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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22화 (22/91)

제22화

아무리 다툼이 있었다고 하나 큰 상해를 입히면 로저필드 백작에게 고소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런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마구잡이로 저택에 쳐들어온 무단침입자였다.

거기에 저택 주인의 팔을 붙잡고 폭력까지 행사했다.

정당방위이므로 자신을 고발할 순 없을 것이다.

‘사실 남들 몰래 죽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많이 봐준 거라고.

알트페리아는 발끝으로 앨런을 툭툭 쳤다.

정신까지 잃은 걸 보면 상당히 아팠던 모양이다.

‘효과 좋네.’

나중에 대장간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구두를 손봐 준 사람에게 팁이나 지급할까 싶었다.

발끝으로 앨런을 밀어버린 알트페리아가 말했다.

“치워.”

세이룬이 활짝 웃었다.

“잘하셨어요. 비료로 만들까요?”

“아니, 저런 걸 묻었다간 꽃이 다 시들어버릴 거야.”

“아, 하긴 너무 더럽죠.”

세이룬은 손뼉을 가볍게 쳐서 시녀들을 불러 앨런을 치우게 했다.

평소 알트페리아에게 버릇없이 굴던 앨런을 곱게 보지 않던 시녀들이 그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무단침입을 하다니, 그냥 이대로 없애버릴까요?”

“안 돼. 공녀님께서 일단 목숨은 붙여놓으라고 하셨어.”

“어머, 아쉬워라.”

“다음에 또 허락 없이 저택에 들어오면 비료로 만들어버리자.”

“공녀님께서 비료는 사양한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차라리 개 먹이로 만들어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앨런은 시녀들의 살벌한 소리를 다 듣고 말았으나.

대체 이 집 시녀들은 뭘 하는 작자들인지, 하는 말이 무시무시해서 기절한 척 눈을 꼭 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앨런을 내다 버린 지 오래 지내지 않아 알트페리아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공녀님, 그레이 호텔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응? 아, 줘봐.”

그레이 호텔의 투숙객.

원작에서는 루크를 칭하는 말이었다.

루크는 저를 죽이려 안달이 난 공작 부인 때문에 그랑힐데 저택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레이 호텔에서 쭉 머물렀다.

알트페리아는 곱게 접은 편지를 개봉했다.

그의 미모만큼이나 돋보이는 우아한 필체가 보였다.

<저와 함께 개선식 축제를 둘러보시지 않겠습니까?

― 루크 폰 그랑힐데.>

내용을 확인한 알트페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축제에 참석할 생각이었는데 루크 쪽에서 먼저 권한 것이다.

<좋아요.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네요.

― 알트페리아 폰 발트레.>

그레이 호텔로 답장을 보내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루크가 찾아왔다.

세이룬의 안내를 받으며 알트페리아가 있는 응접실로 들어온 루크는 상자를 하나 들고 있었다.

그는 제가 가져온 상자를 세이룬에게 넘겼다.

“공녀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알트페리아는 세이룬을 통해 상자를 받았다.

상자는 짙은 푸른색의 큼지막한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작은 흰 보석으로 장식된 리본은 무도회에서 알트페리아가 입었던 짙은 푸른색 드레스랑 똑같았다.

치맛자락을 표현한 것처럼 묶어놓은 모습은 마치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를 리본으로 만들어놓은 듯했다.

“어머.”

곁에서 지켜보던 시녀가 감탄을 내뱉었다.

무도회 파트너의 차림을 토대로 만든 장식을 선물한다는 건.

‘저는 공녀님이 사교계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의미로, 내 파트너가 최고라는 뜻이었다.

알트페리아는 앨런과 수많은 무도회에 참석했다.

예의상이라도 보내줄 법하건만 앨런은 저런 의미 있는 선물을 마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시녀들이 눈빛으로 대화했다.

‘솔직히 저는 저 선물은 도시 전설이라고 생각했어요. 앨런과 수많은 파티에 참석했는데 단 한 번도 받으신 적이 없으니까요!’

‘공녀님도 기뻐하시는 눈치세요. 가산점을 줘도 될 듯해요.’

루크를 경계하던 시녀들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알트페리아는 루크가 준비해 준 선물을 얼떨떨해 하면서 받았다.

“감사해요, 공자.”

“공녀님께서 안을 확인하신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상대가 저렇게 말하니 열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식된 리본이 워낙에 예뻐서 그대로 두고 싶었는데.

‘아까운데.’

알트페리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보석으로 만든 작은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자그마한 귀걸이는 이상하게도 한 짝만 있었다.

솔직히…… 한 짝만 있는 귀걸이라니 영문을 알 수 없는 선물이라 그녀는 눈만 깜빡였다.

