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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20화 (20/91)

제20화

어휴, 재촉하기는.

이미 오늘 아침에 루크의 계좌 상태를 확인했다.

못 배워먹은 놈이라 그런지, 제 계좌의 소유자가 아직도 자신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힐다는 수표에 금액을 적어 밀테아 후작에게 보냈다.

루크의 계좌가 조금 전,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것도 모른 채.

* * *

제국을 구한 영웅의 등장.

그런 루크가 많은 귀족들 앞에서 알트페리아에게 공개 청혼했단 이야기는 삽시간에 제도 전체에 퍼졌다.

알트페리아가 한창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 소문을 접한 발트레의 시녀들은 잔뜩 걱정하며 그녀의 귀환을 기다렸다.

“그랑힐데 공자라면, 며칠 내내 저택에 방문했던 그 사람이죠?”

“맞아요. 괴물같이 생겼다는 건 거짓 소문이었지만……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을 베었다는 건 사실이래요.”

“솔직히 여기에 사람 수십 죽여보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북부의 경계를 지키는 발트레는 늘 위협을 받았다.

때문에 발트레의 시녀들은 가주를 지키기 위해 특별한 훈련을 받아 위험 요소를 제거했다.

“그렇지만 단위가 다르면 좀…….”

차원이 다르달까?

아예 종족 자체가 다른 기분이 들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그가 우리 연약한 공녀님을 데려간다는 게 문제지요!”

“그래도 쓰레기보단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루크는 며칠 내내 저택에 방문했었다.

그런 루크는 앨런과 다르게 알트페리아를 정중하게 대했다.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어요!”

“맞아요. 우리 연약한 아가씨를 협박했을지 누가 알아요.”

자신들과 달리 알트페리아는 검도 제대로 쥐지 못한다.

가녀린 알트페리아를 협박하여 손쉽게 결혼을 허락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똥수레 가고 또 똥수레라니. 용납할 수 없어요!”

“저는 각오했어요. 공자가 나쁜 사람이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를 세상에서 없애버릴 거예요.”

“저도요.”

“함께해요!”

앨런 때문에 고생한 알트페리아를 본 시녀들은 또 똥수레는 안 된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 * *

한편, 알트페리아의 조언을 들은 루크는 곧바로 제국 은행으로 향했다.

그의 뒤를 유진이 따라왔다.

남작 가문에 소속된 유진은 개선식에 참여했다가 루크의 청혼을 다 봤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도 믿기지 않아서 쫓아와서 물었다.

“제도에서는 얼굴을 공개할 마음 없다면서요.”

그래서 투구로 끝까지 얼굴을 가리기로 했는데, 대뜸 제 얼굴을 공개했다.

“생각을 바꿨습니다.”

“대장 얼굴은 함부로 공개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그 얼굴이 신분증이나 다름없다고요!”

“…….”

“이제 길거리만 가도 다들 대장을 알아볼 겁니다. 그런 미모를 가진 사람이 하나 더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

“어휴, 일단 넘기고. 며칠 전에 말씀하신 결혼 상대가 발트레 공녀였습니까?”

“그렇습니다.”

“근데 대체 청혼해 놓고 어딜 가는 겁니까.”

“공녀님께서 저를 은행으로 보내셨습니다.”

“……아직 약혼장에 서명도 하지 않았는데 돈부터 내놓으란 겁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은행은 왜 갑니까!”

청혼받자마자 상대를 은행으로 보내는 사람은 암만 봐도 이상했다.

“대장……. 제가 모르는 이상한 계약 같은 거 하신 거 아니죠?”

그 말에 루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와는 1년간 결혼을 유지하겠다는 계약을 했다.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몰랐다.

루크가 조용해지자 유진이 눈알을 굴렸다.

“조용하신 걸 보니 뭔가 이상한 계약을 하셨군요! 대체 무슨 계약을 한 겁니까!”

계약 조건을 그에게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공녀님은 제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유진이 자신의 가슴을 퍽퍽 쳤다.

“그런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공녀님의 말을 들으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루크는 황제가 자신을 얼마나 탐 내는지 오늘 똑똑히 확인했다.

알트페리아가 미리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황제는 정말로 황녀와의 약혼을 추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알트페리아의 말을 잘 들어서 좋은 일이 생긴 거였다.

