.”

“…….”

“이렇게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회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예요.”

루크는 조용히 따라오긴 하지만 말이 없어졌다.

드러난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걸 보니 제 실수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제 막 예의범절을 배우는 햇병아리 루크가 의기소침해지면 안 된다.

‘초보잖아!’

실수 같은 건 할 수 있다며 북돋워 주는 것도 스승의 할 일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알트페리아가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래도 손등에 입맞춤은 잘하셨어요. 하루 만에 이렇게 능숙해지다니 깜짝 놀랄 정도예요.”

그러곤 적절하게 당근을 줬다.

“그러니 춤도 금방 익숙해지시겠죠?”

루크는 방금 전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려주십시오.”

그렇게 의욕적으로 배우리라 다짐한 루크는 시작부터 난관을 겪었다.

“이대로 제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싸며 끌어안으세요.”

루크는 그녀의 허리에 천천히 손을 감았지만, 동작은 뻣뻣하기 그지없었다.

알트페리아가 그에게 한 발짝 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자연스레 몸이 밀착되었다.

‘와…….’

알트페리아는 내심 놀랐다.

체격이 좋은 건 알았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새삼스레 넓은 가슴과 어깨가 돋보였다.

맞춤으로 제작한 것이 아닌지 입은 옷이 조금 아쉽긴 한데, 제대로 차려입기만 하면 더욱 빛날 것 같았다.

그녀는 자세를 잡기 위해 그의 가슴에 손을 살짝 올렸다.

‘세상에, 이게 사람 몸이야, 대리석벽이야?’

앨런과도 종종 춤을 췄었는데 루크는 감촉부터 남달랐다.

“와아!”

단단하고 넓은 가슴에 그녀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자 루크가 반응했다.

“예?”

“아뇨. 아무것도.”

알트페리아는 냉큼 시치미를 떼며 대강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루크가 또 물을까 봐 박자기 옆에 있는 세이룬을 향해 말했다.

“자세는 어때?”

“으음, 사이 나쁜 남매가 억지로 끌려 나온 것 같아요. 좀 더 다정하게 끌어안으시는 건 어때요?”

그거 완전 최악의 평가인데.

“들으셨죠? 손에 힘을 주세요. 제가 다리가 풀려 쓰러져도 무너지지 않게요.”

“지금 당장 공녀님이 쓰러지신다고 해도, 바닥에 닿지 않도록 붙잡을 수 있습니다.”

민첩함과 힘은 자신 있다는 뜻이다.

‘춤은 힘으로 다 해결되는 게 아닌데.’

역시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알트페리아는 그의 가슴에서 어깨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품에 꼭 안기듯이 밀착했다.

“읏.”

잔뜩 긴장한 루크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알트페리아는 토해 내는 듯한 신음과 함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이성과의 접촉에 대한 면역이 없어 힘겨워하는 모양이었다.

“숨을 천천히 내쉬시고요. 그대로 제 허리에 팔을 감으세요.”

그의 팔이 허리를 감쌌다.

헛, 팔도 탄탄했다.

세이룬이 말했다.

“보기 좋네요. 이제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기본적인 자세는 된 모양이었다.

남은 건 이대로 스텝을 밟으며 동작에 맞춰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그가 긴장하지 않도록 알트페리아가 조곤조곤 말했다.

“박자 소리에 맞춰 따라오면 돼요.”

알트페리아가 천천히 움직였다.

루크는 한 박자 느리게 그녀의 행동을 보며 따라움직였지만 어설펐다.

그 또한 제 춤이 엉망이라는 걸 알았다.

똑같이 몸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검을 휘두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루크는 알트페리아의 행동에 집중하며,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넣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초짜인 루크가 보기에도 알트페리아는 춤을 잘 추는 것 같았다.

그런 루크의 눈앞에 성좌들의 알람이 떴다.

[‘명계의 지배자’가 루크가 몸치라니, 캐붕이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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