루크가 설명했다.

“이건 한 쌍으로 이뤄진 아티팩트입니다. 보석을 꾹 누르고 대화하면 다른 쪽을 가진 상대에게 대화가 전달됩니다.”

“…….”

“다른 쪽은 제가 착용하고 있습니다. 계속 착용하고 있을 테니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루크가 붉은 보석이 박힌 제 귓불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계속 지니고 있겠다는 건 언제든 알트페리아의 연락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거였다.

알트페리아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선물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자신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넣으란 말이 더 와 닿아서.

지켜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한번 착용해 보시겠습니까?”

귀한 선물을 받았다.

상대의 성의를 위해서라도 당장 착용해 보고 싶었다.

“괜찮으시다면, 공자님께서 도와주실래요?”

루크는 잠깐 멈칫했다.

착용을 도와주려면 그녀와 닿아야 한다.

장갑을 낀 손으로 에스코트하던 것과는 달리 맨 살결끼리 접촉하게 된다.

두 사람의 기류를 눈치챈 시녀들이 서로의 허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더니, 소리 없이 물러났다.

덕분에 방 안에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긴장한 루크가 후우, 한숨을 내뱉었다.

알트페리아는 한결같은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와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니까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해주세요.”

루크가 마음을 다잡길 기다리면서, 그가 준비한 귀걸이를 바라보는데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한 쌍이라고 하셨는데 색이 다르네요.”

루크의 귀걸이는 그의 눈동자를 닮은 붉은색이고 남은 다른 하나는 투명했다.

“착용자의 눈동자 색상에 따라 변화하는 마법이 추가로 걸려 있습니다.”

아티팩트는 아무리 단순한 마법이 걸려 있어도 저택 몇 채 값을 했다.

심지어 이 아티팩트는 두 개의 마법이 걸려 있어서 가치를 따지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 귀한 걸 제게 주셔도 돼요?”

“괜찮습니다. 전리품으로 얻은 거라.”

아티팩트는 돈이 있어도 마탑의 연줄이 없으면 쉽게 얻을 수 없었다.

루크에게 엄청난 인맥이 있나 싶었는데 전리품이었던 모양이다.

“공녀님은 이제 제 부인이 되실 분입니다. 혹여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을까 염려되어 준비했습니다.”

요컨대 호신용이라 이거다.

먼치킨인 루크를 호출할 수 있는 귀걸이라니, 호신용으로 이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설명을 끝낸 루크는 조용해졌다.

그는 손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축제가 다 끝날 때쯤에나 밖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투명한 보석을 만지작거리던 알트페리아가 말했다.

“제가 착용하면 어떤 색이 될지 궁금하지 않아요?”

시선을 마주친 그의 볼이 붉어졌다. 루크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예, 궁금합니다.”

“부탁할게요.”

알트페리아는 구불구불한 은발을 귀 뒤로 넘겼다.

풍성한 머리카락이 사라지자 그녀의 매끈한 목덜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루크는 조심스레 알트페리아의 턱을 붙잡았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알트페리아의 기다란 속눈썹과 오뚝한 콧날.

유진의 방해로 닿지 못했던 그녀의 입술이 눈에 띄었다.

그는 시선을 천천히 돌려 그녀의 귓불을 매만지며 조심스레 귀걸이를 꽂았다.

달칵, 부품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알트페리아는 눈을 반짝 뜨곤 근처에 있는 거울에 비친 제 귀를 살폈다.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보라색과 푸른색 두 가지 색상을 지닌 모습 그대로 변했다.

자신의 눈동자 색을 닮은 보석은 찾기가 힘들다.

그만큼 귀한 광물로 만든 듯 보이는 아티팩트였다.

귀걸이를 매만지며 거울을 바라보던 알트페리아는 벅찬 기분을 느꼈다.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야.’

늘 누군가에게 재물을 쥐여주기만 했는데, 반대로 누군가 자신을 위해 뜻깊은 선물을 준비한 건 처음이었다.

“어때요?”

“잘 어울리십니다.”

“후후, 제 마음에도 쏙 들어요. 만족스러운 선물을 받았으니 오늘 하루 공자님과 어울려드릴게요.”

“영광입니다.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그녀는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개선식 축제가 진행 중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건 나중의 일이지만, 상자를 포장한 리본은 세이룬이 챙겨다가 따로 장식품으로 만들어줬다.

그녀의 드레스를 닮은 듯한 리본은 알트페리아의 집무실 책상의 장식품이 되었다.

* * *

장장 10년이 넘도록 진행된 전쟁이었다.

길고 긴 전쟁이 끝난 만큼 축하하는 의미로 모두가 실컷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알트페리아와 루크는 귀족들이 많이 찾는 카페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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