루크는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반면 유진은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대장. 진짜 사기당한 사람처럼 말한다고요!”

루크는 분개하는 유진을 무시하고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귀족들이 사용하는 은행은 24시간 열려 있기에 밤이 늦어도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루크는 제 신분패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계좌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아티팩트를 이용해 신분패를 확인한 직원이 몇 가지를 대조했다. 그리고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신분을 알게 되자마자 하얗게 질렸다.

“아…….”

뒤늦게 루크를 따라온 유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혀를 찼다.

루크의 정체를 알게 되면 저런 반응이 정상이었다.

대장과 결혼할 사람처럼 은행에 가보라고 당돌하게 명령하는 게 아니라!

유진은 괜한 소란이 일어날까 봐 직원을 진정시켰다.

“협박하는 게 아니니 표정 푸십시오. 계좌나 얼른 확인해 주십시오.”

놀란 직원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고, 공자님께선 따로 계좌를 분리하지 않으셨어요. 계좌의 명의는 어머님이신 그랑힐데 공작 부인이십니다.”

그 말에 놀란 유진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뭡니까? 성인식을 치렀는데도 계좌의 주인이 아직도 그랑힐데 공작 부인으로 되어 있다고요?”

혀, 협박 같은 거 할 생각 아니라면서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직원이 덧붙였다.

“권한이 있는 공작 부인은 물론, 본인이 오셔서 처리하지 않아 계속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보통 성인식을 치르면 부모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

유진 또한 전장에 있을 때 그의 부모가 명의 이전을 진행해 뒀으니까.

‘하긴, 그 공작 부인이지.’

제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기사와 군대를 지휘하던 루크에게 암살자를 보내던 사람이었다.

루크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했을 것 같았다.

상황을 눈치로 파악한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명의 변경을 진행해 드릴까요?”

루크가 답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명의 변경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이 입을 열었다.

“와, 이대로 뒀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 해가 밝는 대로 그랑힐데 공작 부인의 손에 포상금이 들어갔을 걸 상상하면 끔찍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일이 잘 해결된 것은, 발트레 공녀가 계좌를 확인하란 조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대장에게 그런 조언을 할 생각은 못 했는데.’

조용히 생각에 빠져 있던 유진이 입을 열었다.

“대장, 잘하셨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발트레 공녀께 청혼한 일 말입니다. 아주 잘 잡으셨습니다.”

루크의 전장은 전쟁터에서 사교계로 이동했다.

칼부림만 없지 사실 사교계도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애석하게 루크는 귀족들의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다.

귀족들의 현란한 수작에 뒤통수 맞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제 곧 루크와 부부가 될 발트레 공녀가 야무진 듯해 든든했다.

“이럴 게 아니라 공녀님의 마음이 바뀌지 않도록 잘 처신하십시오. 내일 당장 공녀님을 뵈러 가실 거죠?”

“약속을 따로 잡진 않았습니다.”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루크의 성격이라면 알트페리아가 먼저 연락을 넣을 때까지 얌전히 호텔 방에 박혀서 기다리기만 할 것 같았다.

“대장, 당장 내일부터 무엇이 열리는지 압니까?”

“개선식 뒤의 축제를 말하는 겁니까?”

“잘 들으세요. 축제는 아주 좋은 데이트 장소입니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후쯤에 미리 찾아가겠다고 연락 넣으십시오. 대장께선 이 결혼을 꼭 하셔야 합니다.”

“사기당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지 않으셨습니까. 말이 쉽게 바뀌는군요, 유진.”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제 마음은 이미 공녀님을 모실 준비를 끝낸 지 오래입니다.”

온 힘을 다해 막으려고 달려들 땐 언제고.

루크는 왠지 유진이 못마땅하게 느꼈다.

“공녀님……. 아니, 정말 유능한 마님이신 것 같습니다.”

그 얘기에 불쾌한 기분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실제로 알트페리아는 유능했다.

루크는 테라스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알트페리아는 일부러 최후의 최후까지 기다렸다가 정보를 알려줬다.

그 점이 못마땅한 명계의 지배자는 난동을 피웠다.

[‘명계의 지배자’가 이 결혼은 허락할 수 없다고 날뜁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미리 알려주지 않은 알트페리아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합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당장 파혼하라고 합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절대 파혼해’라고 적힌 피켓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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