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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23화 (23/91)

제23화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귀족들은 루크와 알트페리아를 알아보곤 흘끗 곁눈질했다.

알트페리아는 일부러 루크의 팔을 바짝 끌어안았다.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워지자 루크는 조금 뻣뻣해졌지만.

“제도를 떠날 때까지는 사이좋은 연인 사이라는 걸 제대로 어필해야 해요!”

가게에 들어오기 전 미리 해둔 말 덕분에 알트페리아의 손을 살며시 붙잡으며 그녀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봤다.

‘아주 좋아.’

약간 긴장한 게 느껴졌지만, 이 정도는 합격이었다.

정답게 카페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다른 테이블보다 유독 멀리 떨어진 자리를 골랐다.

덕분에 루크와 알트페리아의 대화는 남이 엿들을 수 없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차와 함께 딸기를 잔뜩 올린 화려한 타르트가 등장했다.

요식업이 흥하다 보니까 서로 경쟁이 붙어서 음식의 맛은 물론 외형까지 신경을 써 호화로웠다.

알트페리아는 곱게 간 설탕을 솔솔 뿌려놔 눈이 내린 듯한 모습의 타르트를 작게 베어내며 말했다.

“어제 은행 일은 잘 해결하셨나요?”

“예, 공녀님 덕분에 포상금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감사 인사는 쉬워요. 사업을 할 생각이니 저에게 투자하세요.”

그는 주저도 없이 곧바로 답했다.

“예, 필요한 금액을 말씀하십시오.”

시원해서 좋네.

“전액이 필요해요.”

누군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 알트페리아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사기꾼이에요!’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몰랐다.

[‘명계의 지배자’가 전애애애액? 이번에야말로 사기꾼의 냄새가 난다며 조심하라고 조언합니다.]

실제로도 루크를 편애하는 성좌 중 하나가 펄쩍펄쩍 뛰면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루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덤덤했다.

“좋습니다.”

“투자하라고 한 제 쪽이 말하기도 우습긴 한데……. 진짜 괜찮아요? 전 재산이잖아요.”

“어차피 공녀님의 조언이 아니었으면 제 손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돈입니다. 그리고 왠지 공녀님이라면 대단한 일을 해낼 것 같거든요.”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한 것은 그만큼 루크가 알트페리아를 믿기 때문이었다.

알트페리아가 씩 웃었다.

“기대하세요. 큰일을 할 거거든요.”

자신만만한 그녀의 미소를 보던 루크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의 표정은 확실히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알트페리아가 까르르 웃었다.

“이제 표정은 완벽하신데요.”

“그거 다행이군요.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다정한 연인으로 보이는 건 지금으로서 충분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들은 그 이상 돈독한 사이임을 보여야 했다.

타르트를 쿡쿡 찌르던 알트페리아는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결혼이네.’

부부가 되면 연인 코스프레를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같은 공간을 공유할 거고 앞으로 한 침대에서 함께 일어나겠지.

알트페리아는 그를 흘끗 보았다.

매일 루크를 보는 건 복지긴 하나 일단 뛰어넘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합방 문제도 이야기할까요?”

“합방이요?”

“네, 부부 잠자리요.”

“…….”

“아시다시피 제국에선 첫날밤을 치러야 부부로 인정해요. 완벽한 부부가 되어야 하니까 우리가 통과해야 할 관문이죠.”

물론 계약상 관계니까 진짜로 할 생각은 없고 남들에게만 무언가를 했다고 착각하게 할 것이다.

식을 진행하는 사제는 혼인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걸 확인하기 위해 다음날까지 신방 근처에 머무른다.

방 안까지 들어와서 확인하는 건 아니고, 함께 침실에 들러 아침까지 같이 있는지만 확인한다.

그러니까 함께 침실에 들어가서 안에서 진짜로 쿨쿨 잠만 잤다가 일어나도 모른다는 거다.

하지만 정작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루크는 순간 숨을 멈출 정도로 굳었다.

단순히 청혼 후 결혼하고, 서류상 부부가 된다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알트페리아가 제 입술을 톡톡 쳤다.

곰곰이 생각에 빠진 행동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루크는 온갖 이상한 생각이 다 들어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런 그들을 보는 귀족들은 새빨개진 루크를 보며.

“발트레 공녀가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새빨개질까요.”

