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사자의 서기관’이 저건 몸이 아니라 정신이 문제라며 깔깔거립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슬프다고 합니다.]
[‘흑화한 염룡’이 그러면서 녹화하는 네놈은 뭐가 문제냐며 지적합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루크의 첫 춤이니 저장해야 한다며 당당하게 굽니다.]
루크는 성좌들이 찍소리하지 못하도록 잘해내고 싶어 몸을 크게 움직였다.
“앗?”
그 때 알트페리아가 짧은 비명을 내뱉었다.
의욕만 가득한 그와 그녀의 발이 엉켰고, 알트페리아가 크게 휘청거렸다.
“공녀님……!”
곁에서 보던 세이룬이 짧게 소리쳤다.
춤을 추다가 잘못 넘어지면 발을 접질릴 수도 있었다.
‘넘어진다!’
놀란 알트페리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다리가 공중에 붕 떴다.
그 짧은 순간에 루크가 알트페리아의 허리를 감싸안아 그녀를 가뿐히 들어 올렸다.
크게 놀라 눈이 동그랗게 된 알트페리아는 그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한 손으로 나를 든다고?’
다른 것보다, 자신을 가볍게 번쩍 들어 올렸다는 게 신기했다.
드레스 무게만 얼마인데!
“죄송합니다. 제 춤이 미숙하여…….”
알트페리아의 눈이 깜빡깜빡했다.
“넘어지실 것 같아서 제멋대로 끌어안았습니다.”
또 깜빡깜빡.
“많이 놀라신 듯한데 괜찮으십니까?”
알트페리아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저를 번쩍 들어 올린 그의 힘에 감탄한 것이다.
‘루크라면 그 춤도 추겠는걸?’
파트너의 허리를 붙잡고 허공에 번쩍 들어 올리는 동작이 있는 춤이 있었다.
어지간한 남자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그 춤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면, 힘이 좋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
남의 시선을 즐기는 앨런도 시도한답시고 알트페리아를 들어 올리려고 했었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었다.
그러고 한다는 말이.
“리아, 네가 너무 무거워서야!”
―라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후, 그 생각을 하니 또 화가 난다.
‘다음에 루크에게 알려주자.’
앨런 앞에서 제대로 선보이기 위해.
그렇게 결심한 알트페리아의 발이 살포시 바닥에 닿았다.
그녀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다시 연습하죠.”
“이번엔 제대로 집중하겠습니다.”
루크는 진심으로 미안해 하더니, 알트페리아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동작 하나하나를 익혔다.
왈츠는 몇 개의 동작이 계속 반복되는 춤이었다.
그가 동작에 익숙해질 때쯤에는 춤이 끝났다.
그의 어깨에서 손을 내려놓은 알트페리아가 말했다.
“여기까지가 왈츠의 끝이에요. 기억하시겠어요?”
“예, 동작은 외웠습니다.”
“계속 반복되니까 기억하시는 대로만 움직이면 돼요. 세이룬, 네가 보기엔 어땠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파트너가 없어서 남는 사람끼리 나와 추는 것 같아요.”
그래도 사이 나쁜 남매에서 진화해, 친밀한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는 정도가 됐다는 말이었다.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해요.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신다면서요?”
“면목 없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군요.”
“곤란하네요. 앨런과 췄을 때보다 훨씬 다정하게 보여야 할 텐데요.”
“그와 자주 추셨습니까?”
“많이요. 한때는 제 약혼자였으니까요.”
그녀가 춤을 잘 추는 건 앨런과 함께해서였다.
그런 생각을 한 루크는 알트페리아의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줬다.
두 사람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졌다.
그녀를 단단하게 지탱하던 루크가 말했다.
“앨런과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어땠더라.
“대답해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에 세이룬이 뒤늦게 반응했다.
“네? 아, 소백작과 추실 땐 솔직히 천생연분 같았어요.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춤을 추는 것처럼, 한 폭의 그림 같았거든요.”
루크가 손을 고쳐 쥐며 알트페리아를 내려다봤다.
알트페리아는 왠지 그의 눈에서 불꽃 같은 게 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제대로 해 보이겠습니다.”
시간이 급했다.
의욕이 생기면 좋은 일이지.
“다음에는 더 좋은 평가를 받아보자고요!”
알트페리아는 그의 의욕에 장작을 던지듯 목표도 설정해 줬다.
그렇게 루크와 함께 춤 연습을 반복했고, 세이룬의 평가도 점점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세이룬이 내린 평가는.
“정략결혼으로 만난 사람들이 처음 춤추는 거 같아요.”
정략으로 시작된 상태라면 딱 지금 두 사람의 처지란 거였다.
그렇게 춤 연습이 끝났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개선식까지는 앞으로 3일밖에 남지 않았다.
황제를 속이긴 힘들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추가로 더 활용해야 할 것 같았다.
“황제 앞에서 춤을 출 때 표정 관리도 하셔야겠어요.”
“표정 말씀입니까?”
“설명보단 시범을 보여드리는 게 좋겠어요. 한번 제 얼굴을 보세요.”
