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24화 (24/91)

제24화

흑표범 연극단.

연극단은 그저 대중의 눈을 속이기 위한 모습이고 실체는 정보 길드였다.

종종 시녀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보 길드 중 가장 유명한 곳은 흑표범이에요. 돈만 주면 뭐든 알아내는 곳이지요.”

“…….”

“오래전에 멸망한 왕국의 보물이 묻힌 장소를 알아낸 것도 사실 흑표범이에요. 대외적으론 의뢰자인 남작이 발견했다고 알려졌지만요.”

“존재부터 확실하지 않다던 왕국이었잖아. 그걸 찾아내다니 대단한데?”

“그쵸? 혹시 그들이 필요하면 흑표범 연극단을 찾으세요.”

흑표범 연극단은 최근 건국 신화 등의 연극으로 유명해진 극단이었다.

“연극단을 말이지? 너는 왜 그렇게 잘 알아?”

“흑표범의 부단장이 저의 전 애인이었거든요.”

“뭐? 어쩌다 헤어진 거야.”

“그게 좀 부실해서……. 아니,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니니까 잘해줄 거예요!”

그렇게 들었던 곳이었다.

마침 잘되었다.

루크의 검을 찾아야 하니까.

오래된 보물을 찾아낸 경험이 있는 그들이니까 숨겨진 검도 잘 찾을 것 같았다.

알트페리아는 곁에 선 루크에게 말했다.

“다음 일정은 제가 정해도 될까요?”

루크의 품속에는 데이트 장소 후보지를 적은 리스트가 들어 있었다.

그녀가 스테이크를 싫어하면 파스타를, 그마저도 싫다고 하면 찜 요리 전문점을 가기 위해서 유진을 닦달해 줄줄이 알아냈었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다 쓸모가 없어져도 그녀가 원하는 장소가 좋았다.

“예,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그렇게 알트페리아가 향한 곳은 연극 무대 뒤편의 막사였다.

대체 이곳에서 데이트를 어떻게 하는 건지, 루크는 조금 당황했다.

당혹스러워하는 그와 달리 그녀는 막사의 장만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배우들과 이미 연기를 끝마친 뒤 한창 쉬고 있는 사람들이 이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알트페리아에게 꽂혔다.

“허락 없이 들어와서 미안하네. 흑표범 연극단의 단장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하지?”

대답은 없는데 하나같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알트페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트페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해야지 왜 빤히 바라보는지.

알트페리아는 알 리가 없지만, 단원들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르블레아 여신님 역할로 딱 알맞은 사람이잖아!’

그들이 준비한 다음 연극은 악룡을 쓰러뜨린 초대 소드마스터와 그를 구원해 준 여신에 관한 내용이었다.

르블레아 여신이 지상에 강림한 순간은 신전에도 거대한 조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모든 것을 통찰하는 듯한 자신만만한 눈매에 구불구불한 은발.

보석 같은 눈동자.

여신과 비슷한 느낌의 사람은 찾기가 유독 힘들었는데 겨우 구한 중요한 배역을 맡은 배우가 사고로 크게 다치고 말았다.

마땅한 배우를 찾지 못해 극을 취소해야 하나 했는데 때마침 여신의 역할에 딱 알맞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미리 준비했던 배우보다도 훨씬 어울리는 사람이!

알트페리아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여신이 되고 싶으십니까?”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그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한둘씩 모여 헛소리를 내뱉었다.

“면접 같은 건 필요 없겠습니다. 여신으로서 이 이상 완벽하신 분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저는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신께서 강림하신 줄 알았어요. 그것도 우리가 딱 필요할 때 나타나시니 더욱 성스러우셔서…….”

그들은 갑자기 냅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며 감동했다고 난리였다.

음, 연극단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였나?

“정신들 차리지. 이쪽은 신이 아니고 사람이거든.”

이런 걸 설명해 줘야 해?

“죄송합니다, 너무 적절할 때 나타나셔서 그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습니다.”

“정신 차리고 단장이나 불러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흑표범 연극단은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정보 길드였다.

그런 연유로 제아무리 높은 사람이 단장을 찾는다고 해도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저택의 시녀가 말했었다.

“혹여, 의뢰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면 ‘페페론치노’라고 말하면 뭐든 들어줄 거예요.”

페페론치노는 파스타 같은 요리에 사용하는 작은 고추의 이름이었다.

그 단어가 흑표범단의 의뢰를 받을 수 있는 비밀 키워드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알트페리아가 페페론치노를 대려고 할 때.

“우리 단장님을 찾으시는군요. 잽싸게 다녀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그들은 순순히 단장을 불러오겠다고 해줬다.

사실 그들에겐 속셈이 있었다.

여신의 역할에 딱 맞는 알트페리아를 붙잡기 위함이었다.

* * *

단원은 단장이 지내는 방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단장님!”

안에는 붉은 머리에 짙은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체격 좋은 남자가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흑표범 연극단을 운영하는 단장, 라파엘이었다.