“마치 첫사랑을 하는 사람 같아요. 솔직히 발트레 공녀가 로저필드 영식과 있을 때보단 보기가 좋네요.”

알트페리아가 전 애인과 함께 다닐 땐 고구마만 먹는 것 같았는데, 상대가 바뀌니 훈훈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의도치 않았지만 좋은 관계라는 것을 어필하고 말았다.

* * *

그들은 대화를 나눈 뒤 찻집에서 나왔다.

알트페리아는 신문을 보며 최근 인기 있는 데이트 장소를 물색해 놨다. 그래서 바로 이동하려는데 루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식사는 스테이크로 괜찮으십니까? 제가 미리 알아둔 장소가 있습니다.”

오, 웬일로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나 싶었더니 식사할 곳부터 시작해서 데이트할 장소들을 다 알아 온 모양이었다.

앨런과 데이트를 할 때면 늘 알트페리아가 모든 일정을 짰었다.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이 골라둔 가게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로 실현될 줄이야.

그가 어떤 장소를 알아 왔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뭐든 좋아요. 가요.”

도착한 가게는 신문에도 실리지 않은 식당이었다.

그런데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처럼 꾸며놓은 인테리어에 테이블 간격도 널찍해서 딱 연인들끼리 오붓하게 식사하기 좋은 장소였다.

“와, 예쁜 가게네요.”

한창 제철인 봄꽃을 동그랗게 묶은 장식이 곳곳에 놓였다. 장소만 보면 당장이라도 청혼받을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들었다.

루크는 그런 알트페리아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 가게는 유진이 알려준 곳이었다. 직접 방문하지 않아서 어쩌려나 했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까 오길 잘한 것 같았다.

그는 메뉴판을 살펴보며 말했다.

“여기는 서부에서만 사육하는 꿀소를 이용한 스테이크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잘 아시네요. 누구와 함께 오셨었어요?”

방문한 적은 없는데 유진이 말해 줬었다.

“신문에 실린 식당을 데이트 코스로 삼는다고요? 제.정.신.이.십.니.까!”

“…….”

“거기는 광고비 주고 실린 곳이라 맛이 형편없다고요! 진짜 맛집은 따로 있습니다. 여기는 서부에서만 자라는 꿀소로 만든 고기 맛이 일품이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좋아요!”

유진은 그렇게 열변을 토하면서 몇몇 장소를 골라줬다.

루크는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다 외웠고 말이다.

“따로 방문한 적은 없고 추천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이런 숨은 가게를 발굴하는 것도 재능이었다.

루크에게 데이트 장소를 골라준 사람이 누굴까 그녀가 궁금해 하는 찰나.

“남자입니다. 부하고요.”

그가 갑자기 다른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 황급히 덧붙이더니 음식을 골라 주문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메뉴판에 꿀소라 쓰여 있어서 뭔가 했는데, 진짜 고기에서 벌꿀향이 은은하게 났다.

꽤 신기한 맛의 음식을 즐긴 그들은 거리에 나와 주변을 거닐었다.

축제가 한창이다 보니 낮에도 다양한 노점이 나와 있었다.

그중에서 새콤한 과일에 설탕을 묻힌 꼬치를 간식 삼아 하나 쥐고 걸을 때였다.

“제국을 위협하는 악독한 자여! 이 자리가 바로 너의 무덤이다!”

큰 외침과 함께 쇠붙이끼리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높은 단상 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화려한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연극이었다.

알트페리아는 잠깐 서서 루크와 함께 극을 구경했다.

연극의 내용은 전쟁에 참여한 2황자에 대한 것이었다.

2황자의 모습으로 분장을 한 사람이 ‘제국을 위해!’라는 말을 내뱉으며 멋지게 검을 휘둘렀다.

솔직히 멋지긴 했다.

화려한 옷과 동작, 비록 루크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럭저럭 근사한 얼굴까지.

“와아아! 잘한다!”

“멋져요, 황자님!”

배우가 듣기 좋은 저음으로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를 내뱉었다.

좋은 반응은 물론, 수금하는 상자에도 돈이 가득 찬 걸 보면 상당히 유명한 연극단인 모양이었다.

알트페리아는 단원들이 올라가 연기를 하는 무대 아래에 있는 문장을 봤다.

검은 흑표범이 그려져 있었다.

대륙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연극단 ‘흑표범’이었다.

‘저들이구나.’

흑표범 연극단엔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바로 어둠의 일을 하는 조직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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