알트페리아와 루크는 키 차이가 제법 났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루크의 움직임에 맞춰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날렵한 코끝과 섬세한 입술도 한눈에 들어왔다.
최애캐는 아니지만, 솔직히 루크는 잘생겼다.
성좌들이 그를 덕질하는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건 덕질 상대를 바라보는 것과 조금 달랐다.
지금 자신이 만들어내야 하는 건,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
‘집중하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시선이 되길.
앨런을 볼 때마다 지었던 표정이지만, 막상 그 자식의 얼굴을 떠올리니 기분부터 나빠졌다.
앨런 놈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생각을 해보자.’
알트페리아는 앨런과 파혼하고, 작위를 물려받는 상상을 했다.
공작이 되면 전생처럼 돈을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뿐만 아니라 전생에서 꾸었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꿈꿨던 미래를 생각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여기서 좀 더 감정을 잡아서!’
알트페리아는 아련한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봤다.
시선이 닿자 루크가 뻣뻣하게 굳었다.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그는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은 듯 집중해서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집중하는데?
알트페리아는 민망한 마음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빤히 바라보시면 쑥스러워요.”
“잘 봐둘 겁니다. 제대로 따라 할 수 있게.”
루크는 귀 끝을 살짝 붉히면서도 말은 잘했다.
[‘사자의 서기관’이 빨개져서 터질 것 같은 얼굴부터 수습하라고 합니다.]
[‘흑화한 염룡’이 말만 잘한다고 합니다.]
루크는 성좌들의 놀림을 무시하며 그녀에게 집중했다.
“의욕이 가득한 걸 보니 당장 내일 만남이 기대되네요. 연습 많이 하고 오세요.”
루크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 * *
루크는 알트페리아의 시선을 기억하며, 자신이 묵는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 루크의 눈앞에 알람창이 여러 개 떠 있었다.
개중에는 한참 전에 떴던 알람도 있었다.
확인을 누르지 않아 계속 방치되어 있었던 거였다.
[<시스템> ‘메인 목표: 알트페리아를 혼쭐내 주자’ 달성 완료!]
[<시스템> 보상을 획득하셨습니다!]
[SSQ 간장치킨]
헌터 협회 앞에 있던 SSQ의 인기 메뉴인 간장치킨.
인벤토리에서 꺼낼 때까지 상하지 않습니다.
이 퀘스트가 언제 달성되었냐면…….
어제 알트페리아에게 배운 걸 떠올리며 루크가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을 때였다.
동시에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알람을 받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집중하느라 무시했다.
붙잡은 알트페리아의 손이 움찔, 떨렸었다.
붉게 물든 볼은 생기가 넘쳐났고, 동요한 듯 크게 뜬 눈은 오롯이 자신만을 담았다.
‘그 시선 또한 앨런을 바라볼 때랑 같을까?’
알트페리아와 앨런의 춤은 완벽하다고 했다.
완벽했던 그녀의 표정도 앨런과 함께했을 때 지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앨런에게만큼은, 절대 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그 예의 없던 놈보다는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루크는 거울을 바라보며 알트페리아가 지었던 표정을 따라 해봤다.
아무리 혼자라고 하지만, 거울을 보며 표정 연습을 하는 건 좀 민망했다.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니까 조금 익숙해졌다.
알트페리아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 즐겁기도 했고.
루크가 한참 거울과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찾아왔다.
“대장, 계십니까.”
유진이었다.
루크를 찾아 방 안쪽으로 성큼 들어오던 유진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한참 표정을 연습하고 있던 루크도 그대로 멈칫했다.
“…….”
“…….”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건 유진이었다.
“……대장. 우리 이런 사이 아니잖아요? 거리는 지켜줬으면 하는데요.”
그는 질색한 표정을 지었고, 동시에 루크는 입매를 딱딱하게 굳혔다.
동료가 된 뒤로는 조금 괜찮아지긴 했지만 루크가 정색하면 진짜 무서웠다.
살기를 느낀 유진은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놨다.
“농담이에요. 농담 싫어하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살기까지 내뿜을 건 없잖아요. 그리고…… 그만큼 대장의 표정이 수상했거든요!”
“되었습니다. 무슨 볼일로 찾아온 겁니까.”
여전히 숨 막히게 건조한 목소리지만, 죽일 듯한 시선은 사라졌다.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쉰 유진이 루크의 근처에 앉으며 답했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제도에 모이고 있습니다.”
“그랑힐데로 돌아간 겁니까?”
“대장을 따르던 자들이 그랑힐데로 돌아갈 리가 있습니까? 거기엔 대장도 없는 걸요.”
루크는 그랑힐데의 장남 대신 그랑힐데 공작 가문을 대표해 전쟁에 참여했다.
그랑힐데 공작가의 골방에 갇혀 찍소리도 내지 못하며 살아가다 전장에 끌려온 그는 검을 들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로 왜소했었다.
그런 루크의 명령을 들었다간 목숨을 보전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랑힐데 가문 소속의 기사들은 아무리 사생아라지만, 가문의 공자인 루크를 어떻게 할 수 없었기에 그냥 막사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가만있으라고 해서 얌전하게 있을 대장이 아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