그가 든 책 표지는 색상이 화려해 눈에 확 띄었는데, 연분홍색의 거대한 하트가 그려져 있고, 남녀가 손을 꽉 잡고 서로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놔, 또 로맨스 소설 읽고 있네.’

위장 단체로 연극단을 선택한 건 라파엘이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작은 알려야 해!”

뭐 그런 소리를 하며 연극단을 만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잘되어서 지금은 연극이 본업을 위협할 정도였다.

라파엘의 취미는 잘 알고 있어서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문제는 책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방해하면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박 사건이기 때문에 단장을 끌고 나가야 했다.

“단장님! 책 읽을 새가 아닙니다, 당장 나와보십시오. 여신이 나타났습니다!”

“아, 뭔 개소리야?”

“개소리가 아니고 진짜 여신의 역할에 딱 맞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니까요?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라파엘은 읽던 책을 탁 덮었다.

“긴 고구마 구간 다 지나고, 남주가 고백하려는 장면이었어. 이보다 중요하지 않으면 네놈 목부터 따버린다.”

“아, 예, 제 말이 사실이면 월급 좀 올려주십시오.”

“안 돼. 이미 많이 주고 있잖아.”

정보 길드는 원래 잘됐고, 위장용인 연극도 대박 나는 바람에 덩달아 월급도 올라갔긴 했다.

단원은 원하는 답은 듣지 못했지만, 딱히 불만 없이 라파엘의 뒤를 따랐다.

숱이 많은 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간 라파엘은 알트페리아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여신을 발견했다고 했지?’

단원이 내뱉은 그 말은 한 치의 거짓이 없었다.

딱 라파엘이 상상하던 구불구불한 은발에 보석 같은 신비한 눈동자와 하얀 피부.

가만있어도 빛이 나는 듯한 여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친 배우보다 훨씬 더 여신 역할에 적합하잖아!’

홀린 듯 알트페리아에게 다가간 라파엘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더니, 마치 기도를 하는 것처럼 양손을 꼭 모았다.

“여신님께서 이 비루한 곳을 찾으셨군요.”

그런 라파엘의 모습에 알트페리아는 입매를 굳혔다.

‘음, 얘들 다 미친 것 같은데.’

진짜 많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정보를 모으는 실력만 아니었으면 당장 막사 천을 박차고 나갔을 것 같았다.

라파엘은 가만있는 알트페리아에게 공손히 손을 뻗었다.

“부디 이 종에게 손등에 입을 맞추는 영광을 내려주소서.”

그 때였다.

곁에 조용히 서 있던 루크가 라파엘의 손을 꽉 붙잡았다.

“당신이 함부로 손댈 분이 아니니 물러서십시오.”

“뭐야, 이……. 와, 이쪽도 소질이 있으시네.”

그렇게 말한 라파엘이 루크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루크는 라파엘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오라를 사용했다. 날카로운 살기지만, 라파엘은 태연하게 싱글거렸다.

라파엘은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 그래도 뒷골목에서 제법 구른 경험으로 살의에도 태연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흑표범단원들은 달랐다.

루크의 살기에 반응한 단원들이 품속에 숨겨둔 무기를 한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알트페리아는 당황했다.

싸우러 온 게 아니었다.

의뢰를 넣으러 온 거지!

“그대가 흑표범단의 단장인 라파엘인가?”

“그렇습니다. 어떤 연유로 저를 찾으신 겁니까?”

“흑표범단에게 사냥을 맡기고 싶어서 찾아왔어.”

그녀의 말에 주변에 있던 단원들이 표정을 굳혔다.

사냥을 맡긴다.

연극단이 아니라 정보 길드를 찾는다는 비밀스러운 말이었다.

라파엘은 태연스레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저희의 정체를 아시나 봅니다. 사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사람은 다 처리하는 게 규율이지만, 여신님을 뵈어서라도 한 번은 봐드리겠습니다.”

“…….”

“의뢰를 받기 전에 어떻게 저희를 알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시녀가 곤란해지면 이렇게 말하라고 했지.

“페페론치노?”

라파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리에 쓰이는 고추 말입니까?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아니, 이게 먹히지 않으면 다른 방법은 모르는데.

알트페리아가 곤란해 할 때였다.

“아악―! 그 정도만 말씀하십시오!”

라파엘의 근처에 앉아 단도를 만지작거리던 한 남자가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소리를 빽 질렀다.

“뭐야, 부단장! 넌 또 왜 시끄럽게 굴어.”

부단장이라고?

저 사람이 부실하다던 시녀의 전 애인인 모양이었다.

“아, 아닙니다. 단장! 그냥 그분 의뢰 받아들이십시오! 얼른!”

“뭐어?”

“제가 무상으로 노동이라도 할 테니까 받으십시오!”

필사적으로 외친 부단장은 라파엘의 등을 단장실 쪽으로 꾹꾹 밀었다.

그 모습에 알트페리아는 눈만 깜박였다.

“손님, 얼른 들어가십쇼. 단장님께선 어떤 의뢰든 받아들이실 겁니다.”

뭔지는 몰라도 제대로 